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선교적 읽기

이 글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간단히 요약한 것이다(A Missional Reading of the Fourth Gospel, OCMS, 2019).

현대선교 24 (Current Mission Trends): “선교적 성경 읽기”. 발행 : 2020년 12월 20일, 서울:GMF Press. 수록면 : 119-142.

권성찬
GBT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역하고 GBT 대표와 위클리프 아시아-태평양 대표를 역임하였으며 영국 OCMS에서 ‘요한복음 선교적 읽기’로 학위(Ph. D.)를 받고 현재 GMF 대표로 섬기고 있다. 선교의 자신학화에 관심을 갖고 자신학화 포럼 위원으로도 섬기고 있다.

1부 서론과 몇 가지 요소들

1. 들어가면서

성경과 선교의 관계를 생각할 때 두 가지 관점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선교의 성경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의 선교적 관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선교의 성경적 관점이다. 바른 선교를 하기 위해 선교의 성경적인 기초 혹은 성경적인 관점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때 선교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성경을 보는 틀이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선교를 ‘다른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 성경에서 그와 관련된 구절들을 찾아 그런 정의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다. 성경이 독자에게 선교가 무엇인지 말하도록 하기보다는 성경에서 독자가 정의하는 혹은 원하는 선교를 찾으려고 하게 된다.

이것을 ‘증거본문 찾기’라고 부르는데 나름의 유익이 있고 그렇게 정의한 선교가 통하는 환경과 시대에는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그렇게 정의한 선교가 잘 맞지 않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예를 들어 우리 주위에 와 있는 여러 나라 사람들) 새롭게 정의된 선교의 개념으로 다시 성경을 보면서 또 다른 ‘증거 본문’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런 반복적 실수를 자각하게 되면서 스스로 정의한 선교를 성경에서 찾으려 하기보다는 성경을 더욱 진실하게 읽고 그 성경이 가르치는 선교가 무엇인지를 파악해 보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는데 이를 ‘성경의 선교적 읽기’라고 부른다. 여기서 ‘선교적 읽기’라고 부르기 때문에 다소 오해가 될 수 있는데 사실 ‘바르게 성경 읽기’ 혹은 ‘진실하게 성경 읽기’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그럼 바르고 진실하게 읽는 것을 왜 ‘선교적 읽기’라고 부르는가? 그 이유는 성경이 그저 백과사전과 같은 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그 본래 창조의 목적대로 회복하기 위해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하나의 방향을 가지고 함께 역사하심을 보여주는 선교적 계시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선교적 계시로서의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선교적 관점을 가지고 읽어야 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읽기 자체가 어떤 틀을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겠지만 파헤쳐 찾기 보다는 조감의 시각으로 읽으면서 본문이 그 조감의 높이를 계속 교정하게 하고 그 조정된 조감으로 다시 본문을 보는 쌍방향, 즉 본문과 관점의 계속적인 교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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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보컴, 리처드. 『요한복음 새롭게 보기』. 문우일 역.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6.

Okure, Teresa. The Johannine Approach to Mission: A Contextual Study of John 4:1-42, Tübingen: Mohr Siebeck, 1988.

다시 밝히지만 이 글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간단히 요약한 것이다 (각주 1번 참조). 따라서 논문과 관련된 참고 문헌은 따로 표시하지 않았고 이 글에 직접 인용한 것에 대한 두 권의 참고 문헌만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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