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대결과 교회 개척

현대선교6 (Current Mission Trends): “영적전쟁”. 발행 : 1994년 12월 25일, 서울:GMF Press. 수록면 : 56-65.

켄 베이커

* 이 글은 GMF 주최로 1993년 10월 개최된 영적 전투 세미나의 교재의 참고자료로 실렸던 글입니다.

1982년 1월초 파사보로(Fasavolo)족 지도자들은 우리 교회(敎會) 개척(開拓)팀의 물 공급에 관한 제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그반디(Gbandi)마을은 기니(Guinea) 국경(國境) 근처 북부 라이베리아(Liberia)의 고산지 다습(多濕)한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팀의 여러 선교사들은 여러차례 그들에게 그곳 여자들이 물을 긷는 방법이 아주 잘못되고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점을 말해 주었는데 그때까지 그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수인성(水因性) 질병(疾病)으로 인해 병(病)이 들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마을 위쪽으로 약 100 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바위위로 진흙이 섞인 샘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 샘은 물의 양이 적어서 작은 항아리 하나를 채우는데 10분 가량이 소요되었다. 그런데 여인들과 아이들,염소,개등이 그 샘 주위를 어지럽히고 있어서 오염이 가중되고 있었다. 거기서 500 미터 쯤 떨어진 곳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다른 샘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샘에 뚜껑 같은 것을 설치하고 이를 파이프로 연결하여 정수조(淨水槽)로 끌어오도록 하자는 제안을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되면 온 마을이 깨끗하고도 편리한 물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우리들은 마을사람들이 그렇게 하려고만 한다면 물자(物資)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우리들이 그곳에서 지낸지 몇달 밖에 되지 못하였으므로 우리중에는 누구도 그반디어(語)를 구사하는 사람이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노인들이 우리의 제안에 대해 회답하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들의 그러한 제안을 당장 받아들이리라고 생각 했었다. 드디어 지도자들이 우리에게 와서 대답하기를 우리들의 제안은 고맙지만 받아들일수 없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마을의 여인들이 모두 영적(靈的)인이유로 그 제안을 거절(拒絶)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더러운 샘은 다산(多産)을 위한 의식(儀式)과 제사를 위해 쓰여지는 거룩한 것이었으므로 그 샘을 건드린다는 것은 자녀(子女)를 낳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나는 그러한 결과에 대해 대단히 놀라고 화가 났었다. 나는 풋내기 선교사로서 그일을 서구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해석하였고 따라서 모두가 어처구니없는 일로 보였던 것이다.

이러한 일은 현대적인 사고를 저버린 해묵은 두려움과 미신의 한가지 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그러한 이유로 그처럼 명백한 발전의 기회를 외면한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여러 해가 지난후 나자신의 생각에 변화가 있었음을 느낀다. 그후 서부 아프리카의 여러지역에서 일을 하면서 나는 그들의 문화, 세계관, 사역, 영적 전쟁등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되었다.

1982년에 파사보로에서 우리 팀은 그곳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던 어둠의 세력과 맞서 싸울수 있는 기회를 잃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 별로 오래 머무르지 않았던 내가 그점에 관해 무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일 이후 나는 영적 전쟁에 관해 보다 깊은 이해와 의식(意識)을 갖게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당시 나는 악한 세력에 맞서는 능력 대결에 관하여서는 아무런 의식도 없었던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 문제는 나만 갖고 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복음주의자들은 사탄(Satan)이 실재(實在)하고 있으며 우리들에게 영적 싸움을 도발(挑發)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도발에 대한 우리들의 반응은 무엇인가?

사도 베드로는 우리들에게 “근신하여 깨어라”(벧전 5:8)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영적 싸움을 당하면 대부분 우둔하고 경솔하게 반응하며 또한 그런 일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내가 어려서 교육을 받을 때는 악령들의 활동은 별로 강조되지 않았다. 그러한 일을 부인(否認)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가볍게 다루고 넘어갔던 것이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셨다는 것과 우리가 시험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영적이던 육적이던 간에 모든 문제들은 악령과는 상관없이 이해되고 설명되었다. 우리들은 귀신에 관한 일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이상한 눈으로 보아온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서구 문화에 있어서 마술등이 점차 성행(盛行)하고 있음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들과는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복음주의 교회들은 확산일로에 있는 영적 전쟁의 실재에 대해 커다란 맹점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웅거(Unger)가 잘 지적한 바와 같이 사탄의 역사에 관한 그리스도인들의 반응은 “성경적이고 실제적이라기 보다는 신학적이고 이론적인 경향이 있다.”1Merrill Unger, What Demons Can Do to Saints (Chicago:Moody Press, 1977), P.9.

