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2/3세계’선교운동

서구 선교에 주는 의미

현대선교2 (Current Mission Trends). 발행 : 1992년 7월 25일, 서울:GMF Press. 수록면 : 3-8.

이태웅

서론

1980년대 초에 이르러서도 ‘2/3세계’ 선교는 소수의 선교학자들과 선교지도자들 외에는 사실상 서구 선교 공동체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후 10년 남짓 지난 오늘날 선교 통계학자들은 전세계 개신교 선교세력의 35.6% 정도가 2/3세계 출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2000년까지 2/3세계 선교사의 비율은 전체 개신교 선교사의 55.5% 정도에까지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1Larry D. Pate, “Changing Balance in Global Mission” in IBMR. April, 1991. pp. 59-60. 이런 과정을 보면서 서구 선교가 2/3세계 선교운동의 결과로 일어나는 세계선교의 변화에 대해 준비되어 있는지 물어봄직 하다.

2/3세계 선교가 일으킨 변화들

이미 일어났거나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명백한 변화들은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도 세계선교는 그 성격이 보다 더 세계적으로 되었다.2Ibid. 2/3세계 선교가 성장의 초기단계에 있을 때 서구 선교는 그것을 무시하거나 간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2/3세계 선교를 과거와 같이 무시할 때 선교사업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두번째, 2/3세계 선교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가면서 과거보다 선교에 대한 낙관주의가 팽배해 있다. 그 증거는 “미전도 종족집단”과 “서기 2000년 운동” 등과 같은 선교운동 분야에 새로운 활력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두 운동은 공통점이 있다. 둘다 세계복음화, 개척 선교, 미전도 종족 선교를 강조하고 있다. 서구 선교지도자 중의 어떤 사람은, 서구 선교가 기존의 선교조직을 유지하는데 여념이 없지만, 2/3세계 선교는 광범위한 조직으로 생기는 혼란 없이 미전도 종족 선교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낙관적으로 될 다른 이유들도 있다. 한편으로 세계종교들의 재부흥과 대다수 접근제한 국가들에서 그 종교들이 정치 이데올로기로 사용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서구 선교의 노쇠화로 인해 세계선교는 보다 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한이 극심한 국가들에게도 입국 수단으로 자기 직업을 활용하는 2/3세계의 전문인 복음증거자들이 침투하고 있다. 전통적인 회교국가들과 함께 방글라데쉬,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 등이 창의적 접근지역의 예들이다.

인도, 나이제리아, 케냐, 미얀마(버어마) 등의 나라 안에서 자국인으로서 초문화 사역을 하는 소위 HM-2와 HM-3 유형의 선교사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들은 외국 선교사들처럼 국경을 넘는 어려움을 겪거나 연간 가정당 미화 40,000불을 쓰지 않아도 되며, 그렇다고 해서 외국에서 온 사역자들보다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자국 내 초문화 사역자들의 증가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낙관적인 전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최근의 추정 자료에 의하면, 인도에서만 해도 그런 사역자가 6,000명이나 있다고 한다.

서구 선교계에서 이 선교 모델의 실효성에 대해 의심한 적이 있었으나 이제 실질적인 이유 때문에 그런 기우는 말끔히 가셔졌다. 특별히 그 사람들은 외부인이 사역하지 못하는 지역에서 초문화 선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세번째, 선교방법론의 우선순위들이 바뀌었다. 서구적인 관점에서 쓴 교재에 국한되지 않고 자기 문화 상황 속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자유가 더 많이 주어졌다.

처음에 FM-1, FM-2, FM-3와 같은 전문용어들이 소개되었을 때(FM-1은 디아스포라 사역을 하는 사람을 말하며, FM-2와 FM-3는 각각 문화적으로 가깝거나 먼 지역에서의 초문화 사역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함), 어떤 사람들은 초문화 선교사역에 있어서 FM-1의 중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곤 했다.

혹은 최소한 FM-1이 일류가 아닌 이, 삼류의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2/3세계 선교계에서는 FM-1은 문화적으로 더 멀리 떨어져 있고 어려운 지역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한국선교사들은 중동에서 이 방법을 활용해왔다. 그들은 중앙아시아와 중국에서도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위의 두 지역에는 약 2백만 명의 한국인 디아스포라가 있다. 일단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다면, 그들 주변의 미전도 종족의 복음화를 위해 동원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전세계에 걸친 사업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교회들도 전세계로 디아스포라 선교사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4천만 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중국 본토와 대만을 떠나 살고 있다.

