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라비아의 사우디 아랍인

현대선교9 (Current Mission Trends): “지도력 계발과 비형식 교육”. 발행 : 1996년 9월 10일, 서울:GMF Press. 수록면 : 81-114.

편집부

개관

1. 정체성과 위치

  • 종족 이름 : 사우디 아랍인 또는 사우디인
  • 공식언어 : 현대 표준 아랍어
  • 제1 종교 : 수니파 이슬람

사진 설명: “유일신(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 무하메드는 그의 대선지자이다” 사우디 국기에 새겨진 불변의 선언문

  • 위치 : 사우디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 토착민들
  • 종족고유번호 : ARA
  • MARC 번호 : 4135
  • 기독교인 비율 : 0.1% 미만(14,000, 세례받은 교인 수)
  • 복음주의자 비율 : 없음
  • 나라 전체 인구 : 17,880,000 (1995)
  • 사우디인 인구 : 13,861,300 (1995)
  • 선교사에 대한 개방 정도 : 닫혀 있음

2. 인구

  • 전체 인구 분포 : 17,880,000(1995년 인구조사통계)
    이 중에 사우디아랍인 13,861,300명 /
    2000년 추측 : 21,257,000명 중 사우디아랍인 16,479,000인(2000년)
  • 도시들 : 수도 – 리야드 2,300,000 ; 제다 2,450,000 ;
    • 메카 1,000,000 도시 (백만명 이상) : 4개(메가메트로 거주자 인구의 32.1%)
    • 주요도시 (십만명 이상) : 19개
    • 도시 (2만명 이상) :70개
    • 읍(천명 이상) : 100개
    • 마을(5백명 이상) : 1,000개
  • 다른 나라들 : 쿠웨이트 200,000명, 오만 10,300명, 카타르 6,900명, 아랍에밀레이트 24,000명
  • 도시화율 : 80.2%
  • 성인 해독율 : 62.8%
  • 교육율 : 38.0%
  • 종교현황(사우디아라비아) :
    • 무슬림 93.5%
    • 기독교 5%(80만명 기독교인 중 98%가 외국인 노동자들)
    • 힌두교 1.1%

3. 사회경제

  • 화폐단위 :
    단위는 SR(Saudi Riyal), H(Halala)이며, 1SR은 100H 이다.
    화폐종류로는 지폐로서 1SR, 5SR, 10SR, 50SR, 100SR,500SR 이 있고,
    주화로서 5H, 10H, 25H, 50H, 1SR이 있다.
  • 환율 : US$ 1= SR 3.73
  • 직업 : 근로자 4백 5십만명( 41% 사우디인, 59% 외국인), 농업 14%,
    산업 11%, 각종 서비스업계와 상업 그리고 정부관리 53%, 건축 20%, 원유 발주와 광산 2%
  • 생산물 : 원유와 석유 제품들, 그리고 밀
  • 기본 식생활 : 아랍에 정착된 주요 음식은 쌀과 밀과 기장이다. 양고기가 주요 고기이다. 하루 섭취 기본양은 단백질 78.7 그램, 2889칼로리, 지방 43그램, 445 그램의 탄수화물, 후무스, 샤와르마, 므타발같은 아랍 음식들은 주위의 아랍 국가에서 도래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맥도날드, 도미노 피자, 데일리 퀸,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타코 벨, 웬디스 그리고 세이프웨이 같은 잡화 상점들을 도시에서 볼 수 있으며 점점 인기를 더하고 있다.
  • 여가 활동 : 비록 아녀자들과 남자와 나이 든 사내아이들이 따로 그룹을 지어 갈라 앉지만 한 가족이 함께 공공 장소에서 소풍을 가질 수 있다. 여성들은 사우디 아라비아 내에서 운전할 수 없다. 제다에는 여성을 위한 에어로빅 교실이 있는 여성전용복지센타가 있다.
  • 예술 활동 : 이슬람은 존재하는 생물의 형태를 표현하는 것을 금하므로 영상 예술을 금지함으로 인해 서법이나 기하학적인 디자인을 권장한다. 와하비의 침투적인 영향력으로 18세기 아랍의 건축물은 단순하게 진흙 벽돌로 이루어진 건축양식을 지켰다. 이들의 영향력은 음악과 무용에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랍 민속 음악과 연관된 음악과 시는 중요하게 남아있다.
  • 축제 : 이슬람의 공휴일에는 라마단, 하지, 에이드 알-피트르, 에이드 알-아다, 이슬람의 신년의 날이 있다. 여기에 사우디 국가의 날이 있다. 주말은 목요일과 금요일이다. (모든 공휴일은 음력에 따르는 이슬람 달력을 따르고 일년은 354일로 계산된다.)
  • 통신/교통수단 :
    • 고속도로 : 74,000 KM, 35,000 포장도로
    • 전기 발전 : 63,600,000 KWH(1991)
    • 철로 : 884 KM
    • 공항 : 25군데 (3개의 국제공항 – 제다, 다란, 리야드)
    • 통신망 : 극초단파와 동축선 케이블, 전화대수 1,624,000, 국제통신 위성기구 : 3 대서양, 2 인도양
    • 인쇄물 : 12 종류의 일간 신문(2개는 영자 신문)
    • 라디오 수신자 : 4,000,000(1990)
    • 텔레비전 시청자 : 3,750,000(1990)
    • 항구 : 5개의 주요 항구 – 얀부, 제다, 담맘, 주바일, 지잔
  • 시차 : GMT + 3, KST -6 (한국이 자정일 때 사우디는 전날 오후 6시임)
  • 근무시간
    • 관공서 : 07:30 – 14:30 (토-수)
    • 사기업 : 08:30 – 13:00, 17:00 – 20:00 (토 – 수), 목요일은 오전 근무
    • 은행 : 09:00 – 12:00, 17:00- 19:00 (토 – 수), 목요일은 오전 근무
  • 도량형 : 미터법, 국제도량형 규격
  • 전기규격 : 60HZ에 110V 및 220V가 사용되고 있다.
  • 계발 (0 = 부재, 1 = 빈약, 2 = 양호, 3 = 적절, U = 알려진 것이 없음 ) :
    • 보건 3
    • 균형잡힌 섭취 3
    • 좋은 식수 3
    • 거주지 3
    • 전기 3
    • 대중 교통 3
    • 라디오 3
    • 교육 3
    • 전화 3

종족 묘사

* 위치/ 환경
사우디 아라비아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반도의 4/5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 크기의 1/4보다 약간 작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7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 요르단,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 에밀레이트, 오만 그리고 예멘. 그러나 정확하게 측정되거나 구분된 국경의 분계선은 거의 없다.

반도의 1/5이상은 Rub al-Khali(무인지역)으로 덮여 있고,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사막이다. 사우디 아라비아 내륙에는 영구한 강줄기나 수원이 없다. 많은 부분이 엄청난 고온으로 아무도 살지 않는 메마른 사막이다.

땅의 1%만이 경작지이며, 39% 초원과 목초지, 1% 산림, 59% 기타, 그리고 관개 시설이 있는 토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최근 수경농법의 계발로 헤택을 받고 있다. 해안선이 아라비아만과 홍해까지 뻗어 있어서 대단한 항만력을 가지고 있다.

