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핫야이 정탐 보고서

현대선교 12 (Current Mission Trends): “선교와 세계관”. 발행 : 1999년 10월 30일, 서울:GMF Press. 수록면 : 77-114.

장덕희, 김미겸, 김태형
필자들은 1999년 1월 태국 남부의 핫야이에서 진행한 제 5회 캠프 여호수아(타문화 연구방법론 훈련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이며, 모두 대학원과 학부에서 선교학 및 신학을 전공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약 20 명의 전체 참가자들의 현장 노트에 기초한 것이다.

태국개관

1. 공식국명 : THE KINGDOM OF THAILAND.

우리는 ‘태국’ 또는 ‘타일랜드’라고 부르고 있으며, 태국어로는 ‘쁘라텟타이(의미: 자유의 나라)’라고 부른다. 

2. 위치 및 환경

아시아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태국은 불교의 나라로 수세기 동안 씨암(Siam)으로 잘 알려져 왔으며 동남아시아 이주민들의 문화적, 종교적 교차로서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면적은 51만 3천 평방km이며, 약6,000만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태국은 북서쪽으로는 미얀마, 북동쪽으로는 라오스, 남동쪽으로는 캄보디아 그리고 남쪽으로는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

지형학적으로 태국은 북부 산악지대와 중부 평원지대, 북동 고원지대, 남부 밀림지대 등 4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북부 산악지대는 평균고도가 1,200m 정도의 여러 산맥들이 뻗어 있으며 열대 우림이 무성하여 고급목재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북동부의 고원지대는 모래질의 메마른 토양에 자리잡은 건조지대로 대부분 사바나형 목초와 관목으로 뒤덮여있다. 타이 중심부를 이루는 중부 평원지대는 4개 지역 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으로 대부분 짜오프라야 강 삼각주로 이루어져있다.

기름지고 인구가 조밀한 평원지역에는 타이의 농업, 상업, 산업의 중심지로서의 몫을 담당하고 있다. 말레이반도 북반부를 차지하고 있는 남부 밀림지대는 주석과 같은 광물자원과 고무나무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3. 인구

1) 총인구 : 약 6천만 명 (99년 1월 현재, 태국 관광청 자료)

2) 인구 증가율 (연평균 증가율 : 1.5%)

3) 인구밀도

  태국전체 : 115명/KM2

(방콕은 3,859명/KM2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음)

4) 종족별 분포

순수 태국계 : 81.5%

중국계 : 13.1%

말레이계 : 2.9%

기타 : 2.5%(인도인, 베트남인. 크메르인, 미얀마인, 고산족등)

4. 수도 : 방콕(BANGKOK)

수도 방콕은 타이어로 ‘크룽텝(KRUNG THEP : 천사의 도시)’이라 불리며, 태국의 행정, 금융, 산업 및 상업의 중심지로 농한기에 농촌인구의 유입 등 계절적 요인에 따라 방콕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방콕인구는 약 5,573,000 명이다.

5. 언어 : 공용어(태국어), 상용어(영어)

태국어는 중국-티베트(SINO-TIBETAN)어족에 속하고 매우 부드러운 순음이 많으며 고유의 문자를 가지고 있다.  태국어는 42개의 자음문자와 30개의 기 모음으로 되어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루앙 프라방(Luang Phrabang) 문자는 13세기말 람캄행 왕이 만든 “쑤코타이 문자”의 바탕이 되고 있다.

소수의 중국계의 경우 중국식 만다린(MANDARIN)과 테오 츄(TEO CHEW)를 사용하고 있으며 동북부 국경 지방에서는 라오스어도 일부 사용하고 있다.

6. 기후 

태국의 기후는 고온다습한 아열대성 기후로 평균기온은 섭씨28도, 연평균 강우량은 1,000-1,600mm, 연평균 습도는 70%정도이다. 계절은 열대몬순기류로 크게 3계절로 구분된다.

1) 겨울 : 11월 초순부터 2월까지 약4개월 정도로 건기에 속한다.

2) 여름 : 3월 초순부터 5월까지 약 3개월간 열대특유의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되며, 4월이 최고 더위로 섭씨 40도가 넘기도 한다. 

3) 우기 : 6월부터 10월까지 약5개월간은 소나기성 비가 단시간 집중적으로 내리는데 이기간 중           남부지방은 며칠동안 계속 비가 내리기도 한다.

7. 종교 

태국 헌법에는 “국왕은 불교도이며 종교의 수호자다”(1991년 헌법 7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태국은 불교국가이지만 국왕은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후원자로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국왕을 존경하고 신뢰하고 있다.

(불교 90%, 이슬람 6%, 기독교 2%, 기타 2%)

태국 내에는 약 3만여 개의 불교사원과 18만 명의 승려가 있다. 불교는 태국인들의 가치관과 삶의 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태국 사회에서 승려는 절대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태국에서는 남자가 20세가 되면 3년간 승려수업을 받기 위해 출가하는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지만 현재는 대개 3개월 정도로 그 기간이 짧아졌다. 

태국에 이슬람교가 들어온 것은 아유타야 시대에 아랍상인들에 의해서였고 태국남부지방이 말레이시아와 교역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슬람이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태국에는 약 2,000여 개의 이슬람 사원이 있으며 이슬람의 교리를 중심으로 공부하는 학교가 200여 개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태국의 무슬림들은 신앙심이 깊고 배타성이 강해서 예배와 꾸란의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으며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태국의 기독교인들은 극소수에 속한다. 기독교가 태국에 들어올 때는 왕실의 지원을 받았으며 그후 기독교는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사회복지사업을 하여왔다. 태국인들은 기독교 재단의 학교와 병원에 대해 선호하고 있으나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

힌두교는 일찍부터 태국에 들어와 종교와 정치, 사회적인 면에 다양하게 영향을 끼쳤는데 아유타야 시대에 왕이 브라만교의 의식을 즐김으로써 태국의 풍습과 문화로 발전하게 되었지만 브라만교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고 태국의 불교에는 브라만교의 요소가 많이 융합되어 있다.

태국인들의 민간신앙은 중국적인 요소가 많다. 후에 태국인들이 불교를 받아들이고 나서도, 민간신앙과 함께 조화롭게 믿어 왔다. 이러한 민간 신앙은 대개 귀신을 믿는 것으로 신당을 지어 놓고 있는데, 신당은 태국 전역에서 찾아 볼 수 있고, 관공서나, 회사에서도 새해 첫날 신당에 향을 피우고, 만사가 형통하도록 빈다.

집에는 터줏대감을 모시는 신당을 차려놓고 가족의 평화와 안녕, 그리고 신의 가호를 기원한다. 이러한 민간신앙은 태국인들의 삶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8. 교육

태국의 교육제도는 6-3-3-4년 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초등학교 교육은 의무교육이다. 초등학교는 매 학기 수업시간의 80% 출석, 규정된 학습 목표의 80%이상이어야 통과될 수 있으며,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약 25명에 속한다. 현재 태국 내 초등학교 수는 약 33,767개이며, 사립학교가1,427개이며 나머지는 모두 국립이다. 

중등교육의 기본 목적은 애국심과 협동심 함양 및 건강 위생 부양으로서 총 중학교의 수는 1,390이며 그중 95개가 국립이며 나머지는 사립이다. 교사 1인당 학생수가 20여명이며 95년 현재 태국의 초등학생 중 43%가 중학교에 진학하고 있다. 

고등학교의 수는 인문고가 944개, 실업고가 505개이다. 국립고등학교의 경우 학기 당 1,500 바트의 학비가 들고 사립은 학기 당 5,000 바트 가량이 든다.  태국 내 대학교의 총수는 2년 제까지 모두 포함하여 모두191개로 국립대학은 학기 당 2,000 바트의 학비, 사립의 경우는 학기 당10,000 바트 정도가 든다.

9. 역사

타이족(Thai)은 과거 몽고 근처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이주한 것으로 믿어졌다. 그러나 역사적인 발견에 근거한 새로운 이론들이 나타나면서 태국의 북부지방을 타이족의 발원지로 간주하게 되었다.

이후 많은 이주민들이 들어와 정착하였고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태국인들은 현대적인 생활양식을 흡수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적 전통을 형성해 갔다. 바로 이러한 여러 문화들의 융합과 이민이라는 배경이 태국을 신비의 나라로 자리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쑤코타이 시대

태국역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수코타이 왕국의 성립에서 시작된다. 13세기에 몽고족의 남방진출로 크메르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이용하여 타이족 소왕국의 왕 씨인트라팃(Sri Intratit)이 1238년에 태국북부에 쑤코타이 왕국을 건설하여 짜오프라야 강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곧 이어 타이족이 하리푼자야의 몬 국가를 패배시킨 후인 1296년에는 치앙마이 왕국이 세워졌으나 치앙마이 왕국은 쑤코타이보다 북쪽에 있어 여러 강국들에 의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태국사의 주체세력이 되지 못하고 쑤코타이 왕국이 추진세력이 되었다.

