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촌교회는 진행중..

* 본 원고는 필자가 2012.11.19 <교회2.0>에서 발표했던 자료를 개정한 것이다.

현대선교 20 (Current Mission Trends): “선교적 교회 개척”. 발행 : 2017년 8월 1일, 서울:GMF Press. 수록면 : 71-85.

김태민
김태민 목사는 서울신학대학원 목회학과를 졸업하였고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예수촌교회의 창립멤버로 20년 동안 함께 했다. 현재는 예수촌교회에서 분가해 자급자치의 생활공동체를 준비하고 있다.

1. 신약교회인가? 로마교회인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시작하신 하나님 왕국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이 땅의 교회는 완전하지 않지만 분명히 이 땅에 세워진 하나님의 왕국이다. 이 왕국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교회는 그분의 몸이다. 따라서 몸인 교회는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집합적”으로 표현하도록 부르심 받았다.

다른 말로 하면, 교회의 선교라 함은 교회가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에 그분을 표현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를 ‘에클레시아‘(밖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로 표현한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방식에서 벗어나 온전히 하나님 왕국의 원리를 가지고 세워져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로마제국에 이르러 교회는 이방 종교의 관습과 예식, 그리고 로마제국의 통치 방식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왕국을 드러내야 할 교회가 로마제국의 정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교회는 이방 종교의 시스템을 거의 모든 부분에 적용함으로써 하나님 왕국 운동이었던 교회를 종교적 행위가 중심이 되는 제도적 교회로 변질시켰다.

성직제도의 차용, 예배 의식의 도입, 계급적 교회구조, 일요일 중심의 종교화, 교권의 권력화, 개인 중심의 영성적 추구, 현세 중심적 기복을 추구하는 영성, 건물 중심의 모임 구조, 특정 인물이나 장소, 물품, 상징 등의 신성화, 대형 교회화 등등.. 사람들은 교회가 이 땅에서 시작된 하나님 왕국으로 보기보다는 나중에 천국에 갈 수 있는 티켓을 만들어주는 기관으로 이해했다.

에클레시아적 삶의 방식으로 예수를 표현해야 할 교회가 가장 현세 적응적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자 교회의 본질은 심각하게 훼손되기 시작했다. 현대 교회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바로 로마제국에 적응하려던 교회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씀처럼, 본질은 본질에 합당한 틀을 요구하며 그러한 틀이야말로 본질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다. 주류 교회가 이처럼 이방 종교와 로마제국의 시스템을 받아들이자 이에 저항한 소수의 교회들이 있었다.

그들은 신약에 기록된 하나님 왕국의 복음과 교회의 원리를 교회 속에 구현하고자 했다. 주류교회들의 강력한 제재와 악의에 찬 왜곡, 그리고 물리적 핍박 등이 있었지만, 진리를 향한 이들의 고집은 역사의 면면에 수많은 피를 뿌리면서도 신약적 교회가 그 명맥을 이어오게 한 원동력이었다.

신약에 기록된 교회의 원리를 따라 살고자 했던 무리들은 마침내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러 진정한 자유를 얻는 듯했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의 교회관은 기존 로마교회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회의 주요제도와 시스템 역시 이름만 바뀌었을 뿐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루터는 만인 제사장설을 주장하면서도 “교회에서의 말씀 사역은 너무나도 중요하여 오로지 성직자만이 그 사역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기존의 사제 중심의 교회와 거의 다를 것이 없는 사고를 드러냈다. 그들의 개혁은 불완전한 개혁이 되었으며 개신교는 로마교회의 또 다른 아류에 불과했다.

2. 재세례파

그때,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에서 참혹한 핍박을 받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 자신은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그들을 제거하기 원하는 편에서는 그들을 ‘재세례파’라고 불렀다. 그 당시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이 운동은 기존의 종교개혁을 불완전한 개혁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성경에 절대 순종하는 급진적인 제자도를 주장했다.

당시 가톨릭과 개신교는 모두 국교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국가와 교회가 분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국교는 당연히 ‘유아세례’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그 나라(또는 제후국)가 곧 교회였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 태어나는 자는 당연히 국민이자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유아세례였다.

‘재세례파’는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교회는 국가와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믿음의 고백에 의한 세례(침례)를 실시했고, 제자도, 공동체, 그리고 비폭력을 주장했으며, 성도 위에 군림하는 사제직을 거부했다.

이러한 믿음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믿음의 고백에 의해 침례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가톨릭과 루터교회, 그리고 칼빈에 의한 개혁교회들은 긴장했고 마침내 핍박의 칼을 빼들었다. 그들은 온갖 중상모략으로 그들을 비방했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 불태웠다.

그들은 핍박을 피해 지하나 숲 속에서 한밤중에 모임을 가졌다. 로마제국이 로마 황제의 이름으로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 이제는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자행되었다.

재세례파 운동이 일어난 수십 년 동안 1만여 명의 사람들이 기존의 교회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들 대부분은 화형에 처해지거나 수장되었다. 이러한 잔혹한 핍박에 의해 그들 대부분은 유럽에서 살 수 없었고 러시아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도 역시 핍박을 받게 되자 그들은 북미와 남미 대륙으로 이주했고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대부분의 재세례파들은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았다. 현재 메노나이트교회, 후터라이트 공동체, 아미쉬 등이 재세례파의 후손들이다.

교회사에서 이들의 역사적 흔적은 극히 미미하거나 왜곡되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재세례파 운동을 핍박했던 기존의 교권에 의해 악의적으로 왜곡되거나 은폐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뮌스터시에서 일어났던 천년왕국 운동을 마치 재세례파의 짓인 양 왜곡함으로 인해 재세례파는 폭력적이고 이단적인 운동이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 재세례파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가 사랑과 비폭력 운동이었다. 그들 가운데 전해 내려오는 일화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종교 경찰에 쫓기던 재세례파 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강을 건너고 있었는데 그를 뒤쫓던 종교 경찰이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물에 빠지게 되었다. 재세례파 형제는 곧 뒤돌아 가서 종교 경찰을 강에서 꺼내 주었고 그는 다시 잡혀서 목숨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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