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 연구: 러시아 공화국

현대선교3 (Current Mission Trends). 발행 : 1993년 3월 1일, 서울:GMF Press. 수록면 : 80-91.

신성주
예장고신선교부, 고신대/고신대원 졸

I. 머리말

소련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Mihail Gor_bachev)가 우리에게 준 최대의 선물은 ‘한-소 수교’와 ‘종교의 자유선포’일 것이다.

벌써 3년째로 집어든 지금, 미국과 구라파, 한국 등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 사업가, 정치가들과 함께 수많은 종교단체-선교단체까지 합세하여 복잡하고 분주한 나라로 변해가고 있다. 예년에 비해 더웠던 지난 여름은 밀려온 자본주의의 열병이 기상도를 변화 시키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

‘붉은광장’의 한복판에 서서 크레믈린궁을 마주보면 광장에 들어찬 ‘붉은군대’와 ‘붉은인민’을 향해 손을 혼들고 통치하던 지나간 시대의 독재자들의 얼굴들이 스쳐지나가고, 그들로 인해 핍박받고 죽어간 수많은 생명들과 피해를 입은 자유국가들, 그 중에 내 조국 대한을 생각해 볼 때, 복음을 들고 여기에 서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사무치는 일인지 이루 표현할 길이 없어진다.

눈을 돌려 오른쪽을 보면, 붉은 벽돌의 웅장한 역사박물관이 보이지만 굳게 잠긴 문은, 중단된 이 나라의 역사 발전을 단면으로 느끼게 해준다. 다시 눈을 왼쪽으로 돌려보면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 바실리 성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역사 이래로 독재자의 유물은 건축물인데, 이것 또한 16세기 ‘이반뇌제(Iban the Terrible)의’ 유산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교회가 전시관이 되어서 관광자원으로 전락해 있는 것을 볼 때, 역시 ‘하나님 나라 운동’은 큰 건물을 짓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를 삼아 튼튼한 신앙 고백위에 바르게 세워 그 믿음이 세세토록 전수되도록 하는 것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핵무기와 인공위성 그리고 과학자가 가장 많았던 이 나라가 15개 공화국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독립국가연합이란 이름으로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고 있지만, 실업자와 인플레만 증가되고, 840억불의 외채를 진 나라로 전락한 러시아는 일어서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하지만 74년간 황폐될대로 황폐된 이 나라 백성들의 정신 세계는 자신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뭔가 뜻있게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도무지 할 수 없는 존재로, 밤 사이에 이웃집 자동차 바퀴며 백미러며 휘발유까지 뽑아내가는, 윤리-도덕과 양심이 실종된 사회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외국 물건과 외국인을 무조건 선호하고 부러워하는 이들에게는 선교사들의 일들도 역시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 나라의 역사를 들추어 보면 이 추운 지방에서 한번도 제대로 평화와 번영을 누려 보지 못한 기구한 나라인 것을 알게된다. 그래서 이들의 거칠고 세찬 성격 속에는 동시에 우울하고 패배주의적인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이들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 접근하면 러시아 사람을 사귀고 복음으로 이끄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II. 러시아 공화국(The Federation of Russia)

러시아는 미국의 2배가 되는 커다란 영토이며, ‘16개 자치 공화국(지도1 참조)’과 ‘5개 자치주’, ‘10개 자치관구’ 그리고 ‘6개 지방(krai)’과 ‘49개 주(oblast)’로 구성되어 있다.

【지도1】러시아 내의 16개 자치공화국(민족단위로 구성)

구소련 연방 15개국의 하나로서 핵심 역할을 해 왔으며, 소련 붕괴 후 소련의 세계적, 법적 지위를 그대로 이어 받았으며, ’91년 5월 21일 보리스 옐친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공산당 활동을 중지 시키고 자본주의를 도입하여 시장 경제로 개혁을 추진해 가고 있으나, 정적들의 공격과 국민들의 낮은 민주의식으로 인해 성공을 내다보기엔 어려움이 많다.

