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선교와 회심

현대선교7 (Current Mission Trends): “선교와 회심”. 발행 : 1995년 9월 10일, 서울:GMF Press. 수록면 : 5-30.

이태웅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TEDS) 선교학 박사(D.Miss) 현재 (사)한국해외선교회(GMF) 이사장 및 세계복음주의 협의회 선교 위원회 (WEF/MC) 회장.

서 론

주후 1960년대까지는 세계 선교에 있어서 회심이 차지하는 위치는 확고부동했다. 이는 선교의 목표 자체가 세계 복음화라는 움직일 수 없는 커다란 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틀 속에서 선교단체와 교회와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총체적인 선교(Holistic Mission)가 실현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판단은 1960년대에 와서 급선회하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세계 선교의 긍극적인 목표가 성서적인 의미에서의 세계 복음화가 아닌 데에서부터 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더 나은 세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1David Bosch, Witness to the World. Atlanta : John Knox, 1980, pp.178-80. 선교의 틀로 변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은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조직적으로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를 재해석하고 그 틀에 맞춰서 선교신학을 형성해가는 운동과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은 1910년 이후에 일어난 에큐메니칼 운동으로서 특히 1960년대에 이르러서 선교의 방향을 전환시키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맥가브런(McGavran)은 이런 선교를 “새로운 선교”(New Mission)라고 명명했다. 이 선교의 주역들은 필 포터(Philip Potter), 에밀 카스트로(Emil Castro)등 WCC운동을 이끄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새선교 신학을 형성하는데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2Donald McGavran, “The Conciliar Theology of Mission” in Contemporary Theologies of Mission, Authur F. Glasser & Donald A. McGavran, Rapids : Baker, 1983, P.69.

로마 카톨릭교회 선교에 있어서는 바티칸 제 2차 공회(Vatican Ⅱ)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궁극적으로 볼 때 회심의 의미에 가장 두드러지게 영향을 준 해방신학도 여기에 제일 큰 뿌리를 내리고 있다. 복음주의 진영에 있어서도 큰 변화를 경험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로잔 제 1차 대회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커다란 그림을 가지고 이제 선교와 회심의 관계에 대해서 세 가지 관점에서 고찰해 보는 것이 좋겠다.

첫째로 사도들과 초기 현대 선교사들에 있어서 선교와 회심의 관계를 검토해 보고, 둘째로 선교에 있어서 회심의 의미가 변절된 이유를 규명하고, 셋째로 어떻게 해야 선교에 있어서 회심의 중요성을 재인식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Ⅰ. 사도들과 초기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선교와 회심의 관계

오순절이후 사도들이 강조했던 가장 중요한 면은 회심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베드로 사도의 설교내용과 설교를 듣고 변화된 모습으로 가정에서 모여 예배드리고 교제한 초대교회 성도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3사도행전 2:38-47.

베드로와 요한이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를 고친 후에도 예외없이 회심을 강조하는 멧세지를 전했다. 그 결과 5000여명이 믿게 되었고 그 여파는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까지 나타났다.4사도행전 3:1-4:12.

스데반의 긴 설교도 역시 회심을 목표로 한 설교였음을 알 수 있다. 회심이란 말 자체는 나오지 않지만 이 멧세지를 들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울과 그밖에 청중들을 회심시키려는 의도가 스데반에게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5사도행전 7:54-8:1, 22:20.

사도행전 저자는 에디오피아의 내시가 정규적인 종교집회에 가서는 삶의 변화를 받지 못했으나, 이사야서에 나타난 고난받는 구속주에 대한 빌립의 강해를 듣고서는 변화를 받아 세례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6사도행전 8:26-40.

무엇보다도 가장 현저한 회심에 대한 강조는 사울의 개종 간증을 통해서 나타났다. 이것은 주님께서 직접 사울에게 나타나심으로써 이루어진 것으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또 다시 잠깐 나타나셔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으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일을 제쳐놓고 사울을 회심케 하는 일 하나만을 택하신 사실을 보아서도 회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후에 바울 사도는 자신의 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역은 회심케 하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씀했다.7사도행전 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이는 바울 사도가 에베소 지역에서 행한 선교사역의 요약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바울이 아그립바왕 앞에서 증거할 때도 아그립바왕은 자기를 회심시키려는 바울 사도의 의도를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이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회심] 하나님께 원하노라.”8사도행전 26:28-29.

지금까지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나타난 회심과 선교와의 연관성들만 보았다. 이상의 것들만 보아도 성서적인 선교는 회심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잠깐 바울 서신을 보기로 하자. 바울 서신이 대부분 선교 상황 속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선교와 회심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가령 로마서 1-8장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그 후에 죄성이 없어지는 과정을 말씀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회심의 큰 그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같은 책 9-16장까지는 회심 후에 갖는 성도들의 성서적인 역사관과 사랑의 행위들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회심에 대해 표현한 부분은 살전 1:9-10 말씀이다. “저희[선교지민]가 우리[선교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회심]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이것은 선교와 회심의 불가분의 관계와 회심의 정의와 성격을 간단 명료하게 표시한 가장 중요한 성서적 근거이다. 다른 바울서신이 그렇듯이 데살로니가전서 역시 선교 상황 속에서 쓰여진 것으로 미루어 볼 때에 다시 한번 선교와 회심의 밀접한 관계를 알 수 있다. 이 짧은 글에서 성서 전체를 관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상의 내용들에 입각하여 선교와 회심의 연관성에 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첫째로, 사도들과 초대교회 전도자들은 회심을 선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둘째로, 회심을 통해 피선교인들의 삶이 변했다. 이들은 변화된 생애와 새로운 차원의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셋째로, 변화된 이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서 교회를 개척하고 새로운 관계들을 맺고, 또 다른 사람의 회심을 위해서 자신을 바쳤다.

이런 선교형태는 다만 하나의 페러다임(paradigm)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에 나타난 불변하는 선교의 형태이다.9David Bosch는 그의 마지막 대 저서 (Transformation of Mission. Maryknoll: Orbis, 1991)에서 선교신학이 Paradigm Shift를 통해 상황에 따라 달리지는 것으로 묘사했는데, 성서적 선교는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개념이 아니다.
Donald McGavran, “New Mission : A Systematic Reinterpretation of the Concept of Mission” in Comtemporary Theologies pp. 47-48에서 보듯이 양태는 교파와 단체에 따라서 다소 다르나 회심은 선교의 그 핵심 교리였다.


초기 현대 선교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로부터 시작해서 1960년대까지 선교사들은 회심의 멧세지를 중시하는 선교신학을 고수했다.

윌리엄 캐리가 쓴 선교에 대한 중요 문헌을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캐리가 현대 선교운동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책자도 역시 이교도들의 회심을 그 핵심으로 하는 내용이었다. 이교도의 회심을 위하여 수단을 강구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관한 조사10Herbert Kane, 생명말씀사 刊, 1981년 한국책 펴냄, p.123.란 제목이 이를 잘 반영해 주고 있다. 회심에 대한 중요성은 그 이외에도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모라비안 교도들외 수많은 선교사들에 의해 강조되었다.

그러나 1960년 이후 선교신학이 위기를 맞이하면서 회심의 의미도 퇴색되거나 변절 또는 무시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에큐메니칼 진영에서만 아니라 카톨릭교의 선교와 심지어는 복음주의 선교에서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복음주의 선교에서도 정도는 다르지만 서서히 회심의 의미가 변질되거나 중요성이 감소되고 있다.

