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해석학에 있어서 상황화

현대선교4 (Current Mission Trends). 발행 : 1993년 8월 25일, 서울:GMF Press. 수록면 : 10-21.

양용의

서론

‘상황화’(contextualization)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데뷔한 것은 1972년의 신학교육기금(the Theological Education Fund)의 보고서 형식으로 상황 속에서의 사역: 신학교육기금의 세번째 위임 프로그램(1970-1977)이 출판되면서이다. 물론 교회사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형태와 방법을 가진 상황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세속 철학자들에 대한 저스틴 마터의 반응(2세기), 데살로니가의 콘스탄틴의 이슬람과의 충돌(9세기), 마테오 리치의 중국의 유교 상황에 그의 신학을 연관시키려고 했던 시도(16세기), 진젠돌프가 소속 선교사들에게 그린랜드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에 적응하라고 충고했던 것(18세기), 허드슨 테일러가 교회의 토착화를 부르짖었던 것(19세기) 등과 같은 예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1교회사를 통한 상황화의 예를 더 자세히 알기 원한다면, D. J. Hesselgrave & E. Rommen, Contextualization, 12-26을 참조하고; M. Gpldsmith, `Contextualization of Theology’, Themelios 9.1 (1983), 18와 비교해보라.

그렇다면 상황 속에서의 사역을 출판했던 S. Coe, A. Sapsezian과 그 일행이 위에 언급한 계속되는 선교적 노력에 이름만 붙인 것에 불과한 것인가? 그 보고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상황화는 토착화란 말 속에 내포된 것을 모두 의미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속, 기술, 인간의 정의를 위한 투쟁의 과정’2상황 속의 사역, 20.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한편 J. O. Buswell을 비롯한 몇몇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은 새로운 용어를 채택하는 것을 거부했다.3J. O. Buswell, `Contextualization: Theory, Tradition, and Method’ in Theology and Mission, ed. D. J. Hesselgrave, 93-94.

그러나 대부분의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은 그 용어를 채택하면서 TEF의 주창자들과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개념을 재정립했다. 그들이 용어를 새롭게 정의하면서, 그들은 일반적으로 합의된 것과 견해를 달리하면서 새로운 정의 가운데는 상황에 대한 민감성과 함께 성경에 대한 충실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4Hesselgrave & Rommen, Contextualization, 33.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 글에서는 우선적으로 성경 해석학에 있어서 상황화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룰 것인데, 여기에는 계시의 성격과 성경과 문화의 관계에 대한 논의도 포함될 것이다.

처음에는 몇몇 해석학적 문제들과 긴장들에 대해 설명할 것이고, 둘째로는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다룰 것이다. 이렇게 하는 가운데 우리는 자연스럽게 상황화의 위험성에 대해 분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서 잠정적이지만 성경적인 상황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I. 성경과 상황화

1. 성경의 계시- 문제의 핵심

상황화의 개념과 실제는 무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상황화의 시도들은 대개 자체적으로 설정된 의미, 방법, 결과를 가지고 있는 기존의 신학적 관점들로부터 나왔고, 또 그것들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상황화의 개념과 실제에 있어서 그러한 분열을 야기한 다양한 신학적인 관점들은 그들의 다양한 성경의 계시관으로부터 파생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모든 세계의 종교는 그 나름대로 계시관과 계시의 장르를 가지고 있다. 헤셀그레이브와 롬멘은 다양한 세계 종교들의 특별 계시에 관한 네 가지 주요 장르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때때로 ‘신화’가 신적 계시의 힘을 입고 나타난다. 예를 들어, 고지끼와 니혼기에 쓰여진 야마또 신화는 일본의 신또의 토대가 되었다. 학자들은 아무도 그 책들의 사이비 역사적인 성격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 속에 포함된 야마또 신화는 여전히 수백만 명의 일본인들을 결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지혜의 글들’인 베다는 힌두교의 경전임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인 중 다수는 베다의 직접적인 신적 권위나 역사성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 역할은 그저 현상계 뒤에 있는 실체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을 찾는 독자들을 돕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세번째, 코란은 참된 선지자인 모하메드를 통해 알라가 직접 내린 ‘신적인 저작’으로 믿어지고 있다. 무슬림들은 코란이 알라의 직접적인 말씀이며 모하메드는 단순히 수동적인 수용자에 불과했다고 믿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랍어는 알라의 언어로서 그 소리와 리듬마저도 신적이기 때문에 코란은 번역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인간들이 기록했지만,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독특한 주장을 한다. 그래서 이 주장은 성경이 말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처음 두 장르와는 구분되는 것이다.

