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세계 속에서의 선교방향

이태웅
(사)한국해외선교회(GMF) 이사장, 세계복음주의협의회 선교위원회 회장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변화들을 겪었다. 물론 변화가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때의 변화는 시간적인 여유를 주지 않고 급진적으로 일어났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한때 식민지였던 대륙들이 독립해서 많은 주권국들로 분열되었다. 그다음 전통문화를 갖고 있던 나라들이 산업화의 길을 먼저 간 나라들에 의해서 문화적 식민지로 전락하는 일들도 생겼다. 한국만 하더라도 2차 세계 대전 이후 한국 전쟁과 정치적인 소용돌이 등의 와중에 무방비 상태에서 많은 서구 문화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개발의 기치 아래 산들이 깎이었고, 밭들이 메워져서 아파트가 세워졌다. 또 스크린 속에 나타난 서구적인 모습들의 영향과 현대화 작업으로 인하여 문화 풍습들도 엄청나게 변했다. 이런 변화는 비단 정치 사회적인 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종교, 사상, 생활 양식, 식사 습관 등 변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영역이 없을 정도이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이어서 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복음주의협의회도 이런 변화들을 인식한 나머지, 1989년 마닐라에서 열렸던 선교대회에서 현대의 중요한 변화들을 14개 분야로 압축 정리하여, 이에 걸맞은 선교전략을 세우려고 시도했다. 우리는 이같은 변화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변화 속에서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I. 변화하는 선교상황 – 일반적

A. 지정학적 변화

최근에 와서 선교지의 변화 중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중의 하나는 세계 3대 종교인들이 한 지역에 고정적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세계로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간하배(Harvie Conn) 박사의 말에 의하면 무슬림들의 숫자적인 증가는 그렇게 두드러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무슬림들이 이제는 종전처럼 어떤 한군데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구라파, 미주 등지까지 분포되어 있는데 이런 지역은 과거에는 소위 선교사 파송국 지역이다. 더 나아가서 문제는 그곳에서 이들이 숫자적으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힌두교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더 이상 인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영국 등 구라파 지역에까지 퍼져있다. 이념적으로는 뉴에이지 운동과 연결이 되어 새로이 상황화된 형태로 미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선교전략가들이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요인들이다. 또 훈련을 하는 데 있어서도 이러한 점들이 고려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반면에 과거에 닫혔던 지역들이 갑자기 열리고, 이 열린 지역으로 세속화의 물결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예가 바로 구소련 지역들과 동구라파 지역이다. 우리는 한때 소련이 열리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 지역이 열렸을 때에는 너무나 급속한 변화 때문에 선교적으로 잘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그 변화가 서서히 왔을 경우 더 유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중국이 바로 그 예라 하겠다. 북한의 경우도 갑자기 개방되거나 몰락했을 경우 선교적으로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이에 대처하는 선교전략이 수립된다면 이런 충격을 어느 정도는 흡수하고 선교적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B. 종교적 상황