Ⅱ. 선교에 있어서 회심의 의미가 변절된 이유

A.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교신학적 관점에서 본 이유

1. 초기 다원주의의 영향
에큐메니칼 운동이 시작되고서도 어느 기간 동안은 선교에 있어서 회심이 중시되었다. 그러나 서서히 회심의 의미와 그 중요성이 등한시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회심에 대한 경시하는 징조들은 먼저 1960년 이전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의 하나가 어니스트 하킹(Honest Hocking)의 “선교의 재고”(Rethingking Mission)라는 보고서 사건이다.

하킹은 1928년 세계선교협의회(IMC)의 예루살렘 대회 이후에 세계를 여행하면서 선교사들을 방문하며 자료를 수집했다. 그 자료에 근거해서 그는 현 상태의 선교에 대해서 재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보고서를 내게 되었다. 그는 이교도들의 기독교로에로의 회심이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11R.E. Hedlund, Roots of the Great Debate in Mission. Madras : Evangelical Literature Service, 1981, PP.55-56. 이 보고서는 타종교에 대해 호의적이며 회심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었다.

1938년에 열린 세계선교협의회 대회에서 헨드릭 크레머(Hendrik Kraemer)에 의해서 그의 생각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패배이고 후에 종교 다원주의 사상은 에큐메니칼 선교신학계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일시적인 승리는 광의적 전도 개념이 선교에 침투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회심을 중요시하는 선교에 보이지 않는 타격을 주었다.

2. 광의적 전도(Larger Evangelism) 개념의 등장
회심을 등한시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광의적 전도 개념의 등장이다. 1938년에 열린 국제선교협의회의 마드라스 대회에서는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으므로 선교를 하는데 회심이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하킹과, 타종교에는 구원이 없으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헨드릭 크레머가 대결하게 되었다.

이 대결에서는 크래머의 승리로 끝났다. 그는 성경의 계시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타종교와 혼합주의적인 요소를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12Ibid., p.65. Kraemer는 다음과 갈이 주장했다. “가장 숭고하고 훌륭한 종교라 할찌라도 회심와 중생이 펄요하다. 그 이유는 이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안에서 주시는 선물인 ‘속죄’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후 발트(Barth)신학의 영향과 필립 포터(Philip Potter)등의 지도력으로 인하여 광의적 전도 개념이 에큐메니칼 운동에 침투하기 시작했다.13Arthur Johnston, The Battle for World Evangelism Wheaton : Tyndale, 1978, p.64.

발트 신학은 전도에 있어서 인간의 필요를 중시했다. 궁극적으로 발트신학의 영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는 성육신을 더 중시하고, 영원한 심판보다는 이 세상에서 인간의 필요를 채워주는데 더 관심을 갖는 방향으로 전도가 흘러가게 만들었다.14Ibid., P.70. 이러한 차원의 전도를 영혼이 회심하여 구원받는다는 기존의 전도개념과 구별하여 광의적 전도(Larger Evangelism)라고 했다. 더 나아가서 이는 총체적 전도(Holistic evangelism)의 초기 형태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당장에 큰 세력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후에 회심을 간과하거나 혹은 경시하는 선교신학 형성의 한 지류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15David Bosch, Witness to the World. Atlanta : John Knox Press, 1980, pp.167-70. 보쉬는 이당시 사회적 봉사를 강조히는 것이 정도에 지나쳐서 복음전파를 격하시키는데 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광의적 전도에 있어서의 회심은 성서적이고 하나님 주도의 변화가 아니라 “계속적인 과정”(continuing process)으로 본다.16Hedlund, Roots. P.77.

3. 세상 중심 신학(Theology of the World)으로의 전환
1947년에 있었던 휫비(Whitby) 세계선교협의회 대회를 기점으로 해서 호켄다익(Hoekendijk)이란 화란 선교학자가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당시 있어서 선교신학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의 지론은 교회는 단순히 선교를 목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선교를 하지 않을 경우 교회의 존재가치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원래 존재하던 하나님, 교회, 세상의 순서에 따라서 선교가 진행되던 것을 거꾸로 바꾸어 놓았다. 즉 하나님, 세상, 교회의 순서로 재정립했던 것이다. 이로써 호켄다익은 세상이 선교의 중심이지 교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서 세상은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왕국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선교는 교회에서 교회로 되는 것이 아니라 “왕국(Kingdom)에서 세상(World)”으로 직접 가는 것으로 여기에 교회가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선교의 형태를 그는 샬롬(shalom)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구속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인 개념”(social happening)과 “도덕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화목이란 것은 범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인간화”(humanization)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17Bosch, Witness. pp.176-78. Hedlund, Roots. pp.82-3.

이같은 호켄다익의 사상은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하는데는 유익이 있었다. 반면에 교회를 단지 선교의 수단으로만 보는 오류를 범했다. 또 세상을 왕국과 동일시하는 소위 세상 중심(Theology of the World)신학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런 선교신학에서는 성서적인 회심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죄의 개념도 성서가 말씀하는 것과 다르다. 이들은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 죄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보다 나은 사회로 만들어가는 “인간 중심 선교”(human mission) 곧 인간화가 선교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선교신학의 경향은 1960년대 이후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으로서 그 자리를 굳히게 된다.18Bosch, Witness. pp.178-81.

4.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개념의 변절
1952년 세계선교협의회 윌링겐(Willingen) 대회에서는 교회와 선교의 관계를 그 주제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들이 교회의 선교에 대하여 논의하는 중에 보다 근본적인 선교의 기초가 무엇인가를 규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선교의 시작점은 궁극적으로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로써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개념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하나님의 선교”는 그 의미와 성격이 계속 변하게 되었다. 1960년 이후에는 “하나님의 선교”는 “교회와 상관없이도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하나님의 숨은 행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교회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숨은 행위이며, 교회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하나님의 행위들을 발견하여 참여해야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19Ibid., p.180. Gospel, Church & Kingdom; Comparative Studies in World Mission Theology. Minneapolis : Augsburg. 1987. p.98. Missio Dei의 원래 개념은 매우 성서적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과 화목되는 것을 의미했다.

“하나님의 선교”는 “인간화”, “해방신학” 등의 선교신학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공식이 되었다. 에큐메니칼 진영에서는 1960년대 이후 “하나님의 선교”를 그들의 공식적인 선교신학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런 선교신학의 방향은 회심을 선교와 불가분의 관계로 생각했던 사도들과 초대 전도자들과 초기 선교운동 이후의 선교사들이 펼친 선교와는 전혀 다른 양태의 선교를 전개하게 만들었다. 회심 대신 봉사와 구제, 가난과의 투쟁과 정치 구조의 변경 등의 사회 참여와 사회운동 행위로 이어지게 했다.

5. 증거에서 대화로의 전환
기독교가 갖는 타종교에 대한 입장들은 편의상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유일주의”(Exclusivism)이다. 이는 바르트(Barth)같은 사람들이 주장한 것으로 다른 종교에는 결코 하나님의 계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다른 종교는 기독교와 불연속(discontinuity)상태에 놓여있다고 본다.20Chris Wright, What’s So Unique About Jesus? Eastbourne : MARC, 1990. pp.33-34

두번째는 “포용주의”(Inclusivism)가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모든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빛(divine logos)이 있다 한다. 그리고 그 빛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이므로 그리스도는 우주 가운데 내재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모든 진정한 타종교인과 비그리스도인들은 은밀히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이 주장에 따르면 타종교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이 회심을 하지 않고서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7)는 이런 사람들을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이라고 불렀다.21Ibid., p.41.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은 아마도 폴 니터(Paul Knitter)이며, 그는 그의 저서 다른 이름은 없는가?(No Other Name)에서 그의 이론을 표명했다.22Paul F. Knitter, No other Name? – A Critical Survey of Christian Attitudes Toward the World Religion MaryKnoll : Orbis, 1986.