또한 기록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한 인간들의 인간성, 문화적 배경, 경험, 혹은 언어를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세번째 장르와도 구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는 모든 인간적 요소들을 채택하셔서, 쓰여진 말들이 인간의 말들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 되게 하신 것이다.5Hesselgrave & Rommen, Contextualization, 129-139 비교. 성경의 계시의 성격에 관한 토의를 위해서는 많은 책들이 있지만, W. A. Grudem, `Scripture’s Self-attestation and the Problem of Formulating a Doctrine of Scripture’ in Scripture and Truth. eds. D. A. Carson & J. D. Woodbridge, 19-59.

그러나 상황화의 문제는 계시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 의해 성경적 계시의 차별성이 상실되거나 퇴색할 때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 계시의 차별성이 잘 보존되었다고 할 때에도 잘 분별해서 판단할 영역들이 있는데, 특별히 성경의 계시에 있어서 형태와 문화의 역할의 정도에 대한 것들이 이에 포함되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관해 살펴보겠으며, 이에 따라 상황화의 접근법에 대해 그 다음 장에서 다루어 보겠다.

2. 성경과 문화

1.1. 문화란 무엇인가?
위에서 간단히 살펴 본대로, 문화의 성격에 대한 질문이 상황화의 논의에 대한 조건들을 설정해하는 또 다른 요소이다. 상황화와 관련된 문화의 성격은 윌로우 뱅크 보고서(the Willowbank Report)에 잘 표현되어 있다:

문화는 (하나님이나 실체 혹은 궁극적 의미에 대한) 신념, 가치…, 관습이나 이러한 신념, 가치, 관습을 표현하는 기구들의 통합된 체체로서 사회를 결속시키고, 사회에 정체성, 존엄성, 안정성, 지속성을 부여한다.6The Willowbank Report-Gospel and Culture, 7.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문화의 정의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문화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근래에 인류학자들은 각 문화의 가치를 정당하게 존중하기 시작했지만, 더러는 ‘절대적인 문화적 상대주의’로까지 나아갔다.7C. H. Kraft, Christianity in Culture, 78-98. 만약 이러한 입장이 허용된다면, 우리는 결코 어떤 문화적 체제라도 평가할 수가 없게 된다.8C. H. Kraft, `Supracultural meanings via Cultural Forms’ in A Guide to Contemporary Hermeneutics. Ed. D. K. Mckim, 318-319.

그러나 문화에 대한 성경적인 입장은 그러한 절대적인 문화적 상대주의를 허용하지 않는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창 1:26‘ 고전 11:7), 인간의 문화 또한 그 형상을 반영한다. 그러한 창세기 3장에 서술된 타락으로 인해서 인간 뿐만 아니라 문화 역시 타락하였고, 그 결과 `imago Dei(하나님의 형상)를 일그러뜨리지 않은 문화적 요소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9B. J. Nicholls, `Towards a Theology of Gospel and Culture’ in Down to Earth, Eds. J. R. W. Stott & R. Coote, 56.

따라서 상황화에 있어서 우리는 각 문화의 긍정적인 면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그 부정적인 측면도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성경적인10이것은 우리가 중립적인(즉 문화적으로, 또한 인격적으로 아무런 조건을 붙이지 않은) 성경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논의하고자 한다.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11S. C. Neill은 Down to Earth, 9-13에 실린 그의 글 ‘Religion and Culture’에서 `관용을 베풀 수 없는 어떤 관습들’, ‘일시적으로는 관용할 수 있는 어떤 관습들’, 그리고 ‘반대해서는 안되는 어떤 관습들’에 대해 제안하고 있다.