세계종교가 매우 오랜 역사들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세계 3대 종교가 매우 깊은 역사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 데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들이 과거 약 10-20년 전부터 더욱더 선교적인 종교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슬림 교도들이 그 한 예이다. 물론 무슬림 교도들은 과거에도 선교적이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무력을 통한 방법을 써왔다. 무력으로 점령한 지역 내의 사람들을 이슬람화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전략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들이 고조되고 있다. 힌두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 나아가서는 불교도 이 범주 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과 같은 경우에 불교의 상황이란 매우 도전적이고 위협적이다. 이들은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에 따른 신학과 도덕이 없기 때문에 실용주의적인 방법에 따라서 포교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들은 상대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융통성을 발휘하는 무서운 세력으로 지금 부상하고 있다. 이로 보건대 한국에서의 기독교 선교 상황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과거에는 주인이 없는 곳에 들어와서 아무런 저항도 없이 뿌리는 대로 속속 거두었지만 이제는 많은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타종교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고서는 결코 성공적으로 선교할 수 없는 상황에 와있다. 이같은 상황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남아 각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급변하는 상황에 대한 한 가지 해결 방도로 사람들은 다원주의를 제시한다. 종교다원주의의 관점에서 다른 종교를 허용하고, 더 나아가서는 제한적으로나마 세상 종교들 가운데도 구속적인 역사가 있다고 인정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톨릭교가 바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일부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학도 역시 그런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심지어는 “회심”을 통하지 않고 하는 이런 선교양식이 복음주의적인 선교 속에서도 서서히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성경적인 선교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교회와 선교사들과 선교단체들이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더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세속주의와 현대문명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냉랭해지고 지식 위주의 사고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내적 요구를 지식의 전문성을 통한 인간적인 차원에서 충족하려고 하는 경향을 따라 이제는 신학적인 불감증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라든지 더 나아가서는 신학과 복음에는 관심이 없으며, 또 신학의 정확성과 계시의 중요성 등이 갈수록 희석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교회의 연약화를 의미하며 교회가 연약할 때 선교는 그만큼 커다란 장벽을 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선교를 해야 할지 좀 더 세심하게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C. 정치, 사회적 상황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전 세계는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공산권의 붕괴는 그중에서 가장 커다란 변화 중의 하나이다. 이런 변화는 우리에게 바람직한 환경을 제시했다. 따라서 그동안 복음을 자유롭게 전하지 못했던 구소련 국가들을 향해서는 엄청난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기회가 언제까지 갈지는 미지수이다. 중앙아시아 같은 경우 벌써 무슬림들이 진공 상태를 메꿔가고 있다. 이들은 엄청난 자금을 동원해서 조직적으로 이슬람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많은 국가들이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이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는 것 자체는 복음을 증거하는데 있어서 유리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변화를 의미하고, 변화는 어떤 의미에서 고정적인 자신들의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서 다른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태국이 그런 예 중의 하나이다. 태국은 수백 년 동안 선교를 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나라 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산업화의 물결은 이러한 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더 많은 선교사들이 이런 변화와 더불어 일어나는 기회들을 포착해서 책임 있는 교회들을 여러 군데 개척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레아시아도 역시 비슷한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말레이시아는 회교 근본주의적인 입장을 고수하여 복음이 발을 붙일 수 없는 제한된 나라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새로운 산업화 물결과 경제적인 발전으로 말미암아 태국과 더불어 새로운 차원의 선교의 장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 그곳에 대해서도 역시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이상은 변화하고 있는 선교상황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이다. 이제는 좀 더 범위를 좁혀서 기독교적인 상황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대략적으로 알아보겠다.

II. 기독교적 상황

A. 교회 및 신학적 상황

선교는 교회가 건강하고 신학이 건재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중세교회가 성경 적인 틀에서 벗어나고 중세 신학이 본궤도에서 벗어났을 때 선교사역이 어떠했는가 역사적 사실을 살펴본다면 자명해진다. 중세에는 선교가 국부적으로는 존재했으나, 전체적으로는 암흑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종교 개혁이 일어나 신학과 교회가 재정비된 18세기 경부터 선교가 다시 시작되었다. 애석한 것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교회와 신학이 다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는 교회가 숫자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서구교회가 이를 가장 심각하게 경험하고 있다. 물론 2/3세계 교회가 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구교회처럼 긴 기간을 통해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양과 질 그리고 신학이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자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경우 현대화와 세속화 물결이 다가왔을 때 이를 견딜 만한 지구력이 없게 된다. 한국교회의 예를 보아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한국교회는 그래도 2/3세계 교회 중에서 균형 잡힌 성장을 한 경우이다. 신학이 있고 양과 질이 모두 있는 교회이다. 하지만 들이닥치는 현대화와 세속화의 물결은 한국교회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고, 얼마 안가서 선교현장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과거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 다져진 신앙을 가진 사람과 얼마동안 현대화를 통해 얻은 풍요로움을 힘입어 얼마간은 선교가 중가 추세를 보일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이다. 하지만 세속화와 신학의 오염으로 약해진 교회가 더 이상 헌신된 사람을 배출하지 못할 경우 교회의 숫자가 주는 것은 물론 얼마 안가서 선교도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될 것이다.

비교적 모범적인 성장을 하고, 또 신학이 있는 한국교회가 이런데, 더 연약한 대부분의 2/3세계 교회는 어떠하겠는가? 이들은 신학이 빈곤하거나 아니면 자국을 벗어난 타문화 선교를 할 경제적 여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도, 필리핀, 아프리카 국가들,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해있다.

