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도시, 세계: 세계적 도시화 시대의 교회의 도시 선교

*출처: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Vol. 33, No. 4, October 2009, pp. 177–82

현대선교 20 (Current Mission Trends): “선교적 교회 개척”. 발행 : 2017년 8월 1일, 서울:GMF Press. 수록면 : 119-133.

데일 어빈(Dale T. Irvin)
데일 어빈 (Dale T. Irvin) 박사는 미국 뉴욕에 있는 뉴욕 신학대학원 (New York Theological Seminary)의 총장이자 세계 기독교학 교수이다. 또한 어빈 박사는 스콧 선퀴스트 (Scott W. Sunquist) 박사와 함께 History of the World Christian Movement의 공저자이다.
번역: 이천
역자 이천 목사 (Rev. Chun Lee)는 캐나다에 있는 리젠트 신학대학원 (Regent College)에서 신학 (M.Div.)을 공부하였으며, 미국 선교연구단체 OMSC (Overseas Ministries Study Center)에서 연구년을 보냈다. 현재 한국선교연구원 (KRIM)에서 본부장 (Managing Director)으로 사역하고 있다.

내용 목차

오늘날의 글로벌화와 도시 문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두 가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는데, 첫째 오류는 이 용어가 이전에는 도시에서 지금과 같은 강렬한 국제적 교역과 이주의 시대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며, 둘째 오류는 이 용어가 도시들이 단일한 문화를 만든다는 암시를 주는 것이다. 도시는 언제나 사람과 물건과 징후들의 이동 (또는 흐름)에 의해 형성된다. 도시에는 부와 가난, 친숙함과 생소함, 고향과 타향이라는 두 개의 모순적인 극단이 공존한다. 도시는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또 그것이 세계로 전파되는 현장이다. 도시는 공간이자 사상인데, 그 사상은 아마도 문화일 것이다.
— 유엔 인간정주계획 (United Nations Human Settlements Programme)
세계 도시 상황 (The State of the World’s Cities), 2004/2005:
글로벌화와 도시 문화 (Globalization and Urban Culture)

우리는 거대한 세계적인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이것은 누구나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결과 세계의 (모든) 도시들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세계 인구의 과반수 이상은 이제 도시나 거대도시(megacity)에 살고 있다.1Philip Berryman의 책 Religion in the Megacity (Maryknoll, N.Y.: Orbis Books, 1992)를 참조하라.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의 도시들은 글로벌화와 관련된 경제, 정치, 문화적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된 변화를 겪어왔다.2Peter Taylor, Ben Derudder, Pieter Saey, Frank Witlox가 공동으로 편집한 책 Cities in Globalization: Practices, Policies, and Theories (London: Routledge, 2006)은 특별히 유럽과 북미의 도시들을 주목하였지만 글로벌화와 관련된 변화들 사이의 관련성을 잘 밝혀 냈다. Jane M. Jacobs의 책 Edge of Empire: Postcolonialism and the City (London: Routledge, 1996)는 식민시대 이후의 관점으로 도시라는 공간을 주목하여 신(新)제국주의의 방향으로 전개되는 글로벌화에 대한 논쟁을 드러나지 않게 확대시켰다.

도시의 중심은 더 이상 공간이 아니다. 현실과 초월이 실제로 동시에 가능한 가상 현실과 가상 거주 (virtual living)의 영향력이 가속화됨에 따라 도시는 탈(脫)중심적 (decentered)이며 초(超)중심적 (transcentered)이 되었다.3Peter H. Sedgwick가 편집한 책 God in the City: Essays and Reflections from the Archbishop’s Urban Theology Group (London: Mowbray, 1995)를 참조하라. 도시는 원래부터 다른 도시들과 연결하고, 네트워크를 만들고, 더 먼 지역으로 연결을 촉진하기를 원해 왔다. 거대 도시들과 세계적 도시들은 전에는 결코 실현하지 못했던 이러한 도시의 추구의 끝을 실현하고 있다.

글로벌화는, 역사적으로 근대에 형성된 교회와 선교의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이해 또는 인간 존재에 대한 기본적 다수의 조건을 변화시켰다. 소금물 (salt-water)을 건넌 사람만이 선교사라는 유명한 “소금물” 정의를 사용하여 키쓰 브릿스톤 (Keith Bridston)은 “여기”와 “저기”를 구분한 선교사에 대한 생각을 비판하였다.