1. 구성과 민족문제

원래 러시아는 동슬라브족(Easte rn Slavian)의 하나이다.(우크라이나인, 백러시아인, 유고슬라비아인, 슬로바키아인…)

그러나 시베리아와 극동의 소수 민족들, 중앙아시아의 제 민족들, 혹해 및 카스피해 지역의 민족들, 또한 240년간의 몽고족의 점령 등으로 많이 혼합되어졌기 때문에 오늘날은 ‘‘러시안’’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러시아닌’’-러시아 국적을 가진 모든 사람-이라고 불리워지길 좋아한다. 그래서 ‘‘당신은 러시안 입니까?’라고 물으면 비슬라브계 사람들은 상당히 당황하므로 조심을 해야 한다.

그들 중 이슬람(Islam)을 신봉하는 ‘따따르민족(터어키계)’은 독립을 계속 요구하고 있으며, 가장 큰 자치 공화국이다. 극동에는 ‘유대인 자치구’도 있으며, 최근엔 극동에 ‘고려인 자치구’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나 거의 실현 불가능 하다. 과거 스탈린의 민족융합정책으로 여러 민족들을 강제 이주시켜 전국토에 섞어 놓음으로 인해 하나의 민족 모자이크를 이루었다.

2. 기원과 역사

러시아는 9세기 초 ‘키예프 루시(Kiev Rusi)’에서 기원한다. 현 우쿠라이나 공화국의 수도 ‘키예프’ 근처에 ‘러시’라는 작은 강을 끼고 소부락이 발달했는데 이 촌락 공동체는 ‘키예프 공국’으로 발전을 하며, 이웃을 점령하여 ‘대공국’으로 군림하면서 키예프는 ‘루시 도시들의 어머니’로 불리우게 되었다.

그런데 1147년 ‘수즈달리 공국’의 ‘유리들고투끼’가 한 강변의 아름다운 마을 ‘꾸츠꼬보’를 점령하여 ‘모스끄바’라고 이름을 지었다. 지금도 모스크바 중심가 트베르스까야 거리에는 그의 말탄 동상이 우뚝 세워져 있다.

1206년 몽고의 ‘테무진’은 동시베리아와 중국 및 중앙아시아를 점령하고 러시아의 여러 공국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징기스칸의 손자 ‘바투’는 몽고화된 ‘따따르족’을 이끌고 1240년 키예프와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1480년까지 240년간 이들을 무참히 짓밟고 노른자를 빼내 갔다. 몽고-따따르족에 대항하는 모든 공국들은 힘을 잃게 되고, 이때 모스크바의 ‘이반 3세’는 루찌(Ruci)를 러시아라고 불렀다.

1547년 1월 17세의 ‘이반 4세’는 크레물린 내의 우스벤스끼 성당에서 최초로 ‘짜르'(Tsar-Caesar에서 온 말), 즉 ‘왕’으로 즉위 하였으며, 가장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이룩하였는데, 나찌의 게쉬타포와 같은 친위군대 ‘오쁘리츠니나’를 만들어 공포정치를 하였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뇌제(The Terrible)’라고 불렀다.

1696년 – 1725년 사이에 ‘피터 대제’는 러시아 근대화의 대혁명을 시도했으며, 유럽 진출을 위해 발트해의 Neva강을 메워 ‘뻬째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라는 신도시를 건설하였고, ‘빼뜨로파블롭스크’ 요새를 지어서 해군력을 강화하고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옮겨왔다.

그러나 1917년 레닌의 볼셰비키 공산 혁명으로 봉건 짜르 국가는 붕괴되고, ‘비극의 74년’ 공산주의 역사가 시작되고 말았다. 그리고 ‘‘러시아 제국에서 제1의 지배적 신앙은 정교회이다.”라는 짜르시대의 법도 철폐되었다.

III. 러시아 역사의 굴절

이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성장과 발전에 악영향을 끼친 두번의 큰 사건이 있었다. ·

하나는, ‘몽고의 침입’으로 인해 240년간 황폐화 되어, 유럽에서는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산업사회로 옮겨갈 때, 러시아에서는 몽고가 몰려간 후 봉건제도가 오히려 강화 되어가고 있었으므로 산업화로의 이동이 늦어졌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은, 이 나라의 역사와 전통과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공산혁명’이다.