복음주의의 명맥을 오래 유지해 오던 미국도 교단의 경우 교회가 현저하게 감소되었고, 복음주의 계통도 큰 희생을 하지 않고 자기 생존책을 찾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신학도 급변하고 있다. 복음주의 진영까지도 소위 “큰 변화”(Mega Shift)들을 지금 경험하고 있다. 일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직접 구원을 전할 수는 없겠는가? 소위 기독론적인 구심점(Christo-Centric)에서 신적 구심점(Theo-Centric)으로 신학의 구심점을 옮기려는 시도가 생기고 있다. 일부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이와 같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 그 밖에도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교리들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선교에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 예를 들어서 제한적인 멸절설(limited Annihilation) 같은 것은 선교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서는 교회로 하여금 신학적인 안정성을 잃게 함으로써 선교에 대한 지구력을 잃게 할 수가 있다.

B. 선교신학적 상황

1. 에큐메니칼 진영

에큐메니칼 진영은 한 바퀴를 거의 돌아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처음에는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시작하였으나 인간화와 막스주의, 세속신학을 선교학에 접목함으로써 해방신학의 활성화를 꾀하였고 이제는 다시 서서히 다원주의적인 신학으로 그 흐름이 진전되고 있는 것을 본다. 선교신학의 이와 같은 변화는 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영향은 선교사의 감소와 교회의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이제 또 어떤 새로운 변화들이 있을지 지켜봐야 될 것이다. 다행한 일은 이런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을 지향하는 학교들이 선교학 자체는 멀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교회의 세계화 현상에 따라서 선교학을 배워야만 결국은 세계 교회에 대한 실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학교들은 선교학 교수들을 재임용하기 시작하고 있으며 선교학 자체는 활성화시키고 있다. 선교학의 활성화로 말미암아 교회의 세계화 현상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도 활성화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 복음주의 진영

복음주의적 진영은 한때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맥가브란(McGavran) 박사 등이 WEE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과 더불어 “교회 성장학” 운동이 태동되었고 이로써 복음주의적인 선교 신학이 상당히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선교사의 수에 있어서도 미국의 경우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잃어버린 숫자만큼 복음주의 진영에서 만회하였다. 빌리 그래함, 존 스토트 박사 등의 지도력을 힘입어 베를린 세계복음화대회, 로잔대회, 순회복음전도자대회, 로잔 제2차 대회 등을 개최함으로써 복음주의적 선교신학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최근에 와서는 세계복음주의협의회 선교위원회가 2/3세계 선교사 훈련을 세계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규정하고 선교훈련 운동을 벌여왔다. 이로써 2/3세계 선교운동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선교사의 수가 급증하는 형편에 와있다. 그리고 앞으로 세계복음주의협의회 선교위원회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향도 단순히 선교훈련뿐만 아니라, 선교사를 동원하고 현지에 정착시키는 문제를 고려하는 등 복합적인 방향으로 선교운동을 벌여가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복음주의 선교운동의 커다란 활력소가 될 것이다. 특히 이와 같은 영향으로 복음주의적 선교신학이 세계 복음화를 핵심으로 하는 선교신학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동시에 복음화와 사회 참여를 양날개로 하는 선교신학적 입장도 함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선교신학이 주로 서구 선교학자들과 지도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 있다. 교회의 구심점이 2/3세계로 옮겨진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마땅히 2/3세계 교회의 선교학자들이 선교신학을 형성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못했을 때, 약화된 서구교회가 선교신학적 지도력을 계속 발휘하게 된다. 그런데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이런 상황 속에서는 2/3세계 선교가 급변하는 주변 상황에 대해 선교신학적으로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저항력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루 속히 2/3세계 선교신학자들이 선교신학을 스스로 형성하여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III. 변화하는 선교상황 중의 선교방향에 대한 제언

지금까지도 그랬으나, 앞으로도 선교는 더욱더 급변하는 상황 중에서 수행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선교를 하는 방향도 다양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서는 구체적인 예를 나열하지 않고 다만 몇 가지 방법론만 다루기로 하겠다.

1.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의 적용

선교학자 데이빗 보쉬(David Bosch)는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쉬프트“ 개념을 선교신학에 적용시켰다. 그는 상황이 너무 급변할 경우 과거의 방법론으로는 새 상황을 다룰 수가 없고, 따라서 새로운 방법론이 요구된다고 했다. 이것을 그는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 또 새로운 “세계관”(World View)으로도 보았다.