1.2. 계시의 상황으로서의 문화
성경적 상황화에서 문화는 성경 본문과 해석자(혹은 수용자)에 모두 연관되어 있다. 이 단락에서는 성경 본문의 상황으로서의 문화의 관계에 대해 먼저 살펴보겠다. ‘문화와 신약 성경’이라는 글에서 I. H. Marchall은 복음에 대한 문화의 효과에 대해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12I. H. Marshall, `Culture and the New Testament’ in Down to Earth, 20-26.

우선 신약 성경은 그 시대의 언어인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더군다나 신약 성경의 관습과 함께 핵심 단어나 개념도 (예를 들어 요한복음의 로고스, 골로세서의 플레로마; ‘구속’의 개념; 공식적인 모임에서의 여인들이 베일을 쓰는 것; 서로의 발을 씻는 것 등) 1세기의 유대와 헬라 세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유대와 헬라 세계로부터 나온 것이다.

따라서 주변의 문화가 복음 메세지의 의미있는 표현에 조건을 설정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여기서 더러는 성경의 문화적 형태들이 내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고, 인지된 의미만을 가지고 있어서 형태는 수용자의 문화에 의미있는 다른 형태로 전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13Kraft, `Supracultural Meanings’, 329-335.

그러나 B. J. Nicholls가 명백하게 밝혔듯이, 성령 하나님께서 그의 특별한 계시의 목적을 위해서 인간의 문화 사용을 통제하셨기 때문에, 복음의 문화적 형태들은 위에서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있게 취급되어야 하며, 때로는 그 형태들이 성경의 메세지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14Nicholls, `Towards a Theology’, 52-55; Contextualization: A Theology of Gospel and Culture, 45-48; The Willowbank Report, 7-9 등 비교. F. P. Cotterell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에 있어서 수사적인 형태가 저자의 의미에 내재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언어학적 관점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P. Cotterell & M. Turner, Linguistics & Biblical Interpretation, 278-287.

이러한 입장을 수용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성경의 문화적인 형태가 오늘날의 수용자에게 얼마나 의미있는가를 평가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히는데, 이에 대해 다음 장에서 다루겠다.

1.3. 해석의 상황으로서의 문화
성경의 본문 뿐만아니라 해석자와 수용자 또한 문화에 의해 한정된다. 근자의 해석학적 연구의 유익 가운데 하나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불가피하게 해석자의 시계(horizon) 혹은 ‘선이해’(preunderstanding)가 개입되며, 해석 과정에 있어서 이러한 것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또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하겠다.15이것은 넓게는 G. Turner의 말 가운데 ‘석의자가 본문에 가져오는 전체적인 개념의 세계’를 포함하는 것이다; G. Turner, ‘Preunderstanding and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in SJT 28(1975), 232. 해석학에 있어서 이러한 개념의 발전에 관해서는 A. C. Thiselton, The Two Horizons, 103-114 참조.

해석학적 토론에 있어서 ‘시계(視界)의 결합’(fusion of horizons)이라는 개념을 소개한 사람은 H. G. Gadamer이다. 그는 고대 본문의 시계(視界)와 현대 해석자의 시계 사이에 있는 긴장을 심도 있게 보았으며, 단순히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동화되거나 다른 쪽을 지배하는 식이 아니라 두 시계가 상호 작용을 통해 끝내 결합됨으로써 그 긴장을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16H. G. Gadamer, Truth and Method, 270-273 비교. 또한 Thiselton, Horizons, 10-17과 103-326 참조.

그런데 상황화는 또 다른 시계, 즉 수용자의 시계를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황화의 과제는 세 가지 시계를 융합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문화가 어느 한 시계 혹은 선이해를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상황화에서 해석자와 수용자의 문화를 잘 이해해야 하며, 그것은 침해받을 뿐만 아니라, 존중되어야 한다. 여기에 상황화의 긴장이 발생한다.

