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이슬람

현대선교 13 (Current Mission Trends): “IT와 선교”. 발행 : 2003년 12월 20일, 서울:GMF Press. 수록면 : 118-128.

한국선교연구원 편집부

최근 들어 신문에는 남부 사하라 아프리카 지역이 점차 국제 테러의 온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기사들이 게재되고 있다. 그 지역에는 상당한 수의 독재 정부와 일부 무질서한‘치안공백의 지방’그리고 수백만의 무슬림들이 존재하는데, 그들 대다수가 서방의 군사력과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패권에 분개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흑인 아프리카 테러리스트의 이름을 단 한 사람이라도 언급할 수 있는가? 세속적인 목적으로 자신의 국민을 대상으로 테러를 했던 로버트 무가베 같은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중동지역에서 폭발적인 굉장한 효과를 거두었던 이슬람 근본주의가 사하라 아래 지역에서는 불을 붙이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 TV 뉴스는 우리에게 다른 인상을 줄 수도 있다. 2003년 6월 말에 보도된 자료에 의하면 수단 행 폭발물 선적, 말라위에서 다섯 명의 알 카에다 혐의자 체포, 케냐에서 자살 공격 추정자 4명 기소, 그리고 소말리아에 잠복중인 테러리스트들이 케냐로 침투해 들어올 것을 염려하여 양국간의 비행을 금지시킨 것 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 마치 오사마 빈 라덴의 조직원들이 아프리카에서 대단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것들이 빈 라덴이 하는 방법은 그만두고라도 그의 목표에 많은 흑인 아프리카인들이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그러한 것에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슬람은 사하라 남부지역에서 인기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무슬림, 그다음으로 나이지리아인 혹은 세네갈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온건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무슬림 여성들은 옷을 적당히 입지만 일부 여성들은 신체 구석구석을 옷으로 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 극단적인 채찍질이나 돌팔매질 같은 이슬람식 처벌은 극히 드물다.

사하라 남부지역 대부분의 나라에서 음주는 자유롭게 허용되며 상당히 많은 무슬림들은 몰래 숨어서 가끔씩 폭음을 하기도 한다. 종교 혼합주의가 일상화되어 있고, 교리를 엄격히 지키는 경우는 드물다.

상당수의 아프리카 무슬림들은 지속해서 전통적인 이교의식을 거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수단의 종교경찰을 당황하게 하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는 널리 용인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무슬림과 비무슬림간의 다툼은 일상적이다. 가끔은 유혈사태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무슬림 신자와 비신자들은 서로 의좋게 잘 지낸다.

아프리카에 내전이 만연해 있지만 이러한 것들은 유전(油田) 또는 코코아 농사의 통제권을 누가 가질 것인가 하는 국지적이고 실질적 문제이다. 종교적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는 아프리카인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 몇 년간 사우디 펀드가 후원하는 상당수의 이슬람 학교들은 좀 더 급진적 형태의 이슬람을 아프리카에 전파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많은 아프리카 무슬림들을 격분시킨 미국의 이라크 정복과 이스라엘에 대한 후원은 의심할 여지없이 과격주의자들에게 어느 정도 자극을 주었지만 국제 지하드 조직에 가입한 아프리카인은 거의 없었다.

코트디부아르의 부아케와 나이지리아의 자리아, 수단의 옴둘만을 중심으로 한 현장보고

해가 질 무렵, 녹색의 광탑(光塔)들 아래서, 옴둘만(수단 북동쪽에 위치한 도시, 나일강을 중심으로 수도인 카르툼 맞은편에 있다)의 무슬림 수도승들이 열 두 개의 북들이 만들어내는 박자에 맞추어 무아지경에 빠질 때까지 빙빙 돌았다.

이러한 무슬림 신비주의적 체험의 광경은 언제나 군중들을 매혹시키는데, 그 승려들 중 하나가 9.11 테러 뒤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신원에게 말했다. “트윈 타워를 파괴했던 것은 분명히 유태인들이었어. 미국에게 무슬림들을 공격할 명분을 주기 위해서였지.”