쑤코타이 왕국은 3대왕인 람캄행(1279-1298)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어 영토확장뿐만 아니라 스리랑카로부터 불교를 들여오고 타이문자를 창제하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그후 불교의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쑤코타이는 쇠퇴하게 되었고 남쪽의 아유타야 왕국에 의해 1438년 멸망하게 되었다. 1350년에는 아유타야의 타이 왕국이 15세기 초기까지 쑤코타이 왕국을 흡수하였으며 쇠약해 가는 크메르 왕국을 멸절시켰다.

아유타야 시대

라마티버디(Ramathibodi) 1세가 1350년에 아유타야(Ayutthaya) 왕국을 건설하였으며 아유타야 왕국은 417년간 지속된다. 그러나 미얀마인들은 아유타야왕국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전쟁이 계속되었다.

아유타야는 1569년에 미얀마의 속국이 되었다가 1584년에 나레쑤언 왕자에 의해 독립하였다. 그후 서양 여러 나라들이 태국에 진출하였는데 1662년에는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카톨릭선교사를 파견하여 나라이 왕과 아유타야인들을 개종시키려고 하였다.

이로 인해 반프랑스, 반카톨릭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1688년 나라이 왕이 죽자 아유타야는 서양국가에 대해 쇄국정책을 펴게되었다. 나라이 왕 이후 미얀마의 침입과 왕위계승문제로 아유타야는 서서히 몰락해가고 1767년에 미얀마에 의해 멸망되었다.

톤부리 시대

아유타야 시대에 화교들이 경제력이 신장되어 나라를 세울 기반을 마련하였는데 화교 딱신(Taksin)이 1767년 짜오프라야 강가의 톤부리를 수도로 새 왕국을 건설하여 아유타야 멸망 후 미얀마의 지배하에서 태국을 구하였다. 딱신이 15년간 통치하였으며 그를 보좌하던 짝끄리가 1782년 왕으로 즉위하여 짝끄리 왕조의 라마1세가 되었다.

짜끄리 시대

짜끄리 타이(Chakkri Thai) 왕조는 짜오 프라야(Chao Phraya)의 주도 하에 1782년에 권력을 잡았으며, 왕조의 초기에 강을 가로질러 방콕(Krungthep)으로 도읍을 옮겼다. 짜끄리 통치자 라마3세(1824-51)는 말레이반도를 따라 남쪽으로, 라오스의 북쪽으로, 그리고 캄보디아의 남동쪽으로 타이 제국을 확장했다.

쭐랄롱껀(Chulalongkorn) 국왕 라마5세는 통치기간(1868-1910)동안 탁월한 외교술과 선별적인 현대화를 통하여 태국을 서구제국의 식민지화로부터 지켰으며 서구식 내부 개혁정책이 이루어졌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라오스와 캄보디아 지방에 있던 속국을 프랑스에 양도했으며 1917년 연합국 편에 가담하여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입헌혁명이후

라마 7세 때인 1932년 피분 쏭크람(Phibun Songkram), 쁘리디(Pridi Phanomyong) 등이 쿠테타를 일으켜 절대 군주제가 무너지고 입헌군주국이 세워졌으며 1939년에는 국가의 공식 명칭을 씨암에서 태국(Thailand)으로 바꾸었다.

1932년이래 현재의 국왕인 푸미폰아둔야데 라마9세를 포함한 태국의 국왕들은 국회를 통하여 입법권을, 수상이 이끄는 내각을 통하여 행정권을, 그리고 법을 통한 사법권을 행사해오고 있다.

푸미폰 국왕은 1946년 대관식에서 “모든 태국 국민들의 복지를 위하여 법에 따라 통치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는데 태국 국민들로 깊은 존경을 받고 있다. 

10. 주요종족개관

타이족

태국의 다수 족을 차지하는 타이족들은 물질주의가 그들의 가치관으로 자리잡고 있는 미전도 종족이다. 대부분의 타이족은 소승불교파 불교도들이며 많은 타이족의 마을에는 와트(wat:복합적인 사원 혹은 수도원)가 있어서 사회적 종교적 센터로서 기능을 하고있다.

또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승려로서 일정기간을 보낸다. 불교전통을 따르는 타이족은 ‘불교와 정령숭배가 뒤섞인 신앙’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농촌의 타이족들은 주로 벼농사를 지으며 고지대에서는 건조한 쌀을, 저지대에서는 습윤한 쌀을 재배하여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타이 무슬림

타이 무슬림들은 주로 태국 남부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슬람 순니파(sunni)로서 말레이족과 같은 혈통이다. 태국 전체 무슬림의 4/5가량이 말레이족으로 언어와 문화상 말레이와 더 친근하다.

이들은 크게 말레이 계와 비말레이 계로 구분되는데 4/5가량이 말레이 계이고 나머지는 타이족, 파키스탄, 인도, 중국인등이며 전국적으로 약 26,000개의 모스크와 520만 명 가량의 무슬림들이 있다.

말레이계 무슬림들은 주로 농업과 상업에 종사하며 경제적으로 빈곤하다. 반면 인도계 무슬림들은 주로 시아파로 아유타야 왕국 시절부터 해상무역에 종사하였고 경제적으로 부유하다.

파키스탄계 무슬림들은 전국에 걸쳐 거주하는데 주로 목축업에 종사하며 점차 상업에도 눈을 돌려 경제적으로 부유하다. 중국계 무슬림으로는 태국 북부 특히 치앙마이에 거주하는 ‘허족’이 대표적이다.

중국계

화교는 비록 소수지만 방콕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태국 경제의 85%를 지배하고 있다. 태국 역사 기록에 화교에 대한 언급이 이미 13세기부터 있었으며 19세기에는 수많은 중국인들이 태국으로 몰려와 특유의 적응력과 근면성으로 빠른 속도로 원주민들과 융화되었다.

이들은 수백  년간 중국과 태국 사회가 지리 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고 외모나 피부색이 원주민들과 유사하여 원주민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아 종교 면에서도 비록 종파는 다르더라도 불교를 위시하여 귀신이나 영험한 것들을 믿음으로써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었다. 

화교들은 이민 초기에는 중국 국적을 고수하는 사람들과 태국 국적으로 전환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감에 따라 태국문화에 익숙해지면서 태국인으로 동화되었다.

또한 태국 고위 관료의 비호를 받아 기업을 발전시키고 태국의 관료와 국가 자본과 결탁하여 독점 재벌 형태로 부와 산업을 장악하게 된 화교들이 제2차대전후 공산화된 중국의 불안정한 상황으로 인해 화교들은 귀국을 포기하고 스스로 태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태국민으로서의 기반을 확고히 했다.

높은 교육열로 고등교육을 받은 화교의 수가 증가하게 되었고, 선거와 국가 시험 등을 통해 정계와 관계로 진출하였다.

현재 이민3-4세들은 자신이 중국인의 피를 이어 받았지만 스스로 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높으며 태국인과의 혼인이 성행하면서 태국 사회에 ‘태국인의 한사람’으로서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몽족

몽족은 19세기경 중국에서 태국으로 이주한 것으로 여겨지며, 화이트몽과 블루몽이라는 2개의 종족이 있다. 돼지나 닭을 희생 제물로 바치며 정령을 숭배하며 라오스와 미얀마, 그리고 베트남과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7 가지의 억양이 있는 시노-티베탄계의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화이트와 블루몽어가 서로 다르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한데, 몽족 중 많은 사람들이 몽어와 함께 타이어를 할 수 있으며 이들은 태국 내에 9만 2천 명 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몽족은 주로 대나무 가옥을 지어 살아왔는데 최근에는 함석이나 타일로 지붕을 한 목조건물도 만들고 있고, 시멘트마루까지 갖춘 집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아궁이를 구비하여 밥을 지으며 창문이 없는 것이 또한 특징이다.

현관문과 마주하고 있는 벽에는 신주단지가 놓여있고, 새해에는 이 신주단지를 새롭게 바꾸는 축제를 열어 자기 집을 지키는 영들과 조상들을 위해 희생제물을 베풀고 집안에 우환이 없도록 기원한다.

