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 앞에서 한국교회의 중국선교에 대한 재조명

한국선교연구원 주: 이 글은 중국어문선교회에서 발행하는 <중국을 주께로> 에 실린 것으로, 중국어문선교회의 동의를 받아 게재합니다. 이 외에도 <중국을 주께로>에 실린 글을 읽기 원하시면, 글 하단의 배너를 눌러주세요.

중국을 주께로 제135호(2013년 1,2월호)
특집 제목: 시진핑 시대와 중국교회 전망
발행: 중국어문선교회

로렌즈 림 | 중국선교사

편집자 주: 지난 10월, ‘오늘의 중국과 한국의 중국선교를 말한다’라는 주제로 한중수교 20주년 기념 중국선교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에서 로렌즈 림 선교사님의 ‘중국선교 20주년: 그 의미와 우리의 재도전-중국교회 선교이상의 가치와 한국선교사들의 역할’이란 주제로 발표를 하셨다. 그 발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중국 정부에 대해 한국교회의 중국선교에 대한 변화와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기 위한 질문들
‘한국교회, 중국선교 이대로 좋은가?’라는 물음에 중국선교사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중국과 화교권의 한국선교사들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사뭇 다르지만 공통된 인식은 이제는 변화해야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중국교회는 성장하고 있고 미래를 위해서라도 한국선교사들의 역할이 변해야 한다는 의견을 쉽게 접한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중이 아니라 이미 변했기 때문이라는 대답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새로운 시대는 중국교회 선교환경의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과연 한국선교사들이 해오던 선교사역의 방향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변화시킬 수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과연 한국선교사들은 사역을 변혁시킬만한 영적 힘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 또한 다른 이해관계(사역의 평가 문제 등)를 갖고 있는 특성상 많은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 어떻게 우리의 사역을 변혁시킬 것인가?

사역의 전문성: 섬길 것인가? 지배할 것인가?
전문성을 단순히 고립되고 협소하게 집약된 어떤 기능으로만 이해하면 중국선교가 역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기능, 같은 사역이라면 협력보다는 흩어지는 사역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각 선교단체가 전문성이 발달하면 할수록 이전에 하찮게 보이는 기능들이 또 다른 전문성의 모습으로 보여 지기에 서로를 존중하게 되고 대화와 훈련을 통해 새로운 협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마치 내가 속해 헌신하고 있는 선교 사역만이 옥수수 알갱이처럼 보이고 다른 선교단체, 기타 서비스하는 행정조직은 추수 후 논밭에서 연기로 사라지는 옥수수 대와 마른 잎 정도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열매를 감싸고 있는 잎사귀 없이 옥수수의 알갱이는 형성되지 않는다. 모두가 선교 공동 운명체로 시간이 경과하면서 옥수수 알갱이를 결실해 내는 것이다.

사역기능: 계속 훈련할 것인가? 위임할 것인가?
여러 동료들이 하나둘씩 현지 사역 가운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고민해 보았다. 그 고민의 뿌리에는 섬김의 영성 고갈이 있다. 선교사가 일정한 연마를 통해 자신의 사역을 전문화시키지 않으면 구체적으로 섬길 수 없기에 지배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자신이 훈련된 사역을 준비한다는 것은 선교적 섬김을 더욱 건실하게 하는 것과 같다. 선교사는 건물을 지을 때 거푸집처럼 현지공사가 완성될 때까지 잠시 그 기능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 공사가 완공되면 원래 계획대로 철거해야한다. 이때 훈련되지 않으면 한 모퉁이의 예술품으로 남으려는 유혹에 쉽게 넘어진다. 한국선교사들은 많은 성경공부와 다양한 훈련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열심히 가르치는 분류에 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지인들은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왜 변화하지 않을까? 물론 외형적 태도나 모습, 교회 목회 등은 개선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변화의 질’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하지 않는 데 있다.

▶ 오늘의 중국선교 평가: 적응과 도전

중국 교회역사를 통한 문제 진단 (Historical Background)
과거 반기독교 운동과 정부의 종교통제 정책 영향이 개혁개방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 시대의 영향을 직접 받았던 오늘의 중국교회들은 문화적 급변 과정에서 어떻게 적응해 나가고 있는가? 경제적으로 개방된 오늘날 반기독교 문화는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

이 문항은 과거 반기독교 운동의 영향을 직접 경험한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의 옛 지도자들과 그들을 계승한 새로운 지도자들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개혁개방 과정에서 억압과 핍박을 동시에 받았던 교회들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중국 현지교회의 평가는 대부분 원론적 대답에 머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지금 변화된 환경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를 알아보는데 중요한 질문이 된다.