이러한 소금물 정의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국가적 그리고 심지어 지리적 경계에 의한 정체성의 개념은 브릿스톤의 책이 처음 출간된 1965년 보다 세계적 도시들이 출현한 지금의 시대에 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4키쓰 브릿스톤 (Keith Bridston)의 저서“Mission, Myth, and Reality (New York: Friendship Press, 1965)의 33 페이지에서 브릿스톤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지금까지의 지리적 선구자 또는 앞으로의 모든 지리적 선구자는 교회의 선교 사역에서 중요하지 않아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소금물의 종교적 중요성이 시적 또는 신화적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있다고 한다면, 교회의 선교의 총체적 의미는 사라질 위험에 놓여 있게 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차라리 좋을 정도로 비뚤어져 있을 것이다. 7대양으로 상징되는 지리적 선구자는 기독교 선교가 무엇인가 라는 점만 나타낼 뿐이지만 폐기되지는 않았다. 바다를 건너는 여행이 결코 기독교 선교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처럼 소금물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지구 상에 있는 도시들은 정착지라기보다는 디아스포라 (diaspora)의 장소, 이동의 장소가 되고 있다. 거주지라기보다는 통로라는 것이다. 도시와 세계가 하나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선교와 목회에 주는 영향은 매우 크다.

기독교는 오랫동안 도시와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기독교가 태동한 후 첫 100년 동안 기독교는 주로 도시를 배경으로 한 현상이었다. 기독교는 팔레스타인에서부터 시작하여 도시를 거점으로 하는 교역로를 통해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는데, 북쪽과 서쪽으로는 지금의 유럽 지역, 동쪽으로는 아시아, 남쪽으로는 아프리카로 전파되었다

기독교는 전파된 모든 지역에서 새로운 도시 환경에 적응하였고, 권력의 변화를 재빠르게 받아들이는 기술자들과 교육을 받은 식자층의 관심을 받았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규모로서의 도시는 아니지만 당시의 도시들은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중심지로 규정되었던 장소였다.

또한 도시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통행로이었으며, 문화와 문명의 상업적, 정치적 연결 장소를 따라 이어진 마디였다. 도시는 단순히 특정한 물리적 또는 지리적 지형이었던 적이 없었으며,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하나의 존재 방식이었다.

“도시는 단순히 거주하고, 물건을 사고, 돌아 다니고, 아이들이 뛰노는 장소가 아니다”라고 리차드 선넷트 (Richard Sunnett)는 말했다. “도시는 한 개인이 자신의 윤리를 어떻게 습득할지, 정의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이야기하고 어떻게 배울지에 영향을 주는 장소이며,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인간은 인간이 되어 간다.5”리차드 선넷트 (Richard Sennett) “The Civitas of Seeing,” Place 5, no. 4 (1989)는 보 그뢴룬드 (Bo Grönlun)의 “The Civitas of Seeing and the Design of Cities—on the Urbanism of Richard Sennett,”Urban Winds http://hjem.get2net.dk/gronlund/Sennett_ny_tekst_97kort.html에 인용되었다.라틴어 urbs 는 실제의 도시를 의미하는 데 반해 civis 라는 단어는 특정 특권을 향유하는 이들의 삶의 방식을 말하였는데, 나중에 되어서야 대안적 의미인 도시로 그 뜻이 확대되었다.

아마도 기독교 운동은 항상 도시와 특정한 친근감을 형성하여 왔는데,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를 최종적으로 인간으로 만드는 것들 중 특정 부분이 도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는 복잡한 다면적 실체이며 극단을 포용할 수 있고, 무엇인가를 해체할 만큼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는 인간과 같다. 그리고 도시는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하는 과정이다. 앙리 르페브르 (Henri Lefebvre)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것이 명료하다. 도시의 공간은 투명하다.

도시가 정처 없이 흘러가더라도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모든 것이 ‘순수한’ 형태와 관련이 있고 모든 것이 그 형태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르페브르는 “도시는 또한 신비하며 불가사의하다. 부와 경찰과 같이 눈에 거슬리는 가시적인 권력 옆에서 음모가 계획되고 보이지 않고 가리워진 곳에서는 숨겨진 권력이 술수를 획책한다”라고 이어간다.6Henri Lefebvre, The Urban Revolution, trans. Robert Bononno (Minneapolis: Univ. of Minnesota Press, 2003; French orig., 1970), p. 120.

신학적으로 교회와 달리 도시는 죄인과 성도 모두를 위한 공간이며, 다가올 하나님의 통치와 그 통치에 반대하는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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