그는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분도 아니시며 모든 종교의 기준(Normative)이 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는 다만 하나님이 세상에 나타내시고자 하는 계시와 구원의 “표현”(manifestation)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23Ibid., pp.171-72. 즉, 다른 종교 가운데서도 이와 같은 “표현들”이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결국 기독론적(Christo-centrism) 축에서 신적(Theo-centrism)축으로서의 전환(paradigm shift)을 전제로 하고 있다.24Lesslie Newbigin, “Religious Pluralism and the Uniqueness of Jesus Christ,” in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ch. (IBMR hereafter) 1989.4. p.51. 결국 구원은 타종교에도 있으므로 반드시 회심을 통해서만 구원 받을 필요는 없게 된다.

셋째로 다원주의(Pluralism)가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으며 계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견해이다. 죤 힉(John Hick)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 말할 수 있다.

포용주의에서는 타종교에서도 구원이 있으나 그것도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본다. 이는 이세상의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원주의에서는 타종교 가운데에도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25Gavin D’ Costa, “the New Missionary : John Hick and Religious PluraIity” in IBMR. 1991. 4윌호 pp.66-69.

에큐메니칼 운동사를 보면 세계선교협의회의 1928년 예루살렘 대회에서 미국 쪽의 하킹등이 다원주의 입장을 취했었다. 그러나 1938년 타람밤 대회에서 핸드릭 크레머의 활약으로 일단 유일주의가 승리하였다. 그러나 1961년 세계선교협의회가 세계교회협의회(WCC)와 합병한 후 새로운 계기가 왔다.

1960년말 세속신학이 선교신학을 지배하는 가운데 유일주의에서 벗어나 포용주의와 다원주의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선교의 방법도 “증거”(witness)에서 “대화”로 전환되기 시작했다.26John R.W Stott, Christian Mission in the Modern World Downers Grove : Inter-Varsity Press. 1975. p.65-6. Johnston, Battle. p.148, 231. Kim-Sai Tan, The Great Digession. Malaysla : Bike Seminary. 1981. p.64.

1971년에 “대화”에 대한 신학적 지침이 제시된 이래 1977년에는 챙마이 선언(Changmai Guideline)이 있었고, 이는 1979년에 개정되어 “대화”는 보다 보편화된 선교양식이 되었다.27Bosch, Witness. p.188. 물론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과 교회가 “대화”를 통한 선교로만 일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계 선교와 전도위원회(CWME)의 총재인 유진 스톡웰(Eugene L. Stockwell)도 이를 부인했다.28Eugene L. Stockwell, “Mission as Seen from Geneva : a conversation with Eugene L. Stockwell”, in IBMR July 1987. p.116.

그러나 선교신학적으로 타종교를 통한 구원을 인정하게 된 것은 에큐메니칼 선교가 구원과 회심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관심사에 그 역점을 두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이는 선교 그 자체를 서서히 상실케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6. 해방신학의 출현
1968년 웁살라 대회에서 주장한 선교의 의미는 인간화였다. 이로써 새 인간을 창조하는데 역점을 둔 “샬롬” 신학이 선교신학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이런 선교신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전통적인 의미로서의 전도는 양을 도적질(proselytism)하는 것으로 보았다.

“회심”의 의미도 재해석 되었다. 올바른 “회심”은 오히려 “세상으로 향하게 하는 것”으로 재정의를 했다.29Hedlund, Roots. P.113. 니콜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웁살라 총회 이후 구원사로서의 선교는 교회의 구원보다는 도리어 점점 역사와 세상의 구원이 되었다. 교회와 세상의 경계선은 모호해졌다.”30부르스 니콜스, 「상황화 : 복음과 문화의 신학」, 생명의 말씀사, 1978(영어편) / 1992(한국어판), p.29.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고 이들은 보았다. 이는 원래 1952년 웰링겐 대회에서 채택한 “하나님의 선교”의 의미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제는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교일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또 일부 해방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건설적인 폭력을 사용해서 정치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나, 인권운동, 노동운동등도 선교라고 규정지었다.31Arthur F. Glasser, “Liberation Theology Bursts on the Scene” in Contemporary Theologies. p.165.이는 선교가 성서적인데서 벗어나 막스주의 영향까지도 포용하는 것이 되었음을 의미한다.32Ibid., p.159.

이같은 변화들은 1973년 방콕에서 있었던 “오늘의 구원”이란 주제로 열린 세계선교와 전도 분과회(CWME)에서 좀더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필 포터는 인간을 얽매이게 하는 모든 것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회심의 의미도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모든 요인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33Donald McGavran, “The Current Conciliar Theologies of Mission”, in Contemporary Theologies. p.68.

이같은 추세는 1975년에 열린 WCC 나이로비아 대회로 연결된다. 여기서는 드디어 인간화와 샬롬이 너무 제한적인 개념으로서 복음과 사회참여를 구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결국은 선교가 정치적 변화까지도 초래해야한다는 개념이 형성된다.

이로써 해방신학이 샬롬과 인간의 선교신학으로 대체되며,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선교비 일부를 인권투쟁을 하는 게릴라에게도 공급하는 것을 정당화하게 된다.34McGavran, “New Mission”, pp.49-57. 이같은 추세는 80년대말 90년초 공산세계가 와해될때까지 엄청난 충격을 선교계에 던지게 된다.

90년 중반에 들어서면서 해방신학의 세력은 고개를 수그리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 20여 년간은 해방신학에 의해 선교신학이 잠식되었다.

해방신학에 있어서의 회심은 결코 성서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다. 여기서는 구원 자체가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의미를 갖지 않게 되기 때문에 회심도 의미가 달라진다. 구원 자체는 관심사가 되지 않고 모든 인간성을 무시하는 모든 제도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그 축으로 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회심도 결국은 그러한 축에 맞는 의미를 띠게 된다. 이들에게는 의식화를 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새 의식을 갖게 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새의식을 가짐으로써 가난한 자와 압박하는 자들이 자신의 정체를 인식케 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새 질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계층간의 갈등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와 같은 의식을 갖는 것이 세상으로 향해 전환하는 것이요, 곧 “회심”이다. 이는 세상에서 우상을 등지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회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35Emilio A. Nunez, Liberation Theology. Chicago : Moody, 1985. p.203, pp. 204-45

B. 바티칸 제2차 공회(Vatican Ⅱ) 이후의 선교신학과 회심의 중요성이 감소된 이유

로마 카톨릭 선교역사상 가장 커다란 사건 중의 하나는 바티칸 제2차 공회일 것이다. 이 공회를 통해서 여러가지 중요한 선교신학적 문서들이 나왔다. 그 중에서 선교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문서는 “선교에 관한 문헌”(Ad Gentes, 1965)과 “교회론에 관한 문헌”(Lumen Gentium, 1964)과 “타종교와 로마 카톨릭교에 관한 문헌”(Nostra Aetate, 1965) 이다.