홍해연안은 아열대성 기후로 여름에는 고온다습(연평균 습도 60%)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중부 및 북부내륙은 사막기후로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가 심하며 걸프만 연안은 열대성기후로 연중 무더위가 계속된다. 강수량은 연중 평균 100-200mm에 불과하다.

기온은 지역별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제다지역은 연중 최고 43도에서 최저 20도를 기록하고 있는데 비해 리야드 지역은 연중 최고 46도에서 최저 6도의 심한 기온차를 보이고 있다.

* 일반적인 묘사
사우디 국민은 사실상 모두 아랍인이다. 전체 인구 천7백만 명중에 25%는 외국인이다. 외국인 구성 비율은 16%의 다른 아랍인들, 7% 아시아인, 1.4% 아프리카인, 그리고 6% 서구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우디에서의 생활 리듬은 서구에서보다 좀 더 느린 편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인들은 개인 신상과 가족의 명예에 대해 매우 민감하며, 어떠한 것이든 명예를 모욕했다고 인지되면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이들의 성품은 친절하고 인자한 편이다. 이들은 현대화의 물결에서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인은 어떠한 사업이든지 간에 그것을 진행하기 전에 개인으로써 신뢰와 확신을 세우기를 더 선호한다. 사우디인들은 겉으로는 매우 종교적이며 “이슬람의 본거지”라는 것과 그들의 국경 내에 가장 거룩한 장소인 메카와 메디나가 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 언어
성인 해독율 : 남자 : 70%, 여자 : 44%
제 1언어 : 아랍어 제 2언어 : 영어

왕국안에서 사용되어지는 8개의 언어중 오직 5개만이 자국인들 사이에서 사용된다. Hajazi (7백만명 – 홍해 해안가와 근방의 고원들), Najdi(3백만명-베두인 부족들) Harshsi; Mahri(예멘 국경지대 근처); Gulf Arabic(거의 2백만명. 북부지역)

이집트계 아랍어도 상용된다. 현대 표준 아랍어는 모든 전문적인 일과 미디어, 교육 그리고 정치적인 영역에서 사용된다. MSA와 매우 유사한 고대 아랍어는 코란에 사용되는 문어체이다. 사우디 정부는 모든 사우디인들에게 정식교육을 제공하려는 의도로 문맹퇴치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역사

최근 고고학적 근거는 이 나라에 3천년 이상동안 수메리안 종족인 딜먼 사람들이 살았음을 보여준다. 구약시대에는 아말렉족속, 호렛족속, 이스마엘족속, 카도몬족속, 켄족속, 케니즈족속, 미디안족속, 그리고 사비안족속이 아라비아의 거주자로 있었다.

신약시대도 아라비아인들이 오순절날에 나타났다. 다마스커스에서 아라비아에 이르는 영토를 가지고 있던 나바태 왕국은 BC 4세기부터 AD 2세기까지 아라비아의 문명화를 발전시켰고, 이 왕국의 아리타스 4세는 바울이 개종할 무렵 다마스커스를 다스리기도 하였다. 어떤 역사가들은 기독교가 6세기까지는 아라비아 전역에 퍼졌다고 가정하지만 교회가 사람들에게 전체적으로 영향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역사 중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사건은 다음과 같다.

  • 1) 이슬람의 탄생과 성장 : AD 610년에는 모하메드가 메카에서 이 새로운 종교의 포교 활동을 시작하기 시작하여 622년에 메디나로 추방되었는데 이를 이슬람력의 기원이 되었다. (헤지라 1)
  • 2) 두 번째 사건은 1902년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가 수도인 리야드를 탈환하고 1927년에 나라를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으로 명명한 사실이다.
  • 3) 세 번째로 중요한 때는 나라안에서 상업성이 있는 석유가 발견된 1938년이다. 석유의 발견으로 견줄 데 없는 경제 성장과 문화 혁명의 현대화 시대가 도래되었고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사우디의 역사는 18C중엽 종교개혁을 주창한 무하마드 이븐 압둘 와하비가 다리야의 족장 무하마드 이븐 사우드와 제휴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엄격한 종교생활을 요구하는 이른바 와하비 운동은 유목민인 베두윈족의 지지를 받게 되었고 결국 이들의 연합세력은 1805년 경에는 현재의 사우디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을 지배하였으며, 와하비가 죽자 사우드 부족이 정교양면의 권력을 쥐게 되었다.

그후 1901년에 이르러 당시 쿠웨이트에 망명해있던 압둘 아지즈 이븐 사우드가 전사 60여명을 이끌고 라쉬드 부족의 지배하에 있던 리야드를 공격하여 이듬해 인 1902년 1월에 탈환함으로써 오늘날 사우디 왕국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그후 압둘 아지즈는 1932년에 메카, 아시르 등 서부지역도 병합, 현재의 영토를 확정하고 국명을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으로 칭하고 자신은 성지 메카를 지닌 이슬람 제국의 맹주가 되었다.

1952년 압둘 아지즈 국왕이 서거하자 그의 아들 사우드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사우드 국왕은 낭비벽이 있는 데다 경제 및 외교분야에 어두워 국민들로부터 원성이 잦았고 또한 당시 주변의 이집트 및 이라크에서 1952년과 1958년에 각각 왕정이 타도되었기 때문에 국왕의 형제들과 숙부들이 왕국의 장래를 걱정하여 국왕으로 하여금 동생인 파이살에게 권력을 이양하도록 압력을 넣어 1964년 11월에 결국 파이살이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위기의 시대에서 파이살을 국왕으로 뽑은 사우디는 근대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고 외교적으로도 아랍 제국의 맹주로서 활동할 수 있었다. 파이살 국왕은 기본법의 제정, 사법기관의 정비, 사회보장제도의 실현, 경제개발 정책 등을 차근차근 추진하였고, 1974년 10월 4차 중동 전쟁 때에는 제1차 석유파동을 주도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파이살은 1975년 3월 정신질환을 앓는 그의 조카에게 뜻밖의 암살을 당해 서거하였으며 그 뒤를 이어 칼리드 국왕이 즉위하였다.

사진 설명: ‘하지(Hajj)’ 기간에 전 세계로부터 메카로 몰려든 순례자들: 중앙의 카바단을 일곱 번 돈다.

파이살 국왕이 사우디 아라비아를 국제무대에 확고하게 올려놓은 반면 칼리드 국왕은 석유수입을 이용하여 경제를 다양화시키기 위한 첫 시도를 벌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는 파드 황태자에게 석유수입금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생산적인 투자로 전환토록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파드 황태자는 정유, 천연가스가공, 석유화학 등 석유관련 산업의 기반조성을 비롯하여 철강산업과 건설산업을 촉진시켜 사우디 경제의 석유의존도를 줄여나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였다.

이같은 계획은 막대한 투자자금과 인력이 소요되는데 투자자금은 석유수입으로 할 수 있지만 인력은 해외로부터 들여와야 했기 때문에 이시기부터 외국인의 사우디내 유입이 본격화되었다.

외교적으로도 레바논 내전 수습, 시리아 이집트 간 화해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중동평화에 있어 미국과 이집트의 주도권을 명백히 거부하기도 하였다. 석유수출국기구인 OPEC내에서는 ?76년 이원가격체재구축, ’77년 가격재통일 등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1979년에는 이란 혁명을 의식하여 페르시아만 제국과의 유대를 강화시키고자 파드 황태자의 미국방문을 취소하는 등 친미외교노선을 일부 수정하였으며, 국내적으로는 동년 11월 250여명의 이슬람 과격파들이 성지 메카를 무장점령하는 사태가 발생하여서 이를 계기로 파드 황태자는 왕국통치기본법제정과 자문평의회 설립을 발표하였다.

