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독교의 확산과 공산당의 대응 (2)

901호 – 중국 기독교의 확산과 공산당의 대응 (2)

중국 당국은 ‘중국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는 해안도시 원저우(Wenzhou)에서 기독교인들을 단속하여 왔다. 중국에서 종교 정책의 집행은 주로 지역 관리들이 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중앙 정부에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종교인들을 엄격히 단속하기도 한다. 원저우에서의 기독교인 단속은 시진핑(Xi Jinping) 주석에 잘 보이려는 지역 관리들의 충성심에서 나온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고, 미국 퍼듀 대학교(Purdue University)의 양펑강(Yang Fenggang) 교수는 말했다.

중국 기독교 박해 상황을 감시하는 미국 단체 China Aid에 따르면, 2013년 7,400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았다. 물론 드러나지 않은 심각하지 않은 수준의 박해도 많이 있지만, 사실 박해의 경험이 있는 7,400명은 중국 전체 기독교인의 0.01%도 되지 않는 규모이다. 홍콩의 기독교 단체 ChinaSource의 풀턴(Brent Fulton)은, 실제로 박해를 받는 이들이 더 많다고 하더라도 이제 중국에서 ‘박해’는 일반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중국의 많은 관리들이 기독교의 성장으로 인한 유익에 주목하기 때문에 중국 교회에 대한 박해가 줄어들고 있다. ‘경영주(boss) 기독교인’이라 불리는 원저우의 일부 기독교인 부자들은 큰 교회를 건축하였는데, 어떤 이는 기업인들이 모이는 모임을 만들어 ‘성경적인’ 부의 축적 방법을 설명하기도 했다. 다른 이들은 정직하게 사업을 하고 세금을 잘 내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운동을 펼쳤다. 중국 관리들은 투자자들에게 겁을 주어 쫓아 버리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원저우의 관리들도 이러한 부호 기독교인들의 활동을 후원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지역 관리들이 기독교인들을 후원하거나 최소한 기독교인들의 활동에 눈을 감아 주고 있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좋은 시민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의 지역 사회를 위한 활동이 교회의 안전을 강화시키고 있다. 일부 대도시에서는 시 당국이 삼자교회의 건축을 후원하기도 했다. 항조우(Hangzhou)에 있는 총이(Chongyi) 교회(사진)가 이런 사례인데, 이 교회는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을 갖고 있다. 삼자교회의 목사들은 가정 교회 지도자들과 대화를 시작하였고,가정 교회 지도자들도 삼자교회를 더 이상 공산당의 꼭두각시로 여기지 않고 있다.

최근 중국 공산당의 관심은 사람들의 사상보다는 공산당의 권력 유지와 사회의 안정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교회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기독교가 미래에 공산당을 위협할 만한 세력이 되더라도, 중국 공산당은 교회와 협력할 것이다. 2000년 당시 공산당 총서기(chief)였던 장쩌민(Jiang Zemin)은 자신의 친필 휘호를 한 불교 사원에 기증하면서 공식 연설을 통해 사회 계층과 국가가 사라지더라도 종교는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중국 공산당은 점점 더 종교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사회 복지를 실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기독교와 불교 단체들이 정부를 도우려 하고 있으며, 또 도울 능력도 갖추고 있다. 2003년 중국 정부는 홍콩의 종교 단체들에게 비(非)정부 단체와 자선 단체를 설립하는데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부패와 쾌락이 만연한 이 시대에 이타적인 활동이 교회의 명성을 높여 주고 있으며, 이러한 활동은 기독교인들이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고 정부를 설득하고 있는 셈이다. 교황에 충성한다는 이유로 공산당으로부터 반역자로 간주되어 온 천주교회에게는 상황이 조금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학교(University of Westminster)의 위랜더(Gerda Wielander) 박사는 중국 기독교가 매년 10%씩 성장하는 것에 대해 믿지는 못하지만 일반 중국인들 사이에서 종교가 증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중국 공산당이 더욱 주목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다. 비록 공산당이 티벳 불교도와 위구르 무슬림이 국가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보며 이들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종교에 대한 태도와 수식 어구를 수정하고 있다. 2013년 5월 시진핑 주석은 베이징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을 환영하였는데, 이는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가 외국의 종교 지도자를 만나는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었다.

2001년 중국 공산당이 기업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였을 때 종교인들에게도 공산당 가입을 허락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개혁 성향의 공산당 관리 판위(Pan Yue)는 신문 사설을 통해 공산당의 종교에 대한 관점이 시대에 발맞추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0년 베트남 공산당은 당원에게 종교인이 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이러한 변화가 베트남의 안정을 도왔다고 판위는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판위의 견해는 무시되었다.

2004년 한 신문 기사에서 중국 공산당원 중 3~4백만 명이 기독교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공산당은 여전히 당원의 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최근 홍콩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시위의 지도자들이 기독교인들이었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가정 교회의 성장이 유사 기독교 사교(cult)의 성행을 불러올 것이며, 또 정치 운동화 되어 반(反) 공산주의 운동으로 발전될 것이라는 염려도 있다. 공산당은 파룬공(Falun Gong) 운동을 금지시킨 바 있다. 중국에서는 19세기 중반 태평천국의 난(Taiping rebellion)이 예수의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한 남성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이 반란으로 2천 만 명 이상이 죽임을 당하였던 역사의 아픔이 있다.