오늘날 양 교회의 구심점을 이루고 있는 각 지역 실제 리더들의 생각이 곧 중국교회 개방의 현주소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교회는 명분상 통일성을 지니고 있지, 교회 조직의 실제적 통일성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반기독교 운동은 현재의 중국교회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실 이 운동의 결과로 중국의 본색화·토착화 교회인 삼자교회의 신학적 이론이 싹트게 되었다. 이 운동은 중국교회 자주권문제로 부터 시작된 것으로 정치적 변혁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1927년에 3월에 발생한 난징(南京)사건으로 중국의 반기독교 운동은 절정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국민혁명군이 주둔하고 있던 남경에서 일부 혁명군과 수많은 군중은 영미(英美)영사관, 교회, 선교사들이 세운 대학들을 습격하였다. 모든 외국인의 집이 불탔다. 거주하고 있던 선교사들은 얻어맞고, 강탈당했으며, 지금 난징대학 부 교장을 포함한 외국인 6명이 살해되었다. 이 일로 영국과 미국은 함포로 중국을 공격하여 약 2,000명이나 죽였다. 난징사건을 계기로 8,000명의 선교사 중 500명 정도 남고 나머지는 철수했다. 6년간 격렬하게 전개된 반기독교 운동 이 기간 중국교회도 자신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중국교회는 그 결과 기독교 문화와 중국 전통문화의 결합을 중시하게 되었고, 반제국주의, 애국민족주의 색채의 중국 사회에 맞는 중국교회로 본색화의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난징사건 이후 16개 교파는 연합하여 삼자정책을 기조로 하여 기독교가 중국인의 기독교가 되게 하였다. 이것은 헨리벤에 의해 고안되고 네비우스에 의해 실행된 삼자정책으로 민족주의적 의식에 대한 각성과 외부적으로 반 기독교회 사회적 압력과 정치적 환경 속에서 실행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교회적 환경에서 실시된 한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장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면 이러한 역사적 태동의 배경을 가진 교회는 선교적 대상이 될 수 없는가? 어떤 선교단체는 말씀을 전하는 것에만 관심 있고, 자치권을 갖고 있는 중국교회의 발전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오늘의 삼자교회는 외국 선교단체로부터 토착화의 도움(점진적 위임)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상황화의 도움(시간차 없이 동시적 위임)을 받은 것도 아니다. 자신들의 상황을 선교이론에 과감하게 적용해 버린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원리가 적용되어 사회주의 맞는 새로운 신학건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의 질문과 대답은(Q&A) 선교적 평가를 분야별로 분석하는데 도움을 주려는 의도로 작성된 것이다.

Q&A: 변환을 위한 선교적 책무
반기독교 운동으로 선교사들이 중국을 떠난 후 개혁개방이 되었을 때 중국교회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선교사가 없을 때 더욱 크게 부흥했기 때문에 중국교회는 늘 이 부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러한 평가는 통계적으로 사실일 수 있으나 중국교회가 세계교회를 선교하며 섬기도록 하는데 무책임한 견해가 될 수 있다. 반기독교 운동이 가져다준 피해는 지금도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과거 역사에 강하게 매여 있게 되면, 중국교회는 더 이상 미래의 건강한 교회를 형성하지 못한다. 삼자교회에 과거에 대한 용기 있는 전환을 권면할 필요가 있다.