80년 9월에 발발한 이란 이라크 전쟁과 관련하여 사우디는 미국의 조기경보기(AWACS)파견을 요청하여 방위태새를 강화하였으며, 81년 5월에는 GCC(걸프협력협의회)를 발족시켰다. 82년 6월 칼리드 국왕이 서거하고 파드황태자가 국왕에 즉위하였고, 파드 국왕은 정치개혁조기실현,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수행, 이슬람교 국제통일의 필요성 등 기본방침을 발표하였고, 외교적으로는 GCC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 군사정책을 표방하였다. 이라크에게는 전쟁자금지원, 석유수출대행 등을 지원한 반면 이란과의 관계는 악화되어 82년 9월에는 이란인 순례단과 사우디 경찰과의 충돌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1990년 8월 2일 부터 1993년 1월까지 발생한 사건들은 전세계에 두루 알려진 중심 뉴스였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이라크로부터 사우디를 보호한다는 명목과 쿠웨이트로부터 이라크군을 모두 몰아내겠다는 것을 명목으로 다국적 군인이 유입되었다.

1992년 3월 파드 국왕은 국민들이 국정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대대적인 정치개혁안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기초한 기본법제정, 지방분권을 위한 행정개혁 및 왕실 자문기관성격의 협의기구(마즐리스 알슈라) 신설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히 마즐리스 알슈라는 최초로 국민들이 국가정책 결정에 참여한다는 상징적인 것으로 그간의 왕정체제로서는 획기적인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 93년 8월에는 정부각료의 임기제한, 각료회의 제도의 기능강화, 마즐리스 알슈라 위원 임명 등을 골자로 한 개혁조치를 단행하였는데, 정부각료의 임기는 지금까지 일단 임명되면 그 제한이 없었으나 이번 조치로 임기가 4년으로 제한되며, 기존각료회의도 그 기능을 대폭 강화시켰으며, 마즐리스 알슈라의 위원도 60명의 유력 민간인들로 구성하여 발표하였다.

정치

절대 군주국이며 행정과 외교 그리고 상업은 왕가에 의해 조정되는 반봉건주의 체제. 걸프 전쟁이후 민주주의자 측면에서 나라를 자유화하자는 압력과, 근본주의자들로부터 규제를 더 강화하자는 압력을 받아왔고, 그 결과 일부 변화가 있었다.

1992년 3월에는 파드 왕이 왕국의 최고 헌법(기초 성문법)과 자문회의기관을 설정할 것과 지방 행정부를 개편할 것을 다짐하였다. 나라 정사를 자문할 정선된 자문회의기관의 임명은(1993년) 지극히 단순해 보이지만, 이러한 시험적인 제스쳐가 가지는 장기간의 영향은 사우디 정계의 판도를 바꿔 놓을 수 있다.

* 왕위 계승

1996년이면 파드 왕은 75세가 되고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이다. 1982년 왕이 된 이후로 그는 자리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부담감이 증가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기초 성문법은 군주가 행정부와 입법부와 사법부의 수반이며 각 부서의 관리직을 임명할 독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기함으로써 권력의 집중화를 강조한다.

이러한 정치권의 집중화가 인정된 가운데 파드 왕의 계승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왕가내의 경쟁 가능성은 배제될 수 없다. 후계자의 계보는 더이상 과거처럼 자동적으로 Ibn Saud(1953년에 사망)의 아들들로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성문법은 압둘 아지즈의 손자들이 후계자의 자격이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시사하고 있다. 법률은 황세자 압둘라를 무시해도 좋다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지만, 또한 차세대의 영향력 있는 후보자들끼리 계승을 위한 격렬한 경쟁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열어 놓았다.

경제상황

1994년 12월 31일 정부는 1994년의 100억불을 넘는 적자를 1995년에는 40억불로 삭감하는 새로운 재정안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재정안과 함께 공공 서비스료가 증가하였다. 예를 들어 전기료나 수도세 또한 외국인들에게 발부되는 비자료 등이 발표되었다. 가솔린의 가격도 동시에 82%까지 인상되었다.

* 직업
전체 노동력은 4백 5십만명(41% 사우디인, 59% 외국인)이다. 최근 몇년전부터는 노동력 자원이 점점 ?사우디인화?되는 것이 관찰된다. 이것은 정부의 직접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다. 농업에 종사하는 비율은 10%, 산업체 9%, 서비스업과 상업 그리고 정부기관에 53%, 건설부분 20%, 석유산업과 광산업 9%를 채용하고 있다. 무역조합이나 노동 조합은 없으며 둘 다 불법이다. 실업률은 0%이다.

* 수입원
1991년 총수출액은 477억불이며 이중 원유 생산품이 91%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밀, 플라스틱 제품들과 농약제품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원유보유국이며 동시에 가장 큰 원유 수출국이다.

  • 1) 생산품/수공예품 : 대추열매와 잡곡 그리고 가축. 이들은 밀을 제외하고는 자족하지 못하고 있다.
  • 2) 무역 상대국 : 미국, 일본, 유럽 공동 시장과 한국. 1991년 총수입액은 253억불이며 이중 차량, 기계류, 전기제품과 식품류가 60%를 차지하였다.

* 현대화/편의시설

지난 20년 동안에 일어난 이 나라의 현대화를 목록화하는 일은 불가능하며, 심지어 미래에 다가올 세대들에게도 상상하기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많은 도시들이 기초부터 다시 건립되어지고 매우 현대적인 고속도로들과 하수구 시설, 전체 전기시설화, 정수된 식수뿐만 아니라 현대식 공항들이 세워지고 지금도 건설되어지고 있으며, 인공위성을 통하여 세계와 교류하고 있다.

전화와 TV수상기는 이미 보편화되었고 심지어 떠돌아다니는 베두윈들에게도 배포되어있다. 주바일이나 얀부같은 현대식 산업도시들이 세워졌고 지금도 확장되고 있다. 현대식 철강 제분소와 플라스틱 공장들이 존재한다. 교육과 현대식 의료 정기 정검은 모든 사우디인들에게 무료로 시행된다. 정부는 무이자 대출로 집을 보급하고, 갚거나 혹은 극빈자들에게는 무상으로 주기도 한다.

생활 환경/ 사회계발 정도

* 식생활
아랍 토박이의 대표적인 음식은 쌀, 보리 또는 밀로 만든 전병이다. 양고기가 주 육류이며, 미국처럼 하루에 여러 번 육식을 하지는 않는다. 대추열매를 정기적으로 섭취한다. 커피나 차는 모든 식사 전에 마신다. 버터우유, 요구르트, 그리고 낙타 젖도 함께 마신다.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술을 마실 수 없으나 ‘서구화’된 사람들은 술도 마시며, 돼지고기도 섭취하게 될 것이다.

* 주거
사우디 정부는 그들의 국민들을 위한 거주지 건축에 열정적인 계획을 갖고 잇다. 도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현대식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주택에서는 좀 더 부유한 층들이 산다. 대저택은 상류 부유층이 소유하고 있다.