이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면 엄청난 선교적인 세력이 될 수 있다. 동양에서 서양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2/3세계 선교사들은 서구 세계를 복음화하기 위해 이 방법을 쓸 수 있다.

네번째, 세계선교는 더 이상 일방통행이 아니다. 선교 통계학자들은 서기 2000년까지 모든 그리스도인의 58%와 로마 카톨릭 신자의 70%가 2/3세계에 살 것이라고 예견한다.3Gerald H. Anderson, “American Prostents in Pursuit of Mission: 1886-1986” in IBMR. July, 1988, p. 114. 서구가 계속 세속주의와 현대주의의 공격을 받은 반면 2/3세계 교회는 지난 20년 동안 엄청나게 성장했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강한 곳이 신학 운동과 선교 운동의 중심지였다.4Harvie M. Conn, EMQ. April, 1986, p. 180. 이것은 1963년 멕시코시티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세계선교 및 전도위원회가 “육대륙에서의 선교”를 선언할 때 계산을 잘못한 점이다.51963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WCC의 CWME는 “6대륙에서의 선교”이라는 선언에서 2/3세계 교회는 그러한 도전에 대해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그들은 시간을 너무 앞서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극적으로 변하였다.

이제 2/3세계 교회는 준비가 되었다. 이제 선교가 두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은 은혜이다. 레슬리 뉴비긴은 이 점을 더할 나위 없이 잘 표현하였다. “…다른 문화권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의 증거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게 될 것이다.

우리의 선교과업을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자산은 아시아, 아프리카, 서인도 등의 문화 가운데서 양육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의 존재이다.”6Lesslie Newbigin, “Can the West be Converted?” in IBMR. January, 1987.

몇가지 경고

서구 선교가 계속해서 시대의 징조를 읽기를 거부하고, 성장하는 2/3세계 선교운동의 실체와 그로 인하여 야기되는 변화들을 무시한다면, 서구 선교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첫째로, 지난 20년 동안 서구와 2/3세계 선교운동 사이에 있어온 양분현상을 영속화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양분현상을 시정하려는 노력이 기울여져 왔다. 최근의 통계는 2,727명의 2/3세계 선교사들이 현지의 소속 실체로서 국제적인 선교단체를 선택하였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의 숫자는 전체 서구 선교사의 3%, 2/3세계 선교사의 5.6%에 불과하다.7Larry D. Pate, “The Changing Balance in Global Mission” in IBMR. April, 1991. p. 59. 그러나 문제는 현재 국제적인 선교단체에 속해 있는 2/3세계 선교사들의 숫자가 적다는 것이나, 구조적인 개혁을 하기 위해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못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서구가 우월한 위치에 있는 양분현상의 영속화이다. 이것은 진정한 상호의존적인 동반자적 노력이라는 것과는 반대의 결과를 낳는 것이다. 서구와 2/3세계 선교지도자들의 경험담은 이러한 양분현상의 결과가 결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

1991년 5월 9일-11일 위튼에서 열린 동반자선교자문회의에서 한국복음주의협의회(KEF)의 총무인 김명혁 박사는 이러한 감정을 잘 표현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전통적인 서구(선교)단체들은 아시아교회로부터 인력과 재정을 취하는 반면, 정책 결정권은 대부분 자기들끼리만 수행하기를 고집하고 있다.”

그 이유는 주로 서구 선교회들이 더 긴 역사, 더 풍부한 경험, 더 나은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선교라는 점에서만 본다면 그러한 서구 지배적인 관계는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8Myung Hyuk Kim, “Principles of Two-Thirds World Mission Partnership”. p. 27. 1991년 5월 9일-11일 위튼에서 열린 동반자 선교 자문회의에서 발표한 논문임. 괄호는 필자의 표시임.

두번째로, 세계의 신속한 복음화는 밑둥이 잘려나갈 것이다. 2/3세계 선교학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섭리 가운데 2/3세계 선교운동을 일으키셨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것은 큰 형님이 아우에게 바톤을 넘겨주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선교의 온전한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2/3세계교회로서는 서구선교가 복음을 전해준 데 대해서 어느 정도 감사하는 태도가 있어야 하겠지만, 빚을 갚는다기 보다는 구속역사의 한 부분이요, 한 덩어리로 이해하는 태도로 임해야 하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지상명령은 서구교회에 뿐만 아니라, 2/3세계교회에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명백한 사실은 선교에 있어서는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에 있어서도 종종 무시되었다. 우리는 무심코 서구교회 만이 지상명령의 유일한 합법적인 상속자라고 생각한다.9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김종일 박사에게 빚졌음. 그러나 필자는 하나님의 선교를 복음적인 의미에서 사용함.

