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의 날개를 찾는 난민, 그들을 품다

Seeking Refuge, Embracing Refugees

현대선교 22 (Current Mission Trends): “난민 선교”. 발행 : 2019년 5월 1일, 서울:GMF Press. 수록면 : 79-103.

박준범
박준범 선교사는 조선대학교 외과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외과 전문의이다. 영국 Redcliff College에서 PIM(Professional in Missions)과 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M.A. in Global Leadership)을 공부하였다. 예멘에서 선교사로 사역 (2001-2012)을 하였고 인터서브코리아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선교멘토링 단체 엠브릿지(M.Bridge)와 난민 사역의 <예멘친구들을 위한 사마리안들>의 대표를 맡고 있다.

2018년 5월 3일 제주신보 1면에 “중동 출신 예멘인 78명 제주도에 왜 왔나?”라는 보도로 시작되었다. 예멘 난민 이야기이다. 이 난민신청자 549명은 자국에서 8,349km 떨어진 극동아시아의 끝자락에 있는 한국의 섬 제주 땅에 어떻게 들어온 것일까? 이들의 진입에 관해 한국 사회에서는 난민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뜨겁게 일어났다. 난민에 대한 찬반 집회들은 물론 소셜미디어(SNS)에서도 개인들의 수많은 의견들이 분출되었다. 난민을 반대하고 배척하는 목소리들이 성행했다. 난민 이슈는 교계와 선교계에도 도전을 가져다주고 있다. 세계 난민 문제에 대해 그간 표면적이었던 우리가 난민 주제에 대해 더 깊은 연구와 이해를 해 가도록 만들고 있다.

이번 예멘 난민의 진입은 그 규모 면에서 독일과 프랑스 등 서유럽과 미국과 캐나다의 북미 국가들이 수용하는 난민 규모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혹자가 말한, ‘바닷물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진 것 같다’는 표현도 있다. 이는 매년 7만명의 난민들이 진입해 정착하는 미국에 비하면 0.5%정도이고, 독일의2017년 난민 유입 수 186,640명 에 비교해도 0.2%에 해당되는 규모이다. 2017년 한국의 난민신청자(9,942명)의 3.5%에 해당하는 예멘 난민들의 한국 도착은 국제적인 난민 시대 가운데 특정한 한 시기에 집단적으로 진입해서 호스트 국가(host country) 한국에 긴장을 가져다주었다. 더욱이 아랍 국가 출신의 난민들에 대한 경험이 적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는 무슬림 배경의 난민들의 집단적 진입에 대해 더 많은 우려를 나타냈다.

필자는 이 글에서 난민에 대한 포괄적인 성경적 개념과 이주 신학의 성경적 관점의 고찰과 난민 이해를 돕는 주요한 선교 실천적인 과제들을 다룰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가 경험한 제주 난민 캠프 사마리안하우스(The Samaritan House)를 사역의 경험적 모델(experiential model)로 소개하고, 적용으로서 난민 사역으로의 바람직한 접근적 태도를 제시하고자 한다. 본 글에서 저자는 이주(migration) 혹은 이주자(migrants) 그리고 난민(refugee)의 개념을 때로는 혼용하여 언급하거나 때로는 구분하여 다루었다. 난민의 이동은 넓은 의미에서 이주(migration)의 한 부분이면서 일반적인 이주와는 또다른 특수성이 있다. 이 글에서 이 부분을 이주신학(the theology of migration)안에서 고찰하였다. 선교적 실제와 대안 부분에서는 난민이라는 좁은 의미의 난민 이주자의 측면에서 탐색해 갈 것이다.

이주신학을 향하여

난민 연구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포괄적으로 가져야 할 기초적인 이해는 성경적인 이주신학(the theology of migration)의 핵심에 관한 것이다. 난민(難民, refugee) 또는 망명자(亡命者)는 박해, 전쟁, 테러, 극도의 빈곤, 기근, 자연재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망명한 사람을 일컫지만 이주신학(migration theology)은 난민을 포함해 다양한 종류의 인간의 이동과 이주의 현상을 함께 포괄하여 다룬다. 이주에 대한 신학적 탐색이 그간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선교학자 앤드류 월스(Andrew F Walls)는 그의 책 Crossing Cultural Frontiers에서 “이주신학을 향하여(Toward a Theology of Migration)”라는 주제에서 이주에 대해 적절한 신학적 해석을 제공하였다. 월스는 인간의 이주는 성경적 관점에서 두 가지로 구별된다고 해석했다.

먼저, 그 하나는 아담적 이주(Adamic migration)이다. 이는 인류 역사의 시초에서 아담이 에덴으로부터의 강제 이주되는 것으로 대표되는 비자발적 이주(involuntary migration) 혹은 피난적 이주(punitive migration)이다. 다른 하나는 아브라함적 이주(Abrahamic Migration)로 대표되는 것으로, 이는 자발적(Voluntary) 혹은 희망적 이주(hope driven migration)인 것이다. 이 두 경우 모두 하나님의 심판과 긍휼안에서 하나님의 신적 권위에서의 행동하심(divine authority acting in judgement and mercy) 으로서 매우 복합적인 것이다. 잘 드러나듯이, 비자발적이며 피난적인 이주는 강제성을 지니고 징벌적이며 많은 경우 배척과 죄의 산물이며 신적 심판의 표징을 담고 있기도 하다. 전쟁이나 기근, 재해로 발생되었던 시리아, 예멘, 이라크, 보스니아, 남수단, 콩고 등에서 일어난 난민 발생은 난민들이 원치 않게 자국을 피해 떠나 나와야 하는 비자발적이고 강제적 피난이고 이주이다. 이런 경우는 전쟁과 내전, 정치적 핍박, 다양한 폭력적 상황들로 기인하는 사회와 국가에 발생하는 파괴들로 강제적이고 비자발적 이주가 일어난다.

이에 반해, 자발적 이주는 많은 종류의 긍정적 요소를 지닌 선택의 이주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다른 국가로의 이주(경제 이민), 노동 일자리를 위한 노동자들의 이주(노동 이주), 더 나은 교육을 받기 위한 유학생들의 이주(교육 이주) 등은 자발적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내제하고 있는 이주이다. 선교사들의 해외 이주도 선한 뜻을 위한 자발적 이주이다. 이 이주는 하나님의 예언이나 축복의 약속에 의해 촉발되기도 하며 대가가 수반되고 현재의 자기 위치에서의 충족함과 안정을 희생하며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이주 신학적인 관점의 이해를 기초하여 난민 연구를 해 갈 때 난민 현상을 이해함에 객관성을 갖추고 합당한 참여적 방향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글은 비자발적인 이주인 난민(refugee)에 초점을 맞추어 논지를 전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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