* 의생활
사우디 아라비아의 남녀들은 계속적으로 전통적인 아랍 의상을 착용한다. 남성들은 국내에서는 ‘구트라(머리쓰개)’와 ‘토브(흘러내리는 흰 가운)’를 착용하지만, 국외에서는 최신식 세빌레 정장과 유행하는 파리식 의복을 입는다. ‘미쉴라’라는 겉옷을 종종 외투로 착용한다. 공공장소에서는 ‘구트라’를 벗지 않는다. 대개는 완전한 흰색으로 된 것을 착용하지만 종종 빨간 체크 무늬로 된 것을 쓰기도 한다.

공공장소에서 여인은 대개 얼굴 가리개를 착용하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가리개를 하지 않기도 한다. 밖으로 외출 시에는 ‘아바야(온 몸을 가리는 검은 가운)’를 착용한다. 종종 아름답고 세련된 드레스 위에 이것을 입기도 한다. 바깥에서는 몸에 딱 붙는 옷이나 몸을 드러내는 옷을 착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외국인들은 특히 여인들은 매우 조신하게 옷을 입어야 하며, 공공 장소에서는 머리와 손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려야 한다.

* 보건
보건 상태는 서구의 사람들과 동등한 상태는 아니지만 향상되고 있다. 무상의료 혜택은 모든 시민들에게 적용되며, 매년 메카로 하지를 오는 모든 순례자들에게도 적용된다. 평균 수명은 남자인 경우 68.4세, 여자인 경우는 71.4세이다.(1995) 유아사망률은 천명당 25명이다(1995).

내과 의사 한 명당 책임져야 하는 국민의 수는 690 명이다. 현대식 병원은 모든 주요 도시에 있으며 보건소는 모든 읍내에 세워져 있다. 리야드 근처에 위치해 있는 파이살 왕 기념 의료 센타와 제다에 있는 압둘 아지즈 왕 기념 병원은 국가 최고의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다.

풍토병은 없으나 매년 하지 기간중 아프리카 순례객들로부터 전염되어 오는 뇌막염(Meningitis)으로 인해 동기간 중에는 거주인은 물론 출장자들도 반드시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 식수
이반 사우드 왕이 미국 회사에게 이들이 물을 발견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석유를 시추해도 좋다고 허락한 것이 1930년대이다. 어떤 가정에는 부엌에 두개의 수도꼭지가 있다. 하나는 ‘단수’ 즉, 식수가 나오며, 다른 하나는 염분이 들어 있는 물이 나온다. 빠른 경제성장하에서 식수는 모든 시민들에게 보급되어졌다. 끊임없는 개선으로 관개시설이 건설중이고 현재 기획된 프로젝트 외에 추가해야 할 식수관계 안건은 더 이상 필요치 않는 듯 보인다.

* 에너지 및 연료
사우디인들은 세계에서 제일 싼 가솔린을 즐기고 있다. 1갤런당 0.64불이며 전기도 마찬가지로 싸다. 나라 전체를 완전하게 덮는 전기 배관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930년대 석유를 발견하기 전 당시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곳에서 화씨 110-120도를 오르내리는 기온과 해안 고원지방의 높은 습기에 대처할 수 있는 에어콘이 설치되어 있다. 겨울동안 난방이 필요할 시에는 전기나 가스 난방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

사회

* 가족 구조
사우디 아라비아 가문이 전통적으로 강하고 남성 우월주의 단위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한 여인은 가정 안에서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가정에 대한 그녀의 의무도 굉장하다. 대부분 가정들은 대가족 단위로 살고 있으나 도시에는 핵가족들도 더러 있다. 아들들이 가정과 함께 아버지 살고 있는 이웃에 가까이 사는 것이 아직까지 전통이다.

대가족 제도는 그들의 사회에서 중심역할을 하며, 가족에 대한 헌신은 한 개인의 일생에서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가정 밖에서 남녀가 부동하는 것은 보편적이나 가정내의 사생활에서는 지켜지지 않는다.

사우디 여인은 사우디 법과 여성스러움을 보호하며 존중하도록 고안된 관습에 맞춰 살게 된다. 그녀의 행실은 그녀 가족의 명예와 명성을 반영한다. 만약 가족의 명예에 오점을 가하게 된다면 그녀는 가족 일원에 의해 죽임을 당할 지도 모른다.

여인들은 자신의 가족 외의 남성과 접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대학교에 다니는 여성들은 그들의 남자 교수들의 눈에 띄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학교 수업은 폐쇄된 공간에서 TV를 통해 이루어지고 학생들은 각자 자기 책상을 가지고 있다. 만약 교수에게 질문이 있을 시에는 TV수상기 옆의 수화기를 들어서 강사와 통화를 한다. 1992년말까지는 여성에게도 해외 유학이 허락되었으나 그 이후로 이것 또한 금지되었다.

1973년 최초로 사우디 여성들이(12명) 한 대학에서 졸업하게 되었을 때도 학위식 프로그램에서 이들의 명단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들은 별도로 예비된 특별 의식을 반대하였다. 2년제인 유치원에서는 남녀 아이들이 함께 다닌다. 6세부터 이들은 따로 구분된 학교를 다니게 된다.

여학생을 위한 교육은 1960년대에 와서야 실제로 시작되었다. 1980년대까지 기초교육이 남녀 학생에게 똑같이 주어졌다. 모든 학교 행정은 정부에서 자금을 대주며, 대학교와 특별한 사유로 해외로 유학하는 경우에도 정부에서 후원한다.

여인들이 차를 운전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1990년 11월 50명의 사우디 여인들이 그들의 운전사를 해고하고, 자신들이 차를 몰고 리야드 시내를 다니며 이 법률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체포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적인 물의를 낳았다. 걸프전쟁 중 가족과 함께 피난처를 찾아다니던 쿠웨이트 여인들이 차를 운전함으로 이러한 사회적인 격분이 부활하였다.

결혼은 대개 가족 일원들에 의해 마련된다. 도시 지역에 사는 젊은이들 중 소수는 자신들의 배우자를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였다. 데이트는 흔한 것이 아니다. 전통적인 사우디 결혼식은 이슬람 예식이다.

예식 후에는 남자와 여자를 위한 따로 분리된 잔치가 있다. 남자들이 신부지참금을 지불하는 것이 전통이다. 정부는 이 지참금이 72,000불이 넘지 않도록 규제한다. 이슬람 법은 한 명의 남자가 한번에 4명의 아내까지 둘 수 있다고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여인은 결혼 전까지 순결을 지키도록 되어있다.

* 이웃관계
가문간의 관계는 한 사람이 자신의 이웃과 가지는 관계를 다스린다. 즉 존경받는 가문일수록 그와 이웃이 되기를 바란다. 만약 그들이 같은 씨족출신이면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 가문의 정체성에 상관없이 아랍 사회에서는 기본적인 친근함이 특징이다. 어떠한 형태의 환대이든 그것은 답례를 하도록 되어있다. 이웃에게 도움을 주기를 거절하는 것은 아랍 문화권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하나의 죄이다. 아랍 격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집을 고르기 전에 이웃을 먼저 고르며, 길을 선택하기 전에 동행할 친구를 고르시오!”

사회적 관습 및 문화

* 씨족사회
씨족의 가장은 씨족에 대한 강한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독재자적인 힘은 갖고 있지 않다. 누구든지 토의 중에 그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지만, 그의 입지에 대한 씨족전체의 동의를 얻는데 실패할 경우 대다수에게 굴복해야한다.