2005년 베이징에 있는 한 대형 가정 교회가 주일 예배 장소를 위해 사무실 공간을 임대했는데, 이 교회는 중국의 명문 대학인 칭화 대학교 출신 진 티안밍(Jin Tianming)이 이끄는 쇼우왕(Shouwang) 교회였다. 이 교회는 칭화 대학교 인근에 자리잡고 있어 많은 지식인들이 출석하고 있었으며, 1천 명 정도가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교회였다. 또한 성도들은 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설교를 내려받을 수 있는 현대적 교회였다. 진 목자는 더 많은 종교 자유를 얻고자 조용히 노력하고 있었다. 진 목자가 쇼우왕 교회를 합법적이면서도,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교회로부터 독립적인 단체로 등록하려 하자 당국은 이를 거부했다. 2009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바로 직전 진 목자는 성도들과 인근 공원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진 목자와 교회 장로들은 주택 연금을 당하였고 많은 성도들은 구금을 당하였다. (공산당이 보기에는) 쇼우왕 교회가 넘어서는 안 되는 정치적인 선을 넘어선 것이다.

반면 베이징에 있는 시온 교회(Zion church)는 베이징 대학교 졸업생인 진 밍리(Jin Mingri)가 이끄는 교회인데, 쇼우왕 교회처럼 사무실 건물을 임대하였다. 400명 규모의 시온 교회에는 서점과 카페도 있으며, 교회의 목자들은 복음주의적 설교를 하지만 민감한 주제들은 조심하였기 때문에 쇼우왕 교회와는 달리 교회가 폐쇄되지는 않았다.

쇼우왕 교회와 시온 교회의 목자들 그리고 상하이에서 가장 큰 가정 교회의 목자도 조선족이다.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은 중국에 약 230만 명 정도 있으며, 특히 조선족 기독교인들은 부모의 조국인 기독교화된 한국을 중국의 모델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이 목자들은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시위를 겪으면서 공산당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고 영적인 갈급함을 느끼다 기독교로 개종한 이들이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천안문 세력들이 여전히 중국에 남아 있으며, 이들 목자들이 그 부류 중 한 명으로 여기고 있다.

중국 사회 과학원(Chinese Academy of Social Sciences)의 리우 펭(Liu Peng)은 쇼우왕 교회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반대자를 단속하는 문제에 대해 전(前) 주석인 후진타오(Hu Jintao)에게 조언을 했던 리우 펭은 자신도 기독교인으로 현재 중국의 종교법의 초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의 희망대로라면, 이 종교법은 중국 최초의 종교법이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종교는 행정 법규에 의해 규제되어 왔는데, 종교법이 마련되면 종교인에 대한 임의적인 단속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리우 펭은 공산당원에게도 종교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중국 사회가 신앙의 자유 전시장이 되어야 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실현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에 리우 펭도 동의한다.

중국 사회에서 정부나 공산당의 지시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증가하고 있다. 대도시의 한 중견 간부는 최근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녀는 신앙의 자유가 중국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은 신앙과 공산당원 신분을 모두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상관에게 말했는데, 다행히 그녀는 해고되지 않았지만 대신 공산당의 교정 학습을 받도록 처해졌다.

중국의 기독교인들은 점점 더 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활동적이 되어 가고 있다. 왕 이(Wang Yi)는 전(前) 법학 교수이며, 인터넷 활동가로 지난 2005년 기독교인이 되었다. 2006년 그는 중국을 방문한 미국의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을 만난3명의 가정 교회 기독교인 중 한 명이 되었다. 왕 이는 현재 남서부 도시인 청두(Chengdu)의 한 가정 교회인 이른비(Early Rain) 교회의 목자이다. 2014년 6월1일 국제 어린이날에 왕 이와 그의 교회의 성도들은 중국의 한 자녀 정책과 당국의 낙태 강요를 반대하는 전단을 배포하다 체포되어 구금되었다.

2013년 중국 지식인 한 무리가 옥스포드에서 한 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대회에 참가한 이들은 모택동주의의 인류 평등주의 사상을 계승하기 원하는 신 좌파(New Left) 사상가들과 중국의 전통 철학 사상을 중흥시키기 원하는 신 유교주의자들(New Confucians) 그리고 정통(classic) 경제 정치 자유주의를 표장하는 신 자유주의자들(New Liberals)이었다. 그런데 이 모임에 처음으로 기독교 지식인들이 참가하였다. 이 대회에서는, 중국이라는 국가의 중심은 인민(people)이지 정부(state)가 아니며, 중국 사회는 다원주의적이 되어야 하며, 중국은 항상 다른 나라들에게 평화로운 행동을 하여야 한다는 옥스포드 합의문(Oxford Consensus)를 도출하였다. 이 합의문이 표면적으로는 기독교적이지 않지만, 이 합의문에 기독교 지식인들이 참여했다는 것은 중요하다. 이 대회의 소식이 중국의 영향력 있는 신문에 소개되었으며, 이 대회에 참가한 이들은 현재 중국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종교의 자유가 기독교 교회에게 두 가지의 해악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교회가 제도권으로 편입되고, 경제적으로 넉넉해지면 타락하게 된다. 중세의 로마의 교회가 그러했다. 중국 원저우에 있는 기업가들의 교회에서 조금씩 이러한 기미가 보이고 있다. 교회가 핍박에 의해 연단되지만, 포용적인 사회에서는 연약해 지기도 한다. 베이징에 있는 한 가정 교회의 성도는 서(西) 유럽에서의 기독교의 쇠퇴에 대해 언급하며, 중국에 완전한 종교 자유가 주어지면 교회는 소멸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출처: The Economist 2014년 11월 1일, 한국선교연구원(krim.org) ‘파발마 2.0’ 2015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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