크메르족

정령을 숭배하는 불교도로서 AD 1세기경 남부 인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언어는 인도어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에 기초하고 있다. 크메르인의 82%가 캄보디아에 살고 있으며 태국에 사는 크메르족은 주로 난민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서로의 관계를 중시하며 전통적으로 인류 평등사상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여러 해 전쟁과 잔인한 살상으로 도덕적 기준과 신뢰성이 심히 왜곡되어 가족제도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

너무 일찍 독립하도록 강요당하는 아이들은 부모의 권위에 대한 필요를 알지 못하며 여러 해 동안의 별거로 아내들은 남편들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

지난 30년간 국경선 지역의 반란 전쟁, 자유주의 캄보디아와 공산주의 캄보디아간의 전쟁, 폴 포트 정권의 폭압과 학살행위, 그리고 베트남의 점령 및 통치기간동안 이루어진 전쟁과 대량학살 등에 의해 많은 과부와 고아들이 생겨났다.

11. 사회 구조

태국 사회구조의 특징을 살펴보면 태국인들은 어떤 집단이나, 계급에서 자신들의 행동을 규제 받기보다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유롭게 개인간의 관계를 형성해 나가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그런 가운데서 개인간의 상하 관계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태국이 전제 군주국으로 국왕을 정점으로 한 위계적 신분질서가 이어진 것에서 기인한다. 태국 사람들은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불교는 태국 사회의 정신적인 면을 지배하고 있는데 종교의 차원을 넘어선 하나의 ‘생활철학’으로 태국인의 가치관을 형성한다.

태국 사회 구조의 특징을 세 가지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태국의 농부들

태국인들은 엄격한 형식이나 남에게 예속되지 않고, 무엇이든 하고 싶을 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선호한다. 태국인들은 주로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데, 지리적으로 아열대 기후에 속해 일년 내내 벼농사를 지을 수 있다. 태국인들은 짜오프라야 강 유역의 비옥한 평야를 중심으로 농사를 지었다.

“진짜 태국인은 농민이다”라는 말이 회자 될 정도로 태국인들은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 태국 전 인구의 약 80%이상이 농업, 수산업, 목축업, 삼림업에 종사한다. 이처럼 태국인에게 있어서 땅은 생활의 원천으로 토지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행사나 축제가 예로부터 발달되었다.

그리고 농사를 짓는데는 가족구성원들의 협력과 이웃과의 관계가 중요했기 때문에 이들은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배타적이어서 인습이나, 관습에 집착하며, 변화에 스스로 적응하거나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도시인 보다 느리고 소극적이다.

방콕의 중산층

경제 성장으로 말미암아 백만 명의 중산층 전문가들이 안락한 삶을 찾아서 방콕으로 왔다. 도시적인 배경 속에서 바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교육을 받고 돈을 벌어들일 만한 잠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물질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태국의 젊은층

근래에 태국의 경제가 발달하면서, 도시에 사는 젊은 층 사이에는 “돈은 인간 생활에 있어 신과 같다” 또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사고 팔 수 있다.

돈으로 정직성, 사랑 등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라는 의식이 팽배하고 있다. “돈만 있으면 명예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수가 적지 않다. 그러므로 이들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며, 일확천금을 꿈꾸며, 경마와 복권에 심취해 있다. 

태국의 윤락녀들

방콕에는 약 8십만 명의 윤락녀들이 6만개의 매음굴에서 몸을 팔고 있다. 이 소녀들 중 많은 수가 가족들에 의해 팔려왔으며, 나머지는 강제로 끌려온 아이들이다. 또한 부패한 관료들에 의해서 보호받는 200만 이상의 사람들은 매춘업을 통해서 소득을 얻는다.

윤락행위는 불교의 3번째 교리를 위반하는 것이지만 매음굴 운영자와 매춘 업소로부터 뇌물 형태로 들어오는 정부의 이익 때문에 관료들의 모른 채 하고 있다.

난잡한 성교를 통해 이미 5십만 명 이상이 AIDS에 감염되어 있다고 하는데 공무원, 회사원, 군인, 학생은 물론 스님들까지도 매음굴에서 에이즈에 감염되는 심각한 상황이며 더욱 비참한 것은 정부가 AIDS에 대해 별다른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12. 태국의 사회와 문화

태국 사회와 문화는 불교가 일상생활과 사회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태국은 스리랑카,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지에 퍼져있는 불교인 소승불교로 민중전도에 대한 관심은 없고 오로지 자신의 해탈과 열반만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는다.

태국인은 하루 생활의 시작과 끝을 항상 각 가정에 모신 불상 앞에 절하는 생활철학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국가 공휴일도 불교와 관련되어 있고 석가탄신일은 물론 새해나 결혼식, 장례식 등 모든 중요한 일들에는 승려가 동반하여 불상 앞에 절을 한다. 

태국의 예절과 인사법(와이)

태국인들은 인사할 때 자신의 가슴위로 두 손을 펴서 손을 마주 대고 합장하는 자세로 상대방을 향해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싸와디카(크랍)”라고 말한다.

이러한 인사법을 ‘와이’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나이가 어린 사람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이 먼저 연장자를 향해 인사를 하며 연장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에 답한다.

대등한 관계일 경우에는 합장하는 모습을 하며 고개는 숙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른에게 존경심이나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턱 부분에 합장을 손을 대고 공손히 인사를 한다.

왕이나 승려에 대해서는 어른에게 하는 것보다 더욱 경건하다. 태국에서 발은 신체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고 가장 더러운 곳으로 여기고 있어서 사람을 가리키거나 방향을 지시할 때 발을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특히 승려나 종교와 관련된 물건이나 왕의 사진을 향해 발을 올리거나 올려놓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태국의 음식문화와 식사예절

태국인들은 보통 하루에 세끼의 식사를 하고 있지만 한끼 식사량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아침에는 주로 흰죽이나 식빵 등으로 가볍게 식사를 하고, 점심은 면이나 만두종류 혹은 밥과 반찬을 먹는다.

그러나 저녁 식사는 세끼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푸짐하게 음식을 차리는데 생선요리와 야채, 그리고 볶음요리 등 다양한 음식들을 즐기며 후식을 먹는다.

태국음식은 향을 섞어 외국인들이 먹기 어려운 것도 더러는 있지만 태국 음식은 기름기가 많고 고소하고 맵고 신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태국 음식은 주로 20-30 바트 정도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태국인들은 밖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싸고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볶음밥과 국수가 있다. 기름기 많은 볶음밥이 싫다면 찹쌀밥을 먹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태국의 재래식 식사 관습은 준비한 음식을 반상 또는 대나무나 원목으로 만든 마루 바닥에 모두 차려놓고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숟가락과 포크를 사용하게 되어 이제는 재래식 관습은 일부 농촌지역의 나이 지긋한 연령층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되었다. 

태국에서는 입에 음식물을 가득 넣거나 소리를 내어 씹어서는 안되며 음식을 너무 빨리 먹어서도 안되며 음식을 먹을 때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며 국물이 있는 것을 먹을 때는 들이마시지 말고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한다. 또한 손가락을 핥거나 혀를 내밀어서도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음식을 먹으려는 앞에서 머리를 빗어 넘겨서는 안 된다. 치아에 음식물이 끼였을 때나 과일의 씨를 뱉어야 하는 경우에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조심스럽게 한다. 트림을 하는 것과 길을 걸으면서 음식을 먹는 것은 상대방에게 결례가 되는 행위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결혼문화

태국의 결혼풍습은 주로 “위와하몽콩”이라고 하는 데릴사위제도인데 신부집에서 결혼식을 한다. 신부가 신랑집으로 시집가는 것은 “아와하옹콘” 이라고 하는데 이때는 신랑집에서 결혼식을 한다.  대부분 집에서 결혼식을 하고 대도시의 일부계층만 각종 클럽이나 협회, 호텔에서 결혼식을 하기도 한다.

승려를 초빙하여 독경을 외우고 법수를 뿌리고 삼귀의문과 오계를 염송하는 등 불교의식을 먼저 하는데 이 종교의식 자체가 결혼의식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결혼식은 먼저 승려를 초빙하여 불공을 드리고 보시하여 공덕을 쌓는 종교의식 다음에 행한다.  

혼례절차는 혼기가 찬 자녀를 위해 부모가 “매쓰”혹은“퍼쓰”라는 중매인을 내세워 상대측의 결혼의사를 타진한다. 그리고 반드시 남자 측에서 “타오깨”라고 하는 주혼자를 정하여, 여자 측 부모에게 정식으로 청혼하여 허락을 받아낸다.

남자 측에서 직접 여자 측으로 찾아가 청혼하는 것은 법도와 예의에 크게 어긋나는 것으로 인식한다.(“타오깨”는 사회적 지위와 덕망이 있는 사람으로, 중매인과는 신분상으로는 다르고, 역할도 다르다. 이런 사람을 모실 수 없으면, 문중어른 중에서 가장 덕망 있는 사람을 내세우기도 한다.

남자 측을 대신해서 여자 측에게 청혼하고 허락을 받고 혼수 예물의 액수를 정하는 일 약혼 및 결혼식을 택일 혼수 예물을 담은 “칸막만”(일종의 함)을 여자 측 집으로 가지고 가는 일을 한다.) 