중국 가정교회에는 정부의 핍박과 억압의 피해의식이 상존한다. 이러한 의식이 장기화되면 사회 변혁을 의도적으로 도외시하게 될 것이다. 그 의식이 방치되면 교회는 복음을 단순한 개인의 심미적 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소수 특정인들의 집단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반기독교 운동과 정부의 종교통제는 역사책에서 사라진 내용이 아니다. 아직도 교회 내에 상존하는 것으로, 오늘의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복음과 콘텍스트 (Gospel and Context)
실제 기독교적 삶이 현지에 얼마만큼 착근되었는가? 오늘날 급변하는 환경 속에 중국교회 성도들과 교회들은 미래 중국사회의 문화를 선도하고 변화시킬 기독교적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이 문항은 교회 토착화 과정을 측정하는데 기초 자료가 되는 복음이 현지 환경에 얼마만큼 착근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중국교회가 자신의 문화 속에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고자하는 내용이다. 토착화 초기에는 삼자애국위원회는 당면한 국가적 우기와 사회적 환경을 돌파하기 위해 교회 안에 민족성 색채를 강하게 남겼다. 가정교회는 신앙적 문제로 그들만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삼자교회는 복음의 사회성, 가정교회는 개인의 신앙심에 복음의 착근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삼자교회는 복음의 실천의 장을 사회로 옮겨왔다.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삼자교회가 적극적으로 정부를 옹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삼자교회와 정부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졌고, 대외적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었다. 이런 교훈을 알고 있던 지도자들은 ‘새로운 사회주의 새로운 사상 건설’ 새로운 국가시책이 공표되었을 때 적극적 협력 약속을 함으로 삼자교회 내부에 새로운 신학적 갈등을 촉발시켰다. 국가의 요구에 걸 맞는 새로운 신학사상 건설이 요구되었기에 삼자교회는 자유주의 신학을 구성함으로써 국가와 충돌을 줄였다. 그 대가로 정부는 신학교를 확장했으며 삼자교회 중심의 교회 주류 논쟁에 많은 혜택을 제공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종교세속화, 종교시장이라는 개념이 작용하고 있다. 시장경쟁을 통해 어떤 기업이 살아남듯이, 종교에도 경쟁을 도입하여 기독교가 중국의 개혁개방이란 시장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를 고민하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는 국가의 기본정책 노선을 받아들인다는 기본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들 모든 종교는 중국 문화와 전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아의 식민화를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중국적 관심은 포용과 관용이란 거대한 개념으로 모든 종교를 아울러는 것이다. “주 예수만 믿으라”는 선포보다 “주 예수를 믿으라”는 선포를 더 선호하는 것이다.

Q&A: 변환을 위한 선교적 책무
복음과 콘텍스트의 질문을 통해 아직도 기독교를 세상 밖으로 적극 드러내 놓지 못한 중국교회 지도자들의 내부적 고민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다. 중국교회 지도자들의 리더십과 그 한계점, 그리고 미래 자국 교회를 향한 책무와 신앙적 열정들이 아직 남아있음도 알 수 있다. 지난날 중국교회는 개인적 신앙증거로 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순교한 사람들,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 성지로 불릴 만큼 신앙의 모범들이 많았다. 이제 변환하는 환경 속 선배들의 신앙심을 동경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이른다. 중국교회는 급변하는 환경에 공동으로 증언해야할 신앙의 내적 모범과 사회적 책무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신앙과 생활 (Faith and Life)
중국교회는 신앙과 생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오늘날 중국 사회에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인 한 자녀, 복지, 의료, 마약, 도박 등에 대해 중국 기독교인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증거 된 복음의 영향력에 대한 평가로써, 선교 목표의 중심에 얼마만큼 접근해 가고 있는가를 분석해 보는 것이다. 중국 교회가 급변하는 사회활동에 어느 정도 참여하고 있는지를 파악해 보는 것이다. 이 질문은 선교의 내용을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복음의 사회적 접근 문제를 교회들이 선교적으로 접근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중국교회는 제한된 환경을 갖고 있지만 지금은 나름대로 활력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빈도를 볼 때 그 힘은 아직 미약한 단계에 있다. 복음을 개인적 일에만 국한시키고, 교회 내부의 조직적 활동에만 집중하려는 경향이 심하다. 이러한 현상은 지나친 변화와 추구는 또 다른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옛 기억의 노파심 때문이다. 신앙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신앙과 생활이 손가락과 손목처럼 유연한 관계로 있는듯하지만, 팔목과 어깨의 힘에 통제받는 환경으로 활동의 자유는 제한된 것으로 본다.

한 자녀 갖기로 인한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다. 한자녀 세대가 사회의 중심 세대로 자리 잡음으로써 이제 어느 사회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계획출산은 배급분배를 가능케 해 배고픔이라는 문제를 해결했지만, 계획출산은 사회의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기에 그 치유를 위해 시간 경제적 손실은 엄청날 것이다. 미래 중국을 선교하는 나라로 이끌어갈 이들은, 이 세대의 젊은이들이다. 가정문제, 부부 이혼 문제, 한 자녀의 과잉 보호문제 등은 중국교회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전통적으로 유지되어오던 윤리 도덕 체계가 무너지고 대체적 체계 사회주의적 윤리체계 평등, 분배의 체계가 시장개혁개방의 사회를 지탱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초기 구소련의 해체로 마피아가 사회를 잠식하는 것을 보고 그 문제를 적극 대처하였지만, 개인적 욕구와 향락, 그리고 기복의 미신적 문제들을 놓쳐 중국을 또 하나의 깊은 고민에 빠져 들게 하고 있다.