가문의 명예는 행동을 자제하는 가장 강한 요소중의 하나이다. 가문에게 불명예를 가져오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침을 받는다. 가문의 장로들이 그들의 장로들로부터 배운 지혜로 이러한 명예를 지키도록 되어있다. 장로직은 선출되는 직책이 아니고 씨족 가운데서 행한 지혜로 말미암아 추대되어 인정받음으로 얻게 된다. 사우디 사회는 기본적으로 가족 중심의 사회이다. 핵가족이 아닌 대가족 제도이며 씨족의 계보를 따라 형성되어 있다.

* 축제
이슬람력은 음력에 기초한다. 그러므로 공휴일이 해마다 바뀐다. 9월 23일 국경일은 제외이다. 이슬람력은 7세기에 모하메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헤지라’를 기원년으로 삼는다. 따라서 서기 1996년은 헤지라 해로 1416년에 해당한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기념하는 이슬람 공휴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Eid al Fitr’으로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희생제물로 드리려고 하였던 것을 기념하는 희생의 축제이다. 모하메드의 탄생일과 이슬람의 신년의 날을 또한 경축한다.

라마단 기간에는 신실한 자들은 일출부터 일몰 때까지 낮동안은 먹지도 않으며 흡연이나 음주를 하지 않는다. 식사는 밤동안에만 한다. 심지어 외국인들도 무슬림이 아닐지라도 이 기간동안에는 공공장소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결혼예식은 모든 확대 가족 친지와 친구들이 함께 모여 화려하게진행된다. 때때로 이러한 경축행사는 며칠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 여가선용
축구가 국기이지만 오직 남자들만 할 수 있으며 경기장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오직 남자만이 허용된다. 사우디 남자들은 또한 사냥과 매사냥을 즐긴다. 승마나 낙타 경주도 남자들이 즐기는 스포츠이다. 젊은 남자들은 배구를 즐기는 편이다. 사우디 여인들은 다른 여인 집을 방문하여서 보석이나 의상을 수집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지낸다.

* 예술 형태
이슬람 예술의 첫 번째 원칙은 연합이다. 서체로부터 타일, 편직물, 벽돌작품, 건물들, 시내빌딩이나 고층 빌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신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한다.

이슬람 서체의 역사는 7세기 나바테안인으로부터 받은 경전에 코란을 받아 쓸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요르단 강 서부에서 온 헬라화된 아랍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요르단에 페트라와 사우디 아라비아에는 마다인 살리를 건설하였었다.

이슬람의 서체는 의심할 나위 없이 이슬람이 시각예술에 영향을 미치게 한 가장 원조적인 것이다. 디자인은 또다른 형태의 예술이다. 아드난 아크바라는 한 사우디 아라비아 디자이너는 오늘날 세계 패션에 공헌하고 있다. 그는 사우디 환경의 관점에서 그것들을 새로운 방법으로 표출하려고 노력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디자인을 소개하였을 때 그는 서구의 여성들이 자신의 문화를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을 돕고 있다고 느낀다.

사우디에서 하나의 예술로 간주되는 건축 양식은 이슬람 탄생 전기 시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주요 건축 형태는 전통적으로 그들의 지붕에 나타난다.

* 매체

  • 1) 라디오 : 방송은 정보국산하의 사우디 아라비아 방송국의 지도 아래 있는 독점 체제이다. 1990년 라디오 수신자는 4백만 명이었다. 방송시간은 시사정보, 교육, 문화, 종교 그리고 오락으로 구분되어 있다.
  • 2) 텔레비전 : 사우디 아라비아 국영 텔레비전 방송국을 1965년부터 운영하여서 리야드, 제다, 메디나, 담만, 그리고 콰심에 수신국을 두었고 1987년에는 일주일에 38시간씩 방영하였다. 보수적인 종교지도자들의 반대는 텔레비전 방송 확산에 걸림돌이 되어왔다. 매년 방송 시간은 2,920시간이다. 이중 426시간은 정보를 위한 시사정보를 위한 것이고, 162시간은 교육을 위한 것, 182시간은 문화소식, 365시간은 종교를 위한 것, 그리고 1,156시간은 오락프로그램이다. 1990년에는 375만 명의 방송 수신자가 있었다.
  • 3) 영화 : 어떤 영화들은 무슬림 종교법 내용에 비추어 보아 나라 전체에서 금지되기도 한다.
  • 4) 신문 : 공식적으로 인쇄물은 감시당하지 않지만, 건전한 저널리스트의 감각으로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운영되고 있다. 종종 어떤 신문이 이 테두리를 범할 경우 얼마 기간 동안 발간되지 않는다. 비평은 지상을 통해서 할 수 있으나 정중해야 하며 아랍인들이 좋아하는 화려하고 아첨하는 어구로 억압되어 있다. 사진은 이슬람적이지 않다고 간주되어서 몇몇 신문들은 단조롭게 내용만 실은 종이 쪽지 형태이다.
  • 5) 비디오 : 어느 박사 과정의 조사에서 제다의 280가정중 단지 14가정에만 VCR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비디오 테이프들이 서구 세계로부터 합법적이나 불법적으로 유입되어 들어온다. 비디오 대여점이 많이 있다.
  • 6) 카세트 :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상점을 통하여 팔기도 하고 빌려주기도 하여서 어디서나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복제품은 왕국 내 모든 시내에서 불법이다. 다른 미디어에 적용되는 감시 체제가 카세트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 관습 및 예절
베일을 가린 한 여인과 동행할 때는 대개 남자가 그녀를 소개하지 않으며, 외인이 그녀와 악수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사우디 가정이 초대할 때는 오직 남자에게 한다. 만약 아내도 초대받았을 때에는 가족내의 여자 일원과 함께 격리된 방이나 장소에서 식사하도록 할 것이다.

차나 커피를 대접받을 때 손님은 자신이 충분히 마셨을 경우에는 그의 손으로 컵을 가리거나 부드럽게 손을 좌우로 흔들면서 거절을 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초대한 주인은 계속해서 잔을 채워줄 것이기 때문이다. 커피는 주로 손님이 떠나야 할 시간을 가리켜 주는 하나의 신호로 모임의 끝에 나온다.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신호를 보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것이다. 왼손은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사물은 오른손이나 두손으로 전달해야 하며, 왼손만으로는 물건을 건네줘서는 안된다. 또한, 발로 다른 사람을 지적하는 것도 매우 불공손한 것이다. 다리를 꼬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바닥에 닿도록 다리를 가지런히 정돈하여 앉는 것이 낫다.

문화적 변화 : ( )정지 ( )서서히 ( )중간 (X)급속히
사회의 반응 : ( )상당한 거리가 있음 ( )근접 (X)적용되지 않음
개개인의 이미지 : ( )위협받은 느낌 ( )우울한 감정 (X) 자긍심을 느낌

* 사법체계
왕은 정부의 수반이며 수상이기도 하다. 그는 권력의 중심이며 종교 지도자이다. 그는 장관들의 자문회의의 도움을 받는다. 선거나 정당이 따로 없다. 법률은 이슬람의 법(샤리아)에 토대를 갖는다. 사법처리는 코란과 법령으로 보충된 샤리아에 의해 진행된다. 샤리아에 명기된 형벌 중 몇 개는 매우 엄하다. 거기에는 투석, 손발절단, 채찍질도 있다. 1977년 사우디 왕가의 한 공주가 간음으로 인해 참수형을 당했다. 이것은 이슬람의 법이 예외없이 모든 시민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한 예이다.