M. M. Thomassk J. Hick와 같은 학자들은 상황화 작업을 수용자의 문화에서 시작하여서 성경의 권위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문화를 필요 이상으로 존중해서 끝내 혼합주의적 상황화로 나아간다.17Hesselgrave & Rommen, Contextualization, 150-151.

위에서 살펴본대로, 문화를 그렇게 높이 보는 견해는 성경적인 문화관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타협과 혼합을 두려워한 나머지 수용자의 문화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상황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로써 성경을 잘못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참된 성경적 상황화는 개념적으로 수용자의 문화와 성경의 권위에 대해 모두 충실하여야 하는데, 이 때문에 상황화 과정에는 항상 긴장과 위험이 있는 것이다.

II. 현대 성경 해석학에 있어서 상황화

1. 성경 본문과 수용자의 문화 사이의 해석학적 긴장에 대한 세 가지 접근법

상황화의 시도에 수반되는 수용자의 문화(넓게는 ‘상황’)와 성경의 권위 사이의 긴장은 여러 종류의 상황화 결과를 낳았다. 그 가운데 세 가지의 주요한 접근법을 아래에 제시하고 평가해보겠다.

1.1. ‘수용자 상황’ 중심의 상황화
이것은 인도의 M. M. Thomas, 남미의 G. Gutierrez, 아프리카의 J. S. Mbiti 등과 같은 학자들이 주창한 과격한 접근법이다. Gutierrez는 Y. Conger의 말을 인용하여 교회가 현대 세계의 실제적인 문제에 반응하려면 계시로부터 출발하는 고전적인 신학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세계와 역사로부터 나온 사실들과 질문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18G. Gutierrez, A Theology of Liberation, 12.

그 밖에 다른 사람들은 더 과격해서 상황은 다양한 종교들과 문화들의 대화와 만남의 광장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심지어 여러 종교와 문화로부터 좋은 점만을 추출해서 기존의 종교를 능가하는 또 하나의 믿음 체제를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19이러한 좋은 예는 영국 교회의 타종교 접촉 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결국 성경 계시의 차별성에 적절한 무게를 두기에는 상황에 대한 강조점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 결과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혼합적이고 정치적인 복음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1.2. ‘수용자 상황’과 성경의 변증적 상황화
이러한 접근법의 좋은 예는 K. Koyama의 물소신학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수용자의 상황에서 시작하는 점에서는 처음의 접근법과 마찬가지인데, 처음의 예보다 성경 본문을 더 많이 강조한다. 고야마는 신학의 과제를 하나님의 말씀의 조명 속에서 역사적인 상황을 해석하는 것으로 본다.20K. Koyama, Water Buffalo Theology, 106-107.

따라서 그는 성경 본문과 씨름하지도 않고 본문을 살릴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재료들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성령의 조명을 받기 때문에 살아있는 역사와 성경의 변증적 긴장 속에서 진리를 분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물소신학의 몇 가지 핵심적인 내용은21예를 들어 ‘믿음의 시작’에 대한 그의 사상을 지적할 수 있는데, Koyama, Waterbuffalo Theology, 73-75를 비교해보고, Hesselgrave & Rommen, Contextualization, 79-85, 154-155 참조하라. 성경 석의에서 나오지 않는데, 성경을 석의하는 것은 성경의 계시가 객관적이고 닫혀진 것이 아니라, 베다에 ‘지혜의 글’로 정의된 힌두교의 계시론과 비슷하게 주관적이고 계속적이기 때문에 그의 신념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C. H. Kraft도 이러한 입장에서 먼 것 같지는 않다. 그에 의하면, 성경은 영감되었지만, 그 영감은 형태나 말보다는 그 의미에 더 가까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계시는 단순히 과거 시제가 아니가 때문에 닫혀진 계시가 아니라, 지속적인 차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매 순간 신적 진리, 즉 계시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결국 우리에게 상황화를 시도하는 모델과 방법들을 제공하는 영감된 사례집에 지나지 않게 된다.22Kraft, Christianity in Cultures, Part IV, 특히 9, 10 장을 참조하라.