대체적으로 요약하자면 교회자체 갱신으로는 부족하며 교회가 선교사명을 인식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 문서는 기록하고 있다.36W. Richey Hogg, “Vatican II’s Ad Gentes : A Twenty-year Retrospective , in IBMR. 1985. 10. p.146. 따라서 세상과 이웃과 타종교 등에 대한 관계도 지적하고 있다. 선교상황 속에서는 선교사가 문화적으로 동일시하고 토착신학을 강조해야 하며 연합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교원리로서는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개척을 한 후에 교회는 연합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전 교회는 전 복음을 전 세상에 선포한다는 것을 강조했다.37Donald McGavran, Official Roman Catholic Theology of Mission”, in Contemporary Theologies. p.185, 189-90. 이 문서들은 전반적으로 매우 성경적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기저기에 비성경적인 면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에 바티칸 제2차 공회 문서들을 해석하는 것이 지역과 사람들에 따라 달라서 매우 큰 혼돈을 초래했다는 데 있다.

간하배(Harvie Conn)박사는 바티칸 제2차 공회의 이같은 새 선교 방향이 최소한 중요한 세 가지 종전의 입장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한다.

첫째로, 오직 교회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타종교의 다른 길로써도 하나님께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로 보았을 때 비그리스도인은 더이상 비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이젠 기독교가 유일한 참 종교로서의 위치를 더이상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로, 로만 카톨릭교가 더이상 기독교를 독점하지 않고 독점의식을 포기한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신교도들을 형제들이라고 인정하기 시작하였고, 연합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바티칸 제 2 차 공회는 결과적으로 타종교에 대해서 비난하지도 않고, 공식적으로 좋은 점은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유대교는 그렇게 하였다. 그리고 종교는 모든 인간을 빛으로 인도하는 외적 표현이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타종교와의 대화를 인정하고 대화를 이끌어가기 위한 부서를 개설하였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과연 이같은 바티칸 제2차 공회의 선교방향이 “회심하지 않고서도 선교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는가” 라는 데로 압축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바티칸 제2차 공회의 문서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그리스도께 회심하지 않고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부분에서는 회심을 시키지 않고서도 선교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38Harvie M Conn, The Missionary Encounter with World Religion. 강의안 Grand Rapids : Institute of Theological Studies 편 중에서 인용함. Hogg, “Vatican II’s” pp.147-152. 여기에서도 VaticanII 이후의 선교를 설명하고 있다.

바로 이같은 불투명한 회심에 대한 태도가 종교다원주의의 길을 열었고 더 나아가서는 해방신학에 징검다리가 되었다. 종교다원주의와 해방신학을 고수하는 한 회심 없는 선교가 가능하다.

바티칸 제2차 공회가 있은지 25 년이 지났다. 교황은 로마 카톨릭 선교를 재평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1991년 1월 22일 요한 바오로 2세가 “구세주의 선교”(Redemptoris Missio)라는 교황칙령을 발표하였다.

이전까지는 회심없는 선교신학들이 난무했다. 이런 상황 중에서 “구세주의 선교”는 다시 한번 선교의 영구성을 강조하고 선교에 대한 각성을 촉구했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대해 강조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타종교를 통한 구원의 길을 소극적으로나마 열어 놓았다.39John Paul II, Encyclical Letter “Redemtoris Missio : On the Permanent Validity of the Church’s Missionary Mandate(Excerpts)” in IBMR 1991. 4월호. pp.50-52.

로만 카톨릭 교회의 선교를 한마디로 논한다는 것은 너무 황당한 일이지만 위의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이론적으로는 “회심”을 통한 선교를 촉구하고 있으나, 아직도 “회심”없는 선교가 가능한 실정이다.

C. 복음주의 선교운동에 있어서 회심이 약화된 이유

18세기 이후 초기 현대 선교운동에서는 경건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회심을 선교의 핵심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에큐메니칼 운동과 맥을 같이 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복음주의 계통에서도 선교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이런 대회의 계기로 새로운 복음주의 선교운동이 일어났다. 이런 운동은 몇 차례에 걸친 세계 대회로 이어지며 선교와 회심의 관계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1966년에 있었던 베를린 세계복음화 대회이다. 이 대회는 빌리 그래함 박사가 착상한 것으로서 세계 선교에 있어서 복음전파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복음주의적 선교신학 정립의 기회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복음주의자들은 에큐메니칼 운동과 합세해서 에큐메니칼 선교신학 형성에 복음주의적 입장을 피력하려는 데 노력을 가해왔다. 특히 베를린 대회에서는 선교의 정의를 세계를 복음화하기 위해 타문화권 내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를 차지해야 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이 대회에서는 이것을 “하나의 일”(One Task)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필연적으로 성서적인 회심을 강조하는 것과 “회심과 중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일어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40Johnston, The Battle. p.181. 1970년에 들어서면서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회심에 대한 강조가 약화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1. 1974년 세계 복음화를 위한 로잔 국제대회
복음주의 진영에서 회심을 강조하는 데서 벗어나게 하는 선교신학 형성은 바로 로잔대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영향은 대개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문화에 대한 강조이다. 여기에서는 주로 복음과 문화의 차이에 대해서 심각하게 다루었다. 그 방향 자체는 매우 중요했으며 선교사들이 현지에 가서 복음을 증거할 때 자신들의 문화로 포장된 복음을 증거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면에 이같은 토의는 문화를 중시하고 또 나아가서는 그 문화에 맞는 복음증거를 하기 위해서는 선교사가 많은 문화적 연구를 해야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문화적 연구를 하다보니 사회학적으로 많이 치우치게 되었다. 이런 사회학적인 치중이 결국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회심의 역사를 등한시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도 볼 수 있다.41Johnston, Battle. p.359. 존스톤은 로잔언약이 전도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한계를 교회의 그룹으로 옮기므로 책임 한계가 불분명해졌고, 신약시대의 전도의 단순성이 교회성장의 사회학적 방법을 채택함으로써 퇴색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는 선교의 정의에 대한 변화이다. 죤 스톳트(John Stott)가 주축이 되어 선교는 곧 타문화권에 있어서의 복음전파와 사회적인 책임을 완수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둘 중에 복음전파가 우선순위를 차지한다고 말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점은 베를린 대회에서 규정한 복음전파를 핵심으로 하는 선교의 정의에 있어서도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로잔대회 전까지만 해도 사회적 책임이 복음전파의 종속적인 개념으로 받아졌었다. 하지만 74년 로잔대회 이후부터는 복음전파와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은 하나의 평행적인 개념으로 생각하게 되었다.42Ibid., pp.301-302.

이같은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변화는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내포하게 되었다. 강점이라면 전문인 선교(Tentmaking)가 한참 일어나기 시작한 때에 전문인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사용해서 미전도 종족에게 들어가서 여러 가지 전인적인(Holistic)사역을 하기 위한 신학적 정체의식을 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의료행위 그 자체도 복음전도와 대등하게 선교행위로서 정당화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써 많은 전문인 선교사들이 선교신학적 정체감을 가지고 세계의 미전도 종족을 향해서 선교를 하는데 중요한 활력소가 되었다. 반면에 약점은 선교가 더이상 전도를 핵심으로 보지 않고 다양화되었다는 점이다.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만큼 포괄적인 개념은 아니나, 이제 복음주의자들의 선교도 세계 복음화라는 명확한 한 목표만 갖지 않고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이 다양화된 선교개념 때문에 전도를 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선교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따라서 이제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서서히 전도 내지는 회심을 중시하지 않고서도 선교를 할 수 있는 길이 신학적으로 열렸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헷셀그레이브 박사가 로잔대회 이후 과거 14년간을 회고하며 신랄하게 스톳트의 입장을 공격하였다.43David Hesselgrave, “Holes in Holistic Mission” in Trinity World Forum. 1990. 봄. pp.2-6.