이들의 법에 따르면 사우디 아라비아는 사전에 계획된 살인이나, 간음, 이슬람에서 배교하는 것, 그리고 상황에 따라 강간과 무장 강도에게 최고형을 내리도록 되어 있다. 참수형은 일반적으로 집행되는 형벌이다. 사격 발사대에 의한 총살형이나 투석형은 주로 간음한 자에게 행해진다. 도둑은 손을 절단당할 것이다.

사우디 여인이 정부의 허락없이 비사우디인과 결혼하는 것은 불법이다. 심지어 사우디 남자들도 걸프만 연합 기구외의 나라 출신의 여인과 결혼하기 전에는 반드시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라마단 기간 중에는 낮동안 공공장소에서의 식사와 음주, 그리고 흡연에 대한 금지가 더 강화된다.

아이들과 청소년

* 교육/학제
인구의 1/2이상이 20세 이하이다. 연령분포도는 다음과 같다.

15세 미만 45%
15세에서 64세 52%
65세 이상 3%

고용 연령의 최연소가 10세이다. 그러나 농업이나 일반 가정집 또는 가족 기업에는 연령 제한이 없다. 가족 내에서 아이들의 순종은 그들의 부모들뿐만 아니라 모든 친지들에게 관심을 두는 중요안이다.

* 교육
공공 교육은 무상이지만 모든 단계가 의무 교육이지는 않다. 빈곤한 아이들을 위해서는 보조금을 공급한다. 성별의 전통적인 구분은 종종 남자 보다 여자들의 등록 비율을 더 낮게 한다. 사우디 교육의 주요 목표는 ‘학생들에게 무슬림 사회에 쭉 내려온 윤리와 종교 그리고 문화적인 기본 원칙을 잘 심어서 동화시키는 것’이다. 1991년 남학교는 7,572개이며 5,660개의 여학교와 83개의 고등 교육을 위한 학교가 있었다.

유치원과정은 2년이며 4-6세에 이르는 아동을 위한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남녀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한다. 의무교육이 시작되는 6세부터는 분리된 학교에 간다. 소년일 경우 6년간의 국민학교 과정과 3년간의 중학교 교육이 있고 다시 3년간의 고등 교육이 있다. 그리고 대학과정이 있다.

고등 학교 1년 과정후 학생은 이과와 문과를 나눈다. 소녀들을 위한 교육은 1960년대에 들어와서 시작되었다. 1980년대까지 여학생들은 남학생과 똑같은 교육을 누릴 수 있었다. 현재는 많은 여학생들이 학사를 따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여학생들이 수학능력 테스트에서 남학생보다 월등한 것이 나타났고, 어떤 졸업반에서는 여학생이 30대 1로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았고 1등에서 5등까지를 여학생이 석권하였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는 질문에 여학생들은 “왜냐하면 남자 애들은 차를 가지고 있고, 여학생들은 반드시 집에 머물러야 하므로 우리는 공부를 했으니까요”라고 대답하였다.

사회 문제들

비록 이슬람 법전이 사우디 아라비아 내에서 엄격하다 할지라도 이 나라안에도 많은 부도덕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비록 공개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성병은 심각한 문제이다. 알코올 중독도 증가하고 있는 문제이다. 왕국 바깥에서 온 창녀들의 유입은 널리 퍼져 있다. 현재는 나라에 입국하는 외부인들은 AIDS 무감염을 증명하는 의사 진단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중동에서 노예제가 공개적으로 지지받는 유일한 나라이다. 원래는 1962년 공식적으로 노예제는 폐기되었으나, 노예를 원하는 수요로 인해 계속해서 노예 장사꾼들로 하여금 비밀스럽게 활동하도록 격려하였다. 이 나라가 혼란의 도가니 가운데 있고 많은 사우디인들이 이 제도에 불만을 갖고 있지만, 현재까진 즐겼던 ‘좋은 생활’을 잃어버리려는 모험을 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음식이나 레크레이션, 주택이나 여행 같은 물리적인 것은 제3세계에서 최고의 것들을 가지고 있으며 바깥세계에서 도울 수 있는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슬람의 공허함이 사우디인들의 삶에 커다란 적막감을 생산해낸다. 그들의 심령을 만족시켜 주실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이다.

종교

* 종교의식
인구의 99%가 이슬람이다. 무슬림들은 대부분 수니파이다. 네즈드와 동부 지역에서는 와하비 개혁 운동이 더 중요시 여긴다. 호푸르 오아시스 같은 곳에는 소수의 하나피트 파와 말리키트 파가 항상 존재해 왔다. 아샤에서는 반-와하비 한발리파가 우세하지만, 6만 명의 콰르마티안 분리파로 알려진 이스마일족이 있다. 나라안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수니의 한 분파인 와하비즘은 사우디 왕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개혁당이다.

이슬람의 성지들이 위치하고 있는 헤자즈는 점점 비무슬림들에게는 접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모든 무슬림들에게 의무적인 순례인 하지를 하기 위하여 도착한 자들에게 거룩한 땅인 하람이 확장되고 있다. 아라비아는 무슬림 세계의 중심부이며 메카와 메디나는 이슬람의 가장 거룩한 두 도시가 되었다. 카아바가 발견된 메카의 가장 큰 회당은 계속 확장되어서 지금은 3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매년 메카로 오는 순례는 증가하는 외국인 무슬림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이러한 증가추세는 단지 7일 동안 지속되는 순례에 조직적인 커다란 문제가 나타났다. 1994년 하지에는 거의 2백만 명이 몰렸다.

다음은 이슬람의 다섯 기둥이다.

  • 1) “Shahada” 즉 신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모하메드는 그의 메신저이다.? 이것은 적어도 하루에 5번씩 나라 전체에서 들을 수 있다.
  • 2) “Salat” 즉 기도, 이것은 신실한 자들에게 매일 5번씩 요구되어지는 것으로 일출 전과 오전중, 오후 중, 일몰 때와 저녁에 한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TV프로그램과 라디오가 기도 시간에는 방송을 중단하며 심지어 식당도 문을 닫는다.
  • 3) “Zakat” 가난한 자를 적선하는 것
  • 4) “Sawm” 금식. 라마단 기간에는 신실한 자라면 반드시 해가 있는 동안에는 금식을 해야 한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금한다. 이것은 외국인에게도 공공장소에서는 엄격하게 강요된다.
  • 5) “Hajj” 이슬람 달 중 하지 기간 동안 메카로 순례를 가는 것. 모든 독실한 무슬림들은 인생에 적어도 한번은 이 순례를 하도록 되어 있다. 세계 각처에서 온 수백만명이 해마다 있는 순례를 하러 온다.

사우디 아라비아에는 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2개의 국제 기관의 본부가 있다.

  • 1) 무슬림 세계 연맹 (The Muslim World League)
    1963년에 설립된 무슬림 세계 연맹은 세계 속의 주요 무슬림 종교 기관이다. 이들의 목적은 이슬람의 메시지를 선전하고, 이슬람의 가르침과 교리를 알리며, 무슬림 세계의 연합을 강화하는데 있다. 대표 위원회의 임원들은 이슬람 내에서 가장 뛰어난 종교, 문화 인사들 중에서 발탁된다.

