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오늘의 선교사 훈련-그 필요영역과 도전

현대선교5 (Current Mission Trends). 발행 : 1994년 3월 25일, 서울:GMF Press. 수록면 : 3-19.

이태웅
한국해외선교회 이사장 및 선교훈련원 원장

‘2/3 세계'(the Two-Thirds World) 특히 아시아 선교의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 중 하나는 선교사 훈련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1989년 마닐라에서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 선교분과위원회의 주최로 선교사 훈련 자문회의가 개최된 이후로 “선교사 훈련” 문제는 남미와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최근에는 미국에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렇게 불붙여진 선교사 훈련에 대한 관심이 실질적인 결실로 나타날 것을 기대하면서 필자는 아시아 선교사 훈련과 관련하여 다음의 분야들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1. 상황(CONTEXT)
  2. 중대한 필요영역들(CRUCIAL AREAS OF NEED)
  3. 도전(CHALLENGE)

I. 상황

훈련을 한다거나 교육을 한다고 할 때 그 상황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 우리의 상황이 어떠한가를 규정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국가적인 상황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더 넓은 관점에서 대륙적인 상황 혹은 세계적인 상황을 고찰해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아시아의 선교사 훈련 움직임의 관점에서 고려해야할 특정한 경향에 대해 개관해보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선교 기관의 국제화
세계는 무역의 증대와 인공위성의 지원으로 가속화된 산업화로 인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세계는 전대미문의 변화를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촌”이라는 말은 이제 너무나 친숙해진 용어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거대한 물결 속에는 선교사 훈련에도 영향을 미칠 무시할 수 없는 저류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서구 선교 기관들의 국제화가 그 한 요소이다. 이것은 서구의 선교 세력과 ‘2/3세계’의 선교세력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인 것이다. 어떤 연구 결과에 따르면 ‘2/3세계’ 선교사들의 극히 일부분만이 국제적인 선교기관에 들어간다는 것이 밝혀졌다.1Larry D. Pate, ”The Changing Balance in GIobal Mission,” in IBMR Vol.15, No.2, April, 1991, P.59. 서구 선교기관이 파송한 선교사들의 3%만이 2/3세계 출신이다.

이것은 여전히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지금 우리가 서구와 ‘2/3세계’ 선교사들의 통계를 살펴보면, 국제적인 선교단체들이 점점 더 ‘2/3세계’ 선교와의 통합을 향해 나아갈 것을 예측할 수 있겠다. 이러한 추세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은 서구 선교회와 ‘2/3세계’ 선교회 사이에 지도력을 공유할 필요가 대두된다.

아시아에서의 선교사 훈련은 국제적인 선교회에 소속해서 다문화적인 팀에서 사역하도록 준비시키며, 대인관계의 갈등을 해결하고, 남녀간의 지도력 문제에 대해 정리하게 하며, 지도력 유형의 차이로 인한 문제들을 극복해 나가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교회의 세계화
세계화는 우리가 고려해야할 또 다른 요소이다. 2세기 전에 서구에서 선교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선교지”에는 교회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숨겨진 종족집단을 제외하고는 실질적으로 모든 나라에 교회가 존재한다.

선교사들은 그들이 서구 출신이든 아시아 출신이든 혼자서 사역하지 않는다. 선교사와 그 파송 교회들은 필연적으로 현지 교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기존 교회와의 동반자 관계는 필수적인 것이다.