2. 맥가브런(McGavran)의 교회성장학의 영향
또 하나의 복음주의 선교신학에 있어서의 중요한 현상은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aran)박사와 교회성장학의 출현이다. 맥가브란은 1960년말까지 WCC의 운동에 가담해서 그 운동 속에서 복음주의적인 영향력을 사용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1968년 WCC 웁살라 대회에서 “20억의 구원받지 않은 영혼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남기고 새로운 선교의 장을 열기 시작했다.44Hedlund, Roots. p.115. McGavran은 Uppsala를 위한 Church Growth Bulletin에서 “Will Uppsala betray the Two billion?”이라는 질문을 했다.

복음주의 선교신학계에서 맥가브란만큼 선교신학 형성에 기여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교회성장학 하면 도날드 맥가브란을 이야기했고 또 교회성장학 하면 복음주의 선교신학으로서 간주되었다. 그는 거의 반세기동안 복음주의 선교계에 영향력을 발휘하였다.45Tin Stafford, “The Father of Church Growth,” in Christianity Today. 1986년 2월호 p.19.

우선 맥가브란의 교회성장학 형성 배경을 알아보자. 그의 중요한 명제는 하나님께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혼들이 모자이크같은 많은 문화권들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각 문화권마다 그 문화에 적합한 방법을 연구하여 전도해서 교회에 입문케 하여 교회가 성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그는 몇 가지 원리를 제시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원리 몇 가지만 명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동질성의 원리가 있다. 이는 영혼들이 되도록 문화적인 장벽을 적게 넘을 때 쉽게 구원을 받는다는 이론이다. 둘째로, 교회성장 방법은 과학적으로 사회과학 등을 적용시켜서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는 문화인류학이라든지 기타 일반 사회과학들이 선교에 접목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세번째로 맥가브란은 제자화(discipling)와 완전화(perfecting)를 구분했다.46Donald McGavran, Understanding Church Growth. Grand Rapids : William B. Erdmans, 1970. pp.31-48. 83ff. 107ff. 215. 230 등. 맥가브란의 교회성장학에 대한 기본개념은 Stafford의 “The Father of Church Growth, in Christianity Today 1986년 2월호 pp.19-23 기사 중에 가장 잘 요약되었다

맥가브란에게 있어서는 문화적으로 너무 극적인 전환이 있을 경우 고립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중간단계”(intermediate)에서 집단적으로 교회에 입문할 것을 주장한다. 이것을 “제자화”의 단계라 하면 “완전화”는 그 다음 단계에 해당된다고 그는 보았다. 이 중간 단계까지를 그는 제자화로 보았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몇 가지 원칙에 따라서 문화권마다 그 문화에 맞는 교회성장 이론들이 나오게 되었고, 또 이를 통해서 엄청난 영향을 세계 각처에 미쳤다. 하지만 맥가브란박사의 의도와는 달리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즉 맥가브란 박사는 교회성장을 증진시킴으로써 성장 정도를 숫자적으로 측정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동질성의 사람들이 집단회심 운동(Mass Conversion Movement)를 통해서 많은 숫자가 한꺼번에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성령의 참된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질 때 매우 고무적일 수 있으나 참된 회심을 하지 않고서도 “한 종교에서 또 다른 종교로 옮기듯” 대중과 함께 한꺼번에 교회에 들어옴으로 회심이 등한시될 수 있는 가능성도 제시한 것이다.47Robert L. Ramseyer, “AnthropoIogical Perspectives on Church Growth Theory,” in The Challengee of Church Growth : A Symposium, Wilbert R. Shenk, Editor, pp.68-9. Ramseyer는 교회성장 운동이 성서적인 회심을 격하시키고, 단순히 한 종교로부터 또 다른 종교로 옮기는 것에 그칠수가 있다고 했다. 비슷한 위험성에 대해 John H.Yoder도 그의 기사에서 언급했다 그는 이것이 “discipling”와 “perfecting”을 구분한 결과로 보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교회성장에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회심을 추구하는 것 보다 사회과학을 더 의지하는 위험성이 생겼다.48Rauseyer, “AnthropoIogical Perspective,” p.73.

3. 선교신학의 과학화
복음주의 선교학계에서 회심이 등한시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또 한가지는 소위 선교신학의 과학화였다. 롬멘(Rommen)박사는 선교학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과학화되며 학문화되었는가에 대해 언급했다. 그런 과정 중에 마땅히 강조되어야 할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능력과 신학적인 기초들이 서서히 제거되고, 선교학이라는 독특한 분야가 형성되었다.49Edward Rommen, ‘”Missiology’s place in the Academy” in Trinity World Forun. 1992년 봄호. p.3.

선교학은 사회과학적인 면과 신학과 기타 다른 학문들의 복합적인 요소로서 제시되기도 했던 것이다. 따라서 현대에 와서는 신학을 기초로 하지 않고서도 선교신학이 형성되었다.50Alan Tippet, Introduction to Missiology(Pasadena : Wm. Carey, 1987), pp.24-25.

폴 히버트(Hiebert) 박사는 이에 대해서 신학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 선교신학이 다시 돌아와야 된다고 주장했다.51Edward Rommen, “The De-Theologizing of Missiology” in Trinity World Form. 1993. 가을. p.3. 이같은 선교신학의 방향은 단순하고 명확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초대교회 선교나 바울 사도가 가지고 있던 선교에 대한 입장으로부터 달라진 것이다. 이것은 성서적인 선교의 명제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며 계시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회심은 등한시되고 오직 과학적인 학문만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롬멘 박사는 선교신학계에 있어서 회심의 중요성을 되찾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성서에 나타난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주님이 선교명령을 하신 이후 선교를 위한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의 요소가 된다. 또 우리에게 인간의 요구에 대해 확신을 주게 되는데, 그 첫째가 개인의 회심이며, 그 이유 때문에 이는 선교의 명백한 목표가 된다.”52“De-Theologizing p.4.

4. 능력대결 운동의 영향53이태웅, “능력대결 운동의 선교학적 의의”, 선교연구 1993년 11월호. 이 부분은 선교 연구지에 실린 본인의 글을 요약한 것임.
능력대결 또는 능력전도 등 하나님의 현저한 통치와 이에 따른 영적 능력의 현실성에 대한 강조는 미국의 경우 80년대 초부터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80년말 90년초에 와서는 능력대결에 대한 과목은 비단 미국 뿐 아니라 영국 및 전 세계의 선교학계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과목으로 등장했다.

능력대결 운동의 발단으로서 다음 몇 가지 요소를 들 수 있다.

첫째는 200 년 동안 계속되는 세속시대(Secular age)가 갖다 준 세계적인 영적 공백이다.

둘째는 1960년대 이후부터 미국의 지도하에 선교신학이 과학화됨으로 영적 능력 면을 소홀히 한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이적과 기사”(Signs and Wonder)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었다.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박사는 존 윔버(John Wimber)등과 함께 이 분야에 대해 지도적인 역할을 했다.