어쩌다가 찾아오는 사람에게, 수단은 서방인들이 테러리즘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이슬람 급진주의에 붙잡혀 있는 듯 보인다. 수단의 이슬람 정부는 한 때 오사마 빈 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기도 했었다.

미국의 압력 하에서 그 정권은 1996년에 그를 추방했으나, 수단 남부에서는 여전히 그리스도인들과 싸우고 있다. 수단의 기독교인들은 박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치안대(治安隊)는 금욕적인 법률들을 억지로 집행하고 있다. 술은 금지되고 간음한 자들에게는 채찍을 통한 형벌이 가해지며, 신성 모독자는 구제받을 길이 없다.

* Evangelical: 복음주의 / Carismatic: 카리스마틱 / Pentecostal: 오순절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이남지역이 차기 이슬람 테러의 온상이 될 것인가? 6월 말은 경고성 뉴스들로 홍수를 이루었다. 6월 22일, 그리스는 수단을 향해 폭발물을 나르던 배 한 척을 검거했다. 그러나 수단 정부는 그것들이 비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6월 23일, 말라위 정부는 5명의 알 카에다 용의자들을 구금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 다음날 케냐의 검찰관들은 11월 몸바사에서 있었던 유태인 소유 호텔 자살 폭탄테러의 유력한 용의자로 4명의 남자를 고발했다.

아프리카에 있었던 가장 끔찍한 이슬람 테러분자들의 공격은 1998년, 알 카에다가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을 폭파시켜 대부분 아프리카인이었던 230명의 희생자를 낸 사건이었다.

그 때부터 미수에 그쳤던 유태인 수송기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포함한 항공기의 이상접근과 더 심한 상황에 대한 경고가 여러 차례 있어왔다.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간의 분쟁으로 1999년 이래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나이지리아에서는 2월에 빈 라덴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음성 메시지가 담긴 녹음테이프에서 나이지리아에 대해 “해방”을 위한 준비가 되어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 테러리즘은 아프리카에서 흔하지만 종교적으로 동기화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짐바브웨와 같이 민심을 잃은 정권들은 불안해하는 시민들을 잠재우기 위해 종종 폭력을 사용한다.

그러나 사하라 이남의 무슬림들은 서방의 이교도들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킬 기미를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수단과 코트디부아르에서와 같이 무슬림들이 비무슬림들에 대하여 싸우는 내전들조차 종교 때문이라기보다는 보통 석유, 영토나 투표권과 더 관련이 있다.

그동안 알 카에다는 소수의 아프리카인들을 신병으로 모집할 수 있었으나,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활동은 아랍계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현재로서는 아프리카 자살 폭탄 테러범들의 실체를 알 길이 없다.

이것은 아프리카의 무슬림들이“어떤 방법으로든 자살하는 자는 지옥에서 같은 방법으로 고문당할 것”이라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경고를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거나 단순히 자폭에 대한 생각 자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리카 주재 서방인들에 대한 공격이 상대적으로 자행되기가 쉬운데, 이것은 대 참사를 기도하는 테러리스트들이 그 지역의 풍부한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의 치안이 느슨한 탓이다.

예를 들면, 무기를 찾아내기 위해 통신원의 차 트렁크를 열던 코트디부아르의 경찰관 하나는 파인애플을 발견하자 그것을 꺼내고는 가방들을 수색하는 것을 소홀히 했다.

이슬람은 원래 아랍 상인들과 정복자들 그리고 노예 사냥꾼들에 의해 아프리카로 전해졌는데, 이들은 사하라 사막과 접하는 모든 나라들과 동부해안의 많은 나라들을 개종시켰다. 많은 아랍인들이 이러한 지역에 머물거나 지역주민들과 결혼하였다.

