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30년간의 복음의 전진 (1981~2012) (2)

899호 – 스리랑카 30년간의 복음의 전진 (1981~2012) (2)

하쌴더 존 선교사
한국선교연구원의 현장연구위원이며, 감리교 소속 목사로 예수전도단(YWAM)의 파송을 받아 지난 1997년부터 스리랑카에서 사역하고 있다. 저서로는 ‘꿩먹고 알먹는 스리랑카어’, ‘아름다운 땅에서’ 성경 씽할러’ 등이 있다.

스리랑카의 2012년과 1981년 인구 조사 도표 (작성: 하산떠 존 선교사 )

불교도가 다수를 차지하는 인도양의 섬나라 스리랑카는 지난 26년간(휴전 기간 포함) 정부군과 소수민족 타밀족 반군과의 내전(1983~2009년)을 겪은 나라이다. 따라서 스리랑카는 내전으로 인해 전국적인 인구조사가 지난 1981년 이후 30년 만에 지난 2012년에 이루어졌다. 1981년에서 2012년 사이 인구조사가 간간히 실시되기는 했지만, 내전지역들이 빠진 불완전한 인구조사였다.

2012년 전국 인구 조사와 18개 주 인구조사 비교
전국 종족 통계와 18개 주 종족 통계를 비교해 보면, 씽할러는 74.9% 대 81.1%로 전국 통계에 비해 18개주 통계가 상대적으로 많이 우세하고, 타밀은 15.4% 대 9.52%로 아주 많이 열세하다. 무어족은 9.2% 대 8.85%로 많은 차이가 없고 버거족은 0.2% 대 0.15% 이다.

종교별로 보면, 불교는 70.2% 대 77.3% 로 18개 주가 아주 강세를 띠며, 힌두교는 12.6% 대 7.85%로 많은 열세를 보인다. 이슬람 또한 9.7% 대8.84%로 1% 정도 감소가 있고, 천주교는 6.1% 대 4.27%로 많은 격차가 있다. 개신교는 1.3% 대 0.91%로 3분의 1 정도가 줄어드는 열세를 보이고 있다.

씽할러가 우세인 18개 주에서 불교를 제외한 힌두교, 이슬람, 천주교, 개신교 모두 많은 신자수가 줄어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7개의 타밀이 많은 주에서 불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들이 왕성하게 움직이는 것을 반증한다. 이는 타밀 사람들이 불교를 제외한 다른 신앙을 더 많이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힌두교는 많은 격차를 보이고, 천주교 또한 많은 타밀 성도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분포도는 씽할러 지역에 복음이 덜 전해졌고, 더 많은 복음전파의 시도와 수고 헌신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연도별 개신교 복음 전진 상황
10년 단위로 이루어진 정부 인구 조사만을 가지고 개신교의 복음 전파 상황을 파악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사이 사이 기독교 단체에서 발표한 자료를 사용해서 스리랑카 복음의 전진 상황을 더 세밀하게 보려고 한다.

이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 사용된 자료들은 위에서 사용한 정부 인구조사 1981년, 2001년, 2012년 자료, 패트릭 존스톤의 “세계기도정보” 2000년판과 제이슨 멘드릭의 “세계기도정보” 2010판, 1998년 NCEASL(스리랑카 복음주의 협의회)에서 발행한 ‘National Church Survey 1998’ 책을 포함한 “아름다운 땅에서(2008년)”와 NCEASL에서 2002년 발간한 “Church Survey Interim Draft Report”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스리랑카 개신교는 1981년0.7%에서 2012년 1.3%로 2배에 가까운 성장을 하였다. 1981년에 106,854명의 성도 수에서 2012년 272,568명으로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관점에서 보면, 숫자적인 면에서는 154,000명 정도가 늘어났고 인구수로 보면 2.5배의 성도가 늘어난 셈이다. 보통 교인의 3분의 2가 타밀 성도들이었는데, 씽할러18개 지역에서 0.9%의 성도 수를 나타내며 씽할러 불교 지역에서 많은 새 신자가 나왔다.
지난 30년 동안, 기적과 이사, 치유, 성령 사역으로 많은 개종자가 나왔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씽할러 불교 마을에 많은 교회가 개척되면서 성장을 하였다. 특히 믿음이 견고하지 않은 천주교인들을 많이 개신교로 개종 시키면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갈등이 증폭되기도 했다.

