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 하나님의 종합예술 (중국 소수민족선교를 위한 협력)

한국선교연구원 주: 이 글은 중국어문선교회에서 발행하는 <중국을 주께로>에 실린 것으로, 중국어문선교회의 동의를 받아 게재합니다. 이 외에도 <중국을 주께로>에 실린 글을 읽기 원하면, 글 하단의 배너를 눌러주세요.

중국을 주께로 제134호(2013년 11,12월호)
특집 제목: 한국 속의 작은 중국, 안산 중국인 사역
발행: 중국어문선교회

강산 | 중국선교사

지난 몇 년 동안 세계 기독교의 주요 화두 가운데 하나는 ‘The next Christendom’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독교의 중심이 서구였다면, 이제는 비서구권이 전 세계 기독교의 중심부를 형성해 가고 있다. 기독교는 더 이상 파란 눈 노란 머리의 서양인들의 종교가 아니다. 오히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가 기독교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것이 지금 시대가 맞이한 현실이요, 큰 물줄기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선교계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이슈는 ‘그렇다면 선교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즉 ‘현지인 지도력이 중요하게 되면서 외국인 선교사들은 어디까지 선교활동을 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발걸음을 돌아보며 다시 사역의 방향을 잡을 필요가 생겼다. 이제 더 이상 ‘더 많은’ 혹은 ‘더 빠른’ 사역이 우리의 과제가 아니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바로 ‘협력’이다. 더디 가는 것 같지만, 함께 손을 잡고 힘을 모아 일할 때, 우리는 바른 방향을 향해 바른 방법으로 일할 수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히 그러한 협력이 필요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이 나라의 주인인 중국인들을 존중하고 협력하는 것이 필요함을 말하려고 한다. 선교는 한시적인 것이며, 그들이 주도하는 예배가 영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사들 사이의 협력
협력은 겸손을 의미한다. 협력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협력은 개인의 유익보다 공동체와 하나님 나라가 우선하며,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그분의 뜻이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개인의 즐거운 헌신과 행복한 손해와 자발적인 희생을 전제로 한다. 그렇게 협력할 때, 하나님은 그분의 나라를 이루시면서 동시에 희생했던 개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동참하는 기쁨을 선물로 주신다. 그래서 손해는 더 이상 손해가 아니고, 희생도 더 이상 희생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협력을 어려워한다. 왜 그럴까? 먼저는 용어상의 오해다. 동역을 ‘동업’으로 오해했다. 동업해서 성공한 예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역까지도 꺼리게 된다. 하지만 선교를 위한 ‘동역’ 이라고 할 때 동역은 동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다. ‘공동 출자’, ‘공동 사역’, ‘공동 수확’을 의미하는 동업이 아니라, 각자의 영역을 유지하되, 서로가 서로를 위해 힘을 모으고 섬기는 모델이 바로 동역과 협력이다. 즉 동역은 ‘자세’와 ‘태도’의 문제이지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협력이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손해보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은 아닐까? 우리 각자를 향한 부르심의 이면에는, 내 사역이 성공하고 잘 되어야 하며, 내 사역에 유익이 되지 않는 활동과 섬김은 에너지의 낭비일뿐더러 청지기적 책무에도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존재한다. 각자 자신의 맡은 일만 잘하면 되지 남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는가. 협력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이기적이다. 개인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지역 이기주의가 여론을 주도하며, 한국의 지역교회가 개교회 이기주의에 빠져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은 하나님나라 전체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사고인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소명과 우리의 헌신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에 대한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소명이요 헌신이다. 일에 헌신했다면 이기적으로라도 일을 성공적으로 해 내기만 하면 그만이겠지만, 하나님께 헌신했다면 하나님의 나라라는 큰 그림을 위해 모두의 힘을 모으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소수민족 선교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협력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정보 교류와 자원의 나눔
다른 모든 사업이나 활동과 마찬가지로, 소수민족선교를 위해서도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민족과 지역에 대한 유용하고도 정확한 정보일 것이다. 지리적 위치와 교통, 행정 조직과 같은 개요에서부터 경제상황, 사회구조, 생활조건, 종교상황, 그리고 중요한 사람들에 대한 정보와 선교적 접근 방법 등에 이르기까지 선교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과 정보들은 참으로 다양하고 방대하다. 이러한 자료들이 선교사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나누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껏 우리는 우리의 사역에 중요한 정보들이 다른 사역자들에게 흘러가는 것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자료와 정보들은 내부용으로만 은밀하게 전달해왔지, 공개하고 나누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철저하게 단속해 왔다. 물론 중국의 특성상 보안이 필요한 내용도 있겠지만, 상당수의 자료들은 공개적으로 나누어도 상관없는 객관적 정보인 경우가 많다. 보안에 문제가 되지 않는 내용조차도 보안이라는 이름으로 창고에 쌓여있다. 결국 나누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서 정보의 소통과 교류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교류와 나눔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기적으로 작은 모임을 열어 지역 정보를 소개하고 나눌 수 있고, 글로 정리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방법도 있다. 외국인 사역자들의 경우 지역에 대한 정보를 나누기 위해 정기적 · 비정기적으로 관련자들을 위한 소모임을 열어 지역 정보를 교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그러한 자료들은 글로 정리해서 검증된 관심자에게 비공식적으로 (그러나 적극적으로) 나누거나, 공개가 가능한 자료들은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게시하기까지 하고 있다. 정보는 그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적절하게 나누어져야 정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지 말자.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있다면 먼저 나누고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다른 사역자나 단체와 신뢰관계를 쌓아나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유용한 정보가 전달되도록 기다리는 것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선교사들 사이에 신뢰를 쌓고 관계의 진전을 위해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소수민족 선교를 위한 정보와 자료들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선교사역을 위한 실제적인 전략의 조정과 협력을 가능하도록 하는 근거가 된다.

