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교 상황 고찰을 통한 연합선교전략

한국선교연구원 주: 이 글은 중국어문선교회에서 발행하는 <중국을 주께로> 에 실린 것으로, 중국어문선교회의 동의를 받아 게재합니다. 이 외에도 <중국을 주께로>에 실린 글을 읽기 원하시면, 글 하단의 배너를 눌러주세요.

중국을 주께로 제136호(2013년 3,4월호)
특집 제목: 중국선교의 희망봉, 연합사역
발행: 중국어문선교회

권서인 I 아시안디아스포라연구소

중국선교는 성경이 말하는 대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함을 자주 강조한다. 중국에 대해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에 최적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주변 국가들의 발 빠른 변화 앞에 우리 한국교회와 선교는 어떤 태도로 대처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원하든 원치 않든 21세기의 중요한 화두가 되어버린 중국선교에 대해 한국교회의 역할을 다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 거대한 공룡과 같고 브레이크 없이 무한 질주하는 중국, 종착점을 알지 못하는 오늘의 중국선교의 상황을 연합선교전략적 측면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로 인하여 우리들의 시각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그분의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절해고도(絶海孤島)와 연안(沿岸) 고지
21세기 초 세계 속에서의 중국의 위치를 대변해주는 큰 사건이 있었다면 2008년의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엑스포의 성공적 마무리를 꼽을 수 있겠다. 이 두 커다란 세계적 행사는 중국 발전의 양대 추진체가 되었다. 일찍이 중국은 개혁개방과 시장경제를 이루어냈고 내친김에 승승장구 세계화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G2로 압축된 새로운 강자가 되었다.

2012년 11월 6일은 오바마가 미 대선에서 승리한 날이라면, 2012년 11월 15일은 중국의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공산당 총서기와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되는, 제5세대 중국 최고 지도부가 출현한 날이다. 오늘의 정세에서 이 두 대국은 태평양과 동남아시아의 절해고도(絶海孤島)와 연안(沿岸) 고지에서 힘 대결을 벌이게 되었다. 19세기 영국과 러시아가 벌였던 ‘패권주의 게임’에 버금가는 21세기 판 ‘뉴 패권주의 게임’이라 불릴 만한 시대다. 당시 영국과 러시아가 유라시아 대륙의 식민지 패권을 놓고 중앙아시아에서 쟁투(爭鬪)를 벌였던 무대가 오늘 21세기의 아시아 태평양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와 같이 격변하는 시대적 상황은 한중교회와 한중 선교현장에 말씀에 입각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선교전략을 절실히 요구한다. 열정과 헌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그동안의 시행착오나 오류들을 과감하게 수정하여 한중교회와 선교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중국선교의 과제와 방향
한국교회는 한중수교 이후 20여 년간 중국선교를 위해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역사, 종교 등을 나름대로 연구하였다. 그 결과 중국의 비상(飛上)이 당연시된다. G2로 불리는 국가로서 정치·경제의 팽창 앞에 여전히 복음의 전파만이 희망을 줄 수 있다. 유일무이한 복음의 능력만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간섭하심이 중국을 변화시켜 세계선교의 주역이 되게 하실 수 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공산당 국가인 중국의 경제는 자본주의를 능가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운용하고 있기에 정치·경제에 대한 중국의 역량은 가히 세계적이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으로 만들어지는 제품의 경쟁력은 전 세계의 물가를 낮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발전이 가져오는 영향력이 전 세계의 블랙홀이 되어 중국으로 역수입되는 아이러니도 보이고 있다. 그러한 중국에서는 우리 대한민국을 다방면으로 연구하는 기관이나 단체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연구하는 기관이나 단체들이 그리 많지 않다. 이러한 사실이 위기로 대두되고 있는 현실이다. 더군다나 중국교회와 중국선교를 연구하는 전문가들 역시 극소수라는 것은 다시 한 번 우리의 중국선교에 대한 현주소를 드러내 준다.

