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기계론적 효용성이 아니라 생명론적 재생산성 개념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질서 중심적인 서구 선교학은 기계론적 효율성의 개념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면에서 “고비용 저효율의 선교구조”라는 문제의식 자체부터 검토해볼 필요를 느낀다.

고비용 저효율의 관념은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로 선교를 바라보는 것인데 이러한 계몽주의 세계관의 전제부터 재고해보아야 한다. 굳이 비용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선교는 기본적으로 고비용이다. 하나님의 성육신 자체가 고비용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효율성을 목표로 삼지 않으며 공동체의 미덕도 효율성에 있지 않다. 효율성이 미덕이 되는 것은 자본주의적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이다. 계몽주의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계론적 효율성의 개념은 일정한 단기간 내에서 투자 대비 산출량으로 측정되기 때문에 긴 안목과 긴 호흡으로 선교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오히려 생명론적 재생산성의 개념이 더욱 성경적이고 적합하다. 재생산성은 사역에 있어서 생명 차원에서의 지속성과 점진적 확대 성을 강조한다.

재생산성은 현지인에게 사역이 이양되었을 때 여전히 “선교구조가 작동하겠는가?” 그리고 선교사 당대가 아니라 50년이나 백 년 후에도 여전히 ”선교적 기능을 하고 있겠는가?” 등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많은 프로젝트 선교들이 고비용을 요구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재생산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일 프로젝트들의 재생산성이 크다면 고비용이 반드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불필요한 고비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교 현지에서 동원 가능한 인적 물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패러다임으로 돌아가야 한다.

현지에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고 선교사 본국으로부터 지속해서 인적 물적 자원을 공급하는 방식은 여전히 계몽주의적 시혜라고 하는 식민주의 시대의 선교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