태국에서는 양가의 합의에 따라 결혼을 하는데, 남자 측에서 여자 측으로 보내는 혼수 예물을 “씬썻텅만”이라고 한다. 이는 ‘딸을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의미로 보내는 “카남놈:젖 값”이라는 것을 보낸다. 약혼식은 아무 때에도 상관없지만, 결혼식 날짜는 반드시 짝수의 달을 택한다.

그러나 홀수의 달 중에 9월은 “까오”가 발전의 뜻을 가진 “까오나”의 앞 음절인 “까오”와 동음어이므로 9월에 결혼하면 발전한다고 믿기 때문에 허용한다. 

결혼식은 ①종교의식 ②“파와이”“칸막땡”의식 ③“롯남쌍” ④“뿌티넌”의식의 4단계로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되며 각 단계마다 참석자도 구분된다. 가까운 친척친지들만 참석하고, 저녁의 피로연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을 초대한다. 시골에서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결혼식 전날 저녁때부터 노래, 춤, 영화 등의 각종 흥겨운 놀이 마당이 펼쳐지고, 잔치를 벌여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진다. 

장례식

장례식은 불교의식이 주를 이루며 민간신앙이 혼합되어 전해지고 대부분 화장을 하는데, 중국계 태국인과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주로 매장을 한다. 화장에는 5일장이나 7일장을 지낸 후 화장하는 것은 “생화장”이라고 하고, 백일제를 지낸 후나, 그 이상 오랜 시간 시신을 보관해 놓았다가 화장하는 것을 “건화장”이라고 한다.

보편적으로 “생화장”을 선호하고 고인을 잃은 슬픔이나 충격이 가실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는 “건화장”을 택한다. 장례 기간동안이나 화장할 때 상제가 조용히 울기는 하지만 소리를 내어 곡을 하지는 않는다. 공덕을 쌓는다는 뜻의 “탐분”은 사망한 사람이 내세에 태어나서 안락할 수 있도록 명복을 비는 것으로 칠일 제, 오십일 제, 백일 제 등의 세 번의 제를 지낸다.

태국의 명절

태국의 명절은 주로 음력을 기준으로 하며, 불교와 관련이 깊다. 마카부차(만불절)는 태국력으로 3월 보름에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해 제자들이 모인 것을 기념하는 날로 스님들에게 공양하며 새와 물고기를 방생하고 스님들의 설법을 듣는다. 

쏭크란은 태국 고유의 설날로 가장 더운 달인 4월 13일이 쏭크란 축제일이다. 이날에 사람들은 새와 물고기를 방생하며 웃어른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린다. 쏭크란 축제 때는 자신이 존경하는 어른을 찾아가 불을 뿌리는 의식을 행하는데 어른은 주로 앉아있고 물을 붓는 사람이 다가가 향수를 탄 물을 뿌리면 어른이 덕담을 한다. 

위싸카부차(불탄절)는 태국력 6월 보름은 부처가 탄생하고 득도하고 해탈한 날인 ‘위싸카’달 보름이라고 하여 이를 기념하는 행사들을 하는데 불교사원에 등을 달고 사람들은 초와 향과 꽃을 가지고 가서 설법을 듣는다. 

러이끄라통은 태국력 12월 보름에 행해지는 축제로 ‘끄라통’이라고 하는 연꽃모양의 바나나 잎으로 만든 작은 배에 촛불과 향과 꽃, 동전 등을 실어 강에 띄운다. 이것은 태국인들이 물의 신을 기리고 자신의 액운과 재난을 강물에 띄워 보내며 미래에 대한 소원을 비는 것인데 이때 촛불이 꺼지지 않고 멀리 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연극

낭야이는 고대 귀족들이 즐기던 것으로 가죽으로 인형의 모양을 조각하여 무대 앞에 하얀 천을 치고 그 뒤에 불빛을 비춰서 천으로 만든 막 뒤에서 가죽으로 만든 인형들을 움직이며 변사가 말하는 일종의 연극이다. 연극이 진행되는 사이에 악단의 연주가 삽입되고 코믹한 인형과 대사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제공한다.  

낭딸룽은 본래 인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태국남부에서 성행하는 놀이로서 낭야이와 비슷하지만 낭야이의 인형보다는 크기가 작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낭딸룽에는 등장인물을 움직이는 사람이 직접 대사를 하며 등장인물을 조정하는 사람 이외에도 조수가 2-3명 정도 있다. 이외에 대사를 말하는 변사와 추임새를 하는 사람이 있다.

핫야이 사람들

1. 핫야이의 위치 및 환경

남부 최대의 휴양도시인 송클라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아이들이 모래성을 만들며 뛰어 노는 송클라 해안에 인어상이 있는데 고기를 잡으러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인어가 되었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와 보물(9십만 바트 상당)이 바위 밑에 숨겨져 있어 누구든지 손으로 바위를 밀어 바다에 빠뜨리면 그 보물을 차지할 수 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송클라 주에 ‘핫야이’라는 한 도시가 있다. 

핫야이는 도청소재지인 송클라보다 더 발전하였는데 이는 말레이시아인들의 영향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로 가는 관문인 핫야이에는 대규모의 암거래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들어온 물건들을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핫야이를 찾고 있다.

그러나 핫야이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길게 뻗은 고무나무와 농부들의 전형적인 삶을 볼 수 있다. 핫야이는 남부 최대의 교통 요충지이며 면적은 21평방km이다. 98년말 관청 통계에 따르면 인구는 약 155,558명(남 75,788 여 79,770)정도이다.

핫야이에는 공항이 1개, 기차역이 1개, 여러 개의 버스 터미널이 있고 백화점이 11개, 호텔이 95개, 은행이 37개, 극장이 7개 등이 있다. 

2. 사회 성층 분석 

핫야이 풍경

방콕에서 기차로 약20시간쯤 남쪽으로 내려오면 핫야이라는 도시를 만나게 된다. 하루에 한 두 차례씩 어김없이 쏟아 붓는 소나기가 핫야이의 맑은 하늘과 신선한 공기를 제공한다. 핫야이에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 호흡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방콕은 항상 관광객들로 붐비고 눈을 따갑게 만드는 시커먼 매연, 그리고 상인들의 바가지가 너무 심한 반면 핫야이는 맑고 깨끗한 하늘로 사람들을 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핫야이는 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기차역에 들어서면 말레이시아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차역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사람은 ‘툭툭’운전기사이다. 기차역을 빠져 나오기가 무섭게 ‘툭툭’기사들이 모여들어 목적지를 물어보지만 핫야이 시내는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걸어서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기차역을 빠져 나오면 은행과 호텔과 쇼핑센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차역을 중심으로 이런 건물들이 우뚝우뚝 서있는 것은 외국인들이 주로 기차를 통해 핫야이로 들어오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시내 곳곳에 쇼핑센터들이 들어서 있고 그 주위에는 길에 물건을 내놓고 파는 가판대가 줄지어 있다.

도심에 대형 쇼핑센터와 함께 재래식 시장이 공존하고 있으며, 거리 가판대에 물건을 놓고 파는 사람들은 주로 무슬림 여성들이다. 중국인이 경영하는 상점은 입구에서 바로 볼 수 있는 곳에 조그만 불상세트가 놓여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으며, 상점 내부뿐만 아니라 심지어 셔터까지도 빨간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핫야이를 주로 찾는 외국인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말레이시아인들과 싱가폴인들이다. 이들의 모습은 태국인들과 비슷하기 때문에 거의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서양인들은 많지 않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띈다. 핫야이 시내를 걷다보면 코끼리가 사람을 등에 태우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접근하여 코끼리에게 먹이를 줘보라고 손짓한다.

가끔씩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천)을 두른 무슬림 여성들의 모습과 짙은 오렌지색 천을 두르고 지나가는 스님들의 모습, 시내를 지날 때마다 눈에 띄는 맛사지 그림들이 아이러니지만 이곳도 역시 태국의 향락문화는 비켜갈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호텔마다 맛사지 그림이 걸려있고 어떤 곳에는 여자들의 사진까지 밖에 걸어놓은 곳도 있다. 그리고 현재 핫야이에도 휴대폰 바람이 불고 있다. 휴대폰을 가지고 거리에 자리를 잡고 휴대폰 대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핫야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오토바이는 매우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시내버스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소유하고 있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오토바이는 서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과 같다. 핫야이 여성들은 거의 바지를 입지 않고 치마를 입는다.