나는 근래에 와서야 영적 전투의 실재에 주목(注目)하게 되었다. 내가 속해있는 복음주의 진영에서 사탄을 그저 “이교도의 세계”에 국한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들이 현실을 서구적,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식하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문제는 ‘인식과 세계관’ 의 문제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현실 인식은 일반적인 서구인들의 인식과 다를 바가 없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영적 전쟁의 중요성을 파악하지 못한 이유이다.

동과 서의 만남

라이베리아의 몬로비아에서 나의 제자훈련 그룹에 속해 있던 한 젊은이가 나를 찾아 왔다. 그는 그의 마을로 돌아가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했으나 그의 삼촌이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더이상 숲의 결사(結社, bush society, Poro)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주를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두려움과 걱정에 가득차 있음을 보고서 나는 그와 함께 짤막하게 기도하고서 그가 예수를 믿게 되었으므로 저주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때의 나의 반응은 아직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의 그러한 말에 만족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후 그를 삼개월 이상 보지 못하였다. 그는 마을에서 돌아와서 나에게 그가 몹시 아파서 거의 죽을뻔 했다고 말하였다. 마을에 있는 동안 자신이 다시는 살아서 마을을 떠날 수 없을 것이라고 두려워했었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그가 아마 오염된 물이나 다른 어떤 것을 마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서구적인 과학적 세계관으로는 그 사건을 그렇게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사건과 또 그와 유사한 다른 많은 사건들은 나의 가르침과 상담이 전혀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였다.

나의 이러한 경험은 독특한 것이 아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정령숭배적(animistic)인 믿음과 풍습에 대한 그들의 반응이 적절치 못한 것임을 알고 고민한다. 우리들은 적절한 훈련이나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귀신의 실재를 부인하거나 그 능력이나 영향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 심각한것은 그러한 일이 모두 미신(迷信)과 두려움이라고 말해버린다. 우리는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만, 실제로는 중간적인 역할을 하는 영적(천사와 같은)세계의 역할을 부인한다. 그러나 정령숭배자(animist)들의 삶에 있어서는 그러한 존재가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폴 히버트(Paul Hiebert)는 그러한 것들을 “소외된 중간지대의 빈 부분(the flaw of the excluded middle)”이라고 했다.2Paul Hiebert, “The Flaw of The Excluded Middle.” Missiology: An International Review, Vol. 10, January, 1982, pp.35-47.

잠재된 위험

정령숭배를 하는 마을 사람이 선교사에게 “돌아가신 할머니가 저를 괴롭힙니다. 어떻게 하면 좋죠?” 라고 묻는다면 우리들은 우선 서구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하여 “두려워 마십시요. 사람이 죽을 때에 영은 육에서 분리(分離)되어 영원한 곳으로 갑니다. 당신의 할머니의 영은 더이상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하기 쉽다.

그러한 대답은 신학적으로는 옳은 것이지만 문제에 대처하는데는 충분치 않다. 그런데 겉으로는 만족한 듯이 보이는 경우라도 묻는 사람이 우리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므로 매우 위험하다.

오히려 그러한 괴로움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의 괴로움이 마귀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죽은 친척의 가면을 쓰고 악령이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의 작가(作家)인 존 미비티(John Mibiti)는 이렇게 말한다.

전통적인 환경엣 자라난 아프리카인들은 분명히 누구나 이와같이 마술이나 점술, 강신술(降神術) 등 과학적 설명을 비웃는듯한 이상한 현상을 통해 경험되어지고 나타나는 신비한 힘에 관해 알고 있다. 이러한 신비한 힘은 꾸며낸 것이 아니다. 즉,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아프리카 인들에게 그것은 실재하는 것이며 고려해야 할 대상이다.3John Mbiti, quoted in “Demonism on the Mission Field”, by George Peters. In Demon Possession, John W. Montgomery, ed. (Minneapolis: Bethany Fellowship, 1976), P.196.