    이 연맹은 또한 이슬람의 세력이 약한 비이슬람 국가 내에도 사무실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이나 스위스, 덴마아크, 나이지리아, 마다가스카르 그리고 태국 등지에 있다. 1975년 연맹은 세계 무슬림 선교사 기관을 창설하기로 결정하고 좀 더 활동적으로 무슬림 디아스포라에 관여하기로 결정하였다.
  • 2) 이슬람 협의회 (The Islamic Conference)
    제다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슬람 협의회는 중요한 무슬림 정치 기구로써 1975년에 37개 회원국을 갖고 있었다 : 아프카니스탄, 알제리, 방글라데쉬, 바레인, 카메룬, 챠드, 이집트, 가봉, 감비아, 기니아, 기니 비사우, 인도네시아, 이란, 요르단, 쿠웨이트, 레바논, 리비아, 말레이지아, 말리, 모리타니아, 모로코, 니제르, 오만, 파키스탄, 카타르, 사우디 아라비아, 세네갈, 시에라 레온,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튀니지, 터키, 우간다, 아랍 에밀레이트, 아퍼볼타, 예멘.

    이 기관의 목적은 회원국 사이의 협력과 관계 강화를 촉진시키는 것이다.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국가 원수들로 구성된 군주협의회와 외무 장관 회의가 있다. 1952년 이슬람 협의회는 국제 이슬람 프레스 기관을 창설하고 말레이지아 쿠알라 룸푸르에 본부를 두고 비무슬림 국가들에서 이슬람 문화원 활동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주게 하였다.

1950년 이래로 사우디 아라비아는 가르침과 종교 훈련목적으로 세워진 기관들의 광대한 네트워크를 발전시켰는데 이들 기관중 상당수는 외국인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그 중 중요한 기관들은 다음과 같다.

  • 1) 메디나 이슬람 대학교
    1961년에 설립된 이 학교의 목적은 근본적으로 선교사 양성으로 학교 설립과 함께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과 북미의 70개국 이상에서 학생들이 왔다.
  • 2) 샤리아와 이슬람 연구 기관
    1967년 메카에 설립된 이 기관은 제다에 있는 압둘 아지즈 대학교 산하 단체이다.
  • 3) 고등 사법 연수원
    1965년 리야드에 설립된 이곳에서는 다양한 이슬람의 샤리아 법률 분야별로 전문 판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 4) 이슬람 법률 학교(샤리아 대학).
    1949년 메카에 설립된 이 학교에서는 법률가와 선교사뿐만 아니라 아랍어와 종교를 가르칠 교사를 양성한다.

위의 기관들은 모두 자치단체이거나 교육부 통제하에 있다. 또한 리야드에는 다른 2개의 대학이 있고, 34개의 다른 도시들에도 여러 가지 기관들이 있으며, 1950년에 설립된 최초의 기관인 General Precedence of Institutes and Colleges의 통제아래에 있다. 1976년 2월에는 20여개의 무슬림 단체들이 메카에 강력한 라디오 방송국을 세우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아프리카에서 영향을 주고 있는 기독교 라디오 프로그램에 맞서기 위하여 진행되었다.

* 영적 분위기/ 개방정도
앞에서도 보이듯이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슬람을 제외한 어떠한 형태의 종교에 대하여 매우 저항적이다. 서양의 것이라고 알려진 교회는 사우디 아라비아 내에서는 불법이다.

1940년에 미국 석유기업인 아람코의 실무 관계자가 압둘 아지즈 왕에게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허락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왕은 다란 컴파운드 안에서 모임을 갖는 것을 허락하였다. 단 어떠한 무슬림도 참석할 수 없으며, 예배에 대한 광고나 예배를 알리는 것이 어떠한 형태이든지 밖으로 노출되어서는 안된다는 조건하에 허락되었다. 바레인에 있는 네덜란드 개혁 선교 기관도 찬양을 인도하도록 요청받기도 하였다. 회사의 정상적인 성장과 다른 가족들의 캠프가 확장되면서 이러한 소그룹 모임은 라으 타누라와 아브카크에서도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난 후 카톨릭 펠로우쉽들도 하나의 성공회 모임과 함께 생겨났다. 또한 다수의 비사우디 기독교인들의 모임이 가정에서 은밀하게 열렸다. 몰몬교와 오순절 계통의 모임들도 강하게 자랐다. 개신교 모임들은 전세계의 100여개의 다른 선교 기관들에게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소수의 회원들은 사우디인들과 왕국내의 다른 민족사람들과 함께 텐트 메이커로써 활발하게 사역에 임하고 있다.

아람코 펠로우쉽 외에도 리야드 안에는 많은 가정 펠로우쉽이 있었고 Dudley Woodbury가 목회자로 있었다. 이 집단은 몇년전 사우디 정부에 의해 붕괴되었는데, 어느 아랍 전도자의 방문으로 현명하지 못한 몇 가지 행동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다. 이로써 당회의 임원들과 목사에게 24시간내로 출국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따라서 펠로우쉽은 지하로 내려가서 계속되었다. 이러한 소그룹들은 굉장한 성장을 경험하고 있으며 그 중 아시아인 그룹은 놀랄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들 모임 중 어느 하나도 특별하게 사우디인을 대상으로 삼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아주 소수의 개인들이 사우디인들 사이에서 열매를 맺고 있는 사역을 하고 있다.

걸프전에서 약 60만명의 미군이 사우디 아라비아에 투입되었는데 이중 15만명이 기독교인이었고 12만 5천명이 주를 영접하였다. 걸프전 동안에 약 100만권의 성경이 수송되었으며 성경의 필요를 본 기독교 군인들은 고향에 돌아간 후 성경을 다시 보내기도 하였다.

* 복음전파의 기회
사우디 아라비아 내에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5개의 기본적인 방법이 최근 전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 번째로 헌신된 기독교 국외 고용인들을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 텐트 메이커들은 전략과 교제를 형성하는 목적을 위해 반드시 체계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운영의 기본틀은 사우디인들과 일대일로 개인적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하나의 팀이 ‘개종자들’이 늘어남으로 성장하게 되면 이들은 함께 소모임을 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것이며, 결국 하나의 지하 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이러한 텐트 메이커들의 교회 개척 팀들은 처음에는 대도시에 집중될 것이나 안전을 목적으로 정식적인 상호간의 연결이나 교류는 없다.

두 번째로 아랍어 연수 학생의 신분으로 사역하는 단기 사역자들을 대학교에 배치하는 것이다. 어학연수 상태를 이용하여 이들은 이슬람을 정면으로 대하면서 더 큰 모험을 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언어 프로그램들은 전도의 목적을 띠고 세워져서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려고 한다. 이러한 사역을 위한 정상적인 기간은 2년이 될 것이다.

세 번째로 성경 배포와 “예수” 영화 배포가 증가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좀 더 ‘소규모적인’ 협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네 번째로 현재의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장기적인 청취자를 강화할 수 있도록 수정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성경의 기독교인의 삶을 이야기식으로 나타낸 ‘기독교 연재 드라마’ 형태가 이러한 장기 청취자를 확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다섯 번째로 자유국가들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우디 학생들을 복음전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들에게 복음으로 접근하고 이와 관련된 사역을 하는 조직들이 학교에 배치되어야 한다.

