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문화권에서의 교회개척과 상황화

현대선교4 (Current Mission Trends). 발행 : 1993년 8월 25일, 서울:GMF Press. 수록면 : 22-28.

김병윤
GMP 선교사

오늘날의 교회가 많은 문제점들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은 피할수 없는 사실이나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를 복음화의 궁극적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으로 사용하시면서 교회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는 일과 당신의 백성들과의 영적인 교제를 계속 해오셨다.

그러나 중세의 교회가 본래의 목적을 외면하고 세속화의 길을 걸을때에 하나님께서는 종교 개혁을 통해서 교회를 변혁 시키셨고, 한국 교회가 교권 다툼과 분열로 교회 본연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양적 성장에 집착 하던 시기에는 또 다른 구속적 선교 구조인 Para-Church들을 통해 교회가 건전한 방향을 상실하지 않도록 도전하심으로 한국 교회가 구조적인 자기 갱신을 시도하도록 자극하셨다.

제 2 차 세계대전 직후에, 서구의 열강세력들이 전통적인 선교지에서 현저하게 그 영향력이 붕괴되고 식민운동과 선교를 병행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고개를 든 민족주의와 전통종교, 전통 문화의 부활앞에서 복음화의 진로가 자못 험난하던 시기에도 하나님께서는 현지에 이미 세워진 교회들을 통해서 역사하셨다.

선교의 역사적인 측면에서 고찰하더라도, 바울이 도시를 중심으로 한 교회 개척 사역을 했고,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윌리엄 캐리도 인도에서 현지 교회 설립을 선교의 주요 목표로 설정한 바 있다.

이처럼 복음화의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 교회가 선교의 중심적 구조로서 그 기능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타 문화권에서의 교회개척은 좀 더 사려깊게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선교지에서의 교회개척은 타 문화와의 만남을 통해 이뤄지게 되기 때문이다. 자칫 야기되기 쉬운 현지 문화와의 불필요한 충돌과 대립및, 긴장을 피하거나 극소화 시켜야 타 문화권에 세워지는 교회가 본래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한국 선교사들은 단일 문화권(mono-cultural background)과 단일 언어권(mono-linguistic background)이라는 독특한 문화적인 영역안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우리와는 이질적인 문화적 환경을 갖고 있고 또 복합 문화권이 대부분인 선교 현장에서 현지 지도자들과 마찰을 빚거나 충돌하면서 대립과 오해로 인한 갈등의 골이 깊게 패여 선교 현장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한국 선교사의 본국 철수를 요청하는 어이없는 사례들이 최근들어 생기고 있다.

선교사들 스스로도 타 문화권에서 생활과 사역을 하면서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가치관의 혼돈과 사역의 실패를 경험한 예가 많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필자는 타 문화권에서의 교회개척 방법에 대해 살펴보고, 이에 수반되는 문젯점들을 짚어 본뒤 바람직한 교회개척 방법으로서의 상황화 작업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I. 타 문화권에서의 교회개척

세계인구의 절반이상이 복음적인 교회들로 부터 지리적,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장애들로 인해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는데, 이 잃어버린 영혼들이 복음과 접촉하고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달해줘야 하고, 지속적인 믿음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교회를 세워야 한다.

물론 현존하는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이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선교사의 입국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 시대만큼 선교의 기회가 주어진 유리한 시기도 일찌기 없었다.

구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붕괴라는 정치적 현실은 분명히 보다 많은 선교의 기회가 되고 있고, 창의적으로 접근해야 할 곳을 포함하더라도 항공편의 대중화나 다양한 외교관계의 수립 등은 선교의 전망을 보다 밝게 해주는 명확한 증거가 되고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고 있는 딕 그래디(Dick Grady)와 아프리카의 루완다(Ruwanda)에서 교회개척 사역을 했던 글랜 켄달(Glenn Kendall)이 100명의 성공적인 교회 개척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일곱가지 전략적 원리들을 발표했는데 이 조사에 따르면, 효율적인 선교사들은

  • 1)기도에 많은 시간을 보냈는바,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4시간 15분 이상을 더 기도했다고 하며,
  • 2)영화 상영, 비디오, 축호 전도, 조사, 공중모임, 문서 배포, 드라마, 퍼레이드, 기도 모임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전도에 힘을 쏟았고,
  • 3) 창의적이고도 융통성 있는 방법의 적용,
  • 4) 신학적인 확신,
  • 5)신용,
  • 6)종교적 구조가 허술한 곳에서 사역을 했고,
  • 7) 새신자들을 전도에 활용하는 뛰어난 능력들이 있었다고 한다.