Q&A: 변환을 위한 선교적 책무
복음으로 태어난 생명이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선교의 책무에 중요한 부분이다. 중국교회는 시대마다 복음의 착근에 많은 어려움을 겪은 아픈 역사가 있다. 단순한 선포와 선언만이 선교의 전부가 아니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선교사의 역할이 변화하여 그들을 목회적 기능과 함께 도울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할 시점이다. 한 가정 한 자녀는 중국교회의 미래 해외 선교환경을 어둡게 한다. 먼저 부모들이 아브라함 수준의 신앙이 되지 않으면 자녀들을 선교사로 드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선교와 적응 (Mission and Accommodation)
중국교회의 경제적 자립도와 사역자의 신학교 운영 자립도는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의 복음을 향한 열정과 학업열, 각 신학교에서 다루어지는 학과에 대하여 교수진들의 신학적 갈등은 없는가? 있다면,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는가?

이 문항은 중국 선교의 순응, 적응, 적용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어 보려는 것이다. 중국이 복음을 수용함으로 기독교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하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그 문화 속에서 본질적으로 선한 것은 파괴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장려하고 발전되어야한다. 올바르게 이해되어진 선교와 문화순응(Inculturation)에 대한 적응 척도는 복음에 합당한 열매이며, 또 교회 공동체와의 어울림이다. 주의할 것은 문화의 소외와 지역문화의 과대평가이다. 공동체 속에서 성숙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그동안 다른 길을 걸어왔던 양 진영의(삼자와 가정) 정책이 결실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를 파악해 볼 수 있다. 중국교회는 아직까지 그 자립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자전에서도 큰 활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자치에서만은 많은 성과를 거둔 것이다. ‘성도들에게 메시지를 통해 십일조와 헌금을 가르치고 있는가?’ 등의 질문을 통해 한국교회의 하나님 주권에 대한 전폭적 순종의 강점들을 소개함으로 목회에 도전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신학교 운영의 자립도에서 신학교는 교육부 소속으로 학제관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종교국 소속으로 그 관리를 따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재정적 자립도 국가가 지원한 범위 안에서 이루어 질수 밖에 없어 그 한계점을 갖고 있으며, 가정교회의 신학교들은 외부의 도움에 의하여 성장하였던 운영방식의 탈바꿈을 시도하지만 여의치 않다. 삼자신학교들은 요즘 들어 정부의 도움을 받는 편이지만 아직도 그 영향력을 너무나 약하다. 일반 대학들에 비해 재정적 지원이 약하며, 신학교의 숫자도 일반 특성화 대학에 비해 아주 적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학교는 지역교회들을 통해 제정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학생들과 교수들 간의 신학적 갈등도 있었다. 지금은 양쪽 모두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을 확고하고 있기에 갈등의 요소는 크게 대두되지 않고 있다.

Q&A: 변환을 위한 선교적 책무
선교사들이 개설한 신학교가 교회의 필요에 의해 발전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교육프로그램만 관리하고 있는가? 발전되고 있다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배움의 현장은 많으나,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은 없고, 교재는 홍수를 이루고 있으나, 올바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지적한다. 문제는 배우려는 학생이 아니라 가르치려고 하는 사역자의 문제로 귀결된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성경에 올바로 뿌리를 내린 진리를 가르쳐야하며, 성결한 성령의 은사들을 따라 일할 수 있도록 성경에 뿌리를 둔 영성을 가르쳐야한다. 미래 중국교회의 지도자들이 어떤 신앙의 사람들로 형성되느냐에 따라 중국교회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지도자는 그냥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선교사들이 가서 제자를 삼을 때 그들은 주안에서 성령의 가르침과 지혜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다.