이것은 서로에 대해 더욱 민감해야 할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선교 훈련에서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도록 돕지 않는다면, 사전 훈련으로 피할 수 있는 실수들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기존 교회와 함께 동역하며, 섬기고, 돕도록 선교사 후보자들을 준비시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2/3세계’ 선교 운동 현황
우리는 ‘2/3세계’ 선교 운동의 활발한 성장에 대해 많이 듣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성장의 단계에 따라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듣지 못한다. ‘2/3세계’ 선교 운동은 적어도 수적으로는 서구 선교를 따라갈 만큼 성장했다. 혹자는 ‘2/3세계’ 선교가 서기 2000년까지 서구 선교 세력을 능가할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2Ibid., p.60.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전체적인 사실을 다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숫자만을 인용하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되겠다. 그 운동의 성격을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2/3세계’ 선교 운동은 복합적인 것이고, 오늘날 ‘2/3세계’ 전체적으로 퍼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분명하게 평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종종 ‘2/3세계’ 선교는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하부 구조가 본국과 선교지에서 개발되지 않은 가운데 진행되고 있음이 명백하다. 하부 구조가 없는 운동은 지속될 수 없다. 하부 구조를 세운다는 말은 지도력을 세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도부가 그 과업을 수행하기로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그 급격한 성장은 축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한국의 선교 운동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 선교는 1912년에 시작되었다. 또한 한국 선교는 1970년에 하나의 운동으로 성장했지만, 1980년대에 와서야 현재의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몇몇 지도자들이 그 운동을 진단하고, 본국과 선교지에서 지도자들을 일으키는 것을 강조할 때까지 그 운동은 건전하게 진행되지를 못했다. 왜냐하면 선교지로 돌진했던 사람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로스엔젤레스와 같은 보다 더 안락한 서구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서구 선교와 ‘2/3세계’ 선교 사이에 점증하는 동반자 관계
서구와 ‘2/3세계’ 선교 기관 사이의 동반자 관계를 촉진하기 위한 중요한 시도들이 여러 번 있었다. 그 중 하나가 WEF 선교분과위원회가 1992년 마닐라에서 개최한 Interdependent Partnership Consultation이다.

이 회의에는 90명의 최고 선교 지도자들이 모여 성공적이고, 상호의존적인 동반자 관계의 기본적인 요건들에 대해 토의하였다. 이 협의회에서는 동반자 관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분명히 했다고 본다. 그 중 하나가 보다 더 수준 높은 선교학적인 지식과 훈련을 받은 선교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아시아의 선교훈련원들이 선교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추지 않은 기술자들을 양성할 뿐이라면, 선교사들이 스스로 동반자 관계를 개발하도록 해야 할 때에 소수의 선교 지도자들 사이의 선별적인 협력에 국한 될 것이다.

선교인력의 판도 변화
하비 칸(Harvie Conn)3Harvie Conn, “Missionary Encounter with World Religions.” A Taped Lecture by the Institute of Theological Studies.은, 무슬림의 성장은 수적인 면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중대한 증가는 없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힌두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무슬림과 힌두교 인구층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무슬림은 과거에는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에 밀집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무슬림은 이제 영국에도 있으며,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에도 상당한 무슬림 인구가 있는 것이다.

장래에는 이것이 소수의 선교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에게 고도의 민감성과 전략적인 사고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훈련은 인구 이동에 의해서나, 세계의 종교들이 계획적으로 시도하는 선교적인 일로 인해 일어나는 이러한 인구 이동에 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복음주의 신학의 변화
서구에서는 몇몇 복음주의 학자들이 분명한 성경적인 신학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충격을 주고 있다. Christianity Today는 이것을 신학의 “대변혁”이라고 불렀다.

신학에 있어서 이러한 변화는 선교사의 사역에도 불가피하게 영향을 미친다. 선교 사역이 신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4Wilbert R. Shenk, “Theology and the Missionary Task” in Missiology: an International Review. Shenk는 또한 우리의 선교적 과업의 중심적인 것으로 신학을 강조하고 있다. 선교 훈련은 신학 훈련과 분리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물론 신학 훈련과 선교 훈련이 같은 여건에서 만나질 수 없는 경우들이 있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에서는 신학교들과 선교사 훈련 기관이 수행하는 역할을 창의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효과적인 선교 훈련은 성경에 토대를 두고, 신학적으로 건전해야 한다.

선교 사역에 있어서 국면의 전환(Paradigm Shifts)
선교 사역은 지난 몇 십 년 동안은 비교적 단순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서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전통적, 혹은 정규적인 선교 사역으로는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래서 “세속”적인 전문 직업을 가진 복음의 증인들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요소만 하더라도 선교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를 제기하는 것이다. 선교사 훈련에 있어서, 그러한 국면의 전환을 다루기 위해 이러한 문제들을 알리고, 적절하게 선교사들을 무장시켜야 하는 것이다.

훈련은 이제 더 이상 정해진 틀 속에 억지로 넣는 식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거주하면서 교회 개척을 할 필요가 있으며, 전문인들을 훈련할 필요가 있으며, 비거주 선교사들을 양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시아 교회들을 위한 적합한 선교사의 전형을 찾기 위해 대화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우리는 이러한 점들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며, 그래서 우리의 선교 훈련이 더욱 적절해지고, 세계와 환경의 변화에 부합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선교의 메세지의 핵심을 변경하지 않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II. 중요한 필요의 영역

우리의 상황의 복합성을 고려할 때 아시아에서 선교사들을 더 잘 훈련시키기 위해서 보강해야 할 분야들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것이다. 아래에 몇 가지 중대한 영역들을 다루어 보았다.

선교 지도력
많은 선교사들이 지도자가 되기보다는 추종자가 될 것이기는 해도, 우리의 선교 훈련은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민감한 지도력이 있을 때 선교사들은 선교 기관의 국제화와 함께 세계화라는 어려운 과정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서구에서의 선교 사역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아시아 및 구소련과 동유럽 등 새롭게 개방된 선교지에서 세계적인 동반자 관계를 촉진할 것이다.

신학적 기초
우리가 선교 훈련에 대해 생각할 때 신학 훈련은 그다지 강조하지 않는 위험이 상존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선교 훈련에 보다 더 집중하기 위해서다.

만약 신학적인 기초가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는 최소화된다. 그러나 우리가 종종 보듯이 ‘2/3세계’ 선교훈련원들은 신학교육의 배경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전혀 신학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열려 있다.

그러나 신학 교육을 받지 못한 훈련생들의 경우에는 그 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신학적으로 약한 선교사들을 배출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신학 교육과 선교학적인 훈련을 더 잘 통합하고, 필요할 때 교정적인 차원의 성경적, 신학적 과목들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세계적인 관점
특별히 이질적인 종족들과 문화가 어우러져 있는 나라에서는 선교 훈련원들이 국내에 있고, 이것은 별 문제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에 이 훈련원들이 선교사들을 훈련시켜 그들이 자국 내에서 타문화 사역을 하도록 보내려고 하는 것이라면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알바니아, 구소련, 아시아의 여러 지역들, 북아프리카, 남미 등과 같이 서구 선교사들과 아시아 선교사들이 함께 일할 지역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두 선교사의 집단이 서로를 적응시키기 위해 세계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양쪽에서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서구의 선교훈련은 그들의 훈련생들의 관점을 넓히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아시아 선교 훈련도 후보자들을 더 넓은 세계적 관점으로 넓히는데 있어서 서구보다 못해서는 안된다.

타종교들과의 선교적인 충돌
서구 신학교에서 변증학은 특별히 구마르크스주의자들, 세속주의자들, 불교도들, 무슬림들, 정령숭배자들을 다루는데 있어서 현재와 다가오는 미래의 창의적인 선교학적인 방법에 비추어 볼 때 시대에 뒤떨어진 데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증학적인 훈련은 효과적인 전도와 선교사가 타종교와의 관계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이해함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변증학은 타종교와의 선교적인 충돌과 함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선교훈련원들이 4개월에서 1년 정도의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할 뿐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선교훈련기간을 길게 잡으면 2년까지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종합적인 훈련을 감당할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선교훈련은 기능적인 차원의 훈련, 혹은 편협한 문제들만 다루는 정도로 퇴보할 수 있을 것이다.

III. 도전

상황과 중대한 필요들을 고려할 때, 선교 훈련은 한가지 모델만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오히려 아시아의 훈련 프로그램은 다음의 연속선상에서 움직이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교육 대 훈련
Internationalizing Missionary Training에서 “New Directions in Missionary Education”이라는 장에서 Lois McKinney 박사는 “선교 교육”(missionary educ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5Lois MckiInny, “New Directions in Missionary Education” in Internationalizing Missionary Training, ed. William David Taylor. Baker, 1991, p. 249.

훈련이 보다 더 구체적이고 기능적인 용어라면, 교육은 보다 더 포괄적인 용어일 것이다. 아시아의 선교 훈련은 이러한 면들을 모두 포함해야 할 것이다.

훈련 프로그램에는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미래의 지도자들을 보다 더 포괄적인 선교 교육으로 아시아 선교 운동을 준비하게 하는가 하면, 양적으로는 기능적인 훈련을 통해 선교지에 바로 배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폭넓은 선교 교육과 집중적인 선교 훈련 사이의 연속선을 따라 아시아의 선교사 훈련을 이끌어가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학문 대 실제
아시아의 선교사 훈련은 지금까지 실제적인 면들을 많이 강조해왔다. 아시아의 선교 훈련은 서구 신학교들의 인지적 교육 위주의 훈련 모델을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

서구의 경우에 있어서는 실제적인 것보다는 학문적인 면을 더 많이 강조했다. 그러나 선교 운동의 현상을 고려할 때 아시아의 선교사 훈련은 이론적인 토대를 희생하면서까지 실제적일 필요는 없다. 이론적인 토대를 희생할 경우 아시아의 선교사들이 미래의 지도자가 되도록 무장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런던에 있는 All Nations Christian College는 우리에게 좋은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한 훈련 센터 내에 다양한 수준의 훈련 프로그램들이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을 M. A. in Missiology 학위를 취득하고, 어떤 이들은 수료증만 취득한다. 분명히 M. A. 프로그램은 학문적이면서도 실제적인 면을 희생하지 않는데, 그것은 모든 훈련생들이 실제적인 기본 훈련 프로그램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학문적인 차원과 실제적인 차원을 통합하고, 균형을 잡는데 따르는 엄청난 유익을 입증해왔다.

둘째로, 만약 선교사 훈련의 실제적인 면이 기존의 학문적인 내용에 통합된다면, 신학교의 모델도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학문적인 커리큘럼에 겉옷을 걸치는 식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두 가지 요소가 철저히 통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Colombia Biblical Seminary and Graduate School of Missioins은 더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6Kenneth B. Mulholland, “Missionary Thaining at CoIombia Biblical Seminary and Graduate School of Missions” in Internationalizing. p.147. 여기서 다룬 통합에 대한 설명은 대단히 유용하다고 본다.

이러한 두 가지 모델 외에도, 학문적인 면을 보강한 실제적인 훈련원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훈련원들은 필요한 수의 선교사들을 배출하기 위한 단기 훈련 프로그램들이 될 것이다. 아시아 선교 운동이 정착되고, 더 많은 지도자들이 세워지면서 보다 더 실제적인 선교사 훈련원들이 더 많이 생겨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제 훈련원 대 국내 훈련원
국제적인 훈련원들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특별히 그들이 국제적인 기관을 위해서 훈련을 할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철저히 상황화된 국내 훈련원의 필요도 있다. 아래에 Ebenezer Sunder Raj는 대단히 중요한 제안을 하고 있다.7Ebenezer Sunder Raj, “Missionary Training-The Indian Context” in Internationalizing Missionary Training, pp. 64-5.

…선교지의 문화가 다양하면 할수록 학교에서는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학교 수업이 더욱 구체적인 것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예를 들면, 후보자들은 구체적인 선교지 문화를 공부하지는 못하면서, 인류학, 커뮤니케이션의 원리 등등을 배우는데, 이것은 선교적인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선교학만을 배울 뿐인 것이다.

본국과 선교지의 문화적 복합성은 학교의 문화가 서구적이어야 하는데, 그것은 그러한 폭넓은 공부가 서구의 책들과 교사들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교 후보자들이 두개의 새로운 문화를 적절하게 습득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한다.

(예를 들면, 태국에 선교사로 가기 위해 풀러신학교에서 공부하는 어떤 일본 선교사는 태국과 미국의 문화적 특징들을 모두 습득해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그가 가고자 하는 선교지 문화보다 학교의 문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알 때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이 문제는 어떤 경우에는 피할 수 없을 것이지만, 대부분의 2/3세계 상황에서는 (B)와 (C)의 두 유형에 따라 제거되거나, 극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B)는 한 문화권에서 다문화권 상황으로 보내는 선교 학교를 말하고, (C)는 다양한 본국 문화권에서 하나의 선교지 문화권으로 보내기 위해 하나의 선교지 문화 상황에서 선교사들을 훈련하는 경우이다.]

필자는 위의 지적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 훈련의 국제적인 면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아시아에서의 선교사 훈련은 국제적인 훈련원과 국내 훈련원이라는 두 가지 대안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아시아 상황에서 필요한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일반 선교사 대 전문인 선교사
일반 선교사를 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문인 선교사 및 비거주 선교사들을 훈련해야 할 중대한 필요가 있다.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소위 “창의적 접근지역”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의 훈련이 이러한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자연스런 결론이다.

한국교회는 이런 점에서 몇 가지 창의적인 사역을 하고 있다. 몇몇 지역 교회들이 자기 교회의 전문인들과 함께 다른 교회 출신의 전문인들을 훈련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 아시아와 남미에서 사업을 할 것이다. 이 전문인 선교사들은 적절한 훈련을 받고, 전임 선교사들과 동역할 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GMF는 장래의 자비량 선교사 혹은 전문인 선교사들에게 사역의 기술 등을 가르치기 위해 별도의 부서를 만들기도 했다.

결론

선교 훈련에 대한 선교 지도자들의 논의를 통해서 아시아는 물론 ‘2/3세계’ 선교 운동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필자는 우리가 선교훈련의 실제적인 내용들을 등한시하지 않으면서도 선교학적으로, 신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미시적인 관점과 함께 거시적인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시아 선교 훈련에 대한 창의적인 논의가 교회 내부와 외부로부터 나오는 변화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부록1. GMTC 선교사 프로파일

부록2. 교과과정의 요소

주해

  • 참고문헌
  • 1) Larry D. Pate, ”The Changing Balance in GIobal Mission,” in IBMR Vol.15, No.2, April, 1991, P.59. 서구 선교기관이 파송한 선교사들의 3%만이 2/3세계 출신이다.
  • 2) Ibid., p.60.
  • 3) Harvie Conn, “Missionary Encounter with World Religions.” A Taped Lecture by the Institute of Theological Studies.
  • 4) Wilbert R. Shenk, “Theology and the Missionary Task” in Missiology: an International Review. Shenk는 또한 우리의 선교적 과업의 중심적인 것으로 신학을 강조하고 있다.
  • 5) Lois MckiInny, “New Directions in Missionary Education” in Internationalizing Missionary Training, ed. William David Taylor. Baker, 1991, p. 249.
  • 6) Kenneth B. Mulholland, “Missionary Thaining at CoIombia Biblical Seminary and Graduate School of Missions” in Internationalizing. P.147. 여기서 다룬 통합에 대한 설명은 대단히 유용하다고 본다.
  • 7) Ebenezer Sunder Raj, “Missionary Training-The Indian Context” in Internationalizing Missionary Training, pp. 64-5.

관련 글(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