즉 러시아는 몽고 따따르족의 장기간의 압제로 정치와 사회 경제의 낙후를 가져왔고, 공산화로 인하여 과학과 군사대국은 되었으나 경제실패와 인간성 상실, 가정파괴 등 크나큰 과오를 초래했다. 일련의 지식인들은 지금의 새로운 러시아를 1917년 혁명전의 러시아와 직접 연결시키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이제, 공산-사회주의에 물들었던 이 나라가 자본주의의 응급 치료를 받으면서 부활을 토로하고 있지만,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공산주의의 실패로 이념의 좌절을 경험한 이 나라는 밀려 들어오는 희국의 좋은 상품과 달러화의 위력 앞에서 종이 조각 같은 루불화는 맥을 추지 못하므로 또 다시 패배를 맛보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을 깊이 이해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선포할 선교사가 절실히 필요하다.

IV. 러시아 정교회(The Russian Orthodox Church)

1988년에는 ‘러시아 세례 1000주년제’가 국가적 행사로 있었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완화된 종교 정책으로 인해 정교회는 이 행사를 성대히 치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로 정교회는, 빼앗기고 허물어졌던 성당들을 되돌려 받기 시작하여 보수-개축하며 속속 문을 열고 있다.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는 정교회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으며, 러시아 정교회가 많은 사람들의 의식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AD 988년 ‘키예프’의 대공 ‘볼라디미르’가 비잔틴으로부터 동방 정교를 받아온 후 세례를 받고,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도록 했으며, 이것이 이미 1000년의 역사 속에 러시아인들의 문화와 삶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봉건 러시아는 모든 농민, 소작인을 ‘끄레스찌아닌’(세례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오늘날까지도 부르고 있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러시아의 수도 ‘키예프’에 두 사제(키릴, 미포디)를 파송, 언어를 만들어 주고(고대슬라브어) 성경을 번역했다.

그 후 러시아 정교회는 988년-1449년까지 콘스탄티노플 동방정교의 총주교 산하에서 하나의 부주교 관구로 있었으며, 1598년 Job이 총주교로 선출되면서 러시아 교회는 콘스탄티노플과 같은 서열에 놓이게 되었다.

‘총주교’는 짜르’와 가장 가까운 존재로서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지만, 1713년 [피터대제]의 대개혁의 일환으로 ‘총주교제’를 폐지하여 교회를 ‘종부원(The holy governing synod)의’ 감독하에 두어서 지위를 낮추고, 자신이 ‘황제’로 즉위하여 스스로를 절대자로 선포했다.

그 후 근 200년간 한번도 ‘교회회의’가 열리지 못했으나, 1917년 재정 러시아가 붕괴된 후 그해 11월 5일 다시 열려 ‘총주교’를 선출하였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공산하에서 큰 시련을 겪게된다. 그러나 천년의 역사 속에서 정교회는 서민들과 농민들의 삶에 큰 정신적 지주로서 가정마다 ‘이꼰(Ikon-성화)’을 신주처럼 모셔놓고 출입시에 절을 하며 성호를 그린다.

지금에 와서도 지식인들은 단 하나의 내놓을만한 러시아의 문화 유산으로써 정교회 문화를 자랑하며 밀려들어오는 외국의 종교들과-개신교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V. 공산치하의 종교상황

이때는 그야말로 처참한 수난의 역사이다. 종교를 아편으로 치부한 레닌의 무신론 정권은 1918년 1월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관한 법률”을 발표하여, 교회를 국가에 종속시키고, 법인체의 권리를 박탈, 소유재산을 국유화 하였고 수많은 성직자들을 숙청하고, ‘리센찌(박탈된 자들)’라 하여 투표권을 박탈하고, 낮은 배급표를 주었으며, 자녀들의 고등교육 기회를 주지 않고, 교회의 시간제 피고용인으로 전락시켰다.

그 이후 소련에는 여러번의 크나 큰 수난기가 되풀이되었다. 도표(1)에서 보는대로 1),3),5)의 시기는 교회가 크나 큰 어려움에 처한 때이며 2),4)의 시기에는 다소 종교의 부활이 있었다. 특히 4)시절에는 각 종교단체의 헌금으로 1개 ‘탱크부대’가 편성되기도 하였다.