전통적으로 서구에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경험들은 원시적인 미신의 차원에 속한 것이며 그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과학적인 지식으로 계몽되어야 할 대상으로 무시해 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이 정령숭배자들이 우리 대부분이 무시하는 실재하는 영역을 인정하고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이들을 올바로 인정해야 한다.

즉 정령숭배자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두려워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재하며 능력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정령숭배자들은 진정으로 예수를 그들의 삶에 있어서 주님으로 고백할수 있게 되기 전에 우선 이러한 실재에 대해 만족할 만한 설명을 들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혼합주의에 빠져 분리된 삶(divided life)을 살게될 위험이 있으며, 언제나 그들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발견해 왔던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릴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악령의 실재를 회피하거나 더 나아가 부정(否定)하려는 선교사들은 토착교회에 혼란을 야기시킨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예수께서 귀신들을 쫓아내신 것을 가르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귀신들림의 문제를 교회사역의 영역속에서 다루려하지 않는 것이다.4Donald Jacobs, “Possession, Trance State, and Exorcism in Two East African Communities” In Demon Possession, op. cit., p.180.

그러므로 정령숭재자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아내어 양편을 모두 이용하게 된다. 그들은 죄에 대한 용서와 영생을 위해서는 교회를 찾고, 교회나 선교사가 답하지 못하는 문제에 관하여는 무당이나 신들린 사람을 찾아 간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예수님과 교회가 예수께서 가장 큰 위엄과 능력을 보여주셨던 바로 그 분야에 관해 무력(無力)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5Donald Jacobs, Demons (Scottdale, Pa.:Herald Press, 1972), p.34ff.

너무나 자주 선교사들은 사람들에게 접근하면서 사람들이 선교사들의 이해의 수준에서 선교사들을 만나줄 것을 기대한다. 선교사들은 사람들이 자신(마을 혹은 부족 사람들)의 세계관과 경험을 무시하기를 바란다. 선교사들이 바로 그 사람들의 수준에서 그들의 의문에 대해 해답을 주고 그들의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그들은 결코 그들의 삶 전체의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능력 대결과 사역

능력 대결이 언급될때면 언제나 여러가지 이미지가 마음에 떠오른다. 특히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 사이의 대결이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이다(왕상 18). 혹은 예수께서 무덤사이에 있는 사람에게서 귀신들을 쫓아낸 것을 생각하기도 한다(막 5). 또는 복음을 받고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진 사람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에 관한 티모시 와너(Timothy Warner)의 다음과 같은 정의가 포괄적이며 실제적이라고 생각한다.

능력 대결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비교할 수 없는 큰 능력(엡 1:19)을 ‘믿는 우리’ 를 향해 보여주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것(골 2:15)과 성령의 사역에 근거하여(행 1:8)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을 공격하거나 불신자들을 지배하는 사탄과 악령들의 활동에 대항하여 승리하고(눅 10:19),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멸망받을 영혼을 구원하거나(때로는 동시에) 믿는자들을 견고하게 세워나가려는 것이다.6Timothy Warmer, “Power Encounter” class notes,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1988.

능력 대결은 단수(單數)보다는 복수(複數)로 표현하는 것(power encounters)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악한 세력에 맞서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결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나 그 각각은 능력 대결중의 하나로 이해된다. 즉 각각의 능력 대결은 보다 큰 영적 전쟁의 영역속에서 일어나는 전투인 것이다.

그러한 대결은 그 형태가 어떻든 간에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능력과 힘을 갖고 계시고 악한 세력은 그 권세(權勢) 아래 있어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진리를 선포하고 확립하는 것이다. 사단과 그의 종 귀신들은 그러한 진리를 막을 수 없다. 사탄은 거짓의 아버지이며 속임수의 거장이고 모든 선한 것을 거스르는 자이다.