80년대 초에 많은 토착교회와 교단이 사역을 시작했다. 다른 교회 가운데서도 복음 사역(Gospel Ministries), 마르거여 교회(Margaya Fellowship), 서머나 교회(Smyrna church), 왓떨러 교회(Wattala Church), 베델 교회는 1981년부터 시작된 시골지역 사역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 중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카리스마와 비젼 그리고 헌신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를 개척했다. 이러한 복음에 대한 열정과 부담감, 긴급성은 심지어 모임의 숫자는 적고 전도 사역에 적극적이지 않은 NCC 교회에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1981년, 2001년, 2012년 정부 인구조사와 1998년과 2002년에 발간된 NCEASL의 자료, 2010년에 발간된 세계 기도정보 책자를 참고하여 30년을 5개의 기간 1) 1980 ~1997년 2) 1998년 ~ 2001년 3) 2002년 ~ 2010년 4) 2011년 ~ 2012년 5) 2012년 ~ 현재까지로 분류 하였다. 각 주요 단체들의 교인 수 증감과 교단 별 교인 수 증감을 살펴보자.

1) 1980년 ~ 1997년 상황

먼저 6개의 교단을 회원으로 가지고 있는 NCC는 1980년 96,000명의 교인에서 1986년 89,000명, 1993년에는 88,700명, 1997년 73,047명으로 꾸준히 감소해 17년 만에 22,953명의 교인을 잃었다. NCEASL은 1980년 7,000명의 성도에서 시작해서 1986년 9,000명으로 증가하고, 1993년에는 32,721명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해 1997년에는 47,562명으로 자리를 잡는다. 독립교회는 1980년 2,000명에서 1986년 11,000명, 1993년36,697명, 1997년 41,982명으로 가파른 성장을 한다. 1980년 105,000명의 성도를 보유한 개신교는 1997년 급기야 164,126명으로 어마어마한 성장을 경험해 57,591명의 새로운 성도를 가지게 된다.

1997년 교회 숫자는 NCC가 355개, NCEASL이 603개, 독립교회가 287개로 총 1,259개이다. 1971년 ~ 1981년 기독교 성장률이 0.16%인 반면 1981년 ~ 1997년 까지는 2.71%의 성장률을 유지하며 많은 부흥을 경험했다.

이 기간 부흥에는 콜튼 위끄러머씽허 목사가 이끄는 하나님의 성회(AOG)의 역할이 컸다. 1978년 630명의 성도를 가지고 있던 하나님의 성회는 1997년 20년 만에 19,880명의 성도를 가진 교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2) 1998년 ~2001년 상황

이 기간 동안 NCC는 1997년 73,047명에서 2001년 69,068명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NCEASL은 47,562명에서 74,705명으로, 독립교회는 41,982명에서 52,767명으로 성장해 총196,540명의 성도를 가지게 된다. 이로서 3년 만에 개신교는 32,404명의 새 신자를 얻게 된다.

교회 수는 NCC가 355개에서 351개로 4개 줄었고, NCEASL은 603개에서 1,229개로 626개가 늘어났으며, 독립교회가 287개에서 330개로 43개가 늘어나 총 1,259개에서1,910개로 651개가 더해졌다.

성공회가 최대 교단으로 146개 교회에 34,000명 최대치 53,900명의 성도를 보유하고, 그 다음으로 감리교가 143개 교회 17,049명 최대치 28,471명의 성도를 가지고 있다. 세번째는 급성장한 하나님의 성회가 70개 교회 10,000명 최대치 77,000명의 성도를 가지게 된다. 하나님의 성회에 교인수와 최대치 교인수에 차이가 심한 것은 감리교나 성공회에 비해서 정확한 통계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추정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3) 2002년 ~ 2010년 상황

2010년판 세계기도정보를 보면, 개신교는 1.46%로298,353명 (최대치 교인 수)의 성도를 보유하고 있다. 8년 만에 196,540명의 성도에서 101,813명이 늘어났다.