그런데 아무리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도 오토바이를 잘 타고 다닌다. 오토바이 다음으로 중요한 교통수단으로서는 ‘툭툭’이다. ‘툭툭’은 택시와 미니버스의 기능을 합쳐놓은 것인데 손을 흔들어 ‘툭툭’을 부른 후 목적지를 말하면 툭툭기사가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

핫야이 툭툭기사들은 조금 무뚝뚝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승객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길을 모르면 멈추어 서서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목적지에 내려주는 친절한 사람들이 더 많다. 앞자리에 가족을 앞자리에 태우고 영업을 하는 운전사들도 있다.

종족별 분포

핫야이 도시 내에는 크게 3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타이인, 중국인, 말레이시아인 그밖에 소수종족으로는 인도, 파키스탄인등이 있다. 종족분포를 살펴보면 타이인 50%, 중국인 40%, 말레이시아인 10%를 구성하고 있다(1998년 말 현재 관청통계자료).

핫야이에는 중국인들이 상권을 잡고 있으며, 타이인들은 상대적으로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다.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타이인들이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 시장이 형성되는데 이때 많은 말레이 무슬림들이 물건을 사기 위해 모여든다고 한다.

이들이 구입해 가는 물건들은 주로 옷이나 쌀, 설탕 등의 식료품들인데 말레이시아보다 태국이 물가가 훨씬 싸기 때문이다. 핫야이를 주로 찾는 외국인들은 주로 말레이시인들과 싱가포르인들인데 이들의 관광목적은 주로 골프에 있다.

직업별 종족 분포도를 살펴보면 상인, 의사, 교사, 간호사 등은 4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주로 중국인이다. 농부, 정원사등 35%로 타이인이며 공장 근로자는 15%를 차지하고 있는데 주로 타이인이나 말레이시아인들이다.

병원카드를 작성할 때는 환자 양부모의 인종을 적어 넣는 곳이 있는데 카드에 구분하고 있는 인종은 중국인, 타이인, 말레이, 기타로 되어있다. 전통적으로 중국계 태국인들은 태국경제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태국인들은 정치를 지배하고 있었다. 핫야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으로는 공무원, 의사, 간호사, 교사, 엔지니어등이다.

종교별 분포

태국은 불교의 나라이지만 태국의 남부로 내려갈수록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 많이 살고 있다.  태국 전체적인 종교별 분포를 살펴보면 불교가 90%이고 이슬람이 6%그리고 기독교2% 기타2%로 알려져 있다.

이와 비교하여 1998년 관청이 제공한 핫야이 지역의 종교 통계를 보면, 불교 72%, 이슬람 20%, 기독교 5%, 기타 3%로 무슬림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보면 불교인의 수가 무슬림보다 절대적으로 많지만 어느 한 지역에서 이슬람 20%는 불교와 대결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며 남부지역의 이슬람 세력은 강하다. 핫야이 지역에는 불교사원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이슬람 사원이 2개, 성당이 1개, 교회가5-6개 정도 있다.

그러나 핫야이 지역에서는 이교도들간의 분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이며 핫야이 사람들도 서로의 종교에 대해서 존중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불교>

핫야이시내 어디를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역시 불교 사원이다. 태국에서 불교는 종교의 차원을 넘어선 생활 그 자체이다. 불교는 태국인들에게 만민이 평등하다는 철학을 심어주고 전통적인 사회형태를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화려하게 장식된 사원으로 들어가면 나무에 색색의 줄을 걸어 놓은 모습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민속신앙과 불교가 혼합되어 나타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시시때때로 사람들은 개인이나 가족단위로 꽃과 초와 향을 가지고 불교사원을 찾아가서 금종이를 붙이며 절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불교인들이 경영하는 상점이나 집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눈에 띄는 곳에 소형불상세트가 놓여져 있는데 이것의 가격은 대략 500-900 바트이다. 그러나 무슬림이나 기독교인들의 가게에는 소형 불상세트가 절대로 놓여져 있지 않다.

그리고 인사하는 모습으로도 이들의 종교를 알 수 있는데 불교인들은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하는 자세로 인사를 하지만 무슬림들은 절대로 합장하며 인사하지 않는다.  

불교사원은 중국계 절과 태국계 절이 구별되어 있다. 핫야이에서 대표적인 중국계 절(TONG SIA TEMPLE)과 타이계 절(KOR HONG TEMPLE)을 비교해보면 전통적으로 중국계 절에는 코끼리 신상이 있고 포티사(POTISA)라고 하는 여자신상이 있는데 4개의 얼굴과 8개의 손을 가졌다.

전통적으로 어린이들은 절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절 옆에 학교건물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타이계 절(KOR HONG TEMPLE)옆에도 17년 전에 세워진 학교가 있다. 불상은 3가지 형태가 있는데 월요일 불상은 입상(walking), 화요일의 불상은 와신상(sleeping), 금요일에는 가부좌상(sitting)이다.

‘KOR HONG TEMPLE’에는 국왕(라마5세)의 신상이 모셔져있는데 이들에게 국왕도 신앙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타이 사원에는 화장터가 있었는데 화장터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림을 살펴보면 땅 위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활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는 뼈들이 많이 놓여있는 그림이다. 그 옆에는 두꺼비같이 생긴 불상이 있고 그 앞에는 인어 공주 같은 자세를 하고있는 상이 하나 있다. 

<이슬람>

핫야이 시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스크가 두 곳이 있는데 마쓰지드 맛자모 핫야이(MASJID MAJJAMO HATYAI)와 마쓰지드 파키스탄(MASJID SAHE PAKISTAN)이다. 맛자모 모스크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에는 우두(기도하기 전에 손발을 씻는 정결 의식)를 할 수 있도록 수도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모스크 1층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이슬람학교가 있어서 어린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곳에서 이슬람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라마단 기간 중에는 저녁식사를 마친 후 수업이 시작된다.

계단을 통해 모스크 2층으로 올라가면 깨끗하고 넓은 기도하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남자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곳이며, 한쪽 모퉁이에 커텐을 쳐서 여자들도 그곳에서 기도 할 수 있도록 장소를 마련했다. 

핫야이 모스크의 특징은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승달을 둥근 돔위에 세우고 그 초승달 위에 별을 두었다는 점이다. 이 모스크에는 타이무슬림과 말레이무슬림이 많고 특히 말레이무슬림들은 라마단을 지키기 위해 태국 남부 말레이근방에서 와서 한달 동안 이 모스크에서 합숙하고 있다.

맛자모 모스크는 송클라주를 대표하는 모스크이며 송클라 무슬림 협회 회관이다.

맛자모 모스크에서 500미터정도 떨어진 곳에 파키스탄 모스크가 있다. 이 모스크는 1937년에 건립되어 1991년에 재건되었다. ‘이맘’이 파키스탄인으로 비교적 깨끗하지만 정통 모스크의 이미지에서는 많이 벗어났다. 두 개의 미나렛 위에 초승달과 별이 함께 달려있는데 둥근 돔의 모습은 없다.

모스크의 미나렛이 탑을 세워놓은 것 같은 모습이며 녹색과 짙은 코발트 블루를 사용했다. 파키스탄인들이 주로 이 모스크를 찾고 있다. 다른 나라에 있는 모스크와는 달리 파키스탄계 태국의 모스크에는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과 함께 별이 놓여져 있다.

파키스탄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파키스탄 국기에서 유래되었다고 대답한다. 

이 지역 내에 여러 개의 무슬림 식당이 있는데, 무슬림들은 돼지고기와 피를 먹지 않으며 가축을 도살할 때도 그들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하기 때문에 무슬림 식당 입구에는 항상 무슬림 식당이라는 간판이 걸려져 있다.

그리고 모스크 근처에는 무슬림들을 위한 용품들과 옷감들을 파는 가게도 있다. 남부지역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은 라마단을 엄숙히 지키고 있다.

<카톨릭>

핫야이에는 성당이 하나 있다.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아침에 두번, 저녁에 한번 예배가 있다. 성당 바로 옆에는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학교인 ‘생콩위티아스쿨’은 (핫야이 교육 참조),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는 교육사업에 치중하고 있다.

학교 내에 여러명의 신부님이 계시는데, 작은 예배당에 모여서 매일 아침과 저녁에 30분씩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약10명 정도가 참석하고 있다. 

3. 문화적 특성

신화와 상징 

태국의 국왕은 모든 국민의 정신적 지주이다.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는 타이 무슬림이나 그 외 소수 민족들까지도 왕과 왕실은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국왕이 부처의 자손이라고까지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의 기초는 그들 세계관에 깔린 왕에 대한 신화에 근거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왕에 대한 신화를 보면, 아주 먼 옛날에 하늘에는 좋은 신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중에 람(RAM)이라고 하는 신이 있었다. ‘람’이라는 신은 해와 달의 신인데 반대편에는 나쁜 신인 거인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적이었고 비록 그들이 신이지만 사람과 같이 생명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니다가 큰 뱀이 산을 감아 물을 휘저어서 거룩한 물을 만드는데 그 물을 마시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그 물을 마시려고 갔는데 신은 뱀의 꼬리 부분에 있었고 거인은 머리 부분에 있어서 뱀으로부터 나오는 불로 인해 거인은 죽고 신은 성수를 마시고 영원히 살게 되었다. 신은 기이한 독수리를 부리고 있었는데 그 독수리는 신을 보호했고 신이 가고자하는 대로 신을 태우고 다녔다.