선교들과 에큐메니칼 (Missions and Ecumenics)
중국은 어느 때 보다 그 역량이 커지고 있다. 중국교회가 미래 세계선교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세계교회를 향해 중국교회가 역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이 일을 위해 중국교회 사역자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 문항은 자민족주의 강한 중국교회가 세계교회와 한 가족에서 분리된 것이 아님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중국교회는 자국교회로만 뭉치려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상존하는 교리적인 차이점을 상대화시키면서 지역 교회들의 온전한 통일을 추구하도록 도와야한다. 그리고 갈등과 서로 상이성들 속에서도 일치를 이루도록 도와야한다. 그것이 교리이든, 교회조직이든, 교회의 필요에 따른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국가의 역량이 커가는 만큼 중국교회도 그 역량이 자라나고 있다. 중국은 종교를 다루고 관리하는데 있어서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종교문제를 능동적으로 주의 깊이 다루고 있는 것이다. 결코 간단히 다루어서는 안 될 아주 복잡한 기능을 가진 것이 종교임을 십분 이해하고 있다. 개혁개방으로 다소 느슨해진 종교정책을 재정비하고 교직자들의 관리와, 종교활동 장소, 종교재산, 해외 종교인들의 활동을 법제화했다. 당의 종교정책(사회주의 사회건설에 적응하는 신학사상)을 전면적으로 관철시키며, 종교사무를 법에 따라 관리하고, 종교가 사회에 적응하도록 적극적으로 지도하는 것이다. 이 일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신앙개조운동이 선행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우주적 기독론이 존재한다. “성육신도 마리아의 모체가 필요했던 것처럼 중국신학도 중국문화에서 보육되는 것이 필요하다.” 기독교계시가 각 시대 문화의 이해와 해석의 육신을 입었다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 전제를 가진 중국교회가 세계교회와 함께 하고 그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건전한 신학적 바탕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Q&A: 변환을 위한 선교적 책무
세계의 최고보다는 세계의 중심축이 되려고 하는 중국은 경제 성장과 함께 현대화의 강을 건넜지만 아직까지 종교는 강 건너편에 두고 경제만 건너온 실정이다. 세계의 교회와 함께 일하려면 중국교회 지도자들이 세계 교회를 향하여 베풀 수 있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도움을 받는 교회에서 선교적 대열에 참여하는 교회로써 용기를 갖도록 격려해야 할 것이다.

선교사들은 중국교회를 격려하고, 세계교회로부터 독립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세계교회 형제자매로부터 독립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환기시켜야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신학적 기반을 형성하는 것은 미래 중국교회의 지도력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 중국교회가 세계 교회와 함께 복음증거의 동역자로 이 시대 함께 쓰임 받을 수 있음을 깨닫도록 격려가 더욱 필요하다.

오늘날 중국교회의 문제는 교리 없는 성경공부가 지식의 방만함을 이루었고, 그 지식의 방만함은 영적 근육이 없는 비대한 몸으로 성장한다는 데에 있다. 미래 중국교회가 해외선교를 선교들(Missions)에만 치중하게 되면 선교의 본질은 교회의 팽창이나 욕망에 함몰당할 수도 있다. 먼저 선교 신학적 기초를 충실히 다질 필요가 있다.

선교를 ‘다가서는 것(reaching out)’, 경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건전하나 단순히 백투예루살렘 운동처럼 단순한 길을 따라 걷고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선교사역을 진행하는 교회가 되도록 가르치며 도와야 한다.

▶ 새로운 모색: 문제해결점 찾기

중국교회 조직 구조: 분열의 재생산
중국선교 상황을 파악함에 있어 이해와 적용을 달리하는 사고 또한 매우 귀중한 것이라 생각 한다. 필자가 검토하고 그려낸 삼자와 가정교회의 구조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실제 현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새로운 신학적 차이를 낳았다. 가정교회는 새로운 성경해석으로 또 다른 분열을 예고하고 있다. 한마디로 분열의 재생산 틀을 지니고 있는 구조이다.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인가?

