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다원주의 시대의 변증학 방향

해롤드 네트랜드(Harold Netland) 박사

들어가며

본인은 오늘날 점점 더 대중화 되어가고 있는 예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중 한가지 면을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그것은 주로 다원주의적 관점으로서 예수를 하나의 위대한 종교적 도덕적 리더이지만, 다른 위대한 종교 지도자들과 본질상 다르지 않게 보는 시각이다.

이것은 서구에서 점점 더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각으로서 몇몇 아시아권에서도 또한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시각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대 서구권에서 이 시각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부분적으로 아시아의 이러한 시각의 영향에 기인한 것이다.

세계화의 개념

다원주의적 관점에서의 예수에 대한 몇가지 예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우리는 세계화의 개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화는 많은 문화권들에서 예수에 대해 널리 퍼진 인식과 다원주의적 성격에 대해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란 현대의 생활패턴들이 지리적, 국가적, 문화적, 종교적 경계선을 초월하여 복잡한 양태로 점차 더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지는 과정을 지칭한다. 우리는 모두 정치적 경제적 국면에서의 세계화의 상호연관성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문화와 종교에 대한 세계화의 영향이다.

이제 세계화는 모든 문화의 단일화 즉 한때 서로 구별되던 별개의 문화들이 서로 섞여 하나의 단일화된 문화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역 문화의 구별성은 세계화와 함께 제거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화는 지역간 사람들 사이의 모든 다른 점들은 그대로 유지한 채, 이전에는 지리, 민족, 정치, 종교에 의해 분리되어져 있던 그룹들간에 공통의 상징적 의미들이 공유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의 두드러진 점은 문화, 언어, 그리고 종교적 전통들 간에 접촉이 확장되어, 그 결과로 종종 전 시대에 비해 더 많은 “공유 공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세계화가 가져온 문화적 변화들은 종교에 대한 전통적 해석이 새로운 현실과 도전들에 적응함에 따른 종교적 변형에 나타난다.

서구에서의 움직임

서구에서 전개되는 괄목할만한 움직임은 “종교적 다원주의”로서 통칭되는 가정들과 가치들이 점점 더 수용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적 다원주의란 주류에 속하는 모든 종교들을 유일한 신적 존재(the one divine reality)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서 모두가 다 다소간에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등하게 정당하고 효력있는 반응들로 보는 관점이다.

그 어떤 종교도 모든 사람들을 위한 참되고 규범이 되는 유일한 종교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구권에서 가장 영향력을 끼쳐왔던 다원주의자는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존 힉(John Hick)이며, 다원주의는 실로 학계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힉(Hick)의 다원주의 모델은 대중 문화에서도 또한 널리 퍼진 관점의 세련된 표현을 나타내고 있다. 종교적 다원주의에는 예수를 위한 자리가 있긴 하나, 그것은 정통 기독교에서의 예수가 아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정통교리는 거부하는 반면, 힉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신의 영향력에 매우 비범하게 열려 인간을 위한 신적 목적을 ‘구현시키는 (incarnating)’ 지상에서의 신의 에이전트가 되는 수준까지 살았던 한 사람을 본다.”

세계화는 또한 동양의 종교적 영향력이 서구 문화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불교는 유럽과 북미에서 성장하고 있다. 티벳 불교의 지명도 높은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불교신자로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도를 완전히 깨친 존재였거나 매우 높은 경지의 영적 실현을 이룬 보디사트바(보살:bodhisattva)였을 것이라 본다”.

뉴 에이지 운동의 다양한 조류와 다른 방향으로 영적세계를 추구하는 그룹들도 또한 재해석된 예수를 받아들였다.

일본에서 다원주의적 시각들

엔도는 일본은 기독교와 양립할 수 없는 하나의 “늪”과 같아서 기독교가 그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일본이 변하든지 기독교가 변하든지 해야 한다는 논제를 제기함으로써 많은 사람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 모두에게 이해되어졌다.

엔도의 작품들의 대중적 인기는 많은 일본인들이 이러한 이슈들에 관심이 있다는 것뿐 아니라, 기본적 기독교 주제들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엔도는 또한 예수와 일본의 관계에 대한 더욱 심층적 국면을 보여준다. 엔도의 초기 작품들은 기독교와 일본 문화간의 관계에서의 문제들을 다룬 반면, 그의 마지막 소설, Deep River[1994]에서 그는 종교적 다원주의에 대한 그의 공감을 표현하였다.

다원주의 사고의 확산과 도전

오늘날 많은 이들이 현대화와 세속화의 영향으로 인해 종교들이 교리로 주장하는 바를 받아들여야 하는 지 자체를 의문시한다. 왜 누구든 한가지의 종교적 진리를 믿어야 하는가? 이것이 다가오는 시대에 선교단체들이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세속주의의 도전이다.

접근할 수 있는 많은 선택사항들이 있는데, 왜 굳이 불교나 이슬람교가 아닌 기독교를 선택해야 하는가? 각각이 경쟁적으로 겨루고 있는 예수에 대한 많은 관점들이 있는데, 왜 다원주의적 관점이 아닌 성경적 관점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해야 하는가?

이것은 세계화 혹은 지구촌화 되어가는 추세에서 기독교 선교 단체가 심각하게 연구해 보아야 할 도전이다. 기독교적 믿음은 우주, 신, 인간의 상황과 구원의 본질에 대한 심오하고 논쟁을 야기시키는 주장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주장들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기를 다른 사람들이 자연히 기대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질문들에 적절하고 지식에 근거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져야 한다.

우리의 태도와 자세

우리는 노련한 변증만 가지고 마음을 바꾸고 개종을 하게 만들 것이라고 추정할 수는 없다. 변증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사람도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논쟁을 통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되지는 않는다. 기독교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가 하는 어떤 일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전도나 다른 활동과 마찬가지로 변증은 성령의 능력과 역사 없이는 효과가 없다. 구원 얻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엡 2:8-10),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죄를 깨닫게 하고 (요 16:8-11), 영적으로 눈먼 자들을 대적에게서 해방시켜 그리스도안에서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은 성령이시다(요 3:5; 고전2:14-16; 딛 3;5).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도를 선택사항이 되게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변증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전도와 변증은 많은 기도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의식적인 의지와 함께 수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종교적 다원주의라는 주제를 다룰 때 특히 그러하다.

우리는 반드시 다른 종교의 신봉자들에 대하여 존중히 여기는 마음과 겸손하고 온유한 태도 그리고 문화적 민감성을 가지고 전도와 변증학에 임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의 진리에 대한 확신에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

변증학이 이러한 매너로 행해질 때, 즉 지적으로 책임감 있고, 문화적으로 민감하고, 겸손과 온유와 존중의 정신으로 수행 될 때, 그것은 종교적 다원주의의 가치관과 가정에 의해 형성된 환경에서의 효과적인 선교에 필수적인 요소임이 증명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종교적 다양성과 다원주의의 환경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왜 자신들의 종교적 확신을 거부하고 주와 구주로서의 예수를 받아들여야 하는 지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바른 성경적 관점에서 보는 구주와 주되신 예수께로 인도할 수 있게 하시기를 기도한다.

선교학포럼 현장영상 1

선교학포럼 현장영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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