이러한 접근법은 도전적이기는 하지만, 위험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즉 복음을 수용자의 문화적 실존적 상황에서 의미있게 전하려고 하는 효과성에 있어서 수용자의 문화에 대한 민감성 면에서 도전적이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를 상당히 위협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1.3. 성경 중심적인 상황화
이 접근법은 B. J. Nicholls, B. H. Kato, T. Matheny, H. M. Conn 등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 주창된 것인데, 성경의 권위에 대해 전적으로 헌신한 가운데 나온 이론이다. 예를 들어 B. J. Nicholls는 그의 접근법을 ‘실존적 상황화’(existential contextualization)에 대칭되는 ‘교리적 상황화’(dogmatic contextualiation)라고 불러서 상황화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그 위험성도 또한 감지한다.

그에 따르면, 상황화의 출발점은 그리스와 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신앙적 헌신의 범위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23Nicholls, Contextualization, 55.

그는 성경의 계시가 비문화적인 것이 아님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성령 하나님이 문화적인 환경들과 성경을 기록한 인간들과 심지어 언어학적인 형태까지도 도입해서 신적 계시가 성경 본문의 형태와 내용을 보존한 채 전달되도록 했다고 믿는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사도들의 신앙을 보존하고 수용자의 문화에 상황화시켜 적합성 뿐만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원래 의리를 보존하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참된 상황화는 수용자의 문화에 대한 판단과 변형이라는 결과를 낳아야 된다는 것인데, 즉 어떤 문화적 요소는 거절하거나 정죄하고, 다른 어떤 문화적 요소는 하나님의 영광에 부합되게 재생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24Nicholls, ‘Towards a Theology’, 59-62.

다른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지지하는 이러한 입장이 위의 두 접근법의 위험을 분별하고 상황화 과정 속에서 성경의 중심성을 잘 강조했다고 보아진다. 그러나 이 접근법이 수용자의 문화를 소홀히 하고, 복음에 대한 충실성과 복음의 의미 전달 사이의 해석학적 긴장을 진지하게 다루지 못하는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상황화에 있어서 ‘해석적 순환’(hermeneutical circle)의 문제에 주목하게 되는데, 이 접근법은 잠정적이지만 건전한 성경적 상황화의 모델을 제시한다고 보여진다.

2. 상황화와 해석적 순환

‘해석적 순환’이란 말은 Schleiermacher가 해석학적 논의 가운데 그 개념을 소개한 이후 이제는 ‘바꿀 수 없는 고정된 기술적 용어’25Thiselton, Horizons, 104.가 되었다. 따라서 상황화 논의가 ‘해석적 순환’의 개념을 포함시키게 된 것은 놀랄 일이 못된다.

C. R. Padilla는 자신의 상황화 접근법에 이 개념을 잘 활용하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경적 해석의 균형잡힌 접근법은 고대의 본문의 상황과 현대 독자의 상황을 모두 진지하게 고려해서 정당한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석의 과정은 단순한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쌍방의 해석적 과정으로, 이는 해석자들과 본문이 상호 연관된 “해석적 순환”으로 묘사되었다’.26C. R. Padilla, ‘Hermeneutics and Culture’ in Down to Earth, 68.

달리 말해서 복음에 대한 충실성과 복음의 의미 전달 사이의 해석적 긴장을 완전히 인식하면서 Padilla는 해석의 과정을 해석자의 역사적 상황과 성경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 혹은 대화로 보는데, 여기서 해석자는 자신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가지고 성경에 접근하며, 구체적인 성경 이해(즉 그의 신학)와 함께 그의 상황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닫혀진 원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구체적인 상황 내에서 변화되는’27Padilla, ‘Hermeneutics’, 75. 명백한 목적을 향해 움직여 가는 것이다. 따라서 Thiselton이 보는 바와 같이, ‘“해석적 순환”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 불행한 것인데’, 이는 해석의 과정에 ‘나선형 모양과 같은 형태가 있었다면 보다 더 전달될 수 있었을 지속적인 움직임과 진보적인 이해’28Thiselton, Horizons, 104.가 있기 때문이다.

