석유, 아라비아 국가 그리고 이주 노동자

943호 – 석유, 아라비아 국가 그리고 이주 노동자

걸프만 국가 (출처 : World Atlas)

자연은 걸프만 지역에게 2가지 선물을 주었는데, 그 하나는 걸프만 연안 바다에서 고대로부터 채굴되기 시작한 진주이다. 19세기 걸프만의 진주는 인도 뭄바이의 상인들을 통해 전세계로 팔려 나갔다. 다른 하나의 선물은 20세기 초 걸프만 연안 해저 밑에서 발견된 석유이다. 걸프만 연안의 석유 매장량은 세계 최대로 알려져 있다.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지 걸프만의 국가들은 중동 정세에서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걸프만 국가 통치자들의 통치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고, 그 통치가 미치는 상대도 영토 보다는 사람에 머물러 있었다. 유목민이었으며 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걸프만 주민들의 생활 방식으로 인해 통치자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으며, 통치에 반감을 품은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버리면 되었다.

바레인의 왕가 알 칼리파(Al Khalifa) 가문은 쿠웨이트의 왕족 알 사바(Al Sabah)에서 분리되어 나와 바레인에 정착한 가문인데, 이 두 가문은 모두 17세기 아라비아 내륙에 있던 한 부족에서 유래하였다. 카타르의 알 타니(Al Thani) 왕가는 바레인의 알 칼리파 가문에게 반기를 들었던 가문이다. 두바이의 알 막툼(Al Maktoum) 가문도 아부다비의 알 나얀(Al Nahyan) 가문의 통치에서 떨어져 나온 가문이다. 걸프만 국가들의 경계는 국경에 의해 나누어 있지만 왕가들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의 왕가와 혼사를 맺어 왔다.

아라비아 반도 내륙에 있던 알 사우드(Al Saud) 왕가는 18세기 이슬람 근본주의 성직자 무함마드 이븐 아델 와합(Muhammad ibn Abdel-Wahhab) 및 그의 추종자들과 협약을 맺고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통치하며 사우드 왕가와 와하비 (Wahhabi)파 성직자들은 운명을 같이 하여 왔다.

사우드 왕가의 초기 통치 시절(1744-1818) 오스만 제국의 침입을 받았고, 2기 사우드 왕가 통치 시절(1824-1891)에는 내부의 문제로 권력이 몰락하기도 했다. 1932년 압델 아지즈 알 사우드(Abdel Azia Al Saud)가 사우디 왕가를 재건하고 왕국의 이름을 사우디아라비아로 결정하면서 현대의 사우디아라비아가 형성되었다.

당시 사우드 왕가는 영국의 도움을 받았다. 알 사우드가 1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 편에 섰던 요르단의 하심 가문(Hashemites)을 쳐서 메카와 메디나를 정복하였을 때 영국은 오만을 포함한 걸프만의 다른 국가들이 함께 사우드 왕가에 대항하려는 것을 막아 주었다.

1945년 미국의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은 중동 정세에 큰 영향을 결정한 얄타 회담(Yalta summit)이 체결된 이후 이집트에서 압둘 아지즈 사우디 국왕을 만났다. 1971년 영국은 이집트의 수에즈(Suez) 운하에서 철수하였고,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사태가 발생하자 미국은 중동 정세 안정의 후원자의 자리를 맡게 되었다.

석유의 발견은 가난하고 체제가 불안정했던 아라비아 반도의 국가들을 세계 최고의 부유한 국가로 만들어 주었다.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국가의 안전과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과는 달리 걸프만의 국가들은 석유에 의해 발생된 수익을 국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걸프만의 산유국들은 통치에 순응하는 대가로 국민들의 평생 복지를 책임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통치자들은 사회 규범을 정하는 권한을 와하비파(Wahhabi)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일정부분 부여했고, 그 대가로 이슬람 성직자들은 사우드 왕가의 통치의 정당성을 지지해 주었다.

걸프만 국가의 주민들은 가난에서 벗어나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 그들의 삶의 질은 급속도로 높아졌다. 걸프만 국가 정부는 사회 체제의 정비를 서양의 전문가에 의지하였고, 국민들은 자신들을 위한 단순 노동을 아시아에서 온 이주민 노동자들에게 맡겼다. 걸프만 국가에서 외국인 거주민의 비율은 평균적으로 50%에 이르는데, UAE와 카타르는 그 비율이 90%에 이르고, 사우디아라비아는 30% 정도이다.

석유로 인해 생기는 막대한 부로 걸프만 주민들은 이전의 생활 방식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시인은, 유목 생활을 하며 사막을 누비던 아라비아인들이 이제는 주인이 주는 모이를 기다리는 닭과 같은 신세가 되었다고 한탄하기도 하였다.

걸프만 국가가 국민들에게 베푸는 혜택이 아주 크기 때문에 걸프만 국가들은 시민권 부여를 엄격하게 제한하여 왔다. 아라비아 반도에는 수십만 명의 아랍인들이 비둔(bidoon)이라는 이름의 무국적자로 남아 있다. 이주민 노동자들도 케파라(kefala) 제도 아래 인권이 크게 구속당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들은 직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심지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고용주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걸프만 국가에서 시민의 권리는 국가가 주는 선물이지 국민들이 고군분투하여 획득하는 권리가 아니다.

(출처: The Economist 2018년 6월 21일, 한국선교연구원(krim.org) ‘파발마 2.0’ 201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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