(도표1)

그러한 가운데서 소련의 종교는 그루지아교회, 아르메니아교회, 우크라이나의 동방카톨릭교회, 리투아니아의 카톨릭교회,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의 독일계 루터계교회들이 민족주의에 기초하여 많은 압박 가운데 명맥을 유지해 왔으며, 그런 중에도 침례교는 우크라이나, 우랄, 시베리아 등의 공업지대와 카프카즈, 중앙아시아의 도시 등 정교회 세력이 취약한 곳에서 러시안을 중심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VI. 러시아의 개신교

현재 러시아의 개신교회는 거의 침례교회의 영향 아래 있으며(1500여개) 오순절 교회도 상당수(전국 600여개)에 이른다. 독일계의 루터교회와 어드벤티스트파(재림론자)도 산재해 있다. 침례교회는 대부분이 침례교 연맹 산하에 있으나, 복음주의 침례교를 표방하는 교단도 있다. 이들은 과거 침례교 연맹이 KGB(비밀경찰)와 대화하며 지내온 것을 반대한 교회들이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가 선포된 이후 자원하는 많은 전도자들에 의해 침례교라고 부르지 않는 순수한 복음주의 교회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이들은 열심있는 가정교회의 지도자들로서 자력 전파로 교회를 많이 개척하고 있다. 특히, 빌리 그래햄 전도집회(부흥 92) 이후 더욱 힘을 얻어 전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가정교회들이 많이 있다.

VII. 러시아 선교실태

74년간 종교적 억압속에 묶여있던 러시아는 그 족쇄가 풀리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새로이 종교적 욕구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편승하여 미국, 유럽, 한국 등지에서 많은 선교사, 단체, 교회들에 의한 선교가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선교지가 갑자기 열린탓인지, 미처 연구와 준비가 부족한 탓인지, 모두가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온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모든 교회가 아직 언어의 장벽을 그대로 둔채 통역을 통한 주일예배와 대행집회 중심의 사역을 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출신의 미국 목사들에 의한 활동이 기대된다.

‘빌리 그레함 전도단’에서는 92년 한해 동안만 해도 수십번의 집회를 모스크바와 다른 도시들에서 가졌으며, 92년 10월 22일-25일에 있었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의 전도 집회 이후 토착교회가 큰 힘을 얻었고, 당시에 회개한 수천명의 새신자들을 중심으로 지역마다 작은 ‘전도소’들이 생겨났으나 지도자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흩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의 선교단체 ‘동방에 빛을(Light in the East)’에서는 모스코바, 키예프, 알마아타, 노보시비르크 등지에 지부를 두고 성경 보급과 ‘문서선교’를 통해 크나 큰 역할을 하고 있고 현지인 사역자들을 통한 교회개척 사역에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교회의 러시아 선교는 2년이라는 짧은 역사 때문인지, ‘고려인 목회’와 ‘러시아 선교’가 구분이 되어 있지 않고, 간혹 나타나는 영웅주의적 열심과 타문화 사역에 대한 준비와 이해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선교에 헌신된 젊은 사역자들이 속속 들어와 언어훈련에 임하는 것을 볼 때 러시아 선교의 미래가 밝을 것을 기대해본다.

VIlI. 러시아선교의 문제점과 전망

1. 문제점

74년간 세계를 긴장시켜온 공산주의가 물러가고 무방비 상태로 열려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는 우리들에게 무한한 선교적 기회와 사명을 부여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고전 16:8-9에서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라고 말하고 있다. NIV를 직역하면 효과적인 사역을 위한 큰 문이 열렸기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에 오순절까지 오래 머물러 복음을 전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에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선교의 문을 활짝 여셨다. 우리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러시아 복음화 운동을 펼쳐야 하겠다. 현장에서 보는대로 한국교회는 무한한 선교적 역량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경험과 진지한 연구의 부족으로 많은 이적, 물적 낭비를 가져오고 있으므로 선교의 전략적 접근이 시급한 현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선교의 구체적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개교회 중심의 선교’라고 말할 수 있겠다.

개교회가 직접 파송, 관리, 지원하는 경우, 개교회의 입장과 이름 때문에 다분히 자본주의적인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여 교회를 ‘즉시 설립’하고 ‘운영’하므로써 자칫 잘못하면 교회내에 금전에 의한 주종관계(교회 식민지라 부르기도 한다.)가 형성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개교회는 ‘교단선교부’나 믿을 수 있는 ‘초교파 선교단체’와 협력하여 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선교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또한 현지어 훈련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므로 생기는 부작용도 크다.