선교사들이 자신의 문화밖에서 현지의 문화와 그 실정에 어필할 수있는 창의적 이고도 융통성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연구하고 적용하면서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갖고 다양한 선교의 장을 열어 가면서 선교사역을 감당할 때 보다 효율적인 선교사역을 할 수있음을 알 수 있는 조사인데, 실제로 타 문화권의 선교 현장에서는, 우리 한국 선교사들이 많은 문제들과 조우하고,부딪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II. 타 문화권에서의 교회개척의 문제점들

한국 선교사들이 타 문화권에서 교회를 개척할때 야기되는 문제점들은 어떤것들이 있을까? 지난 ’92년 10월 필리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국립 필리핀 대학교에서 모여 분과토의를 할때 ‘선교지에서의 교회개척’이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이때 거론된 몇몇 문제점들과 필자가 생각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함게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현지 문화와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 :
선교지에 대한 충분한 연구없이 제대로 의사소통도 되지않는데 선교에 대한 막연한 열정과 사역보고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교회개척을 서두르다 보니 선교지에 ‘김치문화’를 심으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문화적 관점으로 선교지를 이해 하려고 하고, 판단하면서 선교지의 ‘한국화’를 시도 하게 되는데 새벽 기도, 철야 기도, 금식 기도가 유달리 강조되고 있는 모국의 교회들처럼 현지 교회들이 기도에 힘쓰지 않고, 예배드리는 횟수가 한국보다 적어서 교회가 성장이 안된다고 보고, 한국교회를 모델로 하여 선교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현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줄어들 수 밖에 없게 되고, 불필요한 현지 문화와의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이다.

어느 곳이든 예배당에 들어서면 먼저 자리에 앉아 기도부터 하고, 엄숙히 예배드리는 한국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배드릴 때 자연스럽게 웃기도 하고 격식을 그리 갖추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불경스럽기까지 여겨진다고 한다. 아울러 교회가 없는 지역에 처음 들어가 교회를 개척할 때 흔히 부딪히게 되는 기존의 전통문화와의 마찰은 아무래도 우리가 그들 문화의 파괴자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2) 현지인 사역자와의 사이에서 오는 마찰과 갈등 :
선교지의 정치성이 강한 교회 지도자들에게 이용당하거나 그들 사이의 불편한 인간관계에 개입되어 곤욕을 치를 때, 동역하는 현지인 사역자가 물질만 바라보고 일하는 것 같고 전혀 사명감이 없어 보일 때 갈등을 겪거나 충돌하게 된다.

3) 인종적/문화적 우월감 :
우리보다 현지인들의 키가 작고, 살결도 우리보다 검은데다가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대부분의 선교지에서 은연중에 갖게되는 인종적/문화적 우월감이 그들과의 진지한 교제에 장애가 되고 있다.

4) 슬럼가나 시골지역에서의 사역 :
필자가 선교사로 헌신할 때만 해도 선교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이 있었다. 선교란 복음이라고 하는 폭탄을 온몸에 안고 적지에 뛰어 들어가 게릴라처럼 폭탄을 꽝꽝 터트리며 활동을 하다가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날아든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죽는 것인줄만 알았다.

그때까지 접한 대부분의 선교 보고들이 힘이 들고 열악한 환경인데도 여러분들의 기도로 열심히 일해 매우 많은 열매들을 맺고 있다거나, 아슬아슬하게 죽을 고비를 넘겼다거나 하는 유형들이어서 그랬는지, 책에서 읽은 리빙스턴이나 아도니람 져드슨 같은 분들의 전기 때문이었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선교란 말만 들어도 순교란 말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선교지에 가보니 거기도 사람사는 곳이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 많았다. 이곳이 내가 일할 선교지인가 하는 갈등이 생기게 되고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남들 안 가는 곳을 가기를 원했고, 외진 곳, 소외된 곳으로 가길 원했다. 도시에서의 사역은 무척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여러해가 흘러 정말 산악지방의 외진 곳에 교회를 개척하고 건축을 마쳐 놓고나니, 나도 모르게 내가 훌륭한 선교사가 된 줄 알았다. 그러다가 산악지역의 외진 교회들이 복음의 재생산성이 거의 없는것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가서야 알렌의 책을 읽고 바울의 도시중심 선교 전략을 배우게 되었다.

세계가 점점 도시화되어 가고 있고, 잃어버린 영혼들이 도시에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시골지역이나, 슬럼지역에서 사역하는 것은 특별한 구제적 의미를 제외하면 복음의 재생산성은 아주 낮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 선교사들 중 상당수가 그런 지역의 선교에 헌신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겠지만, 복음의 역동적인 재생산성을 고려한다면 도시나, 학원 선교에 보다 더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5) 실적 위주의 선교 :
선교사 한분이 수년 내에 수십개의 교회개척을 목표로 사역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선교사 한 사람이 그 많은 교회를 직접 다 개척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므로 여러명의 현지 목회자들에게 사례를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도록 하는 방법인데,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요소가 다 짙게 배어있다.

특히 현지 사정을 잘 모르고 교회 숫자에만 치우치다 보면 영혼구원이나 그들의 신앙 성숙보다는 외적인 면에 비중을 두게 되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6) 친권주의와 지도자 육성 문제 :
필리핀의 빵가시난 지방의 어느 교회는 25년전에 미국 선교사가 아름다운 교회를 지었을 때는 백여명 이상 모였으나 지금은 공장이 되어 있었고, 확인은 못했으나 돼지를 치는 곳으로 변한 교회도 있다고 들었다. 현지 교회가 자립하고 성장하는 가의 척도는 결국 그들을 잘 이끌 지도자를 육성했는가 못했는가로 판단된다.