갈등하는 교회 구조, 이러한 거리 차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좁혀질 듯하다가 또 다시 커지는 실정이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의 큰 리더로 자란 중국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시기한다. 이미 변한 중국과 중국교회를 새로운 눈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교회의 외관상 나타나는 현상만을 보고, 다양하고 복잡한 현지의 정황을 자민족 중심(Ethnocentrism)의 선교관으로 속단하여, 무리한 정책을 시도하는 것을 보아 온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런 의견을 가진 이들을 탓할 수도 없다. 모든 문제는 소명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교회는 예전에 가졌던 억압받는 교회와 핍박받는 교회의 구도를 벗어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당황하고 있는 듯하다. 마치 날씨가 곧 눈이 내릴 듯한 분위기처럼, 콘스탄틴 시대가 올 듯한 분위기다.
이제 우리는 중국선교에 있어서 ‘중국선교 20년, 그 의미와 우리의 재도전’에 대한 토의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 다 달았다. 이러한 귀중한 주제를 특수한 사람들의 연구 전유물로만 남겨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보다 많은 선교사들, 교회들, 선교단체들 그리고 현지 사역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대화의 장을 더욱 넓힐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할 때 많은 사역자들이 중국선교의 형식과 본질에 자유로운 의문을 제기하고 적극 참여하여 미래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의 긍정적 전망을 현장에 접목시킬 것이다. 오늘의 선교 반성을 위해서는 문자적 해석이나 단편적인 추론 형식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이 시대에 선교의 새 부대를 준비해야할 공동의 책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 아직도 필요한 선교의 영역
이후 중국교회는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부단히 이해하고 배워야할 뿐 아니라 오늘의 준비가 미래 중국교회에 가져다주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중국교회로 하여금 홀로 존재하는 교회가 아니라 온 세계와 함께 세계선교 주역의 선봉에 참여할 숨겨졌던 세력임을 알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다. 미래 중국교회는 지역과 주변국가, 나아가 전 세계의 상이한 종교적 세계관들을 병렬시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중국선교의 이해를 돕는 개념들, 현장에 나타나는 사실과 문제들, 그리고 세계로 향한 복음의 전략들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작업을 위해 한국선교사들의 사역의 중심을 더 본질적인 곳에 두어야할 시대가 되었다. 그 길의 작은 출발점은 중국교회가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의 정체성을 갖고 성장하도록 부단히 도와주는 것이다.

선교적 가치를 공유하는 대화를 시도할 때
‘중국선교 20주년, 그 의미와 우리의 재도전’의 주제가 이미 여러 사람에 의해 나름대로 정의되어 왔다. 독자들 역시 여러 경로를 통해 사역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비판의 내용을 듣고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선교사들에게는 우수한 영적 능력, 뒤 돌아보지 않는 헌신과 도전, 또한 밀어붙이는 열정(hustle), 혼자라도 끝까지 지키는 불굴정신과 선교적 DNA가 있다. 그러나 선교기능의 연약한 현주소, 그리고 그 한계점들에 대해서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평가된 한국선교사들의 정의들은 ’한국식 선교‘란 이름으로 세계선교계에 알려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여 년 동안 한국교회가 중국선교를 이해하는데 단편적인 추론, 개인 신앙의 확신, 목회적 관점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양한 관점들, 새로운 변화의 추구를 위해 끊임없이 대화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한국선교사들은 현지교회와 화교권, 세계의 다양한 선교사들과 대화, 즉 선교적 가치들을 공유하는 대화를 시도하게 될 때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역의 질적 변화를 위해 도전하며, 겸손히 중국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발돋움하도록 섬기는 한국선교사들을 반드시 사용하실 것이다. 중국교회는 이 시대에 다시 한번 복음의 열정과 헌신으로 단련된 한국선교사들을 부르고 있다.

<중국을 주께로> 135호 목차

  • 발행인 통신 I 새 해·새 지도부 ? 새 부대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 기획취재 I 하나님의 비전으로 전문인을 양성하는 전주비전대학교
  • 선교나침반 I 중국선교를 위한 한국교회의 출구전략
  • 선교사의 삶과 사역 I 지난 11년의 기억을 더듬으며
  • 위기관리 관점에서 본 단기선교 TIP I 효과적이고 안전한 단기봉사팀 사역을 위한 실제적인 조언들 (2)
  • 특집 I 시진핑 시대와 중국교회 전망
    1. 시진핑 시대와 중국교회, 그리고 선교환경 변화 대처
    2. 시진핑 시대 이후의 중국 종교 정책 전망
    3. 시진핑 시대에 따른 북한선교 전망
    4. 시진핑 시대가 풀어야 할 중국의 과제
  • 특집 플러스 I 새 시대, 착한 중국선교
    1. 새로운 시대 앞에서 한국교회의 중국선교에 대한 재조명
  • 중국선교역사 I 대만 문둥병자의 아버지 테일러
  • 내가 만난 하나님 I 나의 간증은 마태복음 7장 21절
  • 중국의 미래 I 구약성서의 토지제도는 중국 공공토지임대제의 원형
  • 선교사역과 회복 I 자기이해와 관계 회복
  • 중국영화 I 뉘수(女書)와 라오통(老同)을 통해 본 영원한 우정
  • 차이나 윈도우 I ‘마오 사상(毛思想)’ 버리기
  • 서평 I 21세기 패자는 중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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