교육받은 아프리카의 무슬림들은 아랍어를 말하며, 스와힐리어인 동아프리카의 링귀프랭커는 아랍어원을 가진다. 많은 아프리카의 무슬림들은 아랍 문화를 존중하며 열심히 모방한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아랍 선조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그들의 모국들에 대해서 보다 세계적인 무슬림 사회인 ‘우마’에 더 충실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들이 아랍세계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있더라도 아프리카의 흑인 무슬림들은 결국 아프리카인으로 남는다. 그들은 아랍인들과 같은 신을 믿지만, 약간 다른 방식으로 믿음을 지킨다.

수많은 고대 아프리카 의식은 이슬람의 색채를 약간 띤 채로 유지되고 있다. 추방된 수단 정치인인 아메드 디레지는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맥주를 좋아한다고 한다.

수단은 사하라 지역에서 순수한 이슬람국가를 강제적으로 시도해 온 유일한 정부이다.

아랍계통 수단인이 지배하는 급진정부가 1989년 권력을 장악하면서 최루 가스로 결혼파티를 해산시키고, 세속음악 연주에 사용되는 악기를 부수고, 신앙이 부족한 교우를 고발하는 학생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수단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이슬람 국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극단주의자들의 지배력이 느슨해지고 있는 것 같다.

1999년에 지배체재의 주요 이론가인 핫산 알 투라비는 오마 바시르 대통령에 의해 내쫓겨 수감되었다. 정부 내의 실용주의자들은 이슬람주의가 내전을 연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개 비무슬림이며 종종 토플리스(가슴을 노출시킨)의상으로 돌아다니곤 하는 남쪽지역 사람들은 절대 샤리아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많은 무슬림들도 정부의 광신에 대해 싫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젊은 수단의 언론인 니마 엘 바길은 수단이 민감하고 다양성을 지닌 국가라고 한다. 그는 또한 어느 누구도 현 상황을 꾸며낸 걸프사태와 동일하게 보기를 원치 않으며 자신들은 아랍인이 아니라고 했다.

정부는 이 점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대중의 불만에 한보 양보했다. 그 법은 더 이상 가혹하지 않다. 여성들이 베일을 두르지 않고 다닌다는 이유로 여전히 체포될 수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공원에서의 혼성으로 가는 소풍은 흔한 일이고 달빛이 비치는 나일강을 걷는 대담한 커플들도 생겼다. 캔 맥주가 생선 상자 속에 숨겨져 카르툼으로 밀수입되고 있다.

여전히 가택 구금되어 있는 투라비 조차 다원주의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 웨자알 마디는 이슬람이 자유로운 종교이며 사람들은 선택의 자유가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전쟁의 상흔은 여전하나, 미국의 압력 하에 양측은 심각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에서 투쟁중인 이슬람이 얼마나 강력할까? 2001년 9월11일 이후 오사마는 북 나이지리아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는 이름이 되었고 그 친숙한 턱수염의 얼굴은 이제는 에티오피아와 탄자니아 및 상당한 무슬림 인구로 구성된 아프리카의 모든 나라에서 티셔츠와 벽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빈 라덴 포스터를 붙인다고 해서 살인을 계획하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는 체 게바라(쿠바의 혁명가)의 포스터를 벽에 붙여놓은 서구학생들이 폭력혁명을 계획하려는 것보다 강도가 덜하다.

이러한 포스터는 사람들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기껏해야 아프리카 텔레비전 화면을 지배하는 세속적인 서구문화에 대한 반항과 불평을 암시하는 정도이다.

만일 빈 라덴이 신봉된다면 나이지리아는 사하라지역에서 가장 두드러진 제정일치국가가 된다. 1999년 이래 나이지리아의 36개 주 가운데 12개 주가 간음한 자를 돌로 쳐 죽게 하고 술을 마신 자에게 채찍형을 가하는 샤리아 형법이 세속법을 대신할 것이라고 공표해왔다.