우리가 중국선교에서 선교중국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말할 때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중국교회의 양극화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동시에 한국교회에 요청되는 중국선교사 위기관리 시스템의 확보 등이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된 중국 정부의 새로운 변화에 대처하는 선교방향 설정도 시급하고, 중국선교전략의 다변화 방안도 반드시 모색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또한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한 중국선교의 효율성 극대화 방안에 대해 매우 실제적이고 창의적인 방안들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선교적 과제를 풀기 위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극대화될 수 있도록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나아가 중국교회와 아랍권선교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고 화교자원을 통한 중국선교의 지속가능성 또는 모델 확장이 필요하다. 서로의 협력이 구체적이고 실제적이어야만 전술 전략 모두에서 실패를 줄일 수 있다. 휘몰아치는 정치와 경제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선교사들이 전략을 세우고 공유하며 성공적인 사역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중국 서부 지역개발은 선교중국 차원에서 역사적 전환점이 될 터인데 이에 대한 대비도 되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이런 논의를 통해 중국교회와 한국교회의 선교적 윈윈(win-win)방안이 나와야 하고 한국과 중국 모두 체류 선교사들의 출구전략 등의 다양한 모색이 창의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연합’ 이라는 단어로 다시 조명하는 중국선교의 몇 가지 문제들
한국교회의 중국선교가 재개된 것은 1980년대 초 중국의 개방화와 함께 미주 지역의 한인교회들이 교포 선교사를 파송하면서부터였고, 국내에서 직접 선교사가 파송되기는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를 전후해서이다. 이처럼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중국선교는 놀라울 정도의 신장세를 보이면서, 정부가 하지 못하는 민간외교의 사역을 잘 감당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교회의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간 한국선교사들의 활동이 지나치게 물량 중심으로 이루어 진데다가 일부 선교사들의 자질부족이 빚은 신뢰감의 상실, 지나친 한국교회화, 개교회화 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상당한 난관에 처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서로 충분한 정보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기적인 사역행태가 여러 곳에서 발생되기도 했다. 그것의 결과는 여러 모양으로 나타났다.

첫째는 지역편중화 현상이다. 한국선교사의 대부분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비롯한 동북 3성의 조선족 주거지와 베이징의 대학가에 밀집해 있어서 중복 투자라는 비판과 함께, 실제 복음의 소식이 필요한 내륙에는 접근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학과 현지생활 속에서 중국어를 어느 정도 익힌 선교사들 가운데 새로운 사역지를 찾아나서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사역의 중심을 아예 서북부의 이슬람 지역과 남서부 산악 지역의 소수민족으로 전환한 경우도 있어, 지역 편중화의 문제 또한 선교의 연륜이 쌓이면서 점차 해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음은 선교사들 간의 갈등과 선교지에서 나타나는 교파주의 문제이다. 한국교회의 선교활동은 교파세력의 해외확장이라는 시각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선교지에서도 교파주의의 이식화 현상과 선교사들의 경쟁양상이 그대로 나타났다. 그러나 중국은 단일 교단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이러한 일들을 중국교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일부 파렴치한 성도들의 경우에는 물질적 이익을 얻기 위해 한국 선교사들의 경쟁심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물량주의나 성과위주의 선교활동, 일부 선교사의 자질문제 등이 중국선교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이것은 중국선교만의 문제점이 아니고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전반적인 문제점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이해되고 대책 마련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희망의 가정교회
중국의 공개적 가정교회는 정부와 공인된 교회의 경고와 제재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존재하며 예배뿐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 등 각종모임, 성경공부와 지도자훈련, 전도활동과 대외교류 등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가정교회는 개혁개방 이후 정부의 종교 정책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1990년대 들어서자 이들은 중국 교회의 자립과 자존을 위하고 복음전도의 확산 그리고 부족한 인적·물적 자원의 공급과 다양한 은사의 교류를 위해 교회의 연합 운동이 필요함을 통감하고 있다. 연합 운동의 내용 또한 매우 구체적으로 성취되고 있다. 중국의 가정교회 연합 운동은 각 계파의 가정교회 조직과 행정체재를 하나로 통일하는 조직체의 연합이기보다는 정신과 사역협력차원에서의 연합 운동이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화중지역의 오순절 계파와 중생파는 성령충만과 방언문제로 1980년대에는 서로를 이단이라고 공격하였으나, 지도자층의 연합 운동 논의로 교제와 교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해외에서 공급받거나 자체적으로 제작한 성경, 신앙 및 신학서적 교재 등을 서로 지원하고 교류하고 있다. 부족한 지도자 훈련의 교수요원을 서로 교류하고 지원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어린이 주일학교 교사훈련, 문서사역, 교회음악 등이 활발하게 유지되고 있다. 물론 여러 면에서 부족한 교수자원과 시설, 물질적 상황 아래 각 가정교회는 연합으로 지도자 훈련과정을 개최하여 가정교회의 지도자들을 확충시키고 있다.