역할 조정과 전략적 협력
최근 모 국제단체에서는 소수민족 사역을 위한 포괄적 협력 방안(Comprehensive Planning)을 제안했다. 내용인즉슨, 특정 소수민족의 사역을 위해서 소속 단체를 막론하고 서로의 기능과 역량을 모아 협력하자는 제안이다. 우리 가운데는 지역학과 언어학, 인류학적 연구를 제공하는 단체가 있는가 하면, 성경번역을 하는 단체도 있고, 개인전도와 교회 개척을 위주로 하는 단체도 있으며, 비즈니스와 지역사회개발, 혹은 제자훈련이나 신학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도 있다. 서로 협력을 한다는 말은, 서로가 가진 역량이 특정의 선교 대상에 따라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발휘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은 ‘조정’이다. 개인이 모여서 함께 일을 하더라도 역할 분담(job description)이 필요한 이유는, 서로의 재능과 역량이 중복되지 않도록 하며 동시에 자칫 놓치거나 간과하기 쉬운 분야를 효과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이다. 여러 사역자들이 동시에 사역을 진행하고 있는 선교지에서, 이러한 역할 조정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조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해당 선교지에 가장 적합한 혹은 최선의 선교전략이 수립될 수 있다. 이러한 조정의 작업은 상위 조직이 있어서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해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협력의 장(場)에 나와야 된다. 자발적으로 자신의 재능과 선교전략과 정보를 가지고 나와서, 협력의 테이블 위에 모두 올려놓고 힘을 모아야 된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며,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정이 없었기 때문에, 선교사역의 중복 투자가 발생하고, 수십 년 선교역사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선교지역과 선교분야가 여전히 남아 있다. 중복 투자는 선교사들 사이의 경쟁과 다툼으로 발전하고, 선교지에 세워지는 현지교회의 분열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적인 귀결이었다. 협력은 우리를 위한 것일뿐더러, 우리에게 맡기신 선교지의 영혼들과 교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교회와의 협력
선교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선교의 시작이자 종결자이며 주체이신 하나님을 제외한다면, 과연 누구를 위해 선교전략을 세워야 하는가? 선교사인가? 선교비를 후원하는 파송국가의 교회들인가? 아니면 선교지의 교회인가? 당연히 선교의 주체는 선교지 현지교회가 되어야 한다. 외국인 선교사가 주인이 아니라 그 나라 그 지역의 교회가 주인이다. 선교전략은 현지인이 주인이 되어 주도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여기에 이론이 없을 줄로 믿는다. 현지교회가 없다면 선교사가 임시로 그런 역할을 해 줄 수는 있겠지만, 현지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져 있다면,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민족과 지역을 막론하고) 선교의 주도권은 누가 쥐어야 마땅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논리적으로는 답이 분명하다. 중국교회다. ‘누가 중국교회인가?’ 라는 질문을 더할 수 있겠지만, 여하튼 중국 내에서 일어나는 선교활동의 주체는 중국교회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설혹 아직은 그들이 그 일을 잘할 수 없다는 평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누가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국 안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중국교회가 선교의 주체가 되도록 하며, 그들이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중국 내 소수민족선교를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인도에서 수많은 현지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인도 안에 있는 미전도종족을 향해 타문화권 선교사로 나가서 사역하듯이, 우리는 중국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중국 안에 있는 미전도 소수민족들을 향해 나가서 사역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중국교회가 잘 준비되고, 잘 훈련시키고, 잘 파송하여, 잘 관리하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다. 그 선을 넘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 이야기를 해 보면, 중국교회는 이미 소수민족선교에 이모저모로 동참하여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중국인 사역자들과의 협력이나 조정 없이 외국인들끼리 (대부분은 특정 단체 내부에서만) 선교전략을 수립하고 선교성과를 운운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학력이나 출신을 떠나 중국인 사역자들은 이미 우리와 동등한 사역자이며 복음의 일꾼임에 분명하다. 그들을 존중하고 섬기며, 나아가서 그들의 주도권을 세워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선교중국’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외국인이 주도하는 특수한 분야의 일이 될 것이며, 중국교회의 선교는 아주 긴 시간이 지나야 가능해질 것이다. 갓난아이에게 달릴 것을 요구할 수 없듯이, 처음 선교에 눈을 뜬 중국교회에게 해외선교를 당장 강요할 수 없다면, 중국 내 타문화권에 해당되는 소수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역을 중국교회가 더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