셋째로 왕국신학(Kingdom Theology) 출현이 여기에 기여했다. 왕국신학은 정확히 말해서 언제 어디서 추진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80년대부터 서서히 왕국신학 운동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 같은 이의 저서가 이 운동에 기여했으며, 미국 쪽에서는 피터 와그너(Peter Wagner)등 영적인 은사를 중시하는 이들을 통해 이런 운동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54이런 일련의 운동에 대하여 John Wallis는 왕국신학(Kingdom Theology)이라고 명명했다. 왕국신학은 잘 쓰여지지 않고, “능력대결”와 “능력전도”와 “이적과 기사” (signs and wonders) 등의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특히 존 윔버 등과 나중에는 찰스 크래프트(Charles Kraft)나 존 화이트(John White) 같은 이들도 여기에 가세했다. 왕국신학의 요점은 회심신학(Conversion Theology), 즉 한 사람이 구원받고 변화되는 것을 중시하는 것보다는 현존하는 하나님의 왕국(Realized Eschatology) 관점에서 현실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사단의 세력을 꺾으셨으며 현재 우주를 통치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교나 사역은 단순히 한 개인의 구원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현존하시는 역사가 이 세상에 능력으로 나타나는 데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영광 속에 찬란한 왕국을 미래에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우리가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왕국과 하나님의 사역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하나님은 단순히 보좌에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기적적인 능력을 발휘하시며, 그의 통치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능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악령의 세계와 사단의 세력들도 꺾어야 되며 꺾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과 신약에서만 나타나는 일이 아니라 성령이 오신 교회시대인 현재에도 경험할 수 있으며, 이것을 통해 악의 영들을, 그리고 심지어는 악한 정치적 세력들을 꺾을 수 있다는 것이다.55Gailyngan Van Rheenen, Communicating Christ in Animistic Context. Grand Rapids : Baker,1991. pp.131-132.

왕국신학은 하나님과 사단의 대결에 대한 것을 공개적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능력대결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사단의 대결에 대해 많은 집중을 하고 있다. 이런 경우 자칫하면 죄와 회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겸손 등으로부터 초점이 벗어나, 능력대결에만 지나친 강조점을 둘 가능성이 있다.

그밖에도 능력에 대한 개념이 너무 부각된 나머지 선교를 가시적인 악의 세력을 이기는 것으로 한정할 위험성이 있다. 악의 세력을 가시적으로 이긴 예는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바알 선지자들이 굴복한 경우도 있고, 또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어 돼지에게 들어가게 해서 몰살시키게 한 예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순전한 말씀을 통해서도 사람들을 회심시킨 예가 허다하다. 사마리아 여인의 경우가 그랬고, 니고데모의 경우가 그렇다.

따라서 우리는 능력대결을 통해 전도를 할 때마다 과연 죄에 대한 참된 회개를 통한 회심이 있었는가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많은 경우에 능력대결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회심보다는 능력에 대한 악의 세력의 굴복과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치유에 더 큰 관심을 둘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선교에 있어서 회심은 약화될 가능성이 많다.

선교에 있어서 회심의 의미가 변질되거나 약화된 이유를 규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운동과, 로마 카톨릭 선교운동과, 복음주의 선교운동 등을 살펴보면서 중요하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하여 보았다. 이제는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선교에 있어서 회심의 역할이 강화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다.

Ⅲ. 선교에 있어서 회심의 중요성을 재인식시키기 위한 방안 모색

A. 성서적 선교신학의 재정립

선교에 있어서 회심이 약화된 이유를 분석해 볼 때 놀라게 되는 사실은 대부분의 경우 선교신학의 방향이 문제의 근원이 된다는 점이다. 선교신학이 성서적 교리 위에 세워지지 않았을 때 오는 폐단은 실로 가공할만하다. 결국 1960년대 이후 선교신학이 성서적인 데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피해를 선교와 회심에 대해 끼쳤다. 롬멘박사는 이를 “비신학화된 선교신학”(De-Theologizing Missiology)이라고 불렀다.56TWF, 1993 가을호.

이제 선교학은 제 위치로 돌아와야 한다. 이는 성서에 나타난 기본교리의 틀(Axiom)57McGavran, “Contemporary EvangelicaI Theology of Mission”, in Contemporary Theologies, p.101.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됨을 의미한다. 이 기본적인 교리들은 성서의 무흠무오설, 영혼의 회개를 통한 회심과 구원, 그리스도의 유일성, 교회의 선교적 사명, 재림, 성령론 등이다.58Ibid., pp.101-106.

그 밖의 이슈들에 대해서도 성서에서 그 기본적인 대답을 찾아야 된다.59Ibid., pp.108-110. 가령, 타종교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이라든지, “대화”에 대한 개념정립 및 “총체적 전도(Holistic Evangelism)”와 사회참여 등에 대하여 성서에 나타난 계시대로 이행해야 된다. 이럴 경우 자연히 선교의 목표는 영혼구원을 통한 교회개척과 이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왕국 확장이 될 것이다. 선교가 이렇게 될 때에 “회심”도 그 원래의 의미를 되찾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24:46-47에서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하셨다. 먼저는 예수께서 구속사업을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통해 완성하신 점이다. 그 다음에는 이 복음의 메시지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 함”에 대해 말씀하셨다. 복음과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각 족속에게 전파되는 것은 둘이 아니요 하나이다.

사실 이 둘은 합하여 하나, 곧 “선교”가 된다는 사실이 예수님의 선교관이기도 하다. 이 선교에 대해서는 구약전체에 기록되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60누가는 동위접속사로 연결된 46절과 47절 내용을 복수로 보지않고 단수 대명사로 받아서 기록했다. 이로 보건대 누가도 복음와 복음전파를 따로 떼어서 보지 않고 “선교”라는 한덩어리로 본 것이라고 믿어진다 따라서 구약전체의 선교관이기도 하다.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선교 내지는 선교의 핵심이 이것이라면 “회심”은 선교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agenda)가 된다.61신약의 핵심은 예수님이시다. 따라서 예수님의 선교관은 신약의 선교관이기도 하다. 우리는 선교신학에 있어서 이 사실을 양보해서도 안되고, 오히려 잃었던 부분까지도 되찾아야 한다.

B. 교회와 선교단체의 역할 정립

원래 선교는 그 근원을 따지자면 삼위일체 하나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성서적으로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이지 교회의 선교가 아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지상명령을 주셨을 때 교회에게 커다란 위임을 하신 것이다.62마태복음 28:18-20. 교회가 선교를 이 세상에서 주도하도록 위임을 받은 것이다.

이는 호켄다익이 주창하는 하나님(왕국)으로부터 세상으로 직접가는 공식이 아니다. 따라서 교회는 당연히 성서적인 선교가 이루어지도록 지도력을 발휘하고, 감독할 의무와 권한이 있다. 때에 따라서 교회는 이 권한의 일부를 선교단체에 위임할 수 있다. 이 경우 교회의 감독 하에 선교단체도 선교사역을 교회와 함께 감독해야 한다.

첫째는 성서적 선교가 이행되도록 감독해야 한다. 이는 “회심”이 선교현장에서 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총체적 선교를 할 수 없거나, 전문인 선교사가 전문직을 통해서 선교를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총체적 선교를 하되, 그 핵심목표는 회심이어야 한다. 전문인 선교사가 전문직을 통해 선교하되 그 궁극적인 목표는 “회심”을 통한 구원이어야 한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영혼구원의 우위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63McGavran, “Contemporary Evangelical Theology of Mission” in Contemporary Theologies, p.111. 마가복음 8:36, 9:43-48.