* 기독교 상황

  • 1) 성경 : 여러 개의 아랍어 번역본이 있다. 사우디인들을 위한 복음전파에 매우 적절함. The Van Dyke and Today’s Arabic Version이 이용가능하다. 그러나 왕국 내에서 사용되는 구어체로 된 성경은 현재 없다.
  • 2) 문서 : 아랍어 기독교 서적은 풍성하지만 오직 지하 루트를 통해서만 유통되고 있다.
  • 3) 카세트 : 아랍어 기독교 레코딩물도 풍족히 있지만 지하 접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 4) 필름 : 아랍어로 된 좋은 필름과 비디오가 많이 있다. ?예수?영화 필름이 아랍어로 나와 있으며 지하 조직을 통해 배포되고 있다.
  • 5) 라디오 : FEBA과 TWR이 하루에 몇 시간씩 아라비아만으로 프로그램을 쏘아 올리고 있으나 청취자 응답이 문제거리로 남아있다.
  • 6) 사우디인들 사이에서 사역하는 단체들 : 현재 하나님의 성회, 오픈 도어즈, Conservative Baptist, OM과 YWAM이 사우디 아라비아 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많은 다른 단체들도 사우디인들을 위한 사역을 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나라안에 거주하는 텐트 메이커들은 무수히 많으나 아라비아어(문학) 연구가는 한 명도 없다. 사우디 아라비아 밖에서 사우디인을 사역 대상으로 일하는 단체는 없다.

* 기독교에 대한 반응

  • 1) 기독교에 대한 태도 : 기독교 역사가 이슬람보다 더 오래되었으므로 더 열등한 종교로 간주한다. 복음서에 대해서는 ‘하늘로부터 온 사본’에서 왜곡되거나 위조되었다고 본다. 사우디 아라비아에는 한때 큰 무리의 기독교도들이 있었으나, 1300년 전에 모두 추방되었다.

    오늘날, 고대의 고고학적인 기독교 유적지에는 울타리가 쳐져있고,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이슬람의 가장 거룩한 두 도시, 메카와 메디나를 가진 이슬람의 본국이 되기 위하여 이 나라는 그들의 거룩한 땅을 ‘이교도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다. 누구든지 사우디인이 기독교도가 되고자 하면 참수형에 의한 사형을 선고하도록 군사적으로 억누르고 있다.
  • 2) 종교 변화에 대한 개방성 : 사우디 일반 대중들은 성경과 예수를 배우는데 꽤 호기심을 갖고 있으나, 가족의 핍박과 법적 문제로 인하여 종교를 바꾸려고 하는 자는 거의 없다.
  • 3) 사역에 대한 반응도 : 실질적으로 라디오나 개인을 통한 접촉을 통해 반응하는 일부 개인을 제외하고는 없다.
  • 4) 기독교 사역의 존재 현황 ( 0 = 전무, 1 = 극소수, 2 = 양호, 3 = 적당, U = 알려진바 없음)
    • 가정 0
    • 사업 & 상업 1
    • 교회 0
    • 예술/오락 0
    • 교육 0
    • 정부 0
    • 대중매체 1

사우디 아랍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자

사우디 아랍인들은 세계에서 복음을 전하기 가장 어려운 종족 집단이다. 공식적인 통계로는 나라 전체가 100% 무슬림이며 선교사 활동은 불법이며 적발시 투옥된다. 그러나 사우디인들 사이에 14,000명 미만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생각되어지는데 확인하기가 어렵다. 믿는 성도들은 그들의 회심을 비밀로 간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리고 해외에 사는 동안 믿게 되었다. 사우디 내에 자국인 교회는 하나도 없으며 모든 교회는 불법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모이고 있는 두 세개의 모임이 있다.

  • (1) 하나님께서 사우디인들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하시고 교만과 속임수, 탐욕과 노예의 영을 무너뜨려주시기를 기도하자.
  • (2) 모든 사우디인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도록, 그리고 자신들의 언어로 하나님의말씀을 들을 때에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자.
  • (3) 사우디 신자들의 믿음이 성장하고 서로간의 교제가 형성되며 사우디 교회들을 세울 수 있도록 기도하자.
  • (4) 다른 국적의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므로 무슬림들을 변화시킬수 있도록 기도하자.
  • 5) 역사속에 나타나는 사건들이 사우디 아라비아를 관통할 복음을 위한 문들을 열어 줄 수 있도록 기도하자.
  • (6) 선교사님들의 안전을 지키시고 주께서 그들을 격려하시도록 기도하자.
  • (7) 기독교인들 중에서 사우디인들의 필요에 응답하여 그들의 고통을 지고 그들을 위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갈 대가를 기꺼이 치를 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더 많이 나오도록 기도하자
  • (8) 사우디 기독교인들이 주님으로 인해 이제까지 참아온 인내를 잘 참을 수 있을 수 있도록 기도하자.
  • (9) 그리스도께 많은 가족들이 나아와서 가정예배가 시작될 수 있도록 기도하자.

참고 도서

  • 참고문헌
  • Alireza, Marianne. ?Women of Saudi Arabia.? National Geographic, October, 1987
  • Al-Hariri-Rifai, Wahbi. The Kingdom of Saudi Arabia. Washington D.C. : GDG Publications, 1990
  • Aramco World Magazine. 1100 Milam, Houston, TX
  • Barrett, David B. World Christian Encyclopedia.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1982
  • Culturgram for the 90’s. Bringham Young University, Publication Services, 280 HRCB Provo, Utah 84602
  • Dedourie, Elie. Islam in the Modern World. New York: Holt, Rinehart and Winston
  • Electromap World Atlas. Electromap Inc., POB 1153, Fayetteville, AR 72702
  • Encyclopedia of the Third World, Third Edition. Vol III, New York, 1987
  • Esposito, John L. Women in Muslim Family Law Syracuse : Syracuse University Press.
  • Johnston, Patrick. Operation World. 5th ed. Grand Rapids : Zondervan, 1993.
  • The Middle East, 7th ed. Congressional Quarterly Inc. 1414 22nd St., N.W. Washington, D.C. 20037
  • Nazir-Ali, Michael. Islam, A Christian Perspective. Exter, England : The Paternoster Press.
  • The New Encyclopedia Britannica. Chicago: 1988
  • Orlinsky, Harry M., ed. Arabia and the Bible. Philadelphia: KTAV Publishing House, 1969.
  • Peoplesfile Index. 1986 Edition. Global Mapping Project, Inc. Pasadena, CA
  • Safran, Nadav. Saudi Arabia, The Ceaseless Quest for Security. Ithaca : Cornell University Press
  • Saudi Arabia Information Office. Royal Embassy of Saudi Arabia, 601 New Hampshire Ave.,NW, Washington, D.C. 20037
  • World Christian Encyclopedia.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1982
  • World Christianity Vol 1, Monrovia : MARC, 1979
  • World News Digest, Winter 1990. World News Digest, Inc. 999 Eighteenth St., Suite 2760, Denver, CO 80202
  • World Population Prospects 1988. United Nations, New York.
  • World Translations Progress Report 1989, United Bible Societies 1865 Broadway, New York, NY 10023
  • Zwemer, S.M. Arabia, the Cradle of Islam. New York: Revell.

관련 글(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