지금처럼 급변하는 시대의 선교를 생각할 때 “패러다임 쉬프트”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면, 다가오는 21세기의 선교는 시들게 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우리는 변화된 상황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선교를 생각해야 될 것이다. 상대성 원리로만 해석되는 현실을 뉴튼의 법칙만 가지고 대처하려고 한다면 결국 벽에 부딪치게 될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일례로서, 중국과 같은 창의직 접근지역에 대한 선교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선교사 비자를 갖고 들어가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선교에 대한 “패러다임 쉬프트”가 생겨서, 전문인 선교 개념에 따라서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때 창의직 접근지역에도 선교가 가능케 될 것이다. 다만, 각 시대마다 선교가 새로운 형태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개념이 선교의 본질마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는 마땅히 비성경적인 것으로 거부되어야 할 것이다.

일시적인 선교의 아젠다(agenda)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되, 선교의 근본 목표는 변할 수 없다. 선교의 근본 목표는 그것이 “제자화”(마태)로 표시되었든,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누가)으로 표시되었든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우리가 아들의 보냄을 받는 것”(요한)으로 설명되었든 간에 한 가지였다. 그것은 곧 “세계복음화”이다. 이 근본 목표를 변경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우리는 급변하는 세상에 대처하기 위해 과감한 탈바꿈이 필요하다. 그러나 데이빗 보쉬가 사용한 패러다임 쉬프트의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대마다 그 시대에 알맞은 완전히 새로운 “선교”가 나와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본래 의미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선교의 방법론이 달라진다면 우리가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방법을 넘어서 그 궁극적인 목표까지 달라진다면 우리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느 시대이든 또 어느 선교의 패러다임이든 성경의 기준에 따라서 평가를 받아야지 시대의 요청에 따라서 합리화되어서는 안된다.

2. 상황화의 실용화

패러다임 쉬프트가 급변하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선교방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상황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불변하는 복음의 메세지를 포장할 것인가를 제시한다. 급변하는 세대들에게 그들의 언어와 의사 전달 수단을 통해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지 않는다면 선교는 시대 착오적인 산물이 될 것이다. 과거 선교지가 현대화되지 않았을 때에는 어느 정도 구태의연한 형태로 나타난 복음의 메세지도 그 나름대로 제구실을 했다. 이제는 다른 많은 세속적안 경쟁 대상들인 돈, 쾌락, 명예, 성적 유혹 등과 대결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음의 메세지가 한 문화권에서 더욱더 연관성을 체감케 하고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더 이상 외국 것을 가져다주는 것으로는 선교가 안될 것이다. 상황화가 잘된 결과는 기독교가 자국 것으로 변화하고, 자국 운동으로 전개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결국 복음의 메세지가 상황화된 자국 운동으로 발전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해당 문화권의 복음화가 가능하게 된다. 자국만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이 선교사에 의해 한 나라가 복음화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3. 고정되지 않은 다양한 선교전략의 활용

선교가 비교적 단순했던 18세기 및 19세기에는 한두 가지 전략에 의존하여 선교를 할 수가 있었다. 또 선교사에 대한 관념도 고정적인 의미를 가졌었다. 선교는 한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으로 선교사의 신분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것으로 의미가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는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선교전략의 활용이 필요하다. 창의적 접근지역에서는 이에 알맞은 비거주 선교사 개념을 활용한다든지, 아니면 미전도 종족 선교전략을 활용하여 한 종족에 최소한 한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파트너쉽 선교(Par tnership Mission)를 활용할 수 있다. 또 각종 전문인 선교사를 활용하여 11,000 미전도 종족을 복음화 할 수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하여 둔하거나 경직된 선교신학을 고집하는 선교단체나 교단 선교부는 필경 어려움을 겪게될 것이다.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가 그 예이다. 정규 선교사만을 의존하고 고집하는 선교부나 선교단체는 10년 내에 거의 모든 선교의 터전을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규 선교사 이외의 전문인 선교인력을 계속 투입하여 변화하는 상황에 잘 대처한 선교부나 선교단체는 계속 주님의 지상명령을 순종하는 선교에 적극 가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 정규 선교사들을 통한 선교 강화