둘째로, 선교전략 면에서 감독해야 한다. 최근에 들어서 세계가 다양해지므로 응당 선교전략도 다양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전문인을 통한 직업선교, 개발사업, 비거주선교사 활용, 미전도 종족개념 적용, 단기선교, 교회성장학적 접근, TEE,, 성경번역, 교회 대 현지접촉, 평신도 활용 등 수없이 많은 방법들을 고전적인 장기 정규선교사 개념 이외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교회나 선교단체는 선교의 핵심인 “회심”없이 선교활동 그 자체를 선교로 알고 만족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선교를 감독하고 시정하여 성서적인 선교가 일어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선교는 여론에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명령과 성서가 지시하는 방법에 따라서 해야 된다. 종종 현지의 필요에 따라서 하는 인도주의적인 사업들이 있다. 이런 것이 한 선교단체의 사역과 중간 목표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가 지향하고 전 선교사역이 지향하는 주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영혼구원(회심)과 교회 개척과 이에 따른 하나님의 왕국의 현실화가 주목표가 되어야 한다. 남침례선교부가 몇 년 전 모든 선사들에게 그들이 갖고 있는 직책을 불문하고 모두가 “전도”(회심) 사역에 직접 참여하도록 대강령을 내렸다. 이는 성서적 선교를 선교사들에게 하게 한 좋은 예이다.641992년 미 남침례교 연례보고서에서는 이를 “Bold Mission Thrust, 1976-2000″이라고 명명했으며, 교회의 배가운동과 더불어 각종전도에 대해 강조했다

셋째로, 교회와 선교단체는 선교사 자신이 “회심”의 경험이 있고, 이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 이해를 갖고 있는가 확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 교회가 회심을 위한 사역을 하여 그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회심한 사람이 제자훈련을 받아서 그 삶이 현저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야 한다.

아마도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가서 “회심”에 대하여 등한시하고 프로젝트에 연연해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본인이 교회와 신앙생활 중 이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모델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와 선교단체는(위임받은 범위 내에서) 성서적인 선교를 선교사들이 하게 하는데 열쇠를 가졌다. 하루 속히 교역자들과 선교단체의 책임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행사해야 “회심”의 꽃이 선교지에서 다시 적극적으로 피게 될 것이다.

C. 선교사 준비의 강화

1989년 세계복음주의 협의회 선교위원회(WEF/MC)는 마닐라에서 선교훈련에 관한 대회를 가졌다. 이후 선교훈련에 대한 각성이 2/3세계선교 운동권 가운데 일어났다. 그 여파가 서구세계로 향해져서 이제는 서구권에서도 선교훈련의 중요성에 대한 재각성이 일어나고 있다.

선교훈련을 통해 교회와 선교단체는 선교사가 올바른 선교신학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수많은 프로젝트를 통해 손쉽게 사람들을 돈으로 사는 것은 이미 19C에 네비우스 등에 의해 심판을 받은 선교방법이라는 사실도 가르칠 수 있다.65전호진, 「한국교회선교」 : 「과거의 유산, 미래의 방향」, 성광문화사, 1993년. p.172.

외형보다 “회심”을 통해 사람이 변화되어야 자도자가 생기며 참된 교회가 개척될 수 있음을 가르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손쉽게 숫자를 모아서 본국에 보고하는 것에만 급급해 하는 선교사가 되지 않고 진정으로 영혼들을 사랑하여 그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기 원하는 사람으로 그 의식을 개조 시키지 않는다면 그 훈련도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참된 회심이 없으면 한 문화를 기독교 문화로 변화시키는 것도 요원한 일이다. 교회역사가 스티븐 닐(Neil)은 2000년의 기독교 역사상 오직 두 번만 기독교가 문화와 접합되었는데, 어거스틴 때와 15세기 단테의 시기가 바로 그 때였다고 말한다.66Wilbert R. Shenk, “Encounter With ‘Culture’ Christianity”, in IBMR 1994.1월. p.8.

나머지 기간은 단지 문화적 기독교(Culture Christianity)가 득세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회심을 통한 내적인 변화가 없이는 참된 문화와의 접합(integration)도 불가능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참된 회심이 없으면 선교조차도 오랫동안 지탱될 수 없다. 따라서 “에큐메니칼 운동권내에는 선교가 거의 전무하다”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67Lesslie Newbigin, “Ecumenical Amnesia”, in IBMR 1994.1월. p.4.

회심을 중시하지 않는 선교의 종말은 에큐메니칼 진영이나, 로마 카톨릭교 선교운동이나, 복음주의 선교운동권에 동일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즉 “다른 사람에게 믿음에 대하여 전파하는 일을 등한시하는 어떤 단체든지 간에 사멸의 길로 내려가게 될 뿐이다.”68Ibid., p.5.

한국교회와 선교단체와 선교사는 물론 세계교회가 이제 다시 한 번 성서적인 선교신학과 선교방법과 선교전략으로 돌아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을 이행하되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개인적인 회심과 집단회심을 통해 주님의 참 제자들을 각 족속과 각 나라 중에서 삼을 수 있다면 주님께서 인도하신 선교의 궤도로 재돌입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주해