최대 교단이었던 성공회는 이 기간 146개 교회 53,900명에서 146개 교회 33,150명으로 성도 20,750명이 급감했고, 감리교는 143개 교회28,471명에서 134개 29,100으로 교회는 9개 줄었지만 성도는 629명이 늘어났다. 급성장하던 하나님의 성회가 드디어 179교회 48,000명의 성도를 보유하면서 스리랑카 최대 교단이 되어 스리랑카 개신교 역사를 다시 썼다. 하나님의 성회의 새로운 도시 교회 개척과 목회자들의 헌신, 그리고 교회 내 ‘디모데 제자훈련’이 최대교단으로 자리 잡는데 큰 요인이 되었다.

‘표3’은 세계 기도 정보 책자 2000년 판과 2010년 판을 비교한 것이다.

2003년에 시작된 기독교의 개종을 막는 ‘개종 금지법안’을 통과 시키려는 불교계의 공격이 수년간 지속되었지만, 이 법안이 무산된 것은 아니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 연기되었다. 2004년 12월에 발생한 쓰나미로 인해서 4만 명의 희생자가 나왔지만, 이들을 돕는 기독교 단체의 구호의 손길은 불신자들이 예수님께 돌아오는 기회가 되었다. 콜롬보에서는 대형 교회들이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스리랑카 최대 교회인 독립교회의 Jesus lives 교회 (15,000명 추정), 하나님의 성회의 People’s Church(7,000명 추정), 갈보리 교회(4,000명 추정)등이 초대형 교회 건물을 짓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한 찬양과 예배, 성령의 역사, 강한 십자가의 메시지가 교회의 부흥을 이끌었다.

4) 2011년 ~ 2012년 상황

2012년 내전이 종료 된 후 30년 만에 전국적으로 인구 조사가 이루어졌다. 2010년 세계 기도 정보 책자 자료에 1.46%로 298,353명(최대치 교인 수)의 성도를 보유했던 개신교는 정부 인구조사를 통해서 1.3% 272,568명으로 재 조정되었다. 26,000명의 교인이 줄어들었다. 그 이유를 개신교의 중복 집계와 기독교인이 된 것을 알리기를 꺼려하는 새 신자들의 모습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씽할러 불교에서 개종한 성도들은 자신이 기독교로 개종한 것이 주변에 알려질 경우 당하는 불이익과 핍박에 대한 두려움이 강해서 정부 조사에서 자기의 종교를 기독교로 적지 못한 경우가 많다. 성공회와 감리교에서 다른 교단으로 이적한 성도들이 성공회와 감리교에서 제적되지 않고 계속 유지 되었고, 기적, 치유, 은사를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성도들 또한 이중 집계된 것이다.

내전이 종료된 후에는 종교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퍼졌는데, 이 말이 사실로 나타났다. 내전 종식에 힘을 쏟았던 불교계가 이제는 폭력을 동원해 가며 개신교와 이슬람을 방해하고 있다. 특히 ‘보두발러 쎄나’라는 불교 단체는 스리랑카 전국을 돌아다니며 기독교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교회들을 부수며, 주일 예배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5) 2013년 ~ 2014년 상황

보두발러 쎄나 단체의 조직적인 공격과 방해로 개신교는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2013년에 교회가 부숴지고, 주일예배가 방해 받고, 교회 문을 닫게 된 수가 100여 개에 이른다.

2013년 석가 탄신일에 30대의 젊은 승려가 반(反)개종법을 통과 시킬 것과 소 도축 (이슬람에 대한배격)을 반대하며 분신 자살을 하게 된다. 이 일로 2003년 이후로 잊혀져 갔던 반개종 법안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스리랑카의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

(출처: 하쌴더 존 선교사, 2014년 9월 26일, 한국선교연구원(krim.org) ‘파발마 2.0’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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