현지인들에게 속는 경우는 제외를 하더라도, 통역을 통한 공식 예배 외에는 성도들과 교제하거나 접촉할 수 없으므로 선교사는 항상 먼거리에 있으며, 성도들은 가끔 사진 찍히는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지에서의 값싼 인건비와 본국에서 아낌없이 지원하는 선교비로 인하여 생기는 문제도 심각하다. 물론, 아낌없이 바치는 성도들의 헌금은 귀한 것이며 이것으로 인하여 그들은 축복을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음악 대학생들을 월급을 주고 고용하여 수십명의 찬양단을 조직해 자기 교회의 성가대인 것같이 미국과 한국을 다니며 공연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선교비로 도리어 선교를 망치는 일이 생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중요한 사실은, ’고려인 목회’와 ‘러시아 선교’를 혼동하는 문제이다.

이제는 중앙아시아의 몇몇 소도시나 고려인들의 집단 농장을 제외하고는 고려인 목회를 목적으로 하는 선교사 파송은 당장 중지되어야 한다. 또 고려인 통역자를 고용하여 곧바로 교회를 설립하려는 선교도 더 이상 불가능함을 밝히고 싶다.

모스크바의 몇몇 교회는 등록절차를 마치고, 예배처소까지 마련해 놓고 통역자를 구하지 못해 다른 교회 통역자를 빌리려다 주일을 계속 놓치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에는 1억 5천만의 선교 대상자와 130여 민족 그룹이 있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뜻을 품고 기도하는 젊은 선교사들이 많이 파송되어야 할 때이다.

2. 전망

선교지 러시아는 개척되어야 할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선교지이다. 또한 러시아를 다른 10개 공화국과 함께 ‘독립국가연합(CIS)’으로 묶어서 이해하기엔 너무나 역사와 문화가 다르고 민족 또한 복잡하다. 그들은 74년의 공산주의 역사와 그 영향외에는 공통점이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특히 선교지로서의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는 속히 구분되어져야 한다. 러시아의 경우 크게 몇 영역에서의 사역이 시급하다고 본다.

첫째는, 도시교회 개척사역이다(Urban church planting mission). 러시아의 도시화율은 74%로 상당히 높다. 사도 바울이 그러했듯이 러시아 내의 16개 자치공화국(도표2)의 수도를 복음화의 전진기지로 삼아, 지방으로 확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도시에 모든 ‘인텔리겐챠(지식인)’와 엘리트들이 모여있다.

둘째는, 캠퍼스 사역이다(Campus Evangelization). 모스크바나 성피터스버그, 노보슬비르스크 등의 대도시에는 수많은 대학이 있다.

모스크바만해도 72개의 크고 작은 대학에서 130여 민족의 우수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15개 인접 공화국들에서 온 학생들과 ‘제3세계'(아프리카, 중동의 아랍국, 서남아시아, 쿠바, 베트남, 몽고, 중국 등)에서 온 유학생들이 기숙사에 모두 모여 살고 있다.

본국에 가서 하기 어려운 이슬람권 학생 전도가 이곳에서는 훨씬 용이하다. 그들은 모두 과거의 사회주의 수출정책에 의해 무료로 와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이미 사회주의엔 흥미를 잃고 있으며, 선진국 선교사들과의 접촉을 좋아하고 있다. 실로 ‘황금어장’이다.

셋째는, 미전도종족사역(Unreached people group mission)이다.(지도2 참조) 러시아에는 소수민족으로 불리는 수많은 종족들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 많은 미전도 종족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러시아 내에도 시베리아와 극동, 캄차카지역에 모두 합해 18만 정도의 26개 소수민족 그룹이 있다.

  1. 나나이족(Nanaitsy)-아부르강 중류, 1만여명
  2. 우데게이족(Udegeitsy)­극동지역, 1천6백명
  3. 울리치족(Ulichi)-시베리아 극동 하바롭스크 지역 원주민, 2천 6백명
  4. 네기탈족(Nedigaltsy)-극동 아부르강 하류, 5백명
  5. 벤스족(Benc)
  6. 셀쿠프족(Selkup)-3천6백명
  7. 에벤족(Eben)-1만2천5백명
  8. 유카기르족(Iukagir)-8백명
  9. 야꾸드족(Yakut)-32만 8천명
  10. 카렐족(Karelia)
  11. 꼬미족(Komi)
  12. 넨츠족(Nents)
  13. 에벤키족(Ebenki)-2만7천3백명
  14. 한트족(Hanti)-2만9백명
  15. 만씨족(Manci)-7천6백명
  16. 까랴끼족(Karyaki)-캄차카반도, 7천9백명
  17. 추크치족(Tsuktsi)-1만4천명
  18. 에스키모족(Eskimo)-1천5백명
  19. 돌칸족(Dolgan)-5천1백명
  20. 니프히족(Niphi)-4천4백명
  21. 이텔멘족(Itelmen)-1천4백명
  22. 엔쪼족(Ents)
  23. 느가나산족(Nganasan)
  24. 싸암족(Saam)
  25. 케티족(Kety)-서시베리아 예니세이강 유역, 1천1백명
  26. 자료불충분