능력대결에 있어서 사탄은 진리앞에서 스스로의 본색을 드러내고 창피를 당하게 된다. 우리 믿는자들은 누구나 그리스도안에서의 신분에 근거하여 마귀를 꾸짖고, 어두움의 권세를 이기는 주님의 놀라운 권세를 선포할 수 있는 권위와 책임을 부여 받았다.

능력대결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영적 싸움에 대한 깊은 민감성을 가져야 한다. 이는 우리가 이러한 일에 몰두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고 사탄의 영향력이나 그 역사(役事)의 실재를 인식할 수 있도록 민감해져야(tuned in)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성경적 관점을 갖게 되어 실재하는 세가지 영역 – 하나님, 천사들, 그리고 인간을 인정하고 그것이 우리의 사고를 변화시키게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사역을 새롭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사진기의 렌즈를 움직여 영상의 촛점을 맞추듯이 영적 전쟁도 보다 선명하게 이해될 것이다.

나 자신의 견해도 그런 과정을 거쳐 변화했다. 나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긴 했으나 실제로는 귀신들의 역사(activity)나 신자로서의 나 자신과의 관계등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사탄의 힘과 그것이 야기시키는 두려움의 명백한 실재를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보고 경험함으로써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의 서구적인 세계관은 흔들리게 되었고 결국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한 세계관으로는 사탄의 영역을 설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서구의 합리주의가 영적 세계에 대한 나의 이해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성경적 세계관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됨에 따라 나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나의 영적 권위에 대하여도 이해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그의 권세를 갖고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사람들을 영적인 무지속에 가둔 권세에 맞서기 위해 사탄의 통치권 속으로 침투하여 일하라고 하신다.

사도 바울의 경우처럼 우리들의 과업은 사람들을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지배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행 26:18)” 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전도야 말로 가장 기초적인 능력대결의 한 유형임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악한 세력을 저지하고 그들의 악한 계획이 진리앞에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사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는 믿는자로 하여금 어두움의 세력에 맞서게 하는 확신을 갖게할 수 있다.

어떤 대결에 있어서나 악령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권세아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한 확신은 우리들로 하여금 사탄과 그의 어떤 악한 욕망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만든다.

결론

나는 교회개척사역 특히 정령숭배자들을 위한 교회개척 사역에 있어서의 능력 대결의 역할을 생각해 보았다. 능력 대결은 전도에 관한 일반적인 훈련 과정에는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은 바로 기능적 실재로부터 악령들을 배제하는 서구적 세계관이다.

대조적으로 정령숭배자들의 세계관에서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영적 세계를 인정한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로 인해 양편 모두에 상당한 오해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초문화적인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은 귀신과 천사들을 일상생활의 기능적인 요소로 파악하는 성경적 세계관에 있다.

성경은 신자들과 사탄의 영역에 속하는 적대 세력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사탄과 악령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승리로 말미암아 패배하였고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고 하늘나라로 들리움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악한 세력에 대해 그리스도의 권세를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사탄을 대적하고 그의 계교를 무찌르는데 두려움이 없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들에게 우는 사자와 같은 원수들을 경계하라고 경고하였다(벧전 5:8-9). 사탄의 세력을 대적하고 싸우는 것은 어떤 문화에 속해 있던지 간에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당연한 일이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정령숭배 사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 일이다.

확고한 성경적 가르침과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사역 가운데 이 능력 대결의 사역을 펼쳐간다면 이 사역은 정령숭배자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END NOTES

  • END NOTES
  • Merrill Unger, What Demons Can Do to Saints (Chicago:Moody Press, 1977), p.9.
  • Paul Hiebert, “The Flaw of The Excluded Middle.” Missiology: An International Review, Vol. 10, January, 1982, pp.35-47.
  • John Mbiti, quoted in “Demonism on the Mission Field” by George Peters. In Demon Possession, John W. Montgomery, ed. (Minneapolis: Bethany Fellowship,1976), p.196.
  • Donald Jacobs, “Possession, Trance State, and Exorcism in Two East African Communities.” In Demon Possession, op. cit., p.180.
  • Donald Jacobs, Demons (Scottdale, Pa.:Herald Press, 1972), p.34 ff.
  • Timothy Warner, “Power Encounter” class notes,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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