Padilla는 이와 비슷하게 성경적인 해석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나선형 구조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성경을 보다 더 풍부하고 깊게 이해하고, 나아가 수용자의 문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수용자의 문화를 보다 더 깊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며, 이에 더 나아가 수용자의 문화 속에서 성경의 메세지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한다.29Padilla, ‘Hermeneutics’, 76.

따라서 성경 해석학은 본문의 시계(horizon)와 해석자의 시계(視界) 사이에 지속적이고 상호적인 연관을 수반한다. 나선형의 초기에 해석자는 성령의 인도 하에 특정한 질문이나 필요들을 가지고 가며, 해석자는 신학을 통해 필요에서 성경으로, 실제 삶의 정황에서의 적용으로, 다시금 새롭고 더 깊은 문제로, 새로운 신학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성경으로, 삶의 정황에서의 더 깊고 새로운 적용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은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선형의 움직임이 계속되면서 해석자는 올바른 관점에서 올바른 질문을 가지고 성경에 접근하는 것이며, 해석자의 신학은 더 성경적이고 더 상황에 적합한 것이 되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성경적인 상황화는 또 다른 시계(視界)를 수반하는데, 그것은 수용자의 시계이다. 상황화는 따라서 본문의 시계, 해석자의 시계, 수용자의 시계 사이에서 더 복잡한 세 방향의 상호작용이 되는 것이다. 수용자의 시계를 적절하게 강조하지 않으면, 실제적으로 복음을 수용자에게 전달할 수가 없는 것이다.30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토의하기를 원한다면, C. R. Padilla, ‘The Contextualization of the Gospel’ in Dynamic Indigeneity. Eds. C. H. Kraft & T. N. Wisley, 294-305를 참조하라.

상황화 과정의 처음에 해석자는 수용자 문화를 이해하고 자신의 점점 더 성경적인 세계관과 인생관을 통해서 성경에 접근하며, 그런 다음 자신의 점점 더 성경적이고 적절한 신학을 통해 성경에서 수용자의 문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계속하게 되며, 이 과정은 자신의 시계와 수용자의 시계를 성경의 시계에 통합시키는 목적을 가지고 수행되는 것이다.

건전한 성경적인 상황화를 실천하기 위해서 해석자는 역동적인 나선형 과정을 통해서 성경의 권위와 수용자의 문화 존중 사이의 긴장을 충분히 인정하고, 균형을 가지고 충실하게 반응해야 하는데, 성경의 권위에 대한 강조는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 반응을 보이는데 있어서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앞서 소개했던 접근법들과 마찬가지고 같은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결론

이제 이상의 논의로부터 몇 가지 결론을 도출해보자.

첫째로, 대부분의 에큐메니칼 신학자들과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상황화의 필요를 인정하지만, 성경적 계시와 그것의 문화들과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을 때 상황화의 개념들과 실제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합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뿐만 아니라 복음주의자들 가운데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성경의 계시와 문화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 때문이다.

둘째로, 성경의 권위와 수용자의 상황에 대한 민감성, 성경에 있는 문화적 형태의 중요성과 수용자 문화의 평가 등은, 상황화가 시도될 때마다, 개입되는 문제들로서 이것들이 끊임없이 해석적 긴장을 일으킨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최종 혹은 궁극적인 상황화란 없으며, 나선형의 해석 과정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끝없는 과정이 있을 뿐인데, 이것은 항상 성경의 지침대로 복음을 수용자에게 의미 깊게 전달하는 목적을 수행하는 것이다.

세째로, 모든 상황화에는 해석적 긴장이 개입되므로, 그 과정은 그 긴장을 다루는 접근법에 따라 다양한 위험에 노출된다.