(지도2) 러시아 내의 큰 민족집단 분포(자치공화국을 구성치 못한 민족 포함)

그들을 향한 선교사도 나와야 하며 인구와 조사가 있어야 한다. 그들에겐 자기 언어로 된 성경이 전혀 없다. 소수 민족들 중 조금 큰 민족 집단은 ‘자치공화국’ 내지 ‘자치구’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접근이 용이하다. 따따르족’과 ‘바쉬키르족’은 이슬람을 신봉하는 자치공화국이며, 중앙아시아를 제외한 러시아내 이슬람의 세력도 무시치 못한다.

그외에, ‘현지인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 큰 과제이다. 러시아 침례교에서는 겨우 2년전에 신학교를 시작하였는데 그나마 우크라이나 지방 남쪽 ‘오뎃사’에 있으며, 한국에서 와서 앞다투어 신학교를 시작하고 있으나 통역 신학교의 문제점과 ‘장학금’에 더 큰 관심이 있어 모여든 신학생들로 인한 문제점 또한 큰 숙제로 남는다.

여하튼 당장 충원되지 못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선교사들로 메꾸기엔 불가능하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지인을 제자로 삼아 잘 양육하여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문서선교’ 또한 시급하다. 성경과 찬송의 보급뿐만 아니라 경건 서적이나 성경공부 교재, 강해서, 더욱이 신학교재 등의 러시아어판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러시아의 문서사역은 ‘protestant’라는 출판사에 거의 의존하고 있으나 아직 영세하고 한계가 있다. 그래서 노어권 전문 문서단체도 필요하다고 보며 지원이 없는 선교사역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IX. 맺는말

지구의 1/6을 차지하는 큰나라 러시아! 대국으로서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무한한 자원을 갖고 있는 이 나라가 지금 삶에 힘겨워 허덕이고 있다.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국가와 사회를 지탱하던 이념도 사라졌다.

내가 만난 한 대학 여교수는 말하기를 소련 붕괴와 함께 더욱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은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수십년간 나와 백성들을 완전히 속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라고 하였다.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고르바초프’가 정작 러시아에서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 되어있는 것은 그도 또한 백성을 속이고 자기의 정권을 연장 하려고 애써온 지도자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들은 ‘유토피아’를 이룩하기는 커녕 거의 체념한 상태에서 치솟아 오르는 물가와 TV의 뉴스만 바라보고 있다. 이들에게 진정 복음이 필요하다.

천년의 역사를 내세우는 러시아 정교회는 이 나라를 책임질 역량도 자격도 없다. 우리들이 해야 한다. 이들은 서구의 개신교회를 호기심 있게 바라보고 있다. 한국교회는 어려운 시절을 딛고 일어선 훌륭한 경험이 있으므로 저들을 이끌기에 아주 적합함을 현장에서 느낀다.

소련은 이 거대한 북반구를 ‘노어문화권’으로 묶어 놓았다. 항공과 도로교통도 잘 발달되어 있으며, 시베리아의 구석구석까지 전국민이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민족 간의 벽을 모두 허물어 놓았다. ‘백인우월주의’같은 것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프리카에서 온 사업가의 차를 백인인 러시아민이 운전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겸손케 하셨고 역사도 교훈하셨다. 신 8:1-10의 말씀을 그들이 모두 알도록 해야 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네가 그를 찬송하리라.”

이러한 러시아가 되도록 해야겠다.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삶을 끌어안고, 진정 그들을 사랑하는 선교가 되기를 기도한다. 나는 역사의 피해자인 러시아를 사랑한다.

(도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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