손에 손잡고 연합으로

  • 교회연합
    아무리 희망적인 단어를 사용해도 여전히 중국교회는 연합하는 데 굉장한 어려움이 있다. 여러 면에서 정보공유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선교중국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이기에 진통을 예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교회는 연합해야 하며 다양한 네트워크를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중국선교에 있어서 협력이나 연합은 선교중국으로 가는 길에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와 중국교회 그리고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과의 연합도 구체적 모색이 필요하다. 그 범위부터 정해야 할 것인데 먼저 지도자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전체적인 발전을 위해 희생을 각오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수많은 교단과 교파들이 오직 말씀과 신앙고백만을 생각하고 그 아래 모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우선하고 서로 협력하고 도울 수만 있다면 중국교회는 앞으로 세계선교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 선교사의 전문성 확보
    선교중국으로 발돋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문성이 필요하다. 문서사역과 음반사역 등에도 전문성이 필요하고 문서사역 안에서도 인쇄와 전달이 나눠져야 하며 음반사역 역시 연주와 녹음, 전달사역으로 세분화되어야 한다. 이 일을 구체적으로 성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문인 선교단체들과의 제휴가 우선일 것이다. 그들과 전략적 네트워크를 이루어 평신도 선교사개발과 현지인 양성으로 선교정책을 실현해갈 수 있을 것이다.
  • 신학훈련
    이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다원화된 신학사상이 넓게 퍼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초신학이 견고해질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핍박에 대한 인내만이 곧 신앙의 척도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대처방안이 있다면 첫째, 신학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무엇이 참된 진리인지를 가르치고 둘째는 빠른 시간 내에 적극적으로 교사를 양육하여 그들이 성도를 잘 가르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국내 중국인유학생 사역
    각 선교단체의 연합사역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영역이라 할 것이다. 중국인유학생 사역은 유학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제자로 훈련되어, 본국에 돌아가 선교적인 삶을 살게 될 때 완성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중국인유학생 사역은 실천적이고도 매우 구체적 연합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을 이루기 위해 먼저 대학 내 유학생 선교단체와 중국선교단체가 연합해야 한다. 이 단체들이 연합하여 서로의 강점들을 나눌 때 시너지효과를 얻게 된다. 그리고 선교단체들은 중국인유학생 사역을 하는 교회들에서 그들이 스텝으로서 일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훈련된 젊은 현지 사역자들이 교회사역에 협력하게 된다면 21세기의 선교에 좋은 모델로서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연합사역의 조력자
한중관계는 5,000년 민족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때로는 서로 대립하고 전쟁하였으며, 때로는 화해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통해 함께 발전해 왔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두 나라의 평화적 관계를 지속시켜준 것은 바로 ‘조공’을 매개로 한 사대외교였다. 천하사상에 젖어있던 중국인들에게 명분을 주는 대신, 정치적 주권과 경제적 실리를 얻는 이 사대외교는 한동안 한중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전형(典型)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조선의 건국에 따른 정치적 이유와 성리학의 성행은 사대외교를 사대주의로 변질시켜 양국 간의 관계를 실질적인 종속관계로 만들었으며, 이러한 관계는 일제의 강요에 의해 강화수호조약이 체결되는 1876년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양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냉전구도 속에서 적대관계로 맞서게 되었고, 특히 중공군의 한국전 참전과 특수한 남북한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다. 이러한 양국의 대립관계는 1980년대 들어 시작된 중국의 개방정책으로 상호 간에 경제적 필요성이 증대되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는데, 양국 간의 교역량 증가와 함께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과거의 적대관계는 동반자적 관계로 변모되어 국교의 수립으로까지 발전하였다.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는 이러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중요한 현안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선교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중국 정부는 한국교회의 선교활동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데 반하여, 선교를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한국교회의 입장에서는 12억의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절대적 명제 때문에 중국선교의 폭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이런 차이 속에서 유일한 돌파구는 바로 ‘연합사역’이다. 비단 지엽적인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종교 전 영역에서 돌파구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어떤 영역에서 어떤 모양으로 문이 열릴지 헤아리기 어려운 때임은 분명하다. 그러기에 더더욱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통섭의 지혜를 펼쳐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에는 몇 가지 점에서 새로운 자세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그것이 새로운 법적 우산이 필요한지는 따로 논의되더라도 시급히 ‘연합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구체적 실행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위원회를 통해 한 방향으로 정리된 교육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중국의 법제를 정확하게 이해하며 가능한 한 그들의 법을 존중하는 준법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중국의 현행법이 규정하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가능한 선교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교회가 중국선교의 주체가 되려는 욕심을 버리고, 중국교인들로 하여금 중국선교의 주체가 되게 하고, 한국선교사들은 조력자로서의 역할에 만족할 수 있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나아가 물량주의적 선교 자세를 지양하고, 인간적인 신뢰감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과거 서양인들이 그러하였던 것과 같은 우월의식을 버리고, 중국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며 중국인들의 심령을 사랑하는 순수함을 견지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내용이 과거 중국선교, 선교중국을 이야기할 때와 그리 색다르지 않다는 점이 아프지만 여전한 필요가 있다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더욱 아파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 같은 선교적 자세가 선행될 때 중국선교문제는 한중간의 외교적 현안에서 탈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양 국민에게 신뢰감을 조성하여 바람직한 한중관계 정립에 도움을 주며, 나아가 선교중국을 위해 쓰임 받는 데 매우 유용하게 기여할 것이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나간 격동의 세월 같은 중국사역에 있어, 주의 은혜로 아름다운 역사(歷史)를 되돌아보는 글이며 새로이 그분의 역사(役事)를 기대하는 글이 되기를 소망한다.

<중국을 주께로> 136호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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