이것은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고, 나이지리아 북부에서 기독교인과 무슬림 간의 잔인한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이런 일이 나라를 분리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일부 남부인들은 걱정하고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북부 나이지리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조용하고 온건하며 평화롭게 기독교인 이웃들과 더불어 공존하는 것을 발견한다. 카노시의 호텔들에서는 고급 맥주를 마실 수 있으며, 선정적인 의상을 한 여성이 코카콜라의 포스터에 등장하기도 한다.

여성들은 대개 머리에 스카프를 하지만 자리아 지역의 아흐메두 벨로 대학을 방문한 통신원의 경우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린 차도르를 입은 학생은 단 한명 만 발견했다.

이에 대해 이 대학의 정치학자인 사이두 하산 아다무는 더운 날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차도르를 입는 것은 불편하기 때문에 극히 적은 수의 여성만이 차도르를 착용한다고 말했고 그곳은 근본주의 사회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나이지리아가 샤리아(이슬람 법)를 강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1999년 북부의 잠파라 주(州) 정부가 샤리아 형법 체제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슬람법은 오래 전부터 무슬림 가정에 적용되어 왔으며 이것은 논쟁이 불가능한 법률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정부 당사자들은 중앙 정부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자리아의 민주발전센터의 교수인 아부바카르 사디끄는‘주지사가 샤리아를 도입함과 동시에 그는 유명해지며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가 된다’고 말했다.

무슬림이 대부분을 이루는 다른 모든 주의 주지사들은 선례를 따라야 할 의무감을 느끼지만 비무슬림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나이지리아의 법 시스템은 느리며 부패했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샤리아가 법정을 공정하게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4년이 되어가면서 무슬림들은 환상에서 깨어나고 있다.

사디끄씨에 의하면 샤리아를 받아들인 몇몇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사회 정의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적 장치를 자신의 힘에 더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도범이 처음으로 손을 잘린 지 얼마 되지 못하여 사람들은 오랜 기간동안 고질화된 고위층의 부정에도 아무런 처벌이 내려지지 않자 사람들은 불평하기 시작했다.

신체를 절단하는 형벌은 거의 멈춰졌고 그간 최소 네 명이 돌에 맞아 죽는 형에 처할 간음죄를 저질렀으나 어느 누구에게도 형이 집행되지 않았다. 아다무씨는 북 나이지리아인들의 최근 경험은 이슬람의 호전성을 경계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이슬람을 ‘그들의 정치적 게임의 한 부분’으로 만들었고 이것은 정부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는 작지만 성장하고 있는 소수그룹들에 대해 더욱 강경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종교에 대한 생각을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는 마을에서는 사라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급진적인 사람들이 한 일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고 이런 일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

그는 정치가들이 교묘하게 종교적인 분쟁을 부추긴다면 이 일을 도모하는 사람은 인간쓰레기와 같다고 말했다. 작년 카두나의 폭동이 있는 기간에 어떤 젊은이들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카프탄(중근동 사람들이 입는 소매와 기장이 긴 옷)이 아닌 티셔츠를 입고 있다는 이유로 거리의 블록을 사용해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이슬람은 서구에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아프리카 무슬림들은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라크를 공격한 미국의 전쟁에 대해 화가 많이 나 있다.

최근의 조사에서는 미국인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인 71%에서 38%로 떨어졌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인들은 반미 성향을 띤 아랍 방송국으로부터 많은 뉴스를 접하고 있다.

이렇듯 수단과 북부 나이지리아에 이슬람 국가를 강요하려는 시도는 대중의 지지 부족으로 점차 수그러들고 있다. 그런데 만일 극단주의자들이 아프리카에서 미치는 영향력이 그토록 약하다면 왜 많은 수의 알 카에다가 저질렀거나 미수에 그쳤던 잔혹한 사건들이 사하라 남쪽 지역에서 발생했는가?