정규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선교사의 신분을 가지고 선교할 수 있는 지역은 아직도 허다하다. 일본, 태국, 대만, 일부 구소련 지역들, 동구권 등 닫혔다가 열린 지역도 상당 부분이 된다.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도 성령께서는 계속해서 추수 지역 및 개방된 지역들을 우리에게 제공해주실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미전도 종족 전략이나, 창의적 접근지역에 대한 전략에만 너무 심취한 나머지 성령께서 오랫동안 역사하시어 추수 지역으로 만들어 놓은 지역 선교를 등한시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21세기에도 수없이 많은 정규 선교사가 필요할 것이다. 종종 정규 선교사들이 열린 지역에서 얻은 개종자들이 다시 360도 전환하여 정규 선교사로 또는 전문인 선교사로 창의적 접근지역으로 갈 수도 있다.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든지 우리는 개방된 지역이나 추수 지역에 정규 선교사를 더 많이 파송하여 추수할 수 있는 기회를 백분 활용하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5. 보다 질적인 선교인력 양육의 필요성

하나님의 추수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이런 점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기회를 잃지 않고, 패러다임 쉬프트를 하고, 상황화를 하고, 다양한 선교전략을 세워서, 이를 통한 선교를 하려면 결국 질적인 선교인력이 요구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선교하기를 정하신 이상 21세기에 가서도 결국은 사람이 선교의 승패를 가름질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반면에 급속도로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는 헌신된 사람이 나오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전망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이런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단기선교사들이 아니면 서구선교는 인력난으로 허덕일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그동안 축적해 놓은 선교인력을 사용했다. 이제부터는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 그 인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 하나가 학생 선교단체의 활성화를 돕는 일이다. 그런데 갈수록 학생들이 선교인력화 된다는 것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경우 교회는 이중으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먼저는 선교인력의 공급난을 겪는 어려움이 있다. 그다음은 그들이 대적하는 세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교회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2/3세계가 계속 산업화되고 있고 이와 더불어 세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여 성숙한 선교인력을 직접·간접적으로 양육하여, 변화무쌍한 상황 중에서도 효과적으로 선교할 수 있게 해야 될 것이다.

6. 교회의 활성화의 중요성

변화하는 상황 중의 선교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은 아마도 교회가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냉랭해지거나 성장이 둔화될 때 선교가 제일 먼저 큰 타격을 겪게 될 것이다. 교회가 약화된 상태에서 장기간 동안 선교를 지탱한 경우가 드물다. 초대교회 때 교회가 부흥을 맛보았을 때 선교는 강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중세에 교회가 약화되었을 때 선교는 유명무실하게 되었거나 그릇된 방법으로 수행되었다. 종교개혁 이후 다시 교회가 신학적으로 정립되고 활성화되어 선교는 다시 일어났다. 복음주의적 각성운동이 구라파와 미국 등지에서 일어났을 때 선교가 그 절정에 도달한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한국 등이 속해 있는 2/3세계 교회들이 부흥과 성장을 맛보고 있는 현재는 2/3세계 선교운동이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급변하는 상황 중에 교회가 얼마나 부흥의 불길을 지탱하는가에 있다. 교회가 계속 급변하는 상황 중에서도 유지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엄청난 노력과 각성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흥의 불길이 꺼지지 않고 선교는 계속해서 강력하게 일어나 육대륙에서 육대륙으로 종횡무진해야 한다.

몇 년 남지 않은 20세기 후반과 다가올 21세기에 우리는 미증유의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과연 이런 변화에 대한 준비를 세계 교회와 한국교회는 하고 있는가? 성령께서 다시 한번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를 새롭게 해주시는 것을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마지막 카드일지 모른다. 선교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은 급변하는 세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주님께서 보여주신 세계복음화를 위한 계획을 계속해서 실현시켜 드려야 하겠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대적인 감각을 가짐과 동시에 내적으로 성령에 의해 선교에 불이 붙은 수많은 선교사들이 추수 지역이든 창의적 접근지역이든 여러 가지 전략을 사용하여 이 세상을 덮는 것이 요구된다. 주여, 당신의 다음과 같은 계획을 속히 이루어 주소서!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합2:14) 아멘.

(이 글은 원래 ’94 선교한국에서 선택강의 중 한 강의로 발표한 내용을 대폭 수정해서 재기고 했음.)

<한국선교핸드북 1994> 다른 글 보기

  1. 한국교회 선교의 현재, 미래의 바람직한 방향 (전호진)
  2.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의 선교방향 (이태웅)
  3. 한국 선교사 현황 보고 (문상철)
  4. 일러두기 (한국선교연구센터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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