방향을 다시 잡을 때다
열심히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일을 잘한다는 것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바쁘고 분주하게 일과를 보낸다고 해서 바른 삶과 바른 사역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는 모두 별개의 문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우리가 우리의 자리에서 많은 일을 감당해 온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이제는 다시금 사역의 현재를 점검하고 목표를 분명히 하며 방향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협력’은 참으로 중요한 과제이면서도 선교사역에 있어 쉽게 간과되어 왔던 이슈였다. 각자가 열심히 맡은 일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오랜 시간 우리는 다른 사역자들 그리고 중국교회와 더불어 전략을 조율하거나 역량과 재능을 나누는 일에는 참으로 서툴렀던 것이 사실이다. 얼핏 보기에 효과(효율성)가 그리 좋지 않아서, 혹은 내 성향이 단독으로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해서라고 핑계를 댈 수 있지만, 사실은 ‘협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중국 내에 남아있는 미전도 소수민족선교를 위해서는, 반드시 협력이 필요하다. 100여 년 전 한국 땅에서 한국선교를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며 협력했던 서양선교사들의 좋은 교훈을 감사해하듯, 훗날 우리의 발걸음을 평가할 후세대를 위해서, 주님 오시는 날까지 현지에 세워질 현지 소수민족교회의 역사를 위해서도 오늘 우리 외국인 선교사들은 ‘협력’과 ‘동역’ 이라는 아름다운 발걸음을 남길 필요가 있다. 방향을 다시 잡을 때다.

<중국을 주께로> 134호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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