그들이 어렵다고 물질을 나눠주고, 신앙이나 신학이 약하다고 하여 선교사가 계속 돌보기만 한다면 선교사가 떠난 후에는 교회가 쉽게 무너진다. 그들 스스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면 우리 한국 교회의 선교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인재를 발굴하여 견고한 지도자로 육성하는 일은 조급히 선교 실적을 기대하거나, 친권주의 정신을 갖고 있는 한 요원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7) 협력부재 :
교단 간의 차이점들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때때로 선교사들이 현지에서 협력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필리핀의 경우, 한국 선교사들끼리 이 문제로 고심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장로교의 4개 교파가 현지에서 연합하여 일하는 것은 현지인들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 선교사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같은 교단이라도 필리핀 교회와 한국인 선교사와의 협력은 잘 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뭔가 드러나는 일에는 우리 한국 교회들이 앞장서다보니 선교사들도 현지 교회나 교단과의 협력보다는 독자적으로 일하게 되어 많은 법인들이 난립하게 되고 선교사 한 명에 교단 하나라는 극단적인 비판까지 받게 된다. 선교 현지의 교회 지도자들과의 진지한 협력에는 아무래도 한국 선교사들이 미진한 면이 많다.

III. 상황화 작업으로서의 성육신적 선교방법

우리 선교사들이 우리들의 문화를 가지고 선교지에 들어갈 때 부딪히는 현실적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현지 문화와의 충돌이라고 볼 수있다.

비기독교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현지 문화를 죄악시 할때 선교사는 문화의 파괴자로 인식되어 현지인들과 대립하거나 긴장관계에 놓이게 된다. 예를 들면 조상숭배를 중시했던 유교의 영향권 속에서 살아왔던 우리민족과 제사는 우상숭배라는 성서적 가르침때문에 겪었던 선교 초기의 대립상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모든 문화는 타락한 인간들이 만들므로 인간의 죄성이 반영되고 병적인 요소가 내재하게 되어 죄악시 하기 쉬우나 모든 문화가 다 나쁘다고 볼 수는 없으며, 오히려 문화가 복음 전달의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음도 간과 해서는 안될 것이다.

비록 복음에 대해 더 수용적이거나 저항적인 문화가 있긴 하지만 모든 문화는 복음 전달을 위한 통로로 사용될 수가 있다. 즉 누구든지 자신의 문화를 바꾸지 않고도 그 안에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

결국 여기서 우리가 생각 해보아야 할것은 복음의 토착화 문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과 전통적인 문화와의 복잡한 관계는 결국 토착화 문제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토착화란 일부 극 보수주의자들의 견해처럼 복음과 세상과의 타협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즉 토착화란 유대인의 문화적 틀 안에서 기록된 성경의 진리를 현지의 문화적 형태로 표현 하는 것이므로 타 문화권 선교사들은 그들의 문화를 적절히 사용하여 복음적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복음의 토착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줄로 안다.

그런데 용어상 토착화란 말이 안고 있는 한계 때문에 ’70년대 이후로 토착화라는 용어대신 상황화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있다. Shoki Coe는 토착화란 용어가 전통문화에 복음을 적용시키는 문제에 치중하며 과거 지향적이라서 현실의 정치, 경제, 사회면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있으므로 보다 광의적(廣義的)인 의미를 갖고 있는 상황화란 말로 대치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 상황화에 대한 좋은 모델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성육신 사건을 들 수 있다.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사람들의 아픔과 연약함, 질고와 슬픔을 몸소 경험하신 사건을 통해 구속의 사역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정신은 상황화의 대표적 모델로서 우리는 이 원리를 선교에 적용시킬 수 있다.

즉 복음의 본질이 손상되지 않는 범위에서 복음의 상황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필자는 이것을 성육신적 선교의 접근(Incarnational missions approach)방법으로 표현 하는데 이것은 성경의 진리가 왜곡되지 않으면서도 현지 문화상황에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선교에 있어 보다 효과적이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시도되어야 한다.

바울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 같이, 이방인에게는 이방인 같이(고전 9:19-22) 처세했던 동일화(identification)의 원리가 타 문화권에서의 교회 개척 현장에서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타 문화권에서의 교회개척시 야기되기 쉬운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극소화시키고 세워진 교회가 효율적으로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복음이 현지 문화 안에서 그들의 관점에서 이해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상황화 작업이 성서라는 텍스트를, 현지라는 상황에 맞게 조명함으로써 복음의 신속하고도 적절한 전달을 통한 영혼구원에 그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무비판적으로 복음의 토착화를 시도했던 아프리카의 교회들이 이교주의와 혼합된 독립교회들로 변질되었던 선례와,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중남미와 필리핀의 카톨릭 교회들이 토속 신앙과 어울어져 기독교 이교주의(Christo-paganism)로 변질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상황화 작업이 수반하기 쉬운 복음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20세기 한국 교회의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던 자립, 자치, 자전의 원리를 선교지의 상황에 맞게 적용해 나가면서 주님의 나라가 더욱 견실하게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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