왕은 그 신의 피를 이어받았으며 그 기이한 독수리는 왕을 잘 보호해주었다. 왕을 라마(RAMA)라고 부르고 그 독수리는 ‘라마야나(RAMAYANA)’라고 부르는 것은 신의 이름인 람(RAM)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라마야나(RAMAYANA)’에 대한 다른 설명도 있는데, 라마야나에 대한 서적을 보면 힌두교의 신중의 하나로 악한 뱀과 싸우고 잡아먹은 좋은 신이라고 나와있다.(태국사람들은 뱀이 몸을 감는 꿈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화와 믿음의 결과로, 태국사람들은 5대왕 (PIYAMAHALA)를 매주 화요일에 숭배하는데 왕이 화요일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은 향과 꽃과 과일 등을 바치는데 그렇게 하면 행운이 오며 사업이 잘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왕이 선왕으로 꼽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정에서나 사업장에서 일반적으로 숭배하고 있다.  

왕에 대한 신화 외에도 천둥, 번개치는 비오는 날에는 아이들이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메카라(MEKARA)라는 여자가 손에 크리스탈을 가지고 노는데 그것은 번개와 비를 오게 하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혼자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했는데 그녀는 혼자 나가서 놀곤 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시커먼 망토를 입은 나마손(Namason)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그녀가 가지고 노는 크리스탈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모든 중국인들과 일부 타이인들은 매일 아침 상점을 열 때 ‘디조엣’이라고 부르는 향을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불교인이다.

전통의식은 도시보다는 시골에서 잘 지켜지며 아직까지 어린 학생들은 학교울타리 한쪽 벽면에 놓여있는 코끼리 신상 앞을 지날 때마다 무릎을 꿇고 합장하여 세 번 절을 하는데 이 코끼리 신상이 자신들이 공부하는 것을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있다. 

학교에 전해지는 코끼리 신상에 대한 설화가 있는데 하늘에 신의 아들이 있었는데 세상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아 아버지로부터 하늘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처음으로 땅에 내려와 만난 것이 코끼리였는데, 코끼리가 땅의 인간의 모습인줄 알고 코끼리의 목을 베어 그것을 뒤집어썼다.

그래서 결국 얼굴은 코끼리가 되었고 몸은 사람의 형체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코끼리 신은 “Father of Art, successful god”으로 여기게 되었다. 주로 예술학교의 상징이 되었다. 예술인들은 이 신으로부터 영감과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상징으로는 봉황새처럼 보이는 새의 이름이며 정부를 상징하는 쿵타이가 있다. ‘쿵타이’라는 도시가 따로 있고 정부의 권위를 상징한다. 정부은행(KUNG THAI)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쿠릇은 새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과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날개 위에 팔이 있다.

그리고 새의 발 모양을 하고 있다. 쿠릇은 새의 이름이고 하늘에서부터 내려왔다고 한다. 부처를 운반하는 차로 사람들은 이 쿠릇이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항상 등장했던 짬비는 타이항공도 이 짬비를 사용한다.

짬비는 ‘난’을 나타내는 것이다.  랑파(NANGFA)는 앉아서 빌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으로 이 그림을 붙여 놓으면 손님이 많이 온다고 믿고 있으며 그림주위에는 숫자 같은 것이 적혀있다. 일종의 부적이다. 

예술 문화

‘낭딸룽’(인형극)은 원래 인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태국 남부지방에서 볼 수 있다. 태국 남부지역에 아직까지도 성행하고 있는 그림자극은 주로 초저녁에 시작한다. 때로는 야외식당에서 식사를 즐기며 낭딸룽을 관람하는데 주말저녁부터 밤늦게까지 행해지고 있다.

탈춤과 드라마는 원래 왕궁 안에서만 행해졌던 것이며 라콘은 왕궁 밖에서 행해졌다.  

마누(전통춤)- 남부의 전통적인 춤으로 손가락에 뾰족한 것을 끼우고 원색의 구슬을 몸에 두르고 춤을 추는 것인데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하였다.

음식 문화

핫야이 사람들은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많이 먹으며 볶음밥을 주로 먹는다. 기름에 튀긴 국수에 어묵이나 돼지고기를 넣은 국수도 있다. 그러나 볶음밥이나 국수는 모두 기름기가 많아서 느끼하다. 이러한 느끼한 음식이 싫다면 찰쌀밥을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대나무시루에 쪄서 익힌 꼬들꼬들한 찹쌀밥을 조그만 대나무로 엮은 통에 담아주는데 다른 반찬과 함께 먹으면 별미이다. 반찬으로는 ‘냄’(돼지고기 발효음식)에 쌈장을 찍어 먹거나 해물과 야채를 섞은 샐러드와 함께 먹는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또 가축을 잡을 때도 그들의 특별한 방법이 있기 때문에 무슬림을 위한 식당이 시내 곳곳에 있으며 PSU 대학 내에도 3-4곳 있다.

무슬림 식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장사를 하고 있으며 식당 내부에는 알라의 99개의 이름이 쓰여져 있는 벽걸이 장식이나 메카의 카으바 신전의 모습을 중심으로 한 성지순례사진을 식당을 들어서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걸어놓고 있다. 

결혼 및 가족제도

결혼 적령기는 대학을 마친 25세 전후로서 결혼식은 대개 집이나 호텔에서 한다. 결혼과 동시에 부모를 떠나 핵가족을 이루고 있으며, 한국에서처럼 장남이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형제 중에서 아무나 모시게 된다. 대개의 경우 마지막으로 결혼하는 딸이나 아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혼 후 여성들도 일하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자녀는 2-4명을 두며 양육은 노인부모의 몫이다. 그래서 핫야이 시내에서는 노인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대부분 노인들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타이계와 중국계는 서로 통혼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말레이계와의 결혼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언어적인 문제와 일부다처제 등 종교적인 문제 때문이다. 우리가 인터뷰한 사람들 중 다수가 말레이와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무슬림들은 불교사회에서도 그들의 신앙을 굳건히 지키고 타종교인들과 타협하지 않고 타인에게 개종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국인들의 눈에 비친 무슬림들의 게으른 생활과 무슬림 여성들이 행상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모습이 좋아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결혼식은 주로 집이나 호텔에서 한다. 특별히 불교인들은 승려가 주례를 하는데 이때에 성수(holy water)가 필요하다. 결혼식은 결혼하기 1년 전에 신랑이 신부의 아버지에게 결혼을 허락 받아야 하며 결혼식 3-4일 전에 신랑은 신부대 10만 바트(귀금속을 포함한 보통의 경우)를 가지고 신부집으로 간다.

결혼식 날 아침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오는데 이때 신부는 설탕으로 만든 케익과 쌀 등의 곡식을 가지고 가는데 설탕케익을 가져가는 것은 달콤한 부부생활을 상징하는 것이고 곡식은 다산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결혼식에는 타이 전통의상을 입으며 타이 전통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축제이다. 신혼여행은 3일정도 주위의 섬으로 간다.

장례식

장례식은 보통 3-5일장을 지낸다. 사원에서 화장을 하는데 수요일과 일요일에는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 특별히 수요일은 unlucky day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어서 이날에 장례식 하는 것을 피한다고 한다. 국왕의 경우는 1년장을 하고, 국왕과 고위 관료의 경우는 관을 눕히지 않고 세워놓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불교인들은 사원에 갈 때 꼭 가지고 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초와 꽃과 향이다. 불교에서 촛불은 인생무상을 뜻하며, 꽃은 아름다움의 무상, 향은 순결한 삶의 향기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불교인들은 또한 절에서 추도회를 한다. 죽은지 2년째 된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가족과 이웃들이 모여있는데 검은 옷을 입고 있으며, 한 스님이 영정근처에서 설법을 하고 화환과 색전구로 화려하게 장식한다. 태국의 불교사원은 한국과 비교할 때 다른 면이 많다.

태국에서는 누워있는 불상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와트 핫야이 나이’ 사원에 가보면 누운 불상의 길이가 약40미터 정도나 된다. 그리고 사원 안에는 코끼리 상들도 있고 코끼리에도 금종이를 붙여놓았다.