그것은 아프리카 무슬림들이 테러리즘의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체포된 알 카에다의 멤버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아랍후손 중 국외 거주자이거나 시골지역 사람이다.

9․11 사태 이후 서방국가들은 경비를 강화하고 있으며 북부 아프리카 아랍 정부들은 자국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그 가운데 일부는 투옥시키며 그 밖의 사람들은 보안상태가 시골지역 보안만큼이나 허술한 남부지역으로 도피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예를 들어 항공 통제가 난장판인 앙골라에서는 많은 승객이 탄 제트기가 지난 5월에 실종된 일이 있었다. 아프리카 국경을 넘어 무기를 밀수하는 것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다.

케냐와 탄자니아 같이 자유롭고 쉬운 나라들에서는 표적이 될 서양 사람들이 많으나 그러한 위협에 대응해 적절하게 조치할 수 있는 지역경찰의 솜씨와 자원이 부족하다. 따라서 6월 말에 미국대사관이 임시로 문을 닫은 케냐의 나이로비는 현재상황이 매우 불안정하다.

선교적 과제

아프리카에는 세네갈에서 사헬을 거쳐 에티오피아까지 아프리카의 인도양 해안을 따라 이슬람교 -기독교 단층선이 형성되어 있다. 사하라 북부에 1억 6천만 명, 사하라 이남에 1억 5천 7백만 명의 무슬림이 있다. 이슬람교는 가나의 서부와 사헬 전체에서 전통 종교를 믿는 이들을 꾸준히 개종시키고 있다.

가장 최근에 무슬림 선교사의 노력은 아프리카 거의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오일 달러에 의한 교육과 원조사업, 보조금, 잘 배합된 추진력 등을 잘 사용한 결과 이슬람교는 아프리카 정치에서 일정 역할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그간 아프리카가 당면한 문제들은 테러리즘이 아닌 19개국에 있어 온 내전과 빈곤과 에이즈와 같은 질병과 자연재해, 인권유린 등의 총제적인 어려움이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전쟁은 아프리카 선교에 그리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많은 교회들과 세상의 관심이 아프리카에서 화재지역으로 옮겨졌으며 그들이 당하는 처절한 고통들이 교회와 세상으로부터 외면되었다.

무슬림 안에서 서구와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켜졌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극단주의자들로부터의 위험은 이슬람국 어느 곳이든 존재한다. 그리고 실제로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는 종교로 인한 분쟁도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 안에 알 카에다라는 테러 조직이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 교회가 아프리카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는 두려움과 경계심이 아닌 꾸준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아프리카의 종교: M- 무슬림 / E – 종족 전통 종교 / X- 전통 기독교 / O – 정교회 / C – 카톨릭 / A – 성공회 / I – 독립교단 / P – 개신교

기도제목

  1.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긴장이 계속되고 있는 수단과 북부 나이지리아, 이집트, 코트디부아르, 코모로를 위해 기도하자. 두 종교 사이에 깊어진 상처들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자.
  2. 아프리카의 비기독교인은 51.6%이며 무슬림이 전체 아프리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1.32%이다. 이곳의 전체 종족 수는 약 3,839개이며 그중 미전도 종족은 1,335여 종족이며, 많은 수가 이슬람권에 해당된다. 내전으로 인해 많은 수의 종족에 대한 조사가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현지의 교회가 더욱 견고하게 성장하여 남겨진 종족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도록 기도하자.
  3. 소수의 복음주의자들이 있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 모리타니, 모로코, 리비아, 튀니지, 코모로, 지부티, 니제르, 세네갈, 소말리아는 0.1%미만의 복음주의자들이 존재하는 무슬림 다수 국가이며, 알제리, 감비아, 기니, 기니비사우, 말리 같은 나라는 1% 미만의 기독교인이 존재한다. 이곳에 복음이 담대히 전해지고 교회가 개척되도록 기도하자.
    (출처 : The Economist, 세계기도정보, Worldvue, 파발마 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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