보편적으로 말해서 두 가지 위험이 있는데, 1) 성경 계시의 차별성, 성경의 권위와 복음에 대한 충실성을 무시함으로써 극단적으로는 이종교간의 융합 혹은 혼합주의로 빠지는 결과를 낳는 것과 2) 수용자의 문화에 대한 민감성과 수용자에게 복음을 적절하게 의미 깊게 전달하는 것에 대한 강조점을 잃어버림으로써 복음을 부적절하고 비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따라서 참된 기독교의 상황화는 권위와 효율성에 조심스럽게 균형을 유지하면서 두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인데, 다만 궁극적인 기준인 성경의 권위에 우선적인 강조점을 두어 모든 상황화의 가치는 이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다.31이러한 위험을 피한 성경적인 상황화의 좋은 예는 아프리카에서 제시되었는데, Kato, ‘New Testament Eschatology in an African Background’ in Readings in Dynamic Indigeneity, 486-489를 참조하라.

주해 및 참고문헌

  • 주해
  • 1. 교회사를 통한 상황화의 예를 더 자세히 알기 원한다면, D. J. Hesselgrave & E. Rommen, Contextualization, 12-26을 참조하고; M. Gpldsmith, `Contextualization of Theology’, Themelios 9.1 (1983), 18와 비교해보라.
  • 2. 상황 속의 사역, 20.
  • 3. J. O. Buswell, `Contextualization: Theory, Tradition, and Method’ in Theology and Mission, ed. D. J. Hesselgrave, 93-94.
  • 4. Hesselgrave & Rommen, Contextualization, 33.
  • 5. Hesselgrave & Rommen, Contextualization, 129-139 비교. 성경의 계시의 성격에 관한 토의를 위해서는 많은 책들이 있지만, W. A. Grudem, `Scripture’s Self-attestation and the Problem of Formulating a Doctrine of Scripture’ in Scripture and Truth. eds. D. A. Carson & J. D. Woodbridge, 19-59.
  • 6. The Willowbank Report-Gospel and Culture, 7.
  • 7. C. H. Kraft, Christianity in Culture, 78-98.
  • 8. C. H. Kraft, `Supracultural meanings via Cultural Forms’ in A Guide to Contemporary Hermeneutics. Ed. D. K. Mckim, 318-319.
  • 9. B. J. Nicholls, `Towards a Theology of Gospel and Culture’ in Down to Earth, Eds. J. R. W. Stott & R. Coote, 56.
  • 10. 이것은 우리가 중립적인(즉 문화적으로, 또한 인격적으로 아무런 조건을 붙이지 않은) 성경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논의하고자 한다.
  • 11. S. C. Neill은 Down to Earth, 9-13에 실린 그의 글 ‘Religion and Culture’에서 `관용을 베풀 수 없는 어떤 관습들’, ‘일시적으로는 관용할 수 있는 어떤 관습들’, 그리고 ‘반대해서는 안되는 어떤 관습들’에 대해 제안하고 있다.
  • 12. I. H. Marshall, `Culture and the New Testament’ in Down to Earth, 20-26.
  • 13. Kraft, `Supracultural Meanings’, 329-335.
  • 14. Nicholls, `Towards a Theology’, 52-55; Contextualization: A Theology of Gospel and Culture, 45-48; The Willowbank Report, 7-9 등 비교. F. P. Cotterell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에 있어서 수사적인 형태가 저자의 의미에 내재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언어학적 관점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P. Cotterell & M. Turner, Linguistics & Biblical Interpretation, 278-287.
  • 15. 이것은 넓게는 G. Turner의 말 가운데 ‘석의자가 본문에 가져오는 전체적인 개념의 세계’를 포함하는 것이다; G. Turner, ‘Preunderstanding and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in SJT 28(1975), 232. 해석학에 있어서 이러한 개념의 발전에 관해서는 A. C. Thiselton, The Two Horizons, 103-114 참조.
  • 16. H. G. Gadamer, Truth and Method, 270-273 비교. 또한 Thiselton, Horizons, 10-17과 103-326 참조.
  • 17. Hesselgrave & Rommen, Contextualization, 150-151.
  • 18. G. Gutierrez, A Theology of Liberation, 12.
  • 19. 이러한 좋은 예는 영국 교회의 타종교 접촉 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 20. K. Koyama, Water Buffalo Theology, 106-107.