4. 사회생활  

변모하고 있는 사회 

태국의 약 70%는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농민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근대화의 물결에 따라 자급자족 농업에서 탈피하고 있으며 과거 수십 년간 농촌의 변화는 태국인 다수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도로 확장과 전기공급뿐만 아니라 라디오, 오토바이, 텔레비전 등이 농촌에도 필수품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TV나 전화 보급률은 90%정도이지만 PC보급률은 아직 보편화되어 있지 않으나 몇몇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인터넷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벼농사가 전 농업생산의 90%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50%이하로 감소되었다. 핫야이 외곽지역에는 공장들이 세워져있는데 주로 고무공장이나 통조림공장으로 주로 말레이시아인이 이곳에 많다.

태국인들은 말레이인들에 대해 우호적이지도 적대적이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구분이 없고 우호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쇼핑센터에 들어서면 진열대위에는 비싸고 고급스런 물건들과 외제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물론 한국제품도 있지만 상당수는 일본제품들이다.

휴대폰 사용자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데 비싼 값을 지불하고 휴대폰을 구입한 사람이 장거리전화를 쓰려고 하는 사람에게 몇 분에 얼마씩 돈을 받고 장사를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휴대폰은 시외에 전화를 할 경우도 시내요금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교통수단으로 ‘툭툭’이 있는데 보통 툭툭은 시내내부를 도는 순환형과 외곽지역으로 가는 툭툭이 있는데 이것을 잘 구분해서 타야한다. 시외로 가는 툭툭은 차체가 크고 높아서 사람들이 서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내순환용 툭툭은 지붕이 낮고 양쪽으로 의자가 놓여 있어서 8-10명 정도가 탈 수 있다. 툭툭을 타는 방법은 택시를 타는 것처럼 손짓을 하여 부르면 된다. 

핫야이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소수이다. 그러나 PSU에 다니는 학생들과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음식점 및 상점은 중국계가 가지고 있으며 공장 등은 말레이인들이 가지고 있다. 타이사람들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매우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시장과 거리 곳곳에는 복권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많다. 백화점 주변에는 상점들이 즐비한데 시계, 라디오 등 전자제품은 주로 대만제이다. 그리고 건물들이 주로 1층은 상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3층은 주거용인 상가주택이 주를 이룬다.

사람들은 전문직종을 선호한다. 공무원 초임은 4,000 바트인데, 경력5년은 8,000 바트, 경력10년이 되면 10,000 바트를 받는다. 

핫야이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의 순박함과 부드럽고 정적인 느낌을 갖게된다. 그리고 그들은 친절하다. 그러나 그들만이 갖고있는 어떠한 자부심과 여유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골에서 핫야이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지만 인근도시에서 핫야이로 쇼핑하러 오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주말을 이용하여 이틀정도 핫야이에 머물면서 쇼핑도 하고 골프를 즐긴다고 한다.

태국여성

태국에서 여성의 위치를 보면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 여성들은 태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특히 전문직에서 여성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대학교수들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수준보다 높다고 한다. 그러나 태국에서의 사회화 양상은 공공부문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여전히 반영하고 있다.

교육

교육제도는 6-6-4제로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과정이다.  핫야이 지역에는 초등학교62개 (국공립57, 사립5개), 중/고등학교7개, 종합대학1개, 기타5개가 있다. 유치원은 2년 정도 다닌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입학시험을 치뤄야 하는데 국어, 수학, 영어, 화학, 생물, 물리시험이며 대학진학률은 20%로 정도이다. 핫야이 학생들은 교복을 입는다.

<생콩위티아 스쿨>

핫야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학교는 생콩위티아 학교로서 학교 정문에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써있는데 이탈리아 선교사가 세운 카톨릭 미션스쿨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과정까지의 남학생들을 위한 학교이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여학교가 있는데 이곳은 수녀가 운영한다. 2000년에는 개교 50주년을 기념행사가 있을 예정이며 이 학교의 교육이념은 개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인본주의다. 

학생 수는 2.500명 가량이며 이중 카톨릭 학생 수는 100명 정도이다. 이 학교에는 110명의 교사가 있는데 카톨릭이 25명, 무슬림이 3명이며 나머지는 모두 불교인이다. 이 학교에는 5명의 신부가 있다.

안토니 레스텔리 신부님은 현재 이 학교 교장으로 태국에 25년째 선교사로 계신다. 생콩위티아 스쿨은 핫야이에 거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유학을 오기도 하는데 이들을 위한 기숙사도 마련되어 있다. 

학교는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초등, 중등, 고등학생을 위한 도서관이 각각 마련되어 있고 영화감상을 할 수 있는 시청각실과 컴퓨터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방과후 학생활동으로 밴드부가 있고 어린이들은 축구를 한다.

학교 건물 안에 작은 예배당이 있어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30분씩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약10명 정도가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생콩위티아 스쿨은 송클라 주에서 규모가 큰 학교에 속하는데 스카우트 캠프를 갖고 있다.

방학은 가장 무더운 3-5월까지 약3개월간이다. 이 학교의 한 학기 등록금은 8,000 바트 정도인데 사립학교로 학비도 좀 비싸고 카톨릭 학교이기도 하지만 현대적인 시설로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교이다.

<송쿨라 왕자 대학교(PRINCE SONGKLA UNIVERSITY>

PSU는 1960년 태국왕자가 세운 대학으로서 태국전역의 학생들이 모인 대규모의 대학이다. 각 단과대학 별로 5개 지역에 캠퍼스가 나눠져 있고, 캠퍼스 안에 우체국, 은행, 라디오 방송국 등이 있으며 약12,000명 정도의 학생이 있다.(그러나 총학생 회장은 학생 수가 7,000명이라고 한다)

대학 1년생은 기숙사에 거주하며 나머지학년은 추첨을 통해 기숙사에 들어올 수 있다. 기숙사의 한 학기 사용료는 2,200 바트 정도이며 약3,500여명이 현재 기숙사 생활을 하고있다고 한다. 어른들과 달리 학생들은 불교인과 무슬림들도 서로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태국인은 20세가 되면 신분증을 발급 받으며, 남학생은 21세가 되면 추첨을 통해 군대에 갈 사람을 뽑는다. 대학교의 여름방학도 마찬가지로 가장 더운 3월부터 5월까지이며 특별히 겨울방학은 없다. 여름방학이 끝나면 곧바로 새 학년이 되는데 1학기는 6월부터 9월까지이고 2학기는 11월부터 2월까지이다.

대학교에서도 교복을 입어야하는데 여학생들은 블라우스와 스커트이다. 블라우스는 흰색을 입으며, 스커트는 검정색이나 회색 또는 짙은 청색 중에서 아무거나 입어도 되며 치마길이나 트임은 자유롭다. 그러나 남학생들은 교복을 입지 않는다.

PSU안에는 기독학생모임이 있다고 한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모든 아이들이 별명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들끼리 별명을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별명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의미가 없어도 발음이 예쁜 것을 별명으로 갖는다. 대학생들은 호출기를 가지고 다닌다.

핫야이 지역에는 노래방이 많이 들어서 있다. 대학생들도 노래방 출입을 한다. 거리의 젊은이들은 옷차림은 개방적이고 다양하다. 머리염색, 무스와 스프레이로 잔뜩 멋을 부리고 머리를 길러서 뒤로 묶은 남자, 찢어진 청바지 또 여자들의 노출도 눈에 띈다.

크고 작은 상점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다. PSU는 송클라주를 대표하는 규모가 큰 학교로서 이곳에서는 갖가지 행사들이 펼쳐진다. 

5. 핫야이의 복음화 현황 

태국 교회사

<기독교의 전래>

기독교가 최초로 태국에 들어온 것은 525년에 경교신자(네스토리안 기독교인)인 코스모스가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기독교와 접촉한 것은 1511년 포르투칼의 사절단과 동행했던 카톨릭 신부에 위해서였고 실제로 태국에서 기독교가 포교활동을 한 것은 1555년 도미니칸 신부들에 의해서였지만 이들은 곧 순교를 당했다.

개신교 선교는 1828년 중국에서 선교하던 칼 구츨라프와 영국LMS선교회 소속인 제이콘 톰린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방콕에 살던 중국인들 사이에서 일하도록 허락을 받아 태국어를 배워 태국어로 중국성경을 번역하고 문서선교와 전도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그러나 태국인들의 서구에 대한 반감으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1835년 브래들리 선교사가 들어와 새로운 서양의술과 인쇄술을 태국에 소개하면서 헌신적인 사역을 펼쳐 국왕으로부터 호의를 얻게되어 자유롭게 선교사역을 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개신교가 실제로 생명력을 갖기 시작하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게 되었다.

<교회 정착기(1850 – 1914)>

이 시기의 선교사들은 재산을 얻고 선교부를 세우고 그 나라의 문화, 관습, 언어를 습득하였고,  병원, 학교, 고아원 등을 운영하여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제 1기(1850 – 1883): 라마 4세 몽끗왕이 즉위하면서 선교사역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그는 자유롭고 아량이 있는 진보주의자로, 선교사와 매우 친밀하여 많은 도움을 주었다. 1868년 즉위한 쫄라롱껀왕은 1878년에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였다.