  • 주해
  • 1. David Bosch, Witness to the World. Atlanta : John Knox, 1980, pp.178-80.
  • 2. Donald McGavran, “The Conciliar Theology of Mission” in Contemporary Theologies of Mission, Authur F. Glasser & Donald A. McGavran, Rapids : Baker, 1983, P.69.
  • 3. 사도행전 2:38-47.
  • 4. 사도행전 3:1-4:12.
  • 5. 사도행전 7:54-8:1, 22:20.
  • 6. 사도행전 8:26-40.
  • 7. 사도행전 20:21.
  • 8. 사도행전 26:28-29.
  • 9. David Bosch는 그의 마지막 대 저서 (Transformation of Mission. Maryknoll: Orbis, 1991)에서 선교신학이 Paradigm Shift를 통해 상황에 따라 달리지는 것으로 묘사했는데, 성서적 선교는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개념이 아니다.
    Donald McGavran, “New Mission : A Systematic Reinterpretation of the Concept of Mission” in Comtemporary Theologies pp. 47-48에서 보듯이 양태는 교파와 단체에 따라서 다소 다르나 회심은 선교의 그 핵심 교리였다.
  • 10. Herbert Kane, 생명말씀사 刊, 1981년 한국책 펴냄, p.123.
  • 11. R.E. Hedlund, Roots of the Great Debate in Mission. Madras : Evangelical Literature Service, 1981, PP.55-56. 이 보고서는 타종교에 대해 호의적이며 회심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었다.
  • 12. Ibid., p.65. Kraemer는 다음과 갈이 주장했다. “가장 숭고하고 훌륭한 종교라 할찌라도 회심와 중생이 펄요하다. 그 이유는 이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안에서 주시는 선물인 ‘속죄’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 13. Arthur Johnston, The Battle for World Evangelism Wheaton : Tyndale, 1978, p.64.
  • 14. Ibid., p.70.
  • 15. David Bosch, Witness to the World. Atlanta : John Knox Press, 1980, pp.167-70. 보쉬는 이당시 사회적 봉사를 강조히는 것이 정도에 지나쳐서 복음전파를 격하시키는데 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16. Hedlund, Roots. P.77.
  • 17. Bosch, Witness. pp.176-78. Hedlund, Roots. pp.82-3.
  • 18. Bosch, Witness. pp.178-81.
  • 19. Ibid., p.180. Gospel, Church & Kingdom; Comparative Studies in World Mission Theology. Minneapolis : Augsburg. 1987. p.98. Missio Dei의 원래 개념은 매우 성서적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과 화목되는 것을 의미했다.
  • 20. Chris Wright, What’s So Unique About Jesus? Eastbourne : MARC, 1990. pp.33-34
  • 21. Ibid., p.41.
  • 22. Paul F. Knitter, No other Name? – A Critical Survey of Christian Attitudes Toward the World Religion MaryKnoll : Orbis, 1986.
  • 23. Ibid., pp.171-72.
  • 24. Lesslie Newbigin, “Religious Pluralism and the Uniqueness of Jesus Christ,” in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ch. (IBMR hereafter) 1989.4. p.51.
  • 25. Gavin D’ Costa, “the New Missionary : John Hick and Religious PluraIity” in IBMR. 1991. 4윌호 pp.66-69.
  • 26. John R.W Stott, Christian Mission in the Modern World Downers Grove : Inter-Varsity Press. 1975. p.65-6. Johnston, Battle. p.148, 231. Kim-Sai Tan, The Great Digession. Malaysla : Bike Seminary. 1981. p.64.
  • 27. Bosch, Witness. p.188.
  • 28. Eugene L. Stockwell, “Mission as Seen from Geneva : a conversation with Eugene L. Stockwell”, in IBMR July 1987. p.116.
  • 29. Hedlund, Roots. P.113.
  • 30. 부르스 니콜스, 「상황화 : 복음과 문화의 신학」, 생명의 말씀사, 1978(영어편) / 1992(한국어판), p.29.
  • 31. Arthur F. Glasser, “Liberation Theology Bursts on the Scene” in Contemporary Theologies. p.165.
  • 32. Ibid., p.159.
  • 33. Donald McGavran, “The Current Conciliar Theologies of Mission”, in Contemporary Theologies. p.68.
  • 34. McGavran, “New Mission”, pp.49-57.
  • 35. Emilio A. Nunez, Liberation Theology. Chicago : Moody, 1985. p.203, pp. 204-45
  • 36. W. Richey Hogg, “Vatican II’s Ad Gentes : A Twenty-year Retrospective , in IBMR. 1985. 10. p.146.
  • 37. Donald McGavran, Official Roman Catholic Theology of Mission”, in Contemporary Theologies. p.185, 189-90.
  • 38. Harvie M Conn, The Missionary Encounter with World Religion. 강의안 Grand Rapids : Institute of Theological Studies 편 중에서 인용함. Hogg, “Vatican II’s” pp.147-152. 여기에서도 VaticanII 이후의 선교를 설명하고 있다.
  • 39. John Paul II, Encyclical Letter “Redemtoris Missio : On the Permanent Validity of the Church’s Missionary Mandate(Excerpts)” in IBMR 1991. 4월호. pp.50-52.
  • 40. Johnston, The Battle. p.181.
  • 41. Johnston, Battle. p.359. 존스톤은 로잔언약이 전도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한계를 교회의 그룹으로 옮기므로 책임 한계가 불분명해졌고, 신약시대의 전도의 단순성이 교회성장의 사회학적 방법을 채택함으로써 퇴색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 42. Ibid., pp.301-302.
  • 43. David Hesselgrave, “Holes in Holistic Mission” in Trinity World Forum. 1990. 봄. pp.2-6.
  • 44. Hedlund, Roots. p.115. McGavran은 Uppsala를 위한 Church Growth Bulletin에서 “Will Uppsala betray the Two billion?”이라는 질문을 했다.
  • 45. Tin Stafford, “The Father of Church Growth,” in Christianity Today. 1986년 2월호 p.19.
  • 46. Donald McGavran, Understanding Church Growth. Grand Rapids : William B. Erdmans, 1970. pp.31-48. 83ff. 107ff. 215. 230 등. 맥가브란의 교회성장학에 대한 기본개념은 Stafford의 “The Father of Church Growth, in Christianity Today 1986년 2월호 pp.19-23 기사 중에 가장 잘 요약되었다
  • 47. Robert L. Ramseyer, “AnthropoIogical Perspectives on Church Growth Theory,” in The Challenge of Church Growth : A Symposium, Wilbert R. Shenk, Editor, pp.68-9. Ramseyer는 교회성장 운동이 성서적인 회심을 격하시키고, 단순히 한 종교로부터 또 다른 종교로 옮기는 것에 그칠수가 있다고 했다. 비슷한 위험성에 대해 John H.Yoder도 그의 기사에서 언급했다 그는 이것이 “discipling”와 “perfecting”을 구분한 결과로 보고 있다
  • 48. Rauseyer, “AnthropoIogical Perspective,” p.73.
  • 49. Edward Rommen, ‘”Missiology’s place in the Academy” in Trinity World Forum. 1992년 봄호. p. 3.
  • 50. Alan Tippet, Introduction to Missiology(Pasadena : Wm. Carey, 1987), pp.24-25.
  • 51. Edward Rommen, “The De-Theologizing of Missiology” in Trinity World Form. 1993. 가을. p.3.
  • 52. “De-Theologizing p.4.
  • 53. 이태웅, “능력대결 운동의 선교학적 의의”, 선교연구 1993년 11월호. 이 부분은 선교 연구지에 실린 본인의 글을 요약한 것임.
  • 54. 이런 일련의 운동에 대하여 John Wallis는 왕국신학(Kingdom Theology)이라고 명명했다. 왕국신학은 잘 쓰여지지 않고, “능력대결”와 “능력전도”와 “이적과 기사” (signs and wonders) 등의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 55. Gailyngan Van Rheenen, Communicating Christ in Animistic Context. Grand Rapids : Baker,1991. pp.131-132.
  • 56. TWF, 1993 가을호.
  • 57. McGavran, “Contemporary EvangelicaI Theology of Mission”, in Contemporary Theologies, p.101.
  • 58. Ibid., pp.101-106.
  • 59. Ibid., pp.108-110.
  • 60. 누가는 동위접속사로 연결된 46절과 47절 내용을 복수로 보지않고 단수 대명사로 받아서 기록했다. 이로 보건대 누가도 복음와 복음전파를 따로 떼어서 보지 않고 “선교”라는 한덩어리로 본 것이라고 믿어진다
  • 61. 신약의 핵심은 예수님이시다. 따라서 예수님의 선교관은 신약의 선교관이기도 하다.
  • 62. 마태복음 28:18-20.
  • 63. McGavran, “Contemporary Evangelical Theology of Mission” in Contemporary Theologies, p.111. 마가복음 8:36, 9:43-48.
  • 64. 1992년 미 남침례교 연례보고서에서는 이를 “Bold Mission Thrust, 1976-2000″이라고 명명했으며, 교회의 배가운동과 더불어 각종전도에 대해 강조했다
  • 65. 전호진, 「한국교회선교」 : 「과거의 유산, 미래의 방향」, 성광문화사, 1993년. p.172.
  • 66. Wilbert R. Shenk, “Encounter With ‘Culture’ Christianity”, in IBMR 1994.1월. p.8.
  • 67. Lesslie Newbigin, “Ecumenical Amnesia”, in IBMR 1994.1월. p.4.
  • 68. Ibid., p.5.

관련 글(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