  • 21. 예를 들어 ‘믿음의 시작’에 대한 그의 사상을 지적할 수 있는데, Koyama, Waterbuffalo Theology, 73-75를 비교해보고, Hesselgrave & Rommen, Contextualization, 79-85, 154-155 참조하라.
  • 22. Kraft, Christianity in Cultures, Part IV, 특히 9, 10 장을 참조하라.
  • 23. Nicholls, Contextualization, 55.
  • 24. Nicholls, ‘Towards a Theology’, 59-62.
  • 25. Thiselton, Horizons, 104.
  • 26. C. R. Padilla, ‘Hermeneutics and Culture’ in Down to Earth, 68.
  • 27. Padilla, ‘Hermeneutics’, 75.
  • 28. Thiselton, Horizons, 104.
  • 29. Padilla, ‘Hermeneutics’, 76.
  • 30.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토의하기를 원한다면, C. R. Padilla, ‘The Contextualization of the Gospel’ in Dynamic Indigeneity. Eds. C. H. Kraft & T. N. Wisley, 294-305를 참조하라.
  • 31. 이러한 위험을 피한 성경적인 상황화의 좋은 예는 아프리카에서 제시되었는데, Kato, ‘New Testament Eschatology in an African Background’ in Readings in Dynamic Indigeneity, 486-489를 참조하라.
  • 참고문헌
  • J. O. Buswell, ‘Contextualization: Theory, Tradition, and Method’ in Theology and Mission, ed. D. J. Hesselgrave, Grand Rapids: Baker, 1978.
  • P. Cotterell & M. Turner, Linguistics & Biblical Interpretation. London: SPCK,
  • H. G. Gadamer, Truth and Method. London: Sheed and Ward, 1975.
  • M. Goldsmith, ‘Contextualization of Theology,’ Themelios, 9.1. (1983), 18-23.
  • W. A. Grudem, ‘Scripture’s Self-attestation and the Problem of Formulating a Doctrine of Scripture’ in Scripture and Truth, eds. D. A. Carson & J. D. Woodbridge. Grand Rapids: Baker, 1983.
  • G. Gutierrez, A Theology of Liberation. London: SCM, 1974.
  • D. J. Hesselgrave & E. Rommen, Contextualization- Meanings, Methods, and Models. Leicester: Apollos, 1989.
  • K. Koyama, Waterbuffalo Theology. Maryknoll, N.Y.: Orbis, 1974.
  • C. H. Kraft, Christianity in Culture, Pasadena: School of World Mission, Fuller Theological Seminary, 1978.
  • ———, ‘Supracultural Meanings via Cultural Forms’ in A Guide to Contemporary Hermeneutics. Ed. D. K. Mckim, Grand Rapids: Eerdmans, 1986.
  • I. H. Marshall, ‘Culture and the New Testament’ in Down to Earth. Eds. J.R.W. Stott & R. Coote, London: Hodder & Stoughton, 1980.
  • S. Neil, ‘Religion and Culture’ in Down to Earth. Eds. J. R. W. Stott & R. Coote. London: Hodder & Stoughton, 1980.
  • B. J. Nicholls, ‘Towards a Theology of Gospel and Culture’ in Down to Earth. Eds. J. R. W. Stott & R. Coote, London: Hodder & Stoughton, 1980.
  • ———, ‘The Contextualization of the Gospel’ in Readings in Dynamic Indigeneity. Eds. C. H. Kraft & T. N. Wisley. Pasadena: Wiiliam Carey Library, 1979.
  • A. C. Thiselton, The Two Horizons. Exester: Paternoster, 1980.
  • G. Turner, ‘Preunderstanding and New Testament Interpretation’in SJT 28(1975), 227-242.
  • The Willowbank Report – Gospel and Culture. Lausanne Occasional Papers, NO. 2, Wheaton: Lausanne Committee for World Evangelization,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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