이로 인하여 기독교의 선교는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사역 방법은 첫째로 의료 사역이었고, 1928년 외과 의사인 구츨라프에 의해 시작된 이래로 선교사들은 빈곤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태국인들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둘째 선교방법은 학교를 통해서였다. 선교사들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젊은이들의 교육이 복음 전도의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셋째 인쇄업을 통한 문서선교였다. 

제 2기(1883-1914): 이 시기는 교회 성장이 가장 빠른 시기로, 이와 같은 성장의 요인은 밀길버리 선교사의 활동으로 가능했다. 그는 교회를 설립하려는 목적으로 부지런히 순회선교를 하였고 교육과 의술을 통해 주민들과 가까이 할 수 있었다.

개종자가 어려움을 겪을 때 그들을 강력하게 돌보아 주었으며 교육을 통해 태국어를 가르치고, 가족 단위의 개종에 관심을 가져 많은 결실을 맺었다. 또 다른 성장 이유는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는 강력한 민족주의와 불교의 영향을 들 수 있다.

대체로 사찰과 승려들은 중부와 남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기독교를 서양종교라 배척하였다. 반면에 북부의 주민들은 자신들을 라오인이라 지칭하며 소위 콘우왕 즉 북부인이라 부르며 중앙 타이를 중심한 민족주의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 시련기(1914-1945)>

1914년 이후 교회 성장은 계속 하락세를 보였다. 이렇게 된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2차 세계대전중 일본의 태국점령 후, 일본은 기독교를 박해하였다. 

둘째, 기독교 선교사들과 선교에 도움을 주었던 쫄라롱껀왕의 사망으로 선교활동이 위축되었다. 

셋째, 강력한 두 번의 불교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 때문이었다.

넷째, 선교 정책의 문제로 당시 선교의 중심에 있던 장로교가 전도와 교회개척보다는 병원이나 학교설립 등의 사회복지에 치중하였기 때문이다.

<교회 부흥기>

제 2차 세계대전 후 기독교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1945년 8,000 명이던 신자가, 1960년에는 24,539 명, 1978년에는 58,953 명으로 성장했으며, 1988년에는 110,000 명으로 급성장 하였다.

1970년 이후의 교회 성장은 복음이 전파된지 오래되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파됨으로 태국인들 사이에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1973년과 1978년 사이 선교사가 23%, 기독교 기관 50% 나 증가하는 등 복음전파에 대한 투자의 증가도 한 요인이다.

1987, 1988년에는 태국 교회들이 제자훈련하교, 제자삼기 운동 등으로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좋은 결실을 내었다. 세 번째로 선교단체의 초교파적인 연합활동이 부흥의 원인이 되었다.

현재 선교 상황

과거에는 사역의 중심이 의료와 교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이를 통해 개종자들이 생겨나고 교회도 개척되었다. 현재는 도시와 농촌의 복음화와 교회 개척 그리고 성경공부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중국인 교회>

시청에서 기차역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중국인 교회가 나온다. 평일에는 정문과 후문이 잠겨있고 폐쇄적인 느낌을 받게 한다. 1943년경에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이 교회에 전에는 선교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중국인 목사가 20여 년째 이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교인은 약 4-50명 정도이며 예배는 금요일 저녁과 주일에 드리고 있으며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30년 된 좋은 소리의 피아노가 놓여있고 타이성경과 중국인 성경이 비치되어 있다. 찬송가는 한 면에는 타이어로 다른 면에는 한자로 되어있다.

<중국인 침례교회>

남침례교 잭(Jack .E. Mahaffey)부부가 1969년에 세운 교회로 유아들이 20여명, 청년들이 30명되고, 장년은 거의 없다고 한다. 잭부부는 핫야이 남서쪽에 교회를 하나 더 세웠으며 96년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금요일저녁마다 찬양예배를 드리고 있다. 침례탕이 정원 안쪽에 마련되어있고, 예배당에는 드럼, 키보드, 피아노가 놓여져 있고 유아들을 위한 예배실이 있다. 교회에는 사택과 사무실 그리고 식당이 있다. 교회 사무실 안에는 컴퓨터가 있고 성경공부교제와 전도책자들이 있다. 

<안식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몇몇의 핫야이 사람들에게서 안식교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복음에 대한 수용성 

핫야이 사람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타종교를 무시한다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만약 기독교인이 전도지를 주면 받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전도지가 만화로 되어 있다면 더욱 재미있게 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핫야이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무슬림보다는 기독교인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생콩위티아 스쿨에는 몇 가지의 신앙서적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린이들이 볼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는 책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6. 창의적 선교 전략

입국 전략

핫야이 지역에서 선교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학생 신분으로 PSU에서 공부하면서 선교할 수 있다. 대학 내에는 외국인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지만 외국인에 대해 호의적이기 때문에 대학생들과의 접근이 가능하다. 또한 핫야이 지역에는 사설학원들이 들어서 있는데 주로 영어와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다.

현재 핫야이 사람들은 영어와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학원 사역도 중요한 선교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태국인들은 또한 음악과 체육을 좋아하는데 학생들이 방과후 활동으로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태권도 사범이나 축구 등 스포츠를 통한 사역도 가능하다. 

핫야이는 무역을 할 수 있는 좋은 지역이다. 도시에 비해 쇼핑센터와 호텔이 많이 세워져있는데 이것을 이용하여 한국제품들을 수출하는 것도 좋은 사업일 것이다. 그리고 휴대전화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컴퓨터, 출판회사, 휴대전화 사업 등으로의 위장이 필요하다. 

사역의 기회와 전략

핫야이에서 선교하기 위해서는 먼저 핫야이 현지 교회의 상태를 충분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핫야이에 있는 교회에 관하여는 위에서 소개한 대로 5-6곳에 교회건물이 세워져 있지만 이들 스스로가 핫야이에서 전도할 수 있는 역량은 부족하다.

각 교회마다 교인수도 얼마되지 않고 침체되어 있는 분위기여서 이 지역 복음화를 위해서는 먼저 기독교인들에 대한 제자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시급하다.

신학 교육을 지원하고, 지도자 양성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해주는 일과 제자 양육을 통하여 성경공부리더를 길러내고 활기있는 교회가 되도록 침체된 교회들을 다시 일으키는 사역이 필요하다. 

대학캠퍼스 사역으로 태국의 국립대학인 PSU에는 만사천명의 학생들이 있는데, 대학 내에 외국인 학생은 거의 없다. 학생으로 입학하여 기독학생모임이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복음전도와 제자양육 사역을 할 수 있다. 이 대학의 학생들은 불교인과 무슬림 학생들이 주를 이룬다. 

PSU대학 근처에는 타지에서 온 학생들이 자취를 하고 있다. 유학생들 중에는 식당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는 학생들도 있다. 이들에게 접근하여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기독교 문서와 기독교 서점을 통해 성경과 신앙서적들이 판매되고, 문서나 대중매체를 위한 사역이 활발히 진행되어 라디오 방송을 통해 기독교 프로그램이 태국 전역에 방송되도록 노력해야한다.

특히 더운 나라에서는 밤 문화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저녁시간을 이용하여 영화상영을 하는 것도 좋은 사역이 될 수 있다. 기독교 주제를 담고있는 드라마나 영화들을 상영하여 매체를 통한 복음전도와 제자훈련을 발전시켜야 한다.

적절한 전도지와 교재를 계발하여 기독교 관련 서적들을 태국어로 번역하여 도서관에 비치한다면 기독교에 대한 관심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몇 가지 전도지가 있기는 하지만 신앙 성숙을 위한 서적과 성경공부교재등이 필요하다. 

간호사나 공무원 등 직장인들을 위한 선교가 필요하다. 기독교인들이 직장에서 본을 보이고 믿지 않는 이들을 잘 섬길 수 있도록 훈련하며 직장선교를 할 수 있도록 이들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영어나 컴퓨터, 태권도를 가르치는 교사가 많이 필요하며, 특히 윤락녀들을 대상하는 사역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핫야이 지역은 무슬림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무슬림을 위한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태국의 불교는 오랜 기간동안 정령숭배와 혼합되어 왔는데 핫야이 사람들의 영혼을 억압하고 있는 우상숭배에서 자유 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이들이 믿고 있는 종교에 회의를 갖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도록 기도하자.

그리하여 이들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을 이들이 스스로 깨뜨리는 그날을 빨리 볼 수 있도록 기도하자.  

참고문헌

참고문헌
캠프 여호수아 현장 노트. 1999. 
한국태국학회 편. 1998. 동남아학총서2 태국의 이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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