그러한 잘못된 진리를 신봉하는 정도만큼 세계복음화에 있어서 “전교회”의 관점에서 노력하는데는 미흡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세계의 신속한 복음화는 계속해서 요원할 것이다.

세번째로, 지역주의가 계속해서 선교학을 지배할 것이다. 인간이 관련되는 모든 규율에는 어느 정도의 지역주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한 것이다. 심지어 복음 자체도 지역적인 문화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의 어떠한 종류의 표현도 불가피하게 문화적인 제한을 받는다. 선교학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전적으로 지역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분적이며 지역적인 진리를 우주적인 것으로 정당화하고 고착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그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할지라도, 하나나 다수의 문화에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신학에 있어서든 선교학에 있어서든 하나님의 다중의 진리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다중의 문화적인 표현을 취해야 할 것이다.10이러한 생각에 있어서는 Timothy Warner 박사와 Lamin Sanneh 교수에게 빚졌음.

네번째로, 선교사의 준비가 적절하게 되지 못할 것이다. 신학계는 세계의 경제계에 비교해볼 때 너무나 오랫동안 꾸물거려왔다. 세계는 신학계보다 더 효율적으로 “지구촌화”에 적응해왔다. 미국의 과학기술자들은 새로운 기술이라면, 그것이 동경에서 발명된 것이건 서울에서 된 것이건 열심히 배우려 해마지 않는다.

이 현상과는 대조적으로, 급속한 속도로 성장해가는 2/3세계 선교 운동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 선교사로서 준비를 끝낸다는 것은 혐오스런 것이다.

이처럼 준비되지 못한 독특한 부류의 서구 선교사들은 본국에서나 해외에서나 동일하게 “우리는 항상 이렇게 해왔다”는 켸켸묵은 소리로 일관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장기적으로 중요한 동반자적 노력을 황폐화시키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편…

2/3세계는 이미 선구 선교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이것은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 그것은 “의식화”의 과정을 통해 일어나고 있다. 대개의 2/3세계 선교교육과 신학교육은 서구적인 경향이 심하다. 그들은 서구의 선교학자들이 쓴 선교 교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서구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서구 선교에 대해 배운다.

둘째로, 그것은 2/3세계 선교학 교수들을 통해서 일어난다. 많은 선교학 교수들이 서구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서구적인 관점을 강의실에 가져오는 것이다.

셋째로, 2/3세계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의 상호작용을 통해 서구 선교를 알아 간다. 이 모든 일은, 2/3세계가 서구 선교를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2/3세계가 보다 더 실질적인 세계복음화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고, 더 넓고 나은 동반자적 협력 기회를 창출해낼 것이다.

서구 선교의 미약한 노력

서구 선교의 2/3세계 선교운동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전적으로 서구선교에 대한 탓으로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더 많은 책임이 2/3세계 사람들 자신에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증거들은 여태까지 서구의 노력이 미약했음을 보여준다.

첫번째 증거는 놀랍게도 서구, 2/3세계 할 것 없이 이 주제에 대해서 최소한 영어로 쓰여진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 증거는 세계선교와 전도에 대해 가르치는 뛰어난 신학교들의 교과과정을 보면 발견되는 것이다.

이러한 학교의 학생은 2/3세계 선교의 본질- 그 선교 신학, 전략, 지도력, 구조, 역사, 메시지, 방법론, 선교의 목표 등-은 고사하고, 세계 전체 개신교 선교세력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이 선교운동에 대한 분명한 그림도 가지지 못한 채 졸업할 수 있는 실정이다.11이러한 생각에 있어서는 Gerald H. Anderson에게 빚졌음. 1987년 1월호 IBMR의 114 면 참조.

결론

서양 속담에 이르듯이 “늦어서 못 고치는 일은 없다”. 서구 선교는 변화하는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도록 더욱 매진하여야 하며, 전체 신학 훈련에 뿐만 아니라, 특별히 선교에 있어서 “범세계적인” 관점을 가져오도록 해야 한다.

2/3세계 선교운동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추가하기 위해 선교 교과과정을 재편성하고, 더 많은 2/3세계 선교학 서적을 영어로 번역하고, 2/3세계 선교사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얻는 것 등이 세계를 보는 지평을 넓히고, 서반구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민감하게 되기 위해서 취해야할 조처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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