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의 스트레스와 영적전투

현대선교6 (Current Mission Trends): “영적 전쟁”. 발행 : 1994년 12월 25일, 서울:GMF Press. 수록면 : 13-28.

민명홍
한국선교훈련원(GMTC) 연구교수

선교사와 영적전투

영적 싸움은 선교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대의 젊은 학생일 때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후, 처음 10여년간 나는 선교사가 되는 것은 꿈도 안 꾸었지만, 어떤 면에서 매우 깊은 영적 싸움을 경험했다고 생각된다.

내 삶은 한 마디로 갈등의 연속이었는데 그 갈등의 요인은 다른게 아니라 “하나님께 순복할 것인가? 아니면 내 자신의 소욕을 따라감으 로써 사단에게 기회를 줄 것인가?”에 대한 싸움이었다. (약4:7; 벧전5:8; 롬16:19,20; 갈5:16-18; 엡6:10-17)

영적 싸움은 그 양상은 매우 다르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다.

선교사들은 특별히 사단의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을 때(골1:13) 우리는 하나님 왕국의 시민이 되었다.

이제 하나님 왕국의 시민으로서 사단이 통치권을 주장하는 영역에 들어가서 흑암의 권세 아래 있는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일에 헌신한 선교사들에게 사단은 온갖 힘을 다하여 집중 공략을 하는 것이다.

현지든, 본국이든, 효과적인 선교사역을 위한 역할을 담당할 때 사단의 공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사단의 속임수에 속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단의 술책에 대해 예를 들어본다면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을 방해함(고후11:3); 악한자를 통한 거짓기적을 일으키게 함(살후2:9); 거짓을 말함(요8:44); 광명의 천사로 가장함(고후11:14); 궤계를 부림(고후2:11); 하나님께 불순종하도록 충동함(창3:4,5); 불신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복음의 광채를 가리움(엡2:2; 고후4:3,4); 성도들을 비방함(욥1:9-11; 슥3:1); 성도들을 괴롭힘(벧전5:8;눅13:16;계2:10); 성경을 오용함(마4:6); 파멸의 길로 끌고감(눅9:39,42; 요13:2,마27:5); 하나님 말씀을 의심케 함 (창3:1; 마13:19) 등이다.

성경은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라”고 하면서 사단의 속임수와 공격을 인식하고 그를 대적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약 4:7; 벧전5:8). 한 마디로 우리의 싸움의 궁극적 대상은 사람이 아니고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것임을 성경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 일상 생활에서, 사역에서, 대인 관계에서 이 영적 싸움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늘 마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생각과 삶이 하나님께 全的인 통치를 받음으로써 ‘사단의 술책을 인식하고, 속지 말며, 틈을 주지 말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라’는 것이다 (고후2:11; 엡4:27, 6:11).

C.S.루이스나 다른 학자들이 경고한 바와 같이 우리는 마귀에 대한 생각으로 사로잡히거나 아니면 마귀를 무시해버리는 양 극단의 오류를 피하고 균형잡힌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과연 올바른 세계관은 무엇인가? 균형잡힌 삶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관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 삶의 방향성의 기본이 되며, 영적 전투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필수적이다.

그런 면에서 올바른 신학은 매우 중요하다. 균형잡힌 세계관과 삶을 위해서는 성경전체를 뚫고 흐르는 두 가지 명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D.A. Carson은 이것을 ‘補完원리(Compatibilism)’라는 말로 표현했다. (Carson, p.201)

  • a) 하나님은 절대적인 통치자이시다. 그러나 그분의 통치권과 주권이 절대로 인간의 책임을 축소하거나 약화시키지는 않는다.
  • b) 인간은 도덕적으로 자신의 책임이 있는 피조물이다. 인간은 매우 중요한 선택을 하거나 결정을 할 수 있으며, 반역, 순종, 신앙, 불신앙등 자신의 길을 정할 수 있고, 이에 대해 당연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특성은 결코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기에 넣지는 못한다.

성경은 이 두가지 명제를 똑같이 떠 받든다. 이것은 성경의 철학적 해석이 아니라, 성경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자신의 책임이 있다.

때로는 이해가 전혀 안되고 완전히 환경적인 이유로 매우 고통스런 상황이 일어날 때도 있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잘못된 죄의식 (false guilty feeling)을 가져셔는 안된다. 그런데 그 상황에 대한 반응은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의 반응에 따라 그 상황은 밤과 낮이 다르듯이 다른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인간의 반응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일은 결코 없다. 여기에는 팽팽한 긴장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선교사로서의 모든 스트레스도 평가하고 다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즉, 문제점들을 평가하는데 있어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뜻은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심지어 매우 억울하고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인간의 잘못된 반응을 능가하시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기억하고 우리 자신은 사단에게 틈을 주지 않고 주님께 합당한 반응을 보이는 인간으로서의 책임 의식이 영적 전투에서는 필수적이다.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인 순종의 태도를 방해하는 사단의 공격을 민첩하게 인식하고, 사단을 대적하며 